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발 인적 쇄신이 이어질 경우 자칫 혁신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다만 이미 ‘이낙연 신당’과 이상민 의원의 탈당 등으로 당이 혼란스런 상황에서 섣부른 불출마 권고가 당의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한 지도부 의원은 22대 총선을 4개월 앞두고 12일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것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당장 민주당 내 현역 의원들의 불출마 조짐이 보이지 않아 인위적 인적 쇄신이 쉽지 않고, 공천 과정에서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내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2023.12.12
이런 가운데 ‘원칙과 상식’ 등 비명계는 ‘여권발 인적쇄신’을 명분 삼아 이재명 등 당 지도부에 ‘선당후사’를 압박하는 혁신 요구안을 보낸다는 방침이다. 당 지도부부터 먼저 희생하라는 취지라 이를 둘러싼 내홍이 예상된다.
● 비명계 “이재명에 ‘선당후사’ 요구할 것”
더불어민주당 윤영찬(왼쪽부터), 이원욱, 김종민, 조응천 의원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칙과 상식’ 네 번째 민심소통 ‘국민과 함께 토크쇼’에서 손을 맞잡고 인사하고 있다. ‘원칙과 상식’은 더불어민주당 내 비이재명계(비명·혁신계) 모임이다. 2023.12.10
‘원칙과 상식’ 소속인 조응천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에서 “인요한 혁신위원회 통합보고서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는데, 장 의원이 SNS에 ‘아버지, 이제 저 잠시 멈추겠습니다’라고 쓰면서 돌풍이 일고 있다”며 “정치라는 것이 한순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원칙과 상식은 이번 주 내로 이재명과 지도부에 공식적으로 혁신 관련 요구사항을 전달할 계획이다.
원칙과 상식 소속 한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당 지도부가 선당후사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의원도 “책임이 있고, 실제 권한을 가진 자리의 사람들이 혁신의 모습을 보여야만 국민의힘처럼 감동을 줄 수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당 지도부가 먼저 희생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밖에 혁신안에는 선거제와 당내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방안 등 그 동안 나온 요구사항도 함께 담을 것으로 알려졌다.
비명계 외 친명 지도부 내에서도 지도부가 먼저 불출마를 선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수도권 중진 불출마를 이야기하려면 경기에서 내리 5선을 한 조정식부터 결단해야 혁신에 힘을 받지 않겠나”라고 했다.
신당과 탈당 등으로 당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어설프게 불출마를 권유했다가는 분란만 조장할 수 있다는 것. 이 관계짜는 “다선 의원들이 먼저 자발적으로 불출마 선언을 해주면 탄력이 붙을 수도 있다”고 했다.
● 20대 총선 때보다 적은 불출마 선언
민주당 내에선 “지난 총선 때보다 이번 총선 때는 확실히 불출마 움직임이 희미하다”는 분위기다. 21대 총선을 4개월 앞둔 2019년 12월엔 이해찬을 비롯해 원혜영 백재현 등 중진 의원의 불출마가 이어졌다.
여기에 표창원 이철희(비례), 서형수 등 초선 의원 등 11명이 불출마 의사를 밝혔고, 유은혜 교육부 장관, 김현미 국토부 장관 등 국무위원 출신들도 불출마를 선언하며 선거를 앞두고 인적 쇄신 분위기를 띄웠다.
하지만 이번 총선 땐 아직까지 국회의장을 지낸 박병석을 비롯해 우상호 오영환, 강민정(비례) 등 4명만이 불출마 의사를 밝힌 상황. 정필모(비례)은 불출마를 고심하고 있고, 이탄희는 기득권을 타파하겠다며 ‘험지 출마’만 선언했다.
이처럼 불출마 분위기가 끓어오르지 않는 이유는 사라진 ‘여당 프리미엄’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재선 의원은 “여당일 때는 불출마를 하지 않겠다는 의원들에게 장관직이나 주요국 대사 자리를 제안하며 설득했고, 상당히 효과적이었다”며 “지금은 갈 자리가 보이지 않으니까 의원들이 모두 불출마를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실제 4년 전에는 문재인때 장관을 지내던 의원들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여기에 이른바 조국, 박지원, 임종석 등 문재인 정부 출신 ‘올드보이’들의 출마 선언도 불출마 분위기를 어렵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집 나간 사람도 다시 돌아오겠다고 하는 마당에 추운 밖으로 나가겠다고 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