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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의 남쪽 퀸스 라이드(Queen's Ride) 다리 부근을 지나는 사
람들은 매우 특이한 나무 한그루를 보게 된다. 우리나라 시골 동네에
서 종종 볼 수 있는 5천년쯤 묵은 거목류를 생각하고 있는가? 그런
고목들이 대개 오색 천을 휘감고서 마을의 성황당 구실을 한다는 점
에서 지금 얘기하려는 영국의 이 나무는 외견상 비슷한 구석이 있
다.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나무일 따름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나무
는 온갖 사진과 꽃다발과 여러 가지 글을 적은 종이 따위들로 오색창
연한 것이다(보지않으면 절대 믿지않는 나같은 회의주의자들을 위해
증거사진을 준비했다).
하고많은 나무중에 이 나무만이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
는 것은 21년전 영국에서 비틀즈(Beatles)의 열풍을 이으며 '뉴 비틀
(New Beatle)'로 불리던 마크 볼란(Marc Bolan)의 차가 하필이면 그
나무를 들이받았기 때문이다. 1977년 9월 16일 토요일 새벽 5시경,
그는 여자친구인 글로리아 존스와 함께 런던의 '스피키지 클럽
(Speakeasy Club)'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여러대의 차를 가
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운전을 전혀 할 줄 몰라 조수석에 앉아있던 마
크 볼란은 차가 콘트롤을 잃고 퀸스 라이드 다리 근처 나무를 들이받
는 순간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비틀매니아(Beatlmania) 못지않은 마크 볼란의 광적인 컬트팬들, 일
명 볼란티즈(Bolanties)들은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다 못해 사고당시
운전자였던 글로리아 존스의 집을 습격하거나 위협하곤 해서 존스는
수년간 은둔생활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존스의 음주
운전을 의심했던 것과는 달리 정작 사고원인은 차의 정비 불량에 있
었다. 사고가 있기 3일전 정비소 직원이 타이어를 교환할 때 부주의
하게도 너트를 헐겁게 조임으로써 그런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했던 것
이다.
비틀즈의 드러머였던 링고 스타(Ringo Starr)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
션이었고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오랜 친구이자 음악적인 라이
벌이었으며 티렉스(T-Rex)에 대한 광적인 열광을 뜻하는 신조어 '티
렉스타시(T-Rextasy)'의 주인공이자 글리터록(Glitter Rock) 또는 글
램록(Glam Rock)의 첫장을 장식했던 영국의 전설적인 팝스타 마크 볼
란은 그렇게 드라마틱한 최후로 70년대의 영광에 묻혔다. 그러나 듀
란 듀란(Duran Duran) 멤버들이 주축이 됐던 파워 스테이션(Power
Station)의 'Bang A Gong (Get It On)'이나 플라시보(Placebo)
의 '20th Century Boy'를 들으며 우리는 가물가물 잊혀지던 요절 천재
뮤지션 마크 볼란의 이름과 그의 분신이나 다름없던 밴드 티렉스의
환영을 맞닥뜨린다. 심지어 90년대 신세대의 삶의 방식을 현실과 환
상의 교묘한 조합으로 표현했던 영화 [케미컬 제너레이션(Chemical
Generation)]에서 티렉스의 넘버원 히트곡 'Hot Love'의 익숙한 멜로
디를 접할 때는 뜨끔하기까지 했다.
마크 볼란은 그냥 '죽어있는' 뮤지션이 아니었다. 그의 죽음 이후에
태어난 영국의 젊은 세대들에게도 그는 기억되고 있었다. 일반적인
록뮤지션들에 대한 팬들의 사랑과는 좀 다른, 거의 편집증에 가까운
추종을 받으며 말이다. 실제로 앞서 증거사진으로 제시한 그 나무는
수많은 티렉스 팬들에게 꼭 한번 방문해야할 순례지로 인식되고 있
다. 마크 볼란과 똑같은 죽음을 맞겠다며 나무에 차를 들이받는 광팬
의 출현도 심심치않아 런던시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류의 푯
말을 내걸어야 했다는 야사도 전해진다.
