인경은 이혼한 다음 1년 정도 쉬다가 다시 작은 커피숍을 오픈했다. 남자는 완전히 멀리하고 열심히 일만 하고 지냈다. 그러다가 5년쯤 지나서 배드민턴을 치러 다니다가 공국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때는 커피숍도 접고 집에서 쉬고 있던 때였다. 공국(56세, 가명)은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인경(45세, 가명)을 만나서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고 상의했다. 그리고 치킨집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공국의 이런 모습에 인경은 끌렸다. 그러면서 정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국의 부인인 맹순(53세, 가명)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의심하고 끊어놓으려고 나섰다. 인경도 이제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항상 남자에게 당하고, 남자의 부인에게도 당했다. 그런 것이 너무 억울했다. 그래서 이제는 당당하게 공국의 부인과 싸우려고 마음먹었다.
“그래, 내가 당신 남편을 사랑하고 있다. 공국 씨도 당신과는 정이 없고, 오히려 나를 더 좋아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당신이 물러서야지, 왜 내가 물러서야 하느냐?”
이런 식이었다. 인경은 공국 부인에게는 하나도 미안하지 않았지만, 그의 자녀에게는 미안했다. 자녀는 아무런 죄가 없기 때문이다. 자녀는 공국과 맹순 사이에서 본인의 의사와는 아무 관계없이 태어났다. 공국과 맹순이 남자와 여자로서 사랑하고 성관계를 했기 때문에 아주 우연히 태어나게 된 것이다.
아빠와 엄마가 서로 잘 살고 능력이 있으면 자녀는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아빠와 엄마가 제3자의 개입으로 혼인생활이 파탄나고, 매일 싸움이나 하고 있으면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보게 된다. 그 점에서는 인경은 할 말이 없었고, 미안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문제 때문에 자신이 어렵게 얻은 사랑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맹순은 공국과 인경 문제로 싸움을 많이 했다.
“아니 지금 와서 그깟 여자 때문에 치킨집도 제대로 하지 않고, 가정을 팽개치면 아이들은 어떻게 할 거예요?”
“내가 언제 치킨집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했어? 더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건 먹고 살아야 하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당신이 걱정하지 않아도 죽기 살기로 할 거야. 그리고 가정을 왜 팽개쳐. 돈 벌어다 주고, 아이들 뒷바라지 잘 하고 있는데.”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인경이를 첩으로 데리고 있겠다는 거예요?”
“첩은 무슨 첩이야? 내가 먼저 시작했고, 여기까지 왔으니까 완전히 헤어질 수는 없고 그냥 이런 식으로 가겠다는 거지.”
“그럼 나는 어떤 존재가 되는 거예요. 당신 밥이나 해주고 빨래 해주는 사람인가요? 잠자리는 그 여자하고 하는 거고? 그 여자에게 생활비 대주려는 거예요?”
“그 여자와 잠자리 하지 않아. 생활비도 대주지 않아. 혼자 사니까 위로해주고 가끔 만나는 것일 뿐이야.”
맹순은 이런 공국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공국이 본격적으로 내놓고 인경을 만나고 아예 내놓고 치킨집에 와서 동업자처럼 일을 하고 있으니 견딜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젊었을 때와는 달랐다. 공국이 인경과 육체관계를 하는 것 때문에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문제는 이미 관심이 없었다. 공국이 내놓고 인경과 연애를 하는 것 때문에 맹순의 자존심이 뭉개지고, 인격이 짓밟히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공국을 보면 볼수록 동물적으로 보이고, 더럽고 야비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혼을 하려고 하니 생활할 집이 문제였다. 공국에게 이야기 하니,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당신이 살아, 내가 나갈 게. 딸은 당신이 키우고 있어. 양육비는 내가 매달 70만원씩 줄게.”
맹순은 기가 막혔다. 그동안 돈을 벌어본 일이 없었다. 오직 집에서 살림만 하고 있었다. 교회만 열심히 다녔다. 그런데 갑자기 혼자 벌어서 먹고 살라고 하니 앞이 캄캄했다.
“아니, 내 생활비는 어떻게 해요? 나는 돈 벌 능력이 전혀 없는데.”
“이혼하는 마당에 당신 생활비까지 줄 수는 없어. 그건 알아서 해야지. 살고 있는 집만 주는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해. 나도 밖에서 살 곳을 마련해야 할 입장이잖아.”
