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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웅 붕붕"
심상치 않은 저 소리는 분명 뒤영벌이 날아가는 소리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얼른 밖으로 나왔다.
뒤영벌은 체구는 큼직한 놈이 행동은 재발라서 한 자리에 오래 있는 법이 없다. 빨리 나가지 않으면 호기심이 많은 뒤영벌은 또 다른 곳으로 날아가버릴 것이다. 잽싸게 나와서 소리가 들리는 곳을 쳐다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뒤영벌 한 마리가 붕붕대며 날아다니고 있다. 놈은 쉴 곳을 찾는 건지, 아니면 집터 자리를 보고 있는 건지 계속 이 구멍 저 구멍을 들락거렸다.
'뒤영벌'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봤다. '사라진 뒤영벌을 찾아서'란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작년 이 맘 때였나? 강화읍 '가망불망 서점'에 갔더니 서점 주인인 박대표가 책을 한 권 소개했다. 그는 내가 벌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 책을 보여주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벌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박대표는 일 년 뒤를 미리 내다본 것이었을까. 어쨋든 표지 그림이 마음에 들어 들고 왔다.
사라진 뒤영벌을 찾아서 데이브 굴슨 지음, 이준균 옮김/ 2016년 4월 4일 발행 / 368쪽 / 15,000원[
김쌤은 막 시작한 양봉놀이에 흠뻑 빠져 있었다. 꿀벌통을 하나 들여놓고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들여다보며 연구에 또 연구했다. 그랬더니 봄이 다 가기도 전에 우리 집에는 벌통이 6개로 늘어났고, 장독대 근처로는 얼씬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간혹 된장이라도 좀 떠올까 싶어 장독대로 갔다가는 집을 지키는 병정벌이 어떻게 알았는지 쌩하며 날아와서는 무섭게 위협을 했기 때문이다. 아, 머리 근처를 휙휙 날아다니며 위협하는 그 병정벌의 소리와 몸짓이라니, 고 쪼끄만 놈 두어 마리가 공포스러워서 물러나기가 일쑤였다. 뭣 모르고 벌통을 장독대 근처에 둔 게 잘못이었다. 작년에 우리는 찬서리가 내리고 벌들이 운신을 못할 때까지 낮에는 장독대 근처에 갈 수가 없었고, 벌들이 잠자는 밤에나 된장을 떠올 수 있었다.
한창 꿀벌 연구에 빠져있는 김쌤에게 '사라진 뒤영벌을 찾아서'란 책을 선물했다. 김쌤은 문학적으로 그 책을 읽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 일테면 벌의 생태라든가 그런 것들이 있으면 공부하는 차원에서 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과연 김쌤은 책을 한 번 쓱 넘겨보더니 꿀벌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런지 던져놓고는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 책은 다시 내 책꽂이로 왔다. 그러고도 일 년을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 내 눈에 자꾸 곤충들이 들어왔다. 태생이 시골인지라 어지간한 나무며 꽃들은 다 아는데 곤충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다. 물론 그것은 이름을 뜻한다. 곤충이라고 왜 본 적이 없을까. 산이며 들로 쏘다닐 때 벌에 쏘이고 풀쐐기에 쏘여서 퉁퉁 붓고 가려워서 벅벅 끍은 적이 어디 한두 번 이었을까. 말하자면 나는 곤충은 아는데 이름을 모른다는 소리다. 그런 내게 '뒤영벌'이라는 이름은 무척이나 생소했다. 꿀벌, 말벌, 땡삐(땅벌), 호박벌은 알지만 뒤영벌은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뒤영벌이라니... 어떤 벌을 말하는 걸까. 비로소 그 책이 온전히 내게로 찾아왔다. 나는 책읽기에 돌입했다.