또 해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볼란티즈들의 티렉
스 페스티벌이 'Bob'이란 형식으로 벌어진다. 이 작은 축제에서는 티
렉스와 똑같은 외모를 한 트리뷰트 밴드들의 공연이 벌어지고 눈가
를 번쩍거리게하는 글램 메이크업으로 치장한 남녀노소들이 '볼란 부
기(Bolan Boogie)'에 맞추어 춤추며 현실과 괴리된 몇일간의 환상여
행에 동참한다. 밥(Bob)은 마크 볼란이 사망하던 시각인 새벽 5시경
에 끝나는게 보통이다.
뿐인가, 볼란이 묻힌 골더스 그린 묘지(Golders Green Crematorium)
에는 그가 죽은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팬들이 바친 수많은 추모비
와 꽃다발이 끊이지 않고 한 팬클럽에서는 수천에 달하는 꽃나무 모
종을 묘지 주변에 심기도 했다. 이만하면 편집증 운운한 말이 결코
과장은 아닐 듯 하다.
많은 후배 뮤지션들도 그의 음악에 빚을 지고 있다. 그의 사후 수많
은 뮤지션들이 그의 음악에서 영감을 차용하고 샘플을 얻어왔으며 직
접적으로는 80년대 뉴웨이브와 LA 메틀, 90년대 네오 글램이 티렉스
의 음악에서 광범위한 영향을 받았다. 스미쓰(The Smiths)와 건즈
앤 로지스(Guns N'Roses)가 그랬고 유투(U2)의 'Hold Me Thrill Me
Kiss Me Kill Me'는 티렉스의 92년 히트곡 'Metal
Guru'와 'Children Of Revolution'의 가시권에 포착된다. 조안 오스
본(Joan Osborne)의 [Relish]에는 티렉스의 히트곡 'Mambo Sun'의 샘
플링이 등장하고 오아시스(Oasis)의 'Cigarettes And
Alcohol'은 'Get It On'에서 리듬 기타 파트를 빌려왔다. 그러나 무
엇보다도 가장 먼저 얘기해야 할 것은 70년대 록계의 중요 아이콘인
글램록이 바로 마크 볼란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이다. --------------------------------------------------------------------------------
글램...메이크업과 플랫폼 슈즈로 록을 뒤엎다 --------------------------------------------------------------------------------
70년대 글램록의 짧은 영광과 몰락('자체 해산'이란 말이 더 맞겠지
만)을 재현해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던 영화 [벨벳 골드마인(Velvet
Goldmine)]의 개봉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글램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 영화속 주인공의 모델이자 대다수의 사람들이 글램록
의 총아로 생각하는 인물은 데이빗 보위이다. 그러나 글램의 시대를
얘기하자면 보위와 함께 마크 볼란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
다. 보위의 [The Rise & Fall Of Ziggy Stardust](72)에 모티베이션을
제공한 것은 이보다 한해 전에 발표된 티렉스의 [Electric Warrior]
(71)였으며 글램록이란 이름의 원천이 된 요란한 화장과 트랜스포멀
한 패션, 연극적인 무대 연출을 처음 선보인 것도 티렉스의 마크 볼
란이었다. 보위의 노래 'Lady Stardust'의 모델이 마크 볼란이란 것
은 너무나 유명한 사실이다.