맹순이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자가 소유가 아니라 전세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더러웠지만 선뜻 이혼결정을 하지 못하고, 그냥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답답해서 친척인 홍 검사를 만나 법률상담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홍 검사! 이 사람들 정말 나쁜 인간들 아니야?”
“글쎄요. 도덕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지만, 사랑 앞에서야 어떻게 하겠어요. 요새는 간통죄도 없어졌잖아요? 세상이 다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도 남의 가정을 깨는 여자는 나쁜 거야. 왜 굳이 유부남을 꼬여서 가정을 깨뜨리고, 그 가족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느냐 말이야?”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그냥 이혼하지 않고 살면 안 돼요? 아빠가 생활비 벌어다 주고, 양쪽에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내면 어때요? 아이가 더 큰 상처받지 않고, 결혼할 때까지 그렇게 살면 안 될까요? 물론 나는 아직 결혼을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수많은 사건을 통해서 보면, 사람들은 처음에는 감정적으로 사태를 보고 참지 못하고 이혼을 하지만, 나중에 이혼한 것을 후회하더라고요. 나이 들면 남자건 여자건 혼자 사는 것이 외롭고 힘이 들어 또 다른 이성을 찾게 되는데, 한번 깨져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두 번째 만난 사람과도 오래 못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래, 나는 이 결혼생활에서 아무런 잘못이 없어. 그런데 저 인간은 무엇이 잘났다고, 엄연히 가정을 두고, 또 다른 여자를 애인으로 두고 그쪽에만 신경을 쓰고, 돈도 벌어서 그쪽을 주고, 우리에게는 마지못해 겨우 먹고 살 것만 주는 거야? 잠자리도 그쪽하고만 해. 나는 뭐야? 체면 때문에 가정을 지키는 파수꾼인 거야? 그 인간 밥 해주고, 빨래 해주고, 아이 뒷바라지 혼자 하고, 이건 아무 의미 없는 형해화된 가정의 노예일 뿐이야. 시간이 가도 나아질 것은 아무 것도 없어. 잘못하면 그 여자와 아이도 생길 수 있어. 아무리 돈을 벌어도 그 여자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일 거고.”
“그럼 합의이혼을 하려고 그래요?”
“합의이혼은 쉽지 않을 거야. 그 인간이 돈이 없으니까 내게 재산을 줄 능력이 없어. 지금 말하는 게, 현재 살고 있는 전세금 1억원을 주고, 양육비로 매달 70만원만 주겠대. 그것도 딸 아이가 19세가 될 때까지만 준다는 거야. 그럼 나는 무얼 가지고 먹고 살아. 아이도 있는데.”
“그럼 위자료 청구를 하면 되잖아요? 아빠와 상간녀를 상대로 3천만원을 청구하는 거예요.”
“아. 그래야겠구나. 그러면 소송을 해야잖아?”
“물론이지요. 합의이혼이 불가능하면, 이혼소송을 해야 해요. 그때 재산분할청구도 하면 돼요.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모두 합치고, 빚도 모두 합쳐서 50대 50으로 나누는 거예요. 위자료는 별도로 청구하면 되고요. 미성년자녀에 대해서는 친권과 양육권을 누가 가질 것인지 결정하고, 성년이 될 때까지 매달 얼마씩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결정하는 거예요.”
홍 검사는 이렇게 법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혼자 생맥주집에 들어가서 술을 마셨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아! 남자와 여자의 결혼은 저렇게 허망하게 끝이 나는구나. 사이가 나빠지니까 남보다 못한 것이 부부구나. 인경이라는 여자는 연애만 하면 되지, 무엇 때문에 남의 가정을 파괴하려는 것일까? 남자는 가정을 지키지 않고 처와 딸을 버리려고 하는 것일까? 지금은 다른 여자가 좋아도 시간이 지나면 똑 같은 여자일 테고, 싫증이 나면 또 버릴 것 아닌가? 그 남자는 아주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인간이다. 인경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남이야 죽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는 지독한 이기주의자다. 맹순은 경제적으로 무능력해서 인격이 짓밟히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불쌍한 여자다.’
이런 생각을 하니 홍 검사는 결혼에 대한 환멸이 느껴졌다. 그래서 당분간 결혼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홍 검사와 똑 같은 생각을 피력했다. ‘혼인하지 않은 사람은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