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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떨어진 지우개를 줍고 일어나는데, 언제 내 옆에 다가온건지 엄청난 존재감을 내뿜으며 날 내려다보는 한지혁으로 인해 심장이 떨어질 뻔 했다.
"저기 말이야. 내 몸에 심장이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줘서 고맙긴 한대... 놀래키지마!!"
맨날 나만 놀라는 것 같아 일부러 소곤소곤 길게 말하다가, 마지막에 소리높여 강약조절을 했건만 눈 하나 꿈쩍 않는다. 심장도 강철로 된 녀석 같으니. 내 언젠간 네 놈을 놀래키고 말겠다. 속으로 장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한지혁의 낮은 음성이 들렸다.
"너 벙어리야?"
이건 또 무슨 헛소리람. 저 말 뜻안에 또다른 속뜻이 존재할꺼라고 잠시 고민하다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 만졌다. 그런 내 행동이 마음에 안든건지 인상이 안 좋아지는 한지혁.
"잠깐만 기다려봐. 아 찾았다. 벙어리란 '음성 언어를 소리낼 수 있는 능력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 또는 이전에는 말을 할 수 있었으나 어떤 원인으로 그 능력을 상실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 즉 음성 언어를 소리낼 수 없는 사람' 이다."
사전에서 찾은 벙어리의 뜻을 차근차근 읽어주는 내 모습에 어이없다는 듯 묻는다.
"뭐하자는거야."
"아니 난 말 잘하고 있는데 니가 벙어리라고 물으니까. 내가 생각하던 사전적 의미의 벙어리가 바뀐건지 아니면 다른 뜻이 추가된 건지 확인해봤찡. 근데 니가 틀렸네."
뭔가 논리로 이 녀석을 이긴 것 같아 기분 좋아져서 놀리듯 말했더니 선명하게 솟아오르는 놈의 핏대. 바로 고개를 돌려 공부하는 척했다. 비굴해보여도 우선 살아야 하느리라.
다행히도 녀석은 화를 참으며 자리에 앉더니,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곤 한숨을 쉬었다. 땅 꺼지겠다는 말이 튀어나갈 뻔 한 것을 가까스로 부여잡고 교과서만 팠다.
오늘 하루 무사히 넘어가길.
* * *
하루종일 스트레스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우리반을 자주 찾는 은진이와 내가 어디 갈때마다 따라붙는 한지혁으로 인해, 현재 스트레스 지수가 100을 넘어 터질려고 한다. 왜 이러냐는 내 질문에 침묵을 고수하는 한지혁으로 인해 답답해서 미쳐버릴 거 같다.
이 놈 나를 고통에 모는 방법을 알아내고 이러는 게 틀림없다. 결국 체육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창고에 도구들을 나르는 도중, 여전히 내 뒤를 따라다니는 한지혁에게 화산 폭발하듯 소리쳤다.
"야!! 아침에 내가 실수했어 그래! 미안해 내가 사과한다고!!"
아침에 내가 자기를 놀린 것에 대한 복수라 생각해서 열심히 사과했건만, 특유의 무표정으로 듣기만 할 뿐 아무 반응도 안한다. 이를 벅벅 갈며 돌아가려는 순간, 갑자기 한지혁의 표정이 무섭게 변하더니 내게 엄청난 속도로 뛰어오며 소리쳤다.
"피해!!!"
무슨 일인가 싶어 녀석의 시선을 따라 위를 올려다보니 빠른 속도로 나를 향해 떨어지는 화분을 발견했다. 맞는다는 생각에 비명도 못지른 채 두 눈을 꼭 감았고, 그 순간 거칠게 나를 감싸안는 한지혁. 그리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넘어졌다.
전체적으로 내 머리와 등허리를 꽈악 감싸안아준 한지혁의 단단한 팔로 인해 심한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감았던 눈을 떴다.
"으... 아... 한지혁...?"
눈을 뜨자 날 대신해 떨어지는 화분에 오른쪽 어깨를 정통으로 맞은건지 한지혁의 와이셔츠가 점점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 광경에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도와달라고 외쳤다. 내 목소리를 들은 몇몇 학생이 몰려왔고, 구급차 불러 라는 체욱선생님의 외침이 운동장을 메웠다.
고통에 옅은 신음소리를 내던 한지혁이 조금 찡그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후우..안 다쳤냐?"
그 목소리에 끝내 맺혔던 눈물이 떨어졌다.
# # #
"히히.. 성공했어. 성공했다."
학생들의 비명소리와 때마침 들어오는 앰불런스 소리까지 요란히 울리는 학교에서, 화분을 던진 아이가 모든 걸 지켜보다 음산하게 웃으며 자리를 벗어나려 한다.
"거기 사이코."