그것은 1971년 2월 영국의 TV쇼 "Top Of The Pops"로부터 시작되었
다. 히피풍의 웨이브진 머리를 어깨에 늘어뜨리고 등장한 마크 볼란
의 화장한 얼굴이 무대 조명을 받아 휘황하게 번쩍이면서 글램록의
시대는 열렸다. 방송이 나간 다음날부터 영국의 십대 사이에서는 마
크 볼란의 화려한 메이크업이 유행을 탔고 'Get It On'(#1)
과 'Jeepster'(#2)가 화려한 인기를 누렸다. 'Get It On'은 영국뿐만 아
니라 미국차트에서도 선전해 탑텐에 랭크되었는데 당시 미국에 동명
의 곡이 있어 미국시장에서는 곡명을 'Bang A Gong (Get It On)'으
로 바꾸어 발표했다.
영국에서 제2의 비틀즈붐을 일으켰던 것과는 달리 티렉스가 미국에
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곡은 'Get It On' 뿐이다. 당시 록계의 동
향은 곡의 예술성과 테크닉을 중시하는 프로그레시브한 쪽에 경도돼
있었다. 티렉스의 사운드는 미국의 음악팬들에게 받아들여지기에는
너무 이질적이었고 그 스타일은 너무 혁신적이었다. 글램의 시대가
물러간 후에도 오랫동안 글램록은 록의 진정성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가식과 뻔뻔함의 대명사였지 않은가. 지금에서야 안티록 테제로서의
글램록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말이다.
마크 볼란의 티렉스에 이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 글램 뮤지션들의
외양은 진한 메이크업과 굽높은 플랫폼 슈즈, 번쩍이는 실크 스타킹
과 현란한 의상의 자웅동체적 이미지였다. 게리 글리터(Gary G
litter), 스위트(Sweet), 슬레이드(Slade) 등 많은 인물들이 이 대
열에 동참했고 한때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 엘튼 존(Elton
John), 퀸(Queen) 등도 글램의 전위성을 받아들였다. 그중에서도 치
밀하게 계산된 자기 연출과 예술성을 갖춘 음악으로 가장 큰 명성을
쌓은 인물은 데이빗 보위였다. 때문에 그전부터 보위와 오랜 친분관
계를 갖고있던 볼란은 그에게 우정뿐만 아니라 상당한 질투심을 품
고 있기도 했다.
이렇게 자기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고 약간 철이 덜 든 듯 욕심많던
이 인물은 어린 시절 자신이 "인간보다 우월한 어떤 존재"라고 생각
했던 "살기에는 너무 아름답고 죽기에는 너무 젊은" 희대의 나르시스
이자 지구와 어울리지 않는 '별의 왕자'였다. 그는 히피(Hippie)의
낭만에 매료돼 있었고 그의 음악은 대개 신화와 미신, 마술, SF같은
환타지의 세계를 그리고 있었으며 사운드는 공기속을 부유하듯 가벼
우면서도 허무했다. 대외적인 그의 이미지 역시 마술적이고 동화적
인 것이었다. 십대 여성팬들은 그의 그런 모습에 가슴을 설레였고 그
는 비틀즈 해체 이후 영국에서 가장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아
이돌 스타가 되었다(후반기에는 현실과 괴리된 자신의 이미지와 음악
의 방향을 전면 수정하려는 노력을 했다. 갑작스런 죽음으로 제대로
결실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런 점을 생각하면 "Top Of The Pops"에서의 센세이셔널한 등장이
실은 의도한 것이 아니라 우연에 불과하다는 설이 어느정도 신빙성있
게 다가온다(대기실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마크 볼란이
라이브 무대의 긴장감을 잊기 위해서 자신의 얼굴에 장난을 쳤다가
메이크업 지우는 것을 깜빡한 채 카메라에 앞에 나섬으로써 그 모든
소동(?)과 혼란(!)이 야기됐다는 것이다). 그것이 기획이었든 우연이
었든 마크 볼란은 이후 글램록 시대를 빛내며 데이빗 보위와 함께 진
