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 제56칙 흠산화상의 화살 일촉(一鏃)
“선승 흉내낸다고 깨달음의 세 관문 통과못해”
〈벽암록〉제56칙은 흠산화상과 거양선객과의 선문답을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거양(巨良)선객이 흠산(欽山)화상에게 질문했다.
“하나의 화살촉으로 세 관문을 돌파했을 때는 어떻습니까?”
흠산화상이 말했다. “관문속의 주인을 들어내 보여라!”
거양이 말했다. “그러한즉 허물을 알면 반드시 고쳐야지요.”
흠산화상이 말했다. “다시 어느 시기를 기다리는가? 당장 고쳐야지!”
거양이 말했다. “화살은 잘 쏘았는데, 잘 맞지는 않았군요.”라고 말하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
흠산화상이 말했다. “잠깐 보세, 화상!”
거양이 머리를 돌리자 흠산화상은 멱살을 붙잡고 말했다.
“하나의 화살촉으로 세 관문을 돌파하는 일은 그만두고 흠산에게 화살을 쏘아 봐라!”
거양이 무슨 말을 하려고 망설이자, 흠산화상이 일곱 방망이를 치면서 말했다.
“이 놈은 앞으로 30년 더 헤매야 정신을 차리겠군!”
擧. 良禪客, 問欽山, 一鏃破三關時如何. 山云, 放出關中主, 看. 良云, 恁則知過必改. 山云, 更待何時. 良云, 好箭放, 不著所在. 便出. 山云, 且來黎. 良回首. 山把住云, 一鏃破三關, 卽且止. 試與欽山發箭, 看. 良擬議. 山打七棒云, 且聽, 這漢疑三十年.
차별심 빠진채 함부로 화살 쏘면
본래 면목 과녁 적중 시킬 수 없어
본칙의 공안은 〈전등록〉17권 흠산화상전에 보인다. 흠산문수(文邃)화상은 동산양개화상의 법을 이었으며, 풍주 흠산에서 교화를 펼친 선승인데, 그에 대해선 자세히 알 수가 없지만, 설봉의존과 암두전활, 세 사람이 도반이 되어 제방의 선지식을 참문하다 오산에서 설봉이 깨닫고 성도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리고 흠산화상에게 질문을 한 거양선객에 대해서도 전연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제방의 선지식을 찾아 다니며 행각수행하는 무명의 선승이리라.
어느 날 거양선객이 흠산화상을 찾아와서 “하나의 화살촉으로 세 개의 관문을 돌파했을 때는 어떻습니까?”라고 질문했다. 관(關)은 관문, 관소로서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관문이다. 그런데 세 개나 되는 관문을 돌파했다고 한다.전쟁에서는 내진(內陣), 중진(中陣), 외진(外陣)의 삼관문(三關門)으로 설치된 난공불락의 돌파하는 것이지만, 선에서는 번뇌 망념의 차별심과 중생심을 초월하고 깨달음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하며, 가장 돌파하기 어려운 세 개의 관문이다. 보통 법신, 반야, 해탈이라고 하고, 동산의 조도(鳥道), 현로(玄路), 전수(展手)의 삼로(三路)라고 하거나 황용의 삼관(三關) 등을 배대하여 언급하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일체의 차별경계를 초월하여 곧바로 여래의 경지를 체득한 입장이다. 거양선객이 자신이 ‘나는 일체의 차별세계를 초월하여 여래의 경지를 체득했습니다. 나와 같은 선객을 어떻게 제접하겠습니까’라고 흠산화상에게 정면으로 법전(法戰)을 제기하고 있다.
흠산화상은 “그래! 그렇다면 관문을 돌파한 그 주인공을 들어내 보여라!” 즉 삼관(三關)을 하나의 화살로 돌파한 관문의 주인인 그 대장을 내가 화살로 쏘아 볼테니 지금 여기 내 앞에 들어내 보여라고 재촉한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관문의 주인(關中主)은 무엇인가? 원오는 “주산(主山)은 높고, 안산(按山)은 낮다.”고 착어했다. 이 말은 〈운문광록〉의 말인데, 높은 산은 높은 그대로 낮은 산은 낮은 그대로 관문의 주인공(본래면목)이 본래 그대로 있다고 말한 것이다. ‘관중의 주인공’은 제불이 출세하기 이전, 부모라는 상대적인 차별심이 일어나기전의 자기 본래면목을 말한다. 그러자 거양은 “그렇습니까? 제가 화살을 쏘는 방법이 잘못되었습니다. 고쳐서 다시 한번 화살을 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원오는 “벌써 두 번째 차별에 떨어졌다.”고 하며, 공격한 장수가 이진(二陣)으로 퇴각하고 있다고 착어했다. 그러나 흠산화상은 틈을 주지 않고 급히 추격하며, “잘못을 고친다고 이진으로 물러가더니 언제 다시 공격의 화살을 쏘려고 하는가? 지금 당장 공격해야지!”라고 다그쳤다.