뒤영벌은 '호박벌'이었다. 어릴 때 호박꽃 근처에서 봤던 그 벌이 바로 뒤영벌이었다. 꿀벌이나 말벌 등은 많이 봤지만 호박벌은 그때도 흔하게 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호박벌을 본 적이 언제였나 싶다. 어릴 때 본 뒤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사십 년의 세월을 가로지르며 호박벌이 내게로 찾아온 것이다.
'사라진 뒤영벌을 찾아서' 이 책은 영국에서 사라진 뒤영벌 중의 한 종류가 뉴질랜드에는 있는데 그 벌을 찾아간 이야기였다. 뒤영벌을 연구하는 학자인 저자는 19세기에 영국에서 뉴질랜드로 건너간 뒤영벌이 그곳에서는 살아남았지만 영국에서는 서식지가 파괴되고 기타 여러 조건으로 멸종된 것을 다시 되살릴 수는 없을까 하는 학자적인 관심으로 사라진 뒤영벌을 찾아갔다. 책 속에는 자연, 생태, 환경 등등이 들어있었지만 억지스럽지 않았다. 그 많던 뒤영벌이 지금은 왜 볼 수 없는지, 벌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등, 인간의 탐욕으로 자연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책을 본 후로 뒤영벌을 보고 싶었다. 우리가 호박벌이라고 부르는 그 벌, 통통하고 털이 많던 그 귀여운 벌을 볼 수 있을까. 지금 전세계적으로 벌들이 사라지고 있는데, 우리나라 역시 자연 속에서 벌을 볼 수 없는데 호박벌이 과연 있을까 등등, 궁금하고 기대가 되었다.
사랑하면 눈에 보이는 걸까. 얼마 안 있어 내 눈에 호박벌이 들어왔다. 꽃사과나무에 꽃이 가득 피었던 오월의 초순, 사과나무 아래에 앉아서 꽃을 보고 있는데 꿀벌과는 다른 벌 한 마리가 보이지 뭔가. 뒤영벌, 아니 호박벌이었다. 벌떡 일어나서 벌을 따라다녔다. 그 후로도 잊을만 하면 그 벌은 내 눈에 띄었다.
많지는 않았다. 딱 한 마리 뿐이었다. 아니, 한 마리가 아닐 수도 있지만 항상 한 마리만 날아다녔다. 카메라를 켜고 사진을 찍을려고 들여다대면 어느새 부웅 소리를 내먀 다른 곳으로 날아가버린다. 뒤영벌을 사진 찍기는 정말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도대체 단 이 초도 가만히 있지 않으니 어찌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 것인가.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려고 세팅하고 또 줌으로 당겨서 화면 속에 담는 과정까지, 그야말로 서부의 총잡이가 총을 꺼내 당기는 듯이 재빠르게 했지만 단 한 번도 옳은 사진을 얻을 수는 없었다. 대부분 흔들리고 흐릿하고, 쓸 수 있는 사진은 얻지 못했다.
아, 뒤영벌 이야기는 흥미진진한데...일단은 사진부터 투척해 보자.
어제 아침, 우리는 감나무 아래 탁자에 아침상을 차려놓고 밥을 먹고 있었다. 출근하는 김쌤을 위해 상을 차렸지만 나는 별로 입맛이 동하지가 않아 건성으로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감꽃이 피어 있는 게 보였다. 숟가락 놓을 핑계를 찾고 있었는데, 잘 됐다. 얼른 집 안으로 들어가서 스마트폰을 가져와서 감꽃을 찍으려고 준비를 했다. 그냥 찍으면 꽃만 특별하게 담을 수 없으니 약간 당겨와야 한다. 그런 작업을 하며 감꽃을 막 찍으려고 하는 찰라에 세상에나, 그렇게도 찍고 싶어하던 호박벌이 앵글 속에 들어오지 뭔가. 이것은 분명 하늘이 주신 기회였다. 일부러 기회를 잡으려고 애를 써도 안 되던 그 뒤영벌이 저절로 내게로 쑥 들어오다니. 감꽃을 찍는 그 찰라에 뒤영벌이 들어와서 같이 찍혔다. 다시 한 번 더 찍으려고 누르려는 찰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그 벌은 또 다른 꽃으로 날아가 버렸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인다고 했던가, 뒤영벌이 내 눈에 자꾸 들어온다. 오월 초순에 꽃사과나무꽃의 꿀을 탐하던 뒤영벌을 본 후로 잊을만 하면 한 번씩 나를 찾아온다. 많지는 않다. 꼭 한 마리 뿐이다. 원래 자연 생태계 안에서 제 힘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은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일 테고, 그 수도 많지 않은 게 당연한 게다. 꿀을 따는 벌들은 한 통에 수만 마리가 들어있지만 말벌이나 뒤영벌은 그렇지가 않을 게다. 많아봐야 수백 마리 정도가 모여서 사는 정도일 것이다. 그중에 일벌은 수십 마리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러니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일 게다.