지한' 쇼맨십을 발휘함으로써 글램록을 전복적인 양식으로 지위 향상
시킨 가장 대표적인 뮤지션이 되었다. --------------------------------------------------------------------------------
Acoustic Folk Era --------------------------------------------------------------------------------
마크 볼란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버린 또하나의 우연은 그가 아홉
살 되던해 일어났다. 1947년 영국의 해크니(Hackney)의 평범한 가정
에서 마크 펠드(Mark Feld)란 이름으로 태어난 소년은 빌 헤이스(
Bill Hayes)의 발라드같은 집안의 레코드 콜렉션을 들으며 성장한
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가 빌 헤이스의 이름과 철자가 비슷한 빌
헤일리(Bill Haley)의 음반 [Comet's See You Later Alligator]를 실
수로 집에 사왔고 볼란은 빌 해일리의 기타 사운드에 완전히 매료되
었다. 해일리로부터 시작해 그는 척 베리(Chuck Berry), 엘비스 프레
슬리(Alvis Presley), 에디 코크란(Eddie Cochran)을 섭렵했고 스스
로 기타를 연주하고픈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아들의 음악에 대
한 열정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던 그의 아버지는 놀랍게도 자신의 한
달치 월급과 맞먹는 스즈키 어쿠스틱 기타를 사주었다(소년 갱단에
가담해 싸움질을 하러 다니는 아들을 선도하려는 목적이 아니었을
까).
그는 12살 무렵 수지 앤 더 훌라훕스(Susie And The Hula Hoops)라
는 스쿨밴드에 가담해 활동하지만 몇 년 뒤 학교를 자퇴하고 여러 가
지 일자리를 전전하며 음악에의 꿈을 키워간다. 그는 기타 연주외에
시도 즐겨 쓰곤 했는데 69년도에는 [The Warlock Of Love]라는 시집
을 발간하기도 했다. 기성 세대로서는 종잡을 수 없는 내용의 이 시
집은 그해 베스트셀러 2위를 기록할 만큼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그
는 흔한 말로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모드의 물결이 전영국을 뒤덮
고 있던 15살 무렵에는 우연히 거리에서 사진기자에게 픽업되어 모
드 패션의 리더로 기사화되고 이를 계기로 한동안 모델로 활약했으
며 훗날 뮤지션으로서 전성기를 누릴 때에는 그의 이름을 내건 TV쇼
의 진행자가 되기도 했다.
최첨단 유행에 민감했던 이 문학소년은 한편으로 그리스 신화를 비롯
해 마녀와 요정, 마법과 외계같은 환타지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있었
다. 1965년 데카 레코드에서 발매한 최초의 싱글 'The Wizard'는 그
가 불과 십대 중반의 나이에 프랑스로 건너가 보헤미안처럼 생활할
때 만난 어떤 마술사와의 경험이 바탕이 된 곡이다. 그의 정신을 사
로잡고 있던 환타지는 그대로 그의 음악에 표출되고 있었다.
데카 레코드와 계약한 그는 마크 펠드에서 현재의 마크 볼란으로 이
름을 바꾸고 본격적인 뮤지션의 길로 접어든다. 초창기 그의 음악은
로큰롤이 아니라 어쿠스틱 기타에 기반한 포크송이었다. 이것은 당
시 그의 관심이 척 베리에서 밥 딜런(Bob Dylan)으로 옮겨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원래 데카 레코드사에서 권유한 예명은 'Marc
Bolan'이 아닌 'Mark Bowland'였다. 볼란은 여기서 몇 개의 철자를
바꾸거나 떼어버렸는데 이 역시 당시 그의 영웅 밥 딜런의 성을 모방
했을 가능성이 크다.
