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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본 성경(5) - 순종과 배려의 사람, 이삭
1. 아버지는 누구인가?
한 달 사이에 동료교수 두 분이 세상을 떴다. 슬픔에 젖을 자녀들이 아버지를 의연하게 작별하는 모습이 마음에 닿았다. 2년 전 동료교수가 부친상을 당했을 때 위로의 글과 함께 내가 쓴 책 ‘아들아, 대한의 골키퍼가 되라’에 인용한 ‘아버지란 누구인가?’ 부분을 읽어보라고 책의 그 부분을 접어서 전하였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감사인사를 보내왔다.
‘김태호 교수님께.
오늘에서야 교수님께서 보내신 봉투를 열어보고 말씀하신 그 쪽 편을 서둘러 읽었습니다. 먼발치에서 뵙기에도 후덕하신 모습이셨지만 글 안에서 뵙는 교수님은 참으로 멋지셨고 어찌 그리 다정다감하신지요. 훌륭하십니다.
이렇게 편지를 동봉하시어 좋은 책을 주시고 위로의 정까지 보내주시니 저는 어떻게 감사의 말씀을 드릴까요... 교수님께서 쓰신 대로 뒷동산의 바위,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이시대의 위대한 아버지의 표현이십니다. 항상 말없이 도닥거려주셨던 그 아버지를 벌써 그리워하며 저는 애달픈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김태호 교수님.
보내주신 책 속의 내용은 깊은 뜻을 새기어 잘 읽겠습니다. 벌써 무더워진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 항상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몇 년 전부터 인터넷에 올라온 작자미상의 글 ‘아버지란 누구인가’를 살펴보자.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짓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과 딸이 학교성적이 좋지 않을 때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속으론 몹시 화를 내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한 유리로 되어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장소, 그곳은 즐거운 일만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용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 이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 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 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들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자식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라는 속담이다. 아버지가 늘 자식들에게 그럴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점에 있어서는 미안하게 생각도 하고 남모르게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그 이유는 아들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생각 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4살 때 - 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7살 때 - 아빠는 아는 것이 정말 많다
8살 때 - 아빠와 선생님 중 누가 높을까
12살 때 - 아빠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14살 때 - 우리아빠요 세대차이나요
25살 때 - 아버지를 이해하지만 기성세대는 갔습니다.
30살 때 - 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살 때 - 여보 우리가 이일을 결정할 때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 봅시다
50살 때 - 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셨어
60살 때 - 아버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조언을 들었을 텐데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보다 두 배쯤 농도가 진하다. 아마 울음은 열배쯤 될 것이다
아들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체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통한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는 큰 소리로 기도도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 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 간다.
아버지.
뒷동산에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큰 이름이다.
2. 순종하는 사람, 이삭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 말아라. 내가 나의 종 아브라함을 보아서, 너에게 복을 주고 너의 자손의 수를 불어나게 하겠다. 이삭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였다.(창세기 27장 24-25)
1) 아브라함,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다
창세기에 의하면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며, 그의 이복형은 아브라함이 첩 하갈사이에서 낳은 이스마엘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시험하기 위해서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바치라는 명령을 내리는데, 아브라함은 기꺼이 아들과 모리아 산에 올랐고, 이삭을 바치기 직전 하나님은 아들대신 수양을 바치도록 하였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사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는 곳으로 가더니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자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바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창세기22장 2-8’
신약성경 히브리서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고 한 일에 대해서 "아브라함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하였으니 곧 죽은 자 가운데 도로 받을 것을 믿었다"고 기록하였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브리서 11장 17-19)
6.25 전쟁 때 비행기가 공습을 하면 가족들이 지하실로 대피하였다. 그때 아버지가 안계시면 무서운 생각이 들었으나 아버지가 옆에 계시면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다. 사실은 아버지도 두려움에 떨었을 텐데 그 아들은 아버지를 철석처럼 믿은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 바치려고 하였을 때 두려웠을 텐데 믿음으로 이를 받아드렸고 이삭은 아버지를 전적으로 의지함으로 두려움 없이 아버지의 말과 행동에 순종하였음을 이렇게 미루어 짐작해본다.