어쨋든 우리 집 근처에 뒤영벌이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오래된 흙집이니 벌이 살 수 있는 구멍은 있을 테고, 뒤영벌은 그 곳 어디 한 군데에 터를 잡고 알을 낳고 어린 벌들을 키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뒤영벌 소리만 들리면 밖으로 나가 따라다녔는데, 안마당에서 날아다니던 뒤영벌이 창고로 날아가길래 따라가며 뒤영벌이 사는 집을 찾아나섰다. 책에서 본 바에 의하면 뒤영벌은 쥐가 파놓은 굴이나 나무 구멍 등에 터를 잡는다고 했는데, 우리 집 안마당에서 붕붕대며 날아다니는 뒤영벌을 두어 번 본 적이 있는데, 그 벌들은 예외없이 헛간, 즉 창고로 날아들어갔다. 그곳에는 아주 오래된 멍석도 벽 시렁에 얹혀있고, 또 어딘가 벽에 구멍들도 있을테니, 그 속에 뒤영벌이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따라갔지만 벌은 항상 나보다 빨라서 창고로 들어가는 것은 봤지만 그 다음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뒤영벌을 찾아다녔다. 제발 내 눈에 들어와라. 제발 옳은 사진 한 장만이라도 찍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서 봄에 심었던 호박이 빨리 자라기를 바라기까지 했다. '호박벌'이라는 이름 그대로 여름에 호박꽃이 피면 찾아올 호박벌, 즉 뒤영벌을 기다렸다.
어저께, 즉 목요일 밤에 이웃 동네인 도장리 '국자와 주걱' 책방에서 독서모임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 2킬로 정도 떨어진 곳이라서 걸어갈까 하다가 지금 한창 차도에 인도를 내는 길공사 중이라 걸어가기에는 위험할 것 같아 차를 운전해서 갔다. '국자와 주걱' 책방은 차들이 많이 다니는 이차선 도로를 벗어나 한참 가야 된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서 동네 한 곳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갔다. 오랫만에 저녁 길을 걸으니 좋았다. 개구리 울음소리며 쥐똥나무꽃의 향내가 은은하게 풍겨오는 시골길을 걸어가며 이런 계절에 이렇게 걸을 수 있어 참 좋다고 생각했다. 그냥 차를 운전해서 갔다면 얻지 못할 일들이었다.
독서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차를 두고 그냥 왔다. 화도면 장화리에서 오신 분이 계셨는데 그 분과 함께 조산초등학교까지 걸어왔다. 그 분은 운전을 할 줄 몰라 남편이 태우러 온다고 했다. 중간쯤에 내 차가 있었지만 걷기에 좋은 밤이어서 차를 두고 그냥 걸어갔다. 우리는 약 2킬로 정도를 걸었다. 달빛이 온 세상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금요일 저녁답에 차를 가지러 갔다. 일부러 빙빙 돌아서 마을길을 걸어갔다. 뽕나무에는 오디가 달려 있었고 뽀리수나무의 열매도 붉게 익어가고 있었다. 오디도 따먹고 뽀리수열매도 하나씩 맛보며 걸어가다가 "부웅"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벌을 발견했다. 뒤영벌이었다. 그곳은 쥐똥나무 울타리가 있는 곳이었다. 벌은 쥐똥나무꽃을 헤엄치듯 날아다녔다. 잽싸게 연장(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사진찍기 신공에 돌입했다. 하나만 걸려라. 제발 온전한 사진 한 장만이라도 찍혀라 하는 심정으로 단 이 초도 가만있지 않는 벌을 따라 허리를 굽히고 따라다녔다.
