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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록회 원문보기 글쓴이: 鳳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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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지는 소금짐의 무게는 약 60~70킬로그램, 균형을 위해 마부는 정확하게 무게를 재고 싣는다. |
원시적인 소금생산방식을 유지해오고 있는 옌징의 소금계곡. 수백여 개의 다랑이 염전이 있다. | |||
소금 계곡의 다랑이 염전. 소금물을 길어오는 소금 우물은 따로 있다. |
이 곳의 수백여 개 다랑이 염전은 엄청난 양의 나무기둥과 받침이 떠받치고 있다. | |||
옛날 소금과 차를 교역하던 마방들이 들러가던 '차마고도 주점' 오른쪽에 간판이 붙어 있다. |
이 곳에서는 증발지 소금(오른쪽)보다 여과를 통해 고드름처럼 달린 소금(왼쪽)이 더 유명하다. | |||
여기에 소금 우물이 정말 있는가? - 온천처럼 소금물이 솟아나온다. 물동이로 그 물을 퍼서 날라다 소금연못(1차 염지)에 채우고, 그 물을 다시 소금밭에 붓는다. - 이 흙바닥에 그냥 부으면 소금이 더럽지 않은가? - 그 위의 소금은 주로 가축에게 먹인다(물론 이 소금이 가축을 위한 소금은 아니지만, 티벳인들은 이 소금이 가축의 다산을 돕는다고 믿는다). - 그럼 사람은? - 이 아래(나무기둥이 받치고 있는 곳)를 보라. 저기 고드름처럼 매달린 것이 보일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수확한다. - 그렇다면 이 위의 소금밭은 증발지가 아니라 여과지란 말인가? - 그렇다. 여기에 소금물을 부으면 일부는 위에서 증발하고, 일부는 이 밑으로 스며들어 저기 천장(밑에서 봤을 때)에 고드름처럼 매달리게 된다. - 그럼 이 소금밭은 당신 것인가? - 내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여기(여러 구역 중 한 구역을 가리킴)의 소금밭을 모두 스무 가족이 같이 운영하기 때문이다. - 공동소유? - 그런 셈이다. 한때 이 곳의 소금밭은 중국에 의해 국영으로 운영(중국이 티벳을 점령한 이후 모든 것은 대부분 국영으로 운영되었으며, 80년대 이후 민간에도 조금씩 양도되었다)된 적도 있다. 다시 우리에게 넘어온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 남자들은 왜 보이지 않는가? - 나도 모르겠다.
옌징의 미래는 이 아이의 눈처럼 밝지가 않다.
소금밭에서 일하는 소금꾼은 거개가 여자들이다. 남자들은 소금을 나르거나 내다파는 일을 한다고 하지만, 소금물을 퍼나르거나 소금밭을 고르고 생산하는 힘든 일은 대부분 여자가 담당한다. 티벳에서는 도대체 남자들은 뭐 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여자가 힘든 일을 도맡아 한다. 옛날 기록에 따르면 나시족은 모든 힘든 일을 여자들이 도맡아 하는 대신, 1950년 이전까지만 해도 철저한 모계사회를 유지해 왔다고 한다. 아이들은 어머니는 알지만, 아버지는 알지 못했으며, 여성이 집안의 가장 노릇을 했고, 재산이나 아이에 대한 소유권이나 양육권도 여성에게 있었다고 한다. 현재 나시족(중국과 티벳에 현재 20만 명 이상이 살고 있다)은 진사강과 란창강, 얄룽강 유역에 주로 살고 있는데, 리장에 나시족 자치현이 세워져 있다. 이들은 티벳인들과 달리 지금도 물과 바람, 산과 같은 물신을 숭배하며, ‘동파’라고 불리는 무당이 여전히 존재한다. 과거 일처다부제 생활을 했던 티벳인과 비슷한 면이 많지만, 종교와 생활방식에 있어서는 차이가 난다. 그러나 나시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갔던 나는 염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시족인지 티벳족인지 알지 못했고, 물어볼 생각도 못했다. 공부 좀 할걸, 하는 후회가 뒤늦게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