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poster photo 김태성, degine 돌다리
전라도닷컴 100호기념 무등산풍경소리 83회
'전라도를 항꾸네 노래하자!'
2010년 7월
10일 토요일 오후 7시
생태문화공간 운림제(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455번지 / 062-226-5900)
*전라도닷컴 100호 기념행사는 6시부터 시작합니다.
노래손님/
포크가수_한치영, 오카리나_한태주, 포크가수_한보리,
포크가수_오영묵,
인도음악가_박양희, 소리꾼_배일동, 가야금병창_하선영,
고수_박시양
이야기손님/
황풍년_전라도닷컴 편집장, 김경일_무등산풍경소리 실무위원장
사회/
최명진_미래에서온교회 목사, 백금렬_소리꾼, 지정남_연극인
전라도닷컴은
순정한 사람들의 질박한 삶,
자연과 더불어 오래된 전통을 지켜가며 살아온 마을 공동체의 문화들,
산천천지 어디를 둘러봐도 눈물나게 아름다운 고향의 풍경들….
'전라도 사람 자연
문화가 있습니다'를 내걸고 전라도닷컴이 담아온 세상입니다.
모든 지역, 모든 생명, 이름없는 삶과 작은 문화들이
똑같이 존중받는 세상을 꿈꾸어온 전라도닷컴은
2000년 인터넷 웹진으로 출발해 2002년
3월 월간 잡지를 창간했으며
2010년 7월호로 100호를 맞았습니다.
쇠락한 농촌 마을, 깊은 산골 오지, 바다 건너 외딴 섬, 시들어가는 오일장까지,
전라도닷컴은 전라도 골골샅샅 순정하게 발품을 팔아 기록하고 또 기록했습니다.
수
천 년 역사를 면면이 이어온 소중한 문화유산인 고향의 언어가
사
투리로 천대받으며 영영 사라지지 않도록
전
라도 어르신들의 말씀을 꼬박꼬박 받아 적었습니다.
전라도의 이야기는 참으로 무궁무진했습니다.
주름투성이 시골 농부의 삶에 가슴 시린 현대사의 비극이 아로새겨져 있었고,
작은 비석과 쓰러져가는 고목 하나에도 지울 수 없는 역사의 숨결이 담겨 있었습니다.
평생 학교 문턱에도 가지 못하고 지독한 일 구덕에서 배를 주려가며 자식들을 키워낸
할머니들의 말씀은 풍성한 언어의 보고였고, 유장한 우리네 민속이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
한 사람 한 사람이 박물관이자 도서관'이었기에
전라도닷컴의 손과 발은 쉴 틈이 없었습니다.
하나 둘 생을 마감하는 시골 어르신들을 지켜보는 것은 고통이었습니다.
그것은 무너지는 농촌, 전통과 역사의 사라짐, 마침내 흔적 없이 스러질
모든 한국인들의 뿌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전라도닷컴은 정직한 땀과 눈물의 기록입니다.
이
땅에 사는 그 어떤 사람일지라도 스스로의 인생이 구차하다 여기지 않고
자
신을 장엄한 역사의 주인공으로 곧추 세우자는 간절한 편지입니다.
모
든 생명의 존엄함에 고개를 숙이며, 저마다 삶의 빛나는
가치를 바탕으로
건
강한 공동체의 꿈을 꾸자는 약속입니다.
한보리
한보리의 음악 만큼 자신이 뿌리박고
사는 곳에 대한 깊은 천착, 삶과 이상 사이에서의
통렬한 자기고백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그의 음악은 결코
결연하거나 비장하지도 않고 유유자적하다. 마치 도가의
노장사상의 숲 위를 맨발로 아슬아슬하게 걷는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때로는 따분하다고 할 정도인 그의 음악은 험난하게 살아왔던 그의 삶과 궤를 같이한다. 산전수전 공중전 덧붙여 화생방전까지 치른 백전노장의 여유와 관조를 겸비했다고 할까. 목구멍에 풀칠하려고 택시 운전을 했던 때가 그래도 가족에게 가장 당당했다고 하는
그의 말처럼 말이다.