마크 볼란의 이름으로 그는 몇몇 싱글을 발표하다가 67년에 사이키델
릭풍의 포크음악을 연주하던 밴드 존스 칠드런(John's Children)에
기타리스트로 가입한다. 하지만 그는 밴드의 기타리스트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작곡과 보컬과 연주를 포함해 모든 것을 스스로 콘
트롤할 수 있는 자신의 밴드를 원했다. 이듬해 밴드가 해체되자 그
는 곧 티렉스의 전신이 될 티라노사우러스 렉스(Tyrannosaurus Rex)
를 결성한다. 공상의 세계에 살고있는 그에게 실로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 수 없다. 공룡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던 티라노사우러
스처럼 팝계를 지배하는 스타가 되고자 하는 야심을 담은 이름이었
다.
티라노사우러스 렉스는 마크 볼란과 드러머 스티브 페르그린 툭
(Steve Peregrine Took)-본명 스티브 터너(Steve Turner)인 그는 볼란
의 취향에 따라 톨킨의 환타지 소설 [반지전쟁]에 등장하는 난쟁이
이름을 차용해 왔다-으로 구성된 포크 듀오이다(엄밀히 말해 처음에
는 4인조였으나 변변한 연습도 없이 치룬 단 한차례의 공연이 실패
한 이후 2명의 멤버가 팀을 떠났다). 이들은 한 대의 어쿠스틱 기타
와 (드럼이 아닌) 한쌍의 봉고로 여러 가지 민속음악적 요소가 뒤섞
인 사이키델릭한 포크송들을 만들어냈는데 독특한 무드를 형성시키
는 볼란의 보컬은 가사에 담긴 환타지만큼이나 비현실적이고 낯선 것
이었다. 티렉스 제 5의 멤버로 불렸던 프로듀서 토니 비스콘티(Tony
Visconti)는 처음 이 듀오의 라이브를 한 클럽에서 접했을 때 마크
볼란이 외국인이거나 혹은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노래하고 있다
는 착각에 빠졌다고 한다.
티라노사우러스 렉스에 반한 비스콘티는 이들이 비틀즈붐을 계승할
재목임을 간파했다. 듀오는 그의 프로듀스하에 [My People Were
Fair And Had Sky In Their Hair…But Now They're Content To Wear
Stars On There Brows]라는 황당하게 긴 타이틀의 데뷔앨범을 내놓는
다. 이들은 서서히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데 이것은 그들의 열성팬을 자처하는 인기 라디오 디제이 존 필
(John Peel)의 후원에 힘입은 바 크다. 존 필은 당시 BBC에서 절대 내보
내지 않는 언더씬의 문제작들만을 주로 틀어대던 문제 디제이였고 그
의 방송에서는 티라노사우러스 렉스의 노래가 줄창 흘러나왔던 것이
다. 이들은 계속해서 [Prophets, Seers And Sages](68), [Unicorn]
(69) 등을 발표하며 히피 컬트팬들을 형성시켜갔다.
그러나 69년 최초의 미국투어를 감행하던 도중 두사람 사이의 음악
적 견해차이가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스티브 툭은 음악을 통해 이피
(Yippie)들의 급진적인 혁명을 실천하고자 했으나 볼란에게는 혁명
의 주동자가 되고픈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 자체가 완전
히 현실과 괴리된 별과 우주와 꿈을 그리고 있지 않았던가. 그는 마
법과도 같은 미지의 세계, 혹은 히피들이 꿈꾸는 이상의 세계로 도피
해버린 허무주의자였던 것이다. 결국 스티브 툭은 마약에 취해 공연
에서 이상한 행동을 일삼다가 미국투어가 채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
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하필이면 "우드스탁 페스티벌"과 비슷한
시기에 공연을 함으로써 더욱 빛을 보지못했던 티라노사우러스 렉스
의 미국투어는 이렇게 해프닝으로 막을 내리고 볼란은 혼자 영국으
로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맞이한 70년대. 이제 볼란은 어쿠스틱 기
타대신 일렉트릭 기타를 메기로 결심한다.
