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문학촌 문학기행 관련// 240426
황순원 문학의 동심의식과 서사구조 - ⑥ 동심의식의 지향
1. 삶의 고난과 모성의 응전력
황순원의 소설은 동심의식에 기반하고 있음으로 해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형태의 사랑은 결국 모성애와 일치하는 것으론 귀결된다. 또한 남자 주인공은 모든 여성에게 어머니의 모습을 찾는다. 그리하여 자칫하면 에로티시즘으로 귀결될 수 있는 상황이 황순원 소설에서는 작중 인물의 모성적 가치 발견을 통해 승화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이는 황순원이 여성의 의미를 항상 모성으로서 인식한 결과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작에서부터 황순원에게 모성애는 지고의 가치로 자리하고 있다. 억압적인 현실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저항하는 방법이 아니라 훼손되어 버린 것마저도 모성애적 사랑으로 감싸 안을 때 진정한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이 황순원의 작가 의식이다. 황순원은 모든 존재의 근원인 모성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근원적 인간 구원의 원천으로서 모성의 가치를 부각시킨다.
또한 황순원의 작품들은 결국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발견하고 그것들을 지켜 나가겠다는 다짐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어떤 외적 현실의 변화에도 황순원 문학의 주제는 생명에 대한 옹호로 귀착되는 구조를 보이는 바, 황순원 소설에서 생명에 대한 사랑, 생명에의 외경은 인간의 삶에 진정성을 부여하는 근원적인 가치로 작용한다. 그리고 어미니로 표상되는 생명의 뿌리의식과 순환질서에 대한 깨달음은 다시 오늘에 있어서의 내성적 삶의 자세로 연결되며, 그러한 자세가 유년의 세계, 즉 동심에의 향성을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2. 순수에의 집념과 자아 성찰
황순원의 작중 인물들은 성인의 세계로 진입하지만 이들에게 유년의 순수성은 속악한 현실에서 속물화되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는 방어 기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동심을 간직한 순수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혹은 그러한 인물들이 살아 숨쉬는 공간인 설화적 세계에 대한 조명을 통해 작중 인물들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그런 연유이다. 황순원의 작중 인물들은 대부분 그들을 억압하는 세계와 운명에 대한 분노를 강렬하게 표출하기보다 그것들에 대해 치열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표출한다. 황순원의 인물들이 수시로 사로잡히는 ‘부끄러움’과 자기 자신에 대한 ‘무서움’들이 바로 그러한 반성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것이데, 작품집 「너와 나만의 시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타인의 체험이나 설화를 자신의 체험에 결부시켜 재고함으로써 성찰의 계기로 삼고 있다.
또한 황순원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노인 주인공들은 모두 지나온 자신의 삶의 궤적을 뒤돌아보며 젊은 시절의 어리석음과 미숙함에 대한 반성을 하고, 그를 통해 삶에 대한 자기 나름의 통찰을 얻으며 기꺼이 늙음과 죽음을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들이 삶의 고난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편에 서게 되는 주요 동인은 모성의 치유력에 의해서이다.
3. 생의 긍정과 신생의 미학
초기 작품에서부터 황순원은 삶과 죽음의 문제를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와 삶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는 문제를 제기하였는 바, 그의 마지막 작품집 「탈」에 이르러서 작가 의식이 일정한 경지에 도달한 면모를 보여준다. 이 작품집의 표제가 된 「탈」(1971)은 두 페이지 정도의 짧은 소설로 전쟁터에서 죽은 한 군인이 자신을 죽인 그 상대편 군인의 몸속으로 들어가 그와 하나가 되는 기이한 이야기가 담담하고 절제된 언어로 서술되고 있다.
작품집 「너와 나만의 시간」과 「탈」에는 전쟁의 상처와 6,70년대의 정치적 변화와 산업화, 근대화의 도정에서 빚어지는 사회적 모순들이 작품 곳곳에 반영되고 있다. 그러나 황순원은 이러한 현실을 작품에 담아내는 데 있어 한 걸음 비켜선 듯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비극의 정점에서 눈길을 돌려버리고, 삶의 참혹함이나 고통의 본질에서 애써 비켜나려는 태도를 보인다. 이처럼 황순원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가 우유부단하고 소극적이며 현실과의 거리두기의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비록 황순원 작품 중에는 시대나 사회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작품도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작품에서도 현실의 문제는 인간 본연의 생명의 문제로 환원되어 버리고 궁극에는 생명 본연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기 위한 배경으로 축소되고 만다. 그리고 이러한 생명가치는 인간에 대한 근원직인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모든 생명에의 외경으로 확장된다. 따라서 황순원의 동심지향성은 생명의 존엄성이 마모된 훼손된 자리에 대한 저항의식의 한 표현으로 나타나며, 또한 존재의 근원으로서 인간 삶의 실존적 계기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출처 : 정수현, 『황순원 소설 연구』, KSI한국학술정보(주),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