그의 미공개 노작들, 혹은 유명하지 않아 주변에서 ‘불굴의 걸작’이
라고 반놀림 받는 이름없고 별 볼일 없는 그의 음악들은 결코 화려하지 않고 결코 돈냄새 나지 않으며 또한 결코 타협적이지 않으면서
큰소리치지 않고 고요히 빛이 난다.
눈을 감고 가만히 그의 음악을
들어보자. ‘술병 속의 바다’ ‘미안해 아들아’ ‘할머니 생각-딸기 한 근’ ‘내 아내는 우동을 좋아해’…
- 전라도닷컴, 장용석의 ‘음악
과 연애걸다’ 중
박양희
바람에 취해, 바람에 사로잡혀 인도 ‘바울’의
노래를 부르는 박양희.
“사막에 뜨는 별을 보는 것, 타지마할에 가보는 것, 수행공동체인 아쉬람에서 살아보는 것.”
항상 마음에 품었던 이 세 가지
소원을 풀기 위해 지난 1995년 나이 스물 여덟에 홀연히
인도로 떠났던 그녀는 산티니케탄(평화의 배움터)에 10년
가까이 머물며 인도 전통악기인 시타르와 따블라, 그
리고 벵갈어를 배우고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바울’이 됐다.
‘바람에 취한 자, 바람에 사로잡힌 자’라는 뜻처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춤과 노래를 부르며 바람처럼 떠도는 이들이 ‘바울’!
그녀에게 음악은 교감이면서 소통이다. 고요하면서도 강력한 그녀의 음악들은 영혼을 치유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그녀가 언제부턴가 오월이면 늘 망월동 묘역에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위무하는
마당을 펼쳐온 것 역시 너무도 자연스런 일이리라.
오영묵
한보리, 박양희 등과 더불어 ‘시를 노래하는 달팽이들’의 달팽이 하나가 되어 ‘포엠콘서트’를
꾸준하게 꾸려온 오영묵.
활자에 갇힌 시를 영상이나 노래, 사진 등으로 다양하게 풀어내면서 또다른 소통의 재미를 안겨준 공연 ‘포엠콘서트’처럼, 그는 오래 전부터 지역 음악계에 묵묵히 씨 뿌리는 일들을 해왔다.
당장 꽃 피우고 열매 맺는 데
조바심 내지 않고, 한결같이 제 자리를 지키며 ‘할 바’를
다해 온 그의 성정은 그의 음악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서정적이면서도 뼈가 있는 노래. 차분하면서도 격정적인 노래. 오랫동안 고요히 갈고 닦은 기량과 자연스레 몸에 스며있는 감수성이 담긴 노래들이다.
한치영 & 한태주
이 땅 곳곳을 떠돌 듯이 살아온
그들에게 소유나 안주의 개념은 없다. 유목민이 ‘지금 이곳’에
집착하지 않듯, 소유를 최소화하듯 말이다. 욕망이 있다면 단지 ‘좋은 음악’을 향한 것. 그 욕망도 부자유한 것이 아니어서 “내가 진정으로 마음 바치면 물 흐르듯 좋은 음악으로 당도해갈 것”이라는 믿음일 뿐이다.
1982년 MBC강변가요제에서 금상을 탄 이래 본격적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한 한치영은 <할미꽃> <이것 참 잘 돼야 할텐데> <아! 해남> <광개토대왕> <우리들의 시인> 등의 음반을 그간 발표했다. 그가 부르는 노래들 속엔 자연과 생명, 역사가 담겨 있다.
“넌 몰고 싶니?/ 번쩍거리는 은색 오토바이/ 난 올라타고 싶어/ 늠름한 천리마 말잔등/ 넌 질주해보고 싶니?/ 복작거리는 도시 빌딩 사이/ 난 달려가고 싶어/ 끝없는 풀바다 고구려/ …옛날 할아비들 햇덩이 찾아/ 달려온 길/ 달
려보자…”(‘고구려 아이들’ 중)
은색 오토바이를 욕망하는 세상에서
천리마 말잔등을 이야기하는 그의 노래는 돈이나 인기를 그에게 안겨주진 못했다. 하지만 유행이나 얄팍한 취향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고 정직하고 뜨겁게 토해낸
그의 노래들은 ‘소비’되지 않고 ‘소
통’한다.