2) 기도와 베풂의 삶을 실천한 이삭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야곱에 비하여 그 인물됨이 출중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된다. 아브라함은 유일신을 믿는 여러 민족들의 조상이요 야곱은 유대인의 나라 이름이 이스라엘로 정해질 만큼 이스라엘의 건설자인 것과 비교해서.
그러나 창세기를 살펴보면 그가 경건한 삶, 베풂의 삶을 살아 그 아버지나 아들보다 더 평화롭고 형통하여 크게 축복받은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메 약대들이 오더라’(창세기 24장 63절)‘는 구절에서 그가 평소에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이삭이 그랄 골짜기에 머물 때 우물을 여럿 팠는데 그랄 목자들이 다투며 이를 빼앗으려 할 때 두 번이나 순순히 양보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 더 풍성한 우물을 얻게 된 과정을 통하여(창세기 26장 18-22) 온유하고 양보하는 삶에서 오히려 축복을 받아 아버지 아브라함(175세)과 아들 야곱(147세)보다 장수하고 아름다운 아내 리브가와 행복하게 살았다.(온유한 자는 복을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벋을 것임이요 - 마태복음 5장 5절) 그러나 노년에 눈이 어둡고 정신이 혼미하여 큰 아들 에서와 둘째 아들 야곱을 구별하지 못할 만큼 불완전한 모습을 지니기도.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좋은 땅을 양보하였으나 더 큰 부자가 되었으며 이삭도 그랄 사람에게 선선히 우물을 넘겨주고 더 좋은 우물을 얻은 것처럼 우리도 양보하고 베푸는 일을 통하여 더 풍성하고 윤택한 삶을 이루자.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 잠언 11장 24-25’
3. 부전자전(父傳子傳), 아버지가 섰던 시상대에 우뚝 선 아들
1988년 여섯 살 아들을 둔 아버지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밥 호프 클래식에서 정상에 올랐다. 그로부터 22년이 흘러 아버지는 20대 후반으로 장성한 아들이 자신이 우승했던 바로 그 대회에서 트로피를 안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부자(父子) 골퍼 제이 하스(57)와 빌 하스(28) 얘기다. 빌은 1월 26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라킨타의 PGA웨스트골프장 파머코스(파72)에서 열린 밥 호프 클래식 최종 5라운드에서 8언더파 64타를 몰아쳤다. 합계 30언더파 330타로 맷 쿠차, 부바 웟슨(이상 미국), 팀 클라크(남아프리카공화국)를 1타 차로 따돌린 짜릿한 승리였다. 이로써 빌은 2006년 PGA투어 데뷔 후 141개 대회 만에 첫 승을 올리는 감격을 누렸다. PGA투어에서 부자 챔피언은 하스 가문이 8번째다.
90만 달러의 우승 상금을 받은 빌은 “22년의 세월이 흘러 아버지와 같은 대회 우승자로 남게 돼 정말 기쁘다. 아버지를 쫓아가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말했다. 아버지 제이는 전날 하와이에서 끝난 챔피언스투어 대회에 출전한 뒤 서둘러 이동해 아들을 응원한 끝에 기쁨의 포옹을 나눴다.
하스 집안은 골프 명문으로 유명하다. 아버지 제이는 PGA 투어에서 9승, 챔피언스 투어에서 14승을 올린 관록의 골퍼다. 빌의 삼촌 제리는 1994년 네이션와이드 투어에서 3승을 거뒀다. 제이의 외삼촌 밥 골비는 1968년 마스터스 우승자다.
빌 역시 아마추어 시절 유망주로 꼽혔으나 PGA 투어에서는 최근 4년간 상금 랭킹 99위→104위→104위→61위에 그쳤다. 빌은 지난주 시즌 처음으로 출전한 소니오픈에서 예선 탈락한 뒤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긴장을 풀고 오른발을 좀 열어두고 쳤던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읽을거리- 자랑스런 아버지, 다섯 생명 살리고 엘링턴 국립묘지에 묻히다
미국 해병대 출신 노숙자가 앨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불 속에서 사람들을 구하다가 사망한 그를 기리고자 군에서 내린 결정이다. 이 '영웅'의 이름은 레이 비비어. 1965년부터 1966년까지 해병대 사병으로 근무한 그는 지난해 11월 자신이 있던 집단생활소에 불이 나자 5명을 구한 뒤 다른 사람을 구하려 불 속으로 들어갔다가 사망했다. 61세 노병의 군인정신이 마지막으로 발휘된 순간이었다.