누군가 있다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아이가 눈에 띄개 어깨를 떨며 조심스레 뒤를 돌았다. 매캐한 담배향이 코 끝을 찔렀고 그곳에는 선명하게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서있었다. 아이를 잠깐 응시하던 남자가 지독히도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방금 니가 던진 걸 여자가 맞았다면, 넌 이미 죽었다."
"... 그... 그게... 다시는 안그럴게!! 제...제발 못... 본 척 해줘!!"
자기가 행한 일을 들켰다는 생각과 무섭게 느껴지는 살기에 온 몸을 떨며 말을 더듬는 아이. 가만히 지켜보던 남자는 담배를 깊게 들이마신 후, 희뿌연 연기를 공중으로 내뿜으며 한 마디를 던진 채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시는 눈에 띄지 마라."
홀로 남겨진 아이는 두려움과 살았다는 생각에 떨리는 두 손을 꽉 쥐며 빠르게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 * *
앰뷸런스가 도착했고 병원에 따라가겠다고 울부짖으며 소리치는 나를 향해 기다리고 있으라 말하며 내 머리를 한번 쓰다듬는 한지혁. 그 행동에 그만 힘이 풀렸고 녀석이 탄 차는 빠르게 학교를 벗어났다.
초조하고 걱정스런 마음에 교실에서 손톱만 물어뜯으며 기다리던 내게, 파편을 제거하고 꿰매는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고 전해주러 온 은진을 보고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걱정마. 그 놈 갑빠 하나는 튼튼해서 심하게 다친건 아니래."
"하... 진짜 다행이다."
은진이의 위로를 들으며 정신을 가다듬은 후, 이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빠르게 교실을 나왔다.
"야!! 어디가?!!"
은진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반에도 없고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는 모습에 우연잖게 지나가던 학생을 잡아 물었더니,
"아 걔? 아까 옥상으로 급하게 가는 것 같던데."
학생의 정보를 듣고 곧장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에 올라온 난 주위를 둘러보다 한 쪽 부근에서 무언 갈 찾고 있는건지 엎드려 있는 형체를 발견했다. 그 모습에 분노로 덜덜 떨리는 두 손을 주먹쥐고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불렀다.
"야 변소정."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흠칫 놀라며 찾던 손짓을 멈추고 나를 스윽 올려다 보는 형체, 변소정.
내 모습을 확인하자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몸을 일으킨다.
"너. 내가 아무말 않고 편지 받아주니까 날 아주 개호구로 봤다 이거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내 눈 앞에 있는 변소정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말했다.
"무.. 무슨 소리야?"
"발뺌하지마. 난 니가 아침에 편지 넣는 걸 예전부터 알고있었어."
솔직히 아무리 성격 좋은 인간이라도 아침마다 욕해봐라. 열이 안받나. 내가 편지를 발견하고 몇 일 뒤, 도대체 누가 장난질인가 싶어 하루 날 잡고 엄청 일찍 학교에 와서 매복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변소정이 넣는 걸 발견하고는 쟤가 왜? 라는 생각으로 고민하다가, 학업스트레스를 이런 걸로 푸는 걸까 싶기도 하고 저런 짓을 해서 소문이 안좋은건가 온갖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얼굴을 확인하고 나니 그 후론 욕도 욕 같지도 않고, 가장 중요한게 직접적으로 피해주는 것도 없겠다 새벽부터 일어나는 게 더 힘들것 같다는 생각에, 그래 니가 지칠 때까지 해보라고 그냥 놔둔게 화근이었다.
"무슨 말하는지 모르겠어..."
흔한 범죄자들 같이 물증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뻔뻔스럽게 끝까지 인정하지 않자, 주머니에 들어 있던 걸 꺼내 던졌다.
"이거 찾고 있었지?"
자기 눈 앞에 떨어진 금빛 토끼모양 장식품을 보자 급격하게 일그러지는 변소정.
"이게... 어떻게...?"
"니가 화분 던질 때 같이 떨어졌겠지."
저 토끼는 변소정이 늘 차고 있던 팔찌에 달려 있던 것으로, 내가 몇 번 저 년을 붙잡을 때마다 반짝이던거라 기억에 남아있던 것이었다. 화분이 떨어진 자리에서 저걸 발견했을 때의 그 분노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앞에 떨어진 걸 주워 주머니에 넣고나서는 아까와는 다르게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본다. 그 모습에 이를 갈며 천천히 변소정에게 다가가며 낮게 읊조렸다.
"나한테 하는 건 상관없어. 무시하면 되니까. 근데. 너 때문에 내 눈 앞에서 한지혁이 다쳤어... 이 꽉깨물어라."
사정거리 안에 변소정이 들어오자 가차없이 뺨을 날렸다.
"넌 선을 넘었어. 미친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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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짧은거 같죠...? 네... 그래서 한편 더쓰고
사라지겠습니다ㅋㅋ. 30분만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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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ㅎㅎ기다립니닸
기다려주시는만큼 하루하루 재빠른 업뎃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ㅎㅎ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