“자연 속에 모든 가르침이
있다”는 부모의 믿음으로 제도교육에
편입되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큰’ 학교인 자연 속에서 자란 한태주는 흙피리 연주에 섬진강과 지리산의 바람, 숨결을 오롯이 채워 전해 왔다.
<하늘연못> <새소리> <공간여행> 등 그의 흙피리 창작연주집에
담긴 곡들은, 듣는 이의 마음을 순식간에 ‘자연’속으
로 ‘공간이동’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오래오래 자연을 벗해오며 그 숨결을 가슴 속에 천연스레 쌓아온 이만이 들려줄 수
있는 소리일 것이다.
소리꾼
배일동
혼신을 다해 토해내는 그의 소리는
거대한 파도처럼, 시원스레 쏟아지는 폭포수처럼
다가온다. 순천 출신의 소리꾼, 배일동.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미국계 석유회사
유조선 기관사로 일했던 그는 스물 여덟의 나이에 아무 보장도 없는 늦깎이 소리길로 접어들었다.
성우향 선생에게 춘향가·심청가를, 강
도근 선생에게 흥보가·수궁가를 배웠다. 선암사 계곡에서 2년, 지리산에서 5년, 인
생의 가장 왕성한 시절인 30대를 산에서 살았다.
“…공부를 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선생들의 소리 흉내를 이렇게 내고
있는 너는 누구냐. 이렇게 따라하는 소리가 과연 내
것이냐. 그 이후로는 제 느낌으로 소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장단도 소리를 맺고 푸는 것도 모두
제 느낌에 따라 바꿔버렸죠. 형식의 틀을 벗어버리고
나니 사설이 그렇게 쏙쏙 앵길 수가 없어요. 그
렇게 공부길을 잡고 다시 가다보니 7년 세월이 훌쩍 가버린
거죠.”
산에서의 공부 7년은 스승들에게서 익힌 소리를 자신만의 깊이로 받아들이기 위한 자기화과정이었던
셈이다.
“판소리는 한량들이 즐긴
고급예술이 아니라 어렵게 살아온 이들이 더 깊이 공감하는 아픔의 예술이고, 절박한 삶에서 공감대가 커지는 예술”이라고 말하는 그. 재주만으로 도달할 수 없는 그 소리에 닿기 위해 오늘도 절절한 삶을 살고 있다.
- 전라도닷컴, 김인정의 ‘인물
탐험’ 중
가야금병창 하선영
‘무궁한 웅지를 품었으되
가냘프게 흔들리며 살짝 고개 숙여 겸손의 아름다움까지 느끼게 하는 난초와 같은 이’ .
스승인 강정숙 명인은 연주자
하선영을 이렇게 평하였다.
옛것을 갈고 닦되 부단히 자기의
것을 재창조하고 있는 ‘온고지신’의 연주자 하선영은 가야금병창계의 젊은 별이다. 가야금병창으로 판소리 바탕소리를 연주한 다섯 번의 <가야금병창 바탕전>을 이미 마친 그의 연주자로서의 수상경력과 활동상황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가야금병창을 잘하기 위해서는
가야금도 잘 타야 하고, 판소리도 잘해야 한다. 가야금병창의 소리는 판소리에 비해 맑고 밝은 목이라야 잘 어울린다. 하선영의 목소리는 맑고 밝다. 성음이 분명하고 산뜻하다. 그의 가야금 소리 또한 그의 목소리를 닮았다. 영롱한 가야금의 선율과 맑고 밝은 목소리가 빚어내는 어울림은 온갖 꽃 만발한 봄날의
꽃밭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 현재 ‘광주
가야금연주단’ 단원, 가야금병창단 ‘현의 노래’ 대표.
고수 박시양
흔히 고수는 반주자로서 소리판의
부차적 존재로 보인다. 허나 명고수는 단지 반주자가 아니라
소리를 이끌어가는 지휘자요, 해석자이자, 비평가로서 소리꾼과 청중 사이를 매개한다. 널리 회자되는 ‘일고수 이명창’이라는 말은 ‘북이 으뜸이고 소리가 버금’이라는 말이니, 소리를 살리고 죽이는 것은 고수의 장단에 달렸다는 의미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전수조교 박시양은 소리꾼의 소리내력을 짚어내며 소리꾼과 호흡을
맞춤으로써 관객들의 마음을 쥐락펴락 하는 매력적인 고수이다.
현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