[My People Were Fair And Had Sky In Their Hair…But Now They're
Content To Wear Stars On There Brows](67)
추천곡 : Hot Road Mama / Dwarfish Trumpet Blues / Mustang Ford
피오나 애플(Fiona Apple)의 앨범이 나오기 전까지 팝역사상 가장
긴 제목을 가졌던, 티라노사우러스 렉스의 데뷔앨범이다. 어쿠스틱
기타와 이국적인 봉고 사운드로 60년대의 애시드 포크를 들려주고 있
으며 동화같은 내용의 가사처럼 쉽게 정형화되거나 설명되지 않는 국
적불명의 사운드라는 점이 앨범의 독자성과 가치를 높여준다. '민속
음악'이라는 'Folk'의 원개념에 더욱 가까운 앨범. [
Unicorn](69)
추천곡 : Chariots Of Silk / Cat Black / She Was Born To Be My
Unicorn / Like A White Star / The Sea Beasts / Nijinsky Hind
티라노사우러스 렉스의 세 번째 앨범이자 볼란과 스티브 툭 듀오의
마지막 작품이다. 멀티 트랙으로 레코딩했으며 보다 풍부한 사운드
와 재미있는 노이즈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볼란
과 스티브 툭이 팀웍을 맞춘 앨범 중 가장 프로페셔널하며 대중적으
로도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비음이 약간 섞인, 밥 딜런과 도노반
(Donovan)을 섞어놓은 듯한 마크 볼란의 독특한 보컬은 토니 비스콘티
의 말처럼 정말로 영어가 아닌 것 같은 착각을 가끔씩 일으킨다. 영
국에서 앨범차트 탑텐에 올랐으며 이런 성공에 힘입어 듀오는 미국투
어를 감행했다. 투어의 대미는 두사람의 결별로 장식하고 말았지만.
스티브 툭을 대체해 새로운 퍼커셔니스트로 영입된 미키 핀(Mickey
Fin)은 볼란처럼 UFO나 미신 따위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음악
에 있어 절대적 주도권을 갖고자 하는 볼란의 보조자로 만족했기에
두사람의 파트너십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멤버의 변동과 함께 그룹의 사운드도 전기를 맞이한다. 두사람의 첫
작품인 [A Beard Of Stars](70)에서 볼란은 최초로 어쿠스틱과 일렉
트릭 기타를 병행했으며 이는 밴드명을 짧게 티렉스로 고친 후 발표
한 셀프타이틀 앨범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팬들에게는 '브라운 앨범(Brown Album)'으로 더 널리 알려진 5집
[T.Rex](70)에서는 이전작들과 다른 기운, 좀더 록킹(Rocking)한 느낌
이 감지되었다. 그것은 이국적인 퍼커션과 히피송가라 할만한 문학적
인 가사, 그리고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사운드의 절묘한 결합이었다.
이런 변화의 원인은 마크 볼란의 시선이 밥 딜런에게서 서서히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어쿠스틱 기타를 뜯는 것이 지겨워진 그는 이제 자신의 음
악 뿌리인 로큰롤을 상기하기 시작했고 음악팬들 역시 어쿠스틱 기타
보다 더 강력한 무엇인가를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밴드의 변신은 뜻
하지 않았던 엄청난 파장을 함께 몰고온다. 볼란의 신화적 색채 농후
한 노랫말과 록필이 흐르는 사운드에 메이크업과 플랫폼 슈즈가 곁들
여짐으로써 이들은 글램록의 선구자가 되어 전영국을 들끓게 만들었
던 것이다.
