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心草를 아시나요?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을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가곡 <同心草>의 노랫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애창곡이죠.
그런데 동심초가 어떤 풀이더라? 때문에 식물도감이나 사전을 뒤적이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달맞이꽃, 勿忘草처럼 사연을 지닌 풀이름으로 생각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동심초는 풀이름이 아니고, 위에 적은 노랫말 제목입니다. 작곡자는 김성태, 작사자는 岸曙라는 호를 가진 시인 金億입니다. 김억은 김소월의 스승으로도 유명하고요.
그런데 이 노랫말은 김안서의 창작이 아니고 원작이 있습니다. 중국 唐나라 때 여류시인 薛濤가 지은 <春望詞>라는 한시입니다. 때문에 <동심초>를 소개한 어떤 글은 김안서 飜案詩라고 적었는데, 정확한 표현입니다. <춘망사>를 풀이한 <동심초>를 두고 번안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답은, 글짜 뜻대로만 옮기지 않고 원작이 갖는 시의를 충분히 소화하여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가사는 김안서의 창작 시라고 말하여도 트집잡을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아주 훌륭합니다. 이 때문에 김안서의 <춘망사> 번안은 한문 고전, 특히 한시를 다루는 번역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한시는 이렇게 번역해야 된다.”라고 평가할만큼 완벽합니다.
https://youtu.be/_9l3kSZ_VTM
Shigeru Umebayashi - LoversHouse of Flying Daggers's SoundtrackArt: Wang Mei Fang, Zhao Guojingwww.youtube.com
장예모 감독의"연인" (원제 House of Flying Daggers)음악입니다. 미국의 소프라노흑진주 케서린배틀이 노래합니다.
이제 <동심초>의 원작인 설도의 시를 함께 봅시다. 유명한 시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고, 적지 않은 번역이 있습니다만, 김안서의 번역과 비교하기 위하여 – 정확히는 안서 번안의 탁월함을 드러내기 위하여 - 우선 글자대로 옮기는 逐字 번역을 하고, 안서의 풀이를 함께 달았습니다.
風花日將老[풍화일장로] : 바람결에 꽃잎은 나날이 시들어가니
(안서)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佳期猶渺渺[가기유묘묘] : 아름다운 기약은 점점더 멀어지네.
(안서)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不結同心人[불결동심인] : 그대와 한 마음 엮지 못하고
(안서) 무어라 맘과 맘을 맺지 못하고
空結同心草[공결동심초] : 헛되이 풀잎에 마음만 엮다니.
(안서)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어떻습니까? 두 번역을 비교하니 느낌이 무척 다르지요? 결구의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는 薛濤의 원시에는 본디 한 구절인데, 김성태가 <동심초>를 작곡하면서 후렴으로 한 소절을 반복한 것인데, 가곡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작곡가의 탁월한 솜씨라고 봅니다.
설도의 시는 본디 오언율시 4수인데, 위 시는 그 중에 3번째 시입니다.
이제 이것을 포함하여 <춘망사> 전 편을 한번 읽어 보지요.
春望詞 [춘망사] 봄날, 그대 그리워
花開不同賞[화개부동상] : 꽃 피어도 함께 구경하지 못하고
花落不同悲[화락부동비] : 꽃잎 떨어져도 함께 슬퍼할 이 없구나.
欲問相思處[욕문상사처] : 그리운 이 어디 계신지 묻고 싶어라
花開花落時[화개화락시] : 속절없이 꽃 피고 꽃 지는 때면.
攬草結同心[남초결동심] : 풀잎 뜯어 한 마음 매듭을 엮어
將以遺知音[장이유지음] : 내 마음 알아주는 님에게 보낼가나.
春愁正斷絶[춘수정단절] : 봄날의 시름은 속 끊어 내는 듯
春鳥復哀吟[춘조부애음] : 봄 새들만 또다시 구슬피 우니.