그러자 거양은 “내가 화살은 잘 쏘았는데, 과녁에 잘 맞지는 않았군요. 이제 그만 두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곧장 법당 밖으로 나가 버렸다. 거양은 흠산화상에게 두 번이나 화살을 쏘았다. 그러나 자신이 쏜 화살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흠산화상이라고 힐책하고 있는 것이다. 즉 내가 던진 말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흠산화상에게 정법의 안목을 점검받는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니 그만 두겠다고 큰소리치고 밖으로 나간 것이다. 거양선객이 법당 밖으로 나가는 행동을 보고 흠산화상은 “잠깐 기다리게. 화상!”이라고 하며, 거양선객을 불렀다. 원오는 “부르는 것은 쉬운 일이나, 잡는 일은 어렵다.”라고 착어했다. 즉 땅군이 피리를 불며 뱀을 불러 모으는 일은 쉬워도 모인 뱀을 붙잡는 일은 어렵다. 뱀을 잘못 취급하다가는 뱀에게 물리기 때문에 처분하는 일은 어렵다고 한 것이다. 떠나가는 거양선객을 불러들이는 일은 쉬우나 지금부터 그를 어떻게 제접 할 것인가 어려운 일이라고 평한 말이다.
거양선객은 흠산화상이 “화상!”이라고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머리를 돌려서 ‘무슨 일인가’하고 흠산화상 앞으로 되돌아 왔다. 원오는 “맞추다”라고 착어하고 있는 것처럼, 흠산화상이 “화상!”이라고 부르는 화살이 거양선객을 적중시켰다고 착어하고 있다. 그 때 흠산화상은 되돌아온 거양선객의 멱살을 붙잡고 말했다. “하나의 화살촉으로 세 관문을 격파했다고 큰 소리 치는 일은 그만두고, 지금 나 흠산에게 한 화살을 쏘아 봐라! 자 어서!”라고 전신의 기력과 지혜의 힘을 다하여 목숨 걸고 던진 선문답이다. 그래서 원오도 “흠산이 학인을 위하여 신명을 아끼지 않고 몸을 호랑이 입에다 옆으로 누웠다.”라고 하며, 흠산의 지혜작용은 ‘역수(逆水)의 파도’처럼 놀랄 정도로 거세게 휘몰아쳤다. 거양선객이 이러한 상황에서 독자적인 안목을 갖춘 선승이라면 흔이 선승들이 사용하는 고함을 치거나, 주장자를 휘두르는 자신의 기봉을 펼쳐야 하는데, 엉거주춤 머뭇거리며 무슨 말을 하려고 망설였다. 이의(擬議)는 지혜작용이 없는 중생심이다. 마음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 순간 불심의 지혜작용과는 어긋나고(擬心卽差), 번뇌 망념이 작동하면 곧바로 불심을 벗어난다(動念卽乖). 흠산화상은 안목없이 선승들의 흉내나 내며 큰소리친 차별심에 떨어진 중생 거양선객에게 잡고 있던 주장자로 곧장 일곱 번 후려치면서 “이 놈아! 오늘은 이정도로 훈계하지만, 앞으로 30년 더 불법의 수행해야 좀 알게 될 것이다”라고 자신이 관중의 주인이 되어 호령하였다. 원오는 ‘평창’에 당시 거양선객이 안목있는 선승이었다면 흠산화상이 점검받을 곤란한 처지가 되었을 것인데, 그가 안목 없는 선승이었기 때문에 다행이었다고 평하고 있다.
설두화상은 게송으로 읊었다. “그대를 위하여 관문속의 주인공을 내보낸다.” 설두는 이 공안을 읽는 사람들에게 관중의 주인(본래면목)을 들어내 보이니 잘 파악하라는 말인데, 원오는 첫 번째 화살을 잘 쏘아 맞추었다라고 착어하고 있다. “화살을 쏘는 사람들은 결코 함부로 화살을 쏘지 말라.” 관중의 주인공에게 화살을 쏘려고 하는 참선수행자들은 함부로 화살을 쏘면 과녁을 맞추지 못하고 화살만 잃어버린다. 거양선객처럼, 함부로 쏘지 말라. 일심으로 신중하게 신명(身命)을 아끼지 말고 철저한 구도심으로 관중의 주인공을 쏘아 맞추도록 해야 한다. 관중의 주인공은 항상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하지만, 그를 향해 화살을 쏘아 맞추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화살을 잘 쏘는 일은 어렵다. ‘눈에 신경 쓰면 귀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한쪽에 치우치고 차별심에 떨어지면 적중시킬 수가 없다. 또한 ‘귀에 신경쓰지 않으려고 하니 두 눈이 멀게 되는 것’이다. 눈과 귀 그 어느 한쪽에 신경 쓰고, 취사선택하거나 차별하며 집착하면 관중의 주인공을 쏘아 맞출 수가 없다고 지적한 말이다. “아아! 가련하다. 하나의 화살촉으로 세 관문을 격파했다”고. 거양선객의 질문은 수행자의 참구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누구나 한 화살로 세 관문을 격파한다면, ‘화살이 지난 뒷길은 분명하다.’ 관중의 주인을 맞춘 그 길은 분명한 것이다. “그대 듣지 못했는가? 현사화상이 ‘대장부란 천지가 개벽되기 전의 마음을 근본(祖)으로 삼는다.’ 라는 말을” 한 화살로 세 관문을 격파한 대장부는 관중의 주인공인 마음을 깨달아 체득해야 한다고 읊고 있다.
성본 스님/ 동국대 교수
[출처] [벽암록] 제56칙 흠산화상의 화살 일촉(一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