더욱이 그가 알코올 중독 때문에 이혼한 뒤 가족과 떨어져 지난 몇 년간 클리블랜드 다리 밑에서 노숙생활을 해온 사실은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화재는 방화범의 소행인 것으로 밝혀졌다. 오래 전에 이혼한 뒤 혼자 지낸 탓에 레이의 시신은 발견된 후 한동안 신원불명으로 처리됐다. 다행히 노숙인 식사 봉사를 해 온 봉사자가 사진으로 그의 신분을 확인해 그의 사연이 알려질 수 있었다.
지난 13일 치러진 추모행사는 AP통신을 비롯한 미국 언론에 보도돼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이 자리에서 레이의 전 부인은 "여러분은 그의 행동에서 그가 따뜻한 심장을 갖고 있었음을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를 단순히 알코올중독 또는 그와 관련된 여러 사고들로만 기억하는 그의 5명 자녀들도 추모행사에 참석했다. 레이의 딸 엘리샤 비비어는 "우리가 아버지를 버렸다는 생각에 부끄럽다."면서 "아버지가 자랑스럽다."며 눈물을 훔쳤다.(서울신문 2010. 1. 25)
-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장 13절 -
4. 우물을 양보한 이삭
지혜란
책상에 둘러 앉아 우리는 성경 공부를 하였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또렷하고 학생들의 눈과 귀는 열려 있다. 주현이는 필통 속에서 연필을 고른다. 지연이는 별명이 4차원 소녀란다. 엉뚱하고 기발한 생각을 많이 해서일까? 그래서 지연이가 쓰고 있는 볼펜도 조각낸 사과 모양이다. 4차원 소녀에게 어울린다. 다섯 살 민경이도 함께 했다. 민경이는 다섯 살이지만 선생님이 나눠준 공부 자료에 열심히 줄을 긋고 있다. 서진이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해서인지 한결 의젓해 보인다. 이 무리 속에 하나님은 성령으로 역사하실 줄을 믿는다.
오늘 공부한 인물은 이삭이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번제로 드릴 제물이 자기라는 것을 알고도 거역하지 않았다. 그 때 번제로 쓸 나무를 이삭이 지고 간 것으로 미루어 꽤 장성한 것으로 보인다. 즉 아버지 아브라함에게서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지만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였다. 이삭은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고 곧 하나님에게도 순종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삭에게 복을 주고 자손의 수를 불어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또 이삭이 그랄 골짜기에 머물 때 우물을 여럿 팠는데 그랄 목자들이 다투며 이를 빼앗으려 할 때 두 번이나 순순히 양보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 더 풍성한 우물을 얻게 되었다. 그 시대에는 양을 치며 살았으므로 풀과 물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우물은 생명의 원천인데 그것을 양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삭은 생명과도 같은 우물을 그랄 사람에게 두 번이나 양보하였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옮겨 더 풍성한 우물을 얻게 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 것을 양보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그것이 귀중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도 양보를 잘 안한다. 그래서 가끔 이기적일 때도 있다. 그래서 더욱 이삭이 한 행동이 달리 보인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온유하며 베푸는 삶을 살 수 있는 은사를 내려주셨다고 생각한다. 그럼 나에게도 무언가 은사를 주셨을 텐데 그것이 무엇일까? 어떤 재주일까? 아니면 성격일까? 그것도 아니면 무엇일까? 하나님이 인간을 세상에 창조한 까닭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 동역자로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지난주 목사님 설교 말씀에서 배웠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지 못해도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작은 것부터라도 행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그대로 땅에 묻어두고 쫓겨난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갑자기 생각나는 찬송가가 있다.
“주여 성령의 은사들을 오늘도 내리어 줍소서. 성령의 뜨거운 불길로써 오늘도 충만케 합소서.”
하루하루가 기도와 간구의 삶으로 나아가기를......
첫댓글 마치 내가 성경공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삭에 대하여서도 그렇고 더욱이 "아버지"로서 깊이 자성하며 은혜의 시간입니다. 아들, 딸 남매의 아버지인 제가 어떤 모습이며 어덯게 보여졌는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