風花日將老[풍화일장로] : 바람결에 꽃잎은 나날이 시들어가니
佳期猶渺渺[가기유묘묘] : 아름다운 기약은 점점더 멀어지네.
不結同心人[불결동심인] : 그대와 한 마음 엮지 못하고
空結同心草[공결동심초] : 헛되이 풀잎에 마음만 엮다니.
那堪花滿枝[나감화만지] : 어찌하리, 가지마다 가득핀 꽃들
煩作兩相思[번작량상사] : 괴롭구나, 둘이 서로 그리워할 뿐.
玉箸垂朝鏡[옥저수조경] : 아침이면 옥같은 눈물방울 거울에 뚝뚝
春風知不知[춘풍지부지] : 봄바람은 이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읽으면 바로 알 수 있듯이 멀리 떠나 소식 없는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입니다. 이 시에는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그 또한 당대의 이름난 시인이었던 元稹(779~831)과의 사랑입니다. 蜀 땅의 기녀 薛濤의 나이 40세 즈음 30세의 젊은 관인 원진이 이곳에 출장을 옵니다. 설도의 명망을 이미 알았던 원진이 그 녀를 찾아왔고, 두 사람은 시를 주고받았지요. 때는 바야흐로 꽃이 흐드러게 피고 지던 찬란한 봄이었습니다. 설도가 열 살이나 연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둘은 꿈같은 사랑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무를 마친 원진은 겨우 석 달 뒤에 되돌아갑니다.
위 시에 두 번 보이는 同心, 두 사람의 마음을 같이 한다는 뜻이죠. 우리도 젊었을 때 결혼 예물로 신랑이 신부 집에 청실, 홍실을 엮은 同心結을 폐백 위에 얹었는데, 오래된 풍습이지요. 아마 설도와 원진도 둘이 하나가 되자는 언약을 하였던가 봅니다. 그러나 한번 떠난 원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설도는 이 시에 절절한 그리움을 담았던 것입니다.
당나라 시인으로는 李白, 杜甫가 가장 유명하지요. 원진은 그만큼은 아니어도,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白居易, 杜牧과 함께 일찍부터 이름이 났습니다. 그러니 설도를 만나자 마자, 그녀의 눈에 들었던 터이지요. 그러나 원진이 떠난 뒤에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없었고, 설도의 그리움이 구절마다 가득 담긴 <춘망사>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노래의 전형으로 뒷날 문인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 뒤에 설도는 도교에 귀의하여 청정녀로서 20여년의 여생을 더 살았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시를 여러 편 남긴 여류시인으로서 중국 문학의 역사에 이름을 남깁니다. 지금도 중국 사천성 성도에는 薛濤의 유적과 무덤이 전해오고 그녀를 기념하는 공원도 조성되어 있어, 한시를 사랑하는 전 세계의 시인, 문객들이 찾아와 그를 기린다고 합니다.(2024.2.10. 갑진 원단)
설도의 아버지 설운은 당나라 조정의 관리로 학식이 높았다. 외동딸 설도를 몹시 아껴서 어릴 때부터 글과 시를 가르쳤는데 총명하여 8~9세 무렵에는 아버지의 시에 대구를 할 만큼 그 시재가 뛰어났다고 합니다.
어느 날, 설운이 뜰 앞의 오래된 오동나무를 보고 " 뜰 앞의 오동나무 줄기가 구름을 향해 뻗쳤구나" 라고 읊자 설도는 지체없이 "가지는 남북을 오가는 새를 맞이하고, 잎사귀는 오가는 바람을 보내는 구나"라고 응수했다고 합니다.
설도의 나이 14세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겨진 설도와 어머니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했고, 설도 16세 때 탁월한 용모, 음악, 그리고 문장력을 빌려 관기가 되었다.
기녀가 된 그녀의 명성은 금세 쓰찬성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문장가 외에 명사들과 나눈 애정으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