영국의 음악지 NME는 그것을 '티렉스타시(T-Rextasy)'라고 명명했
다. 비틀즈가 해산한 이후 새로운 스타를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던 미디
어에게 티렉스는 이상적인 먹이감이 었다. 탑햇(Top Hat), 굽높은 하
이힐, 망토, 실크 블라우스와 스타킹, 그리고 화려한 메이크업, 이
런 자웅동체적 분위기의 마크 볼란이 끊임없이 미디어에 노출되면서
언론은 자연스럽게 티렉스의 신비화 작업에 동참했다. '
Ride A White Swan'(#2), 'Hot Love'(#1) 등의 싱글을 연속 히트시
키던 티렉스는 71년 밴드 최고의 역량이 결집된 [Electric Warrior]
를 발표한다. 미국에서도 상당한 호응을 얻은 이 앨범에서부터 티렉
스는 베이스 스티브 커리(Steve Currie), 드럼 빌 레전드(Bill
Legend)를 새로 영입해 2인조에서 4인조로 라인업을 확대했다. 본격
적인 로큰롤 사운드를 위해서 밴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앨범에
서 마크 볼란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일렉트릭 부기 사운
드를 완성한다. 50년대 로큰롤의 흥겨운 사운드에 드럼의 백비트와
일렉트릭 기타의 싱코페이션을 뛰어나게 가미함으로써 앨범 전체에
는 그루브감이 넘실대고 있었다. 또 이 앨범에는 티렉스의 미국투어
중 친분을 갖게 된 터틀스(Turtles)의 하워드 카일란(Howard Kaylan)
과 마크 볼맨(Marc Volman)이 게스트 보컬로 참여해 코러스 하모니
를 들려주기도 한다. '
Ride A White Swan'(#2), 'Hot Love'(#1), 'Get It
On'(#1), 'Jeepster'(#2) 등이 메가히트를 기록하는 동안 티렉스는
십대들의 우상이 되어갔고 그들의 라이브 공연에는 언제나 감격에 겨
워 눈물과 환성을 터뜨리는 여성팬들의 광란이 동반되었다. 마치 비
틀즈의 전성기를 다시 보는 듯 했다.
이듬해 발표한 [The Slider]는 링고 스타가 찍었다고 알려진 환상적
인 재킷 사진으로 유명한데 안에 담긴 내용물도 [Electric Warrior]
를 능가하는 수작이다. 'Metal Guru', 'Telegram Sam' 등의 히트곡
을 내놓은 [The Slider]는 발매 4일만에 십만장이 팔려나가는 경이적
인 기록을 세웠으며 앨범차트 정상에 올라 티렉스 천하를 만드는데
공헌한다. 이무렵 링고 스타는 뮤지션뿐만 아니라 영화감독으로서의
커리어를 쌓아나가기 시작했는데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마크 볼란이
그의 첫 영화소재가 된다. 티렉스의 라이브와 스튜디오 녹음을 비롯
해 짧은 이야기들을 담은 영화의 제목은 [Born To Boogie]였다. 이
영화에는 마크 볼란과 친분이 있던 엘튼 존(Elton John)과 링고 스타
가 각각 피아노와 드럼파트를 맡아 'Children Of Revolution'을 연주
하는 장면도 담겨있다.
73년에 발표한 [Tanx]도 '20th Century Boy'(#3), 'Solid Gold Easy
Action'(#2), 'Children Of Revolution'(#2) 등의 히트곡을 터뜨리
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이 앨범을 기점으로 티렉스 내부의 갈등이
심화되며 멤버들의 변동이 잦아졌고 밴드의 인기는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한다.
이듬해 발표한 [Zinc Alloy & the Hidden Riders of Tomorrow](74)는 메
틀적이라고 할 만큼 티렉스 앨범 사상 가장 하드한 사운드를 담
고 있으며 글로리아 존스같은 소울 출신 여가수를 코러스로 등장시
켜 소울적인 접근까지 시도한 작품이다. 그러나 평자들로부터는 혹평
을 면치 못했고 이어진 [Bolan's Zip Gun](75)이나 [Futuristic
Dragon](76) 역시 소폭의 히트에 머무르는데 그쳤다.