그리고...
얼마 전에 팔방이가 골똘하게 뭘 들여다보고 있길래 봤더니, 뒤영벌을 주시하고 있지 뭔가.
팔방이는 심심하던 차에 놀잇감이 생겨서 잘 됐다 싶었는지 앞발을 들어 슬쩍 뒤영벌을 밀쳤다. 아이고, 저 귀한 뒤영벌을 저러다가 죽이겠다 싶어 얼른 팔방이 놈을 야단쳐서 쫒아버렸지만 이미 벌은 살 힘을 잃어버렸는지 잘 날지도 못했다. 데이지꽃 위에 올려주었지만 삐죽대며 걷기만 했지 날지를 못했다.
아마 그 놈은 그 날로 이생에서의 삶을 다했을 것 같다.
그리고 오늘 오전 11 쯤...
꽃사과나무에 해먹을 매어놓고 누워서 빈둥빈둥 놀고 있는데 예의 그 소리, 뒤영벌 소리가 들렸다.
"아이쿠, 뒤영벌이닷."
불총 맞은 사람처럼 벌떡 몸을 일으켰더니 해먹이 심하게 출렁거리며 요동을 쳤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항상 스마트폰을 들고 다녔는데, 바로 오늘이 그 날이다.
잽싸게 카메라 모드로 장전하고 살금살금 뒤영벌에게 다가갔다.
아니나 다를까 벌은 단 2초도 가만있지 않고 계속 이동을 한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럴만도 하다 싶다.
다른 벌에 비해 덩치도 큰 놈이 작은 꽃에 주둥이를 들이밀고 꿀을 빨아들이니, 얼마나 기갈이 나겠는가.
그래서 계속 그렇게 꽃을 찾아 이동을 하는 것일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요리조리 이동하는 뒤영벌이 밉지 않았다.
오늘은 '인동초' 꿀을 맛보기로 했나보다.
요 꽃 조 꽃 계속 옮겨다녔지만 그래도 근처를 날아다녔기 때문에 다라가면서 사진 찍을 수 있었다.
아, 오늘 원없이 뒤영벌을 실컷 봤다.
첫댓글 뒤영벌...참 재밌네요. 초봄 우리집에는 그 호박벌로 만원이었는데, 요즘은 좀 뜸하더라구요. 그게 뒤영벌이었다니, 그 놈을 만만하게 보는 내게 울 영감이 그럽디다. 쏘이면 큰일난다고....수필 한 편을 읽는 느낌입니다. 그날, 달밤의 길은 참 환상적이었습니다. 제 걸음 맞추느라 차도 그냥 두고...차는 아침에 찾아갔겠죠? 참 고마웠습니다. 꿀 얻어먹으러 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날 한 번 받아서...
아, '올카'님 댁 정원에는 호박벌이 좋아하는 꽃이 많은가 봅니다.
벌이 많다는 건 환경이 좋다는 말이겠지요?
그래서 그렇게 마음이 밝고 맑으신가 봐요.
그런데, 저 뒤영벌은 순수 우리 토종 호박벌은 아닌 것 같아요.
김쌤 말에 의하면 수입종 같다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놀러 오세요~~.
바께트빵을 꿀에 찍어먹으니 아주 좋았어요.
저는 월, 금요일은 출타... 그외 요일은 대개 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