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스쳐간 눈빛은 자연이 되었다
-류경무 시인에게
질문이 있었다
새가 노골적으로 지나갔다
틈틈이 메모한 당신이 실종됐다
구름이 모든 것을 장악한 듯 보였다
걸음이 메롱메롱했다
나를 스쳐간 많은 눈빛은 자연이 되었을 것이다 고집 센 바위가 되거나 성격이 무양무양한 자작나무 따위가 되었겠지 안부가 궁금하다 통합검색을 해 봐도 흔적없이 사라진 당신, 나는 성인용을 탐하고 바람은 도덕적으로 불었다 민첩한 욕망이 몸을 사선으로 베었지만 글쎄, 몸은 이미 이미지가 아닌가?
정체성이 사라진 책
예전과 달라진 콘크리트
공기의 압력을 받는 의자
새생명을 얻은 접속사들
빈 병 속에 발칙한 음모가 숨어 있다 집을 짓던 형용사는 어느새 투사가 되었다 말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말문을 막아 버렸다 그는 몸을 깎아 창을 만들었다 한번만 없던 일로 할 수 없을까, 하고 부탁한 그의 부주의가 일을 망쳐버렸다 그러나 누군들 이 틈새를 건너뛸 수 있을까 모든 종말의 서두에서 서늘한 한기가 얼굴에 달라붙었음을
길들인 파리
아무튼, 이제 무서울 게 없다
내가 무서웠던 건 간지러움
지칠 때마다 손가락을 하나씩 잘랐다
열 개가 다 날아갔을 때
비로소 나는 파리를 길들이기 시작했다
파리는 삼 년을 수련한 덕분에
내적 필연성을 지닌 식구가 되었다
파리의 목숨을 앗을 수 있는 것은 나와 파리풀뿐
파리도 이제 무서울 게 없다
악몽에 시달리다 꿈 속에서
휘파람에 호명되어 날아온 파리가 꿈 속을 긁어준다
* 나에게 길들여진 이후에도 파리의 식성은 바뀌지 않아 더러운 곳만 뒤지고 다녔지만 나와 내적 필연성을 가진 이후 지능은 발달하였다 나의 휘파람이 없는 동안에 잡지를 뒤적이거나 끝을 보지 못한 쿼크의 가설을 연구하거나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經夜>를 읽기도 했다 나는 손가락이 없었으므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으므로 파리가 대필을 했으므로 입만 나불거리고 있었는데 끝을 보지 못하고 지쳐 물러나면 파리가 그 나머지를 메우기도 했는데 그것을 대강 분류하여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나의 글은 생략).........
파포퍼퓨펖프
패페펴패
픞피,
* 그리고 나는 파리의 언어에 감명 받아 소형 녹음기에 짧은 시 한 편을 담아 두었는데 그것을 대강 분류하여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만것습다
나었고이
지가누는하
무,
구는고나금
있는을
- 김대호,<나는 누구이고,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중에서 -
이제 여기서 나의 말을 줄이고 파리의 언(言)을 듣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는데 지금 파리는 식사 중이므로 퀴즈 하나를 내도록 하겠다
문제; 나는 1916년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태어났다 학교는 김천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두 번의 뼈아픈 실연이 있었고 그후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는 마음의 공황을 안고 살아간다
증상이 악화되어 누구를 사랑하면 온몸이 간지러운 열병을 앓게 되는 이유로 나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묘책이 아닌가?
1) 그렇다 2) 아니다
이제 파리를 불러보자, 휘이익!
-파리의 언(言) 생략-
* 대신 독자의 궁금증을 위하여 나의 번역말을 들려주고 싶은데 그것을 대강 분류하여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나, 파리는 1916년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태어났습지 배운 학습은 없습지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랐는데 나의 주인인 김대호 백작과 내적 필연성을 가지고 지능이 발달한 이후 사랑의 아픔 알게 됐습지 하루에도 수없이 백작의 온몸 긁어주면서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질병임을 알게 됐다는 말입지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한.......... 어쩌구 하는 백작의 시를 받아 적으면서 나는 그 질병이 스스히 내 몸으로 옮겨오고 있다는 것에 전율하면서 손을 놓기도 했습지 나는 받아 쓰는 일을 중단하고 다만 백작의 간지러움만을 위로하고 싶었지만 그의 닭똥같은 눈물 보고 있으면 다시 마음이 약해지고 그의 떨리는 구술을 한 자도 빠짐없이 기록하게 됐습지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백작은, 이 완벽한 사랑을 위하여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아가기로 결심했는 지도 모릅지 대신 나는 1405호 여자를 사랑하게 됐습지 그 여자는 난쟁이인데 조세희,<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도 안성맞춤인 공순이입지 나는 '짓무른 눈'을 보면 꾀어 다 파먹었는데 (백작은 말을 하지 않았겠지만 백작의 눈도 내가 다 파먹어 그는 실명이 되어 입지) 그녀의 맑은 눈만은 내가 아무리 배고파도 어쩔 수 없읍지 그래서 나는 세상의 모든 짓무른 눈을 다 파먹고 더 이상 먹을 게 없어 굶어 죽더라도 그녀의 눈만은 남겨 두기로 했읍지 이것이 나는 사랑이라고 믿고 있읍지 백작의 사랑은 나보다 천 배는 더 깊은 곳에 가 있지만..................
나는 파리에게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았는데
나와 내적 필연성을 가져 지능이 발달한 이후
이렇게 훌륭한 언(言)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실명이 되었지만
지금 내 등짝을 긁으며 흘리는 파리의 눈물을 읽을 수 있다
그는 내 등 뒤에서 소리없이 울고 있지만
날이 밝으면 이 집을 떠나야 한다 파리가,
나의 질병에 중독되기 전
시끄럽고 단순한 세계로 밀어줘야 한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이곳의 온도는
파리가 견디기에 너무나 고온다습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