[Electric Warrior](71)
추천곡 : 몽땅
가히 티렉스의 엑기스라 할 만한 앨범. 마샬 앰프를 배경으로 자신
의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는 마크 볼란을 금색의 오오라가 감싸고
있는 인상적인 재킷이 먼저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흥겨운 맘보 리듬
의 'Mambo Sun'으로부터 시작해 공허한 가사와 사운드가 인상적
인 'Cosmic Dancer', 티렉스 최대의 히트곡 'Get It On' 등이 수록돼 있
다. 티라노사우러스 렉스 시절의 포크색이 어느 정도 남아 있으나 티
렉스의 트레이드 마크인 일렉트릭 부기 스타일을 완전히 확립한 기념
비적인 앨범이다. 포크밴드에서 록밴드로 획기적인 변신에 성공했으
며 글램록이라는 새로운 조류에 멍석도 깔아줬다(이 판에서 데이빗
보위가 제일 신나게 놀았다).
[The Slider](72)
추천곡 : Metal Guru / Telegram Sam / Ballroms Of Mars / Chariot
Choogle / Lady
링고 스타가 찍은 신비로운 분위기의 재킷 사진으로 유명한 티렉스
의 명반 중 하나다. 이 재킷 사진이야말로 마크 볼란의 음악과 이미
지를 완벽하게 대변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공기처럼 가볍고 흥겹
고 비현실적이고 허무한 일렉트릭 부기 사운드. 전작 [Electric
Warrior]로 록적인 필을 맘껏 발휘한 티렉스는 이 앨범에서 좀더 팝
적인 색깔을 강화했다. --------------------------------------------------------------------------------
Godfather of Punk Era --------------------------------------------------------------------------------
티렉스의 전성기는 이제 완전히 지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새
로운 계획에 막 뛰어들려는 찰나였다. 그는 이미 74년 무렵 "글램 록
은 죽었고 이제 티렉스의 사운드는 전혀 새로워질 것이다"라고 매체
를 통해 공언한 바 있었다. 사실 이후 티렉스의 사운드는 글램록이라
는 카테고리에 묶어두기에는 점점 하드해지는 경향을 띠었고 다소 펑
크적인 색채도 감돌았다. 볼란 자신 역시 아이돌 스타라는 대외적 이
미지를 쇄신하고 록뮤지션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의지를 품기 시작할
때였다. 그는 당시 미국의 뉴욕에서 태동하기 시작한 펑크씬을 보며
자신이야말로 펑크의 원조라는 광포한 말도 서슴치 않으며 스스로
를 'Godfather Of Punk'라 칭하기도 했다.
77년에 들어서 마크 볼란은 티렉스 신화의 재기를 도모한다. [Dandy
In The Underworld]로 전성기 시절의 '볼란 부기' 사운드를 부활시키
는 한편 막 태동하기 시작하던 펑크 무브먼트와도 맥을 연결시켰다.
또한 자신의 이름을 내건 TV쇼 시리즈 "Marc"의 호스트가 된 볼란은
제너레이션 X(Generation X), 붐타운 랫츠(The Boomtown Rats) 등의
펑크 밴드를 소개하고 데이빗 보위를 게스트로 초대해 함께 연주하
는 등 새로운 물결에 적극 동참하면서 자신의 음악적 영감 또한 북돋
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새로운 시도는 제대로 된 밑그림도 그려지
기 전에 부서지고 만다. 30세 생일을 바로 눈앞에 두고 불의의 교통
사고를 당해 그를 사랑하던 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묻히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뿌린 씨앗은 계속 자라 깊이 뿌리를 내렸고 뉴웨이브와
LA메틀, 네오글램과 얼터너티브씬에까지 널찍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
음을 우리는 모두 안다. 창고닷컴에서 퍼옴.. 마크볼란 자료가 허접해서 사진들이 후질근 하네요 디따 멋진 분인데.. 빤짝이 의상에 부츠신고 망또 걸치고.. 글램에서는 앨리스쿠퍼보다 더 선밴가? 더 오래됬을것임.. 영국출신~
첫댓글 저 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