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지난번 3권짜리 감상을 한 번에 투척한 서평 이후, 나름 오랜만이죠?
이번에도 즐거운 책 추천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참고로 2018년도에 나온 아주 따끈따끈한(?) 신간입니다. 그것도 아이들과 같이 읽으면 좋을 추리물이요.
도서명: 세라피나와 검은 망토
저자: 로버트 비티
* 이 소설은 넓은마을 도서관 1번 문학에 4번 추리 부분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이어폰을 통해 듣고 ‘어라, 이거 아동용 도서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어른뿐 아니라 옆에 애들 끼고 읽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뜻이다. 판타지적 느낌도 들었다고 덧붙여야겠다. ‘검은 망토’라는 단어를 혀끝에서 굴린 순간, 뭔가 신비로운 감각을 느꼈던 것이다.
그 다음으로 든 인상은 미스테리어스하다는 거였다. 제목에서 묘한 이중성을 받았다고 할까? ‘세라피나’라는 이름을 보고 그랬다. 주인공의 성별을 짐작한 뒤, 이 주인공이 뭔가 범상치 않겠다는 예상이 들었다. ‘검은 망토’와 나란히 놓고 보니, 어쩐지 빛과 어둠, 흑과 백을 동시에 응시하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세라피나’라는 이름에서 천사 ‘세라핌’을 연상한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대체로 제목에서 이런 다채로운 인상을 받으면 그 책은 십중팔구의 확률로 재미있기 마련이다. 적어도 내 경험상 그랬다. 때문에 소개글 같은 거 보지도 않고 곧장 다운을 받았다. 때로는 100줄의 소개글보다 1줄의 제목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하는 법이다.
대저택에 얽힌 수수께끼, 검은 망토와 소녀의 정체는?
“너는 빌트모어 대저택의 CRC야. 최고 쥐 잡이 책임자(Chief rat catcher)란다.”
벤더빌트 대저택, 모두가 잠든 깜깜한 밤, 저택 지하실을 소리 없이 돌아다니는 소녀가 있다. 유난히 툭 튀어나온 광대뼈, 금빛이 감도는 호박색 눈동자, 노란색과 갈색이 뒤섞인 머리칼, 마르고 날렵한 체구, 양쪽 발에 8개뿐인 발가락. 예쁜 드레스 대신 아빠의 셔츠를 입고 끈으로 허리를 졸라맨 뒤, 맨손으로 무려 쥐를 사냥하는 12살의 소녀. 어둠을 꿰뚫는 눈과 자잘한 소리도 놓치지 않는 밝은 귀를 가진 여자아이. 그녀의 이름은 ‘세라피나’,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아빠와 함께 빌트모어 대저택 지하실에 몰래 숨어 살고 있다. 세라피나의 아빠는 저택을 완공하는 데 한몫을 거든 기술자로, 빌트모어 대저택의 기계 설비를 관리 및 수리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세라피나의 일은 위의 문장, 아빠의 말을 빌리자면 CRC였다.
그녀가 ‘이상한 것’과 마주한 것도 다소 비범하지만 세라피나에게는 평범한 어느 밤의 일이었다. 언제나처럼 쥐를 잡아, 그것도 한 번에 두 마리를 잡아서 버리고 오던 중, 기이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으스스한 검은 망토의 남자, 그리고 그가 노란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애를 흡수하는 모습이었다.
“얘야, 무서워할 필요 없다. 난 널 해치지 않아. 이제 그만 포기해라.”
하마터면 세라피나 역시 그 검은 망토에게 흡수당할 뻔했다. 그러나 구사일생으로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그녀는 아빠한테 검은 망토에 대해 말하며, 빌트모어 저택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아빠는 세라피나의 말을 꿈이나 공상으로 치부할 뿐이다. 더 나아가 그녀가 저택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을 극도로 거북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체 왜 아빠는 세라피나를 내보이길 꺼려하는 것일까? 그녀의 기형적인 외모 때문에? 왜 세라피나와 아빠는 빌트모어 대저택 지하실에 숨어 살고 있을까? 역시 세라피나의 외모 때문일까?
그녀는 아빠와의 말다툼으로 인해 홧김에 2층으로 향한다. 검은 망토에 대한 것을 누구에게라도 알릴 작정으로 말이다. 그러다 빌트모어 대저택의 도련님, ‘브레이든’과 만나게 된다.
“맞아. 세라피나 넌 달라. 아주 많이. 어쩌면 네 말처럼 이상할 만큼. 하지만.... 난 네가 달라서 좋은 것 같아.”
브레이든은 조지 벤더빌트의 조카로 화제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소년이다. 예의 바르고 누구에게나 상량하지만 사람보다 동물과 같이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 탓에 이런저런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지만 소년은 어른스럽게 내색하지 않는다. 그에게 친구는 검정색의 커다란 도베르만 ‘기디언’뿐이다.
이런 성장 환경 때문인지 야생성 가득한 세라피나도 잘 받아들인다. 심지어 ‘우리는 그냥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뿐’이라는 말로 그 둘은 친구가 된다. 맙소사, 이게 12살짜리 소년의 대사란 말인가! 개인적으로 동생 삼고 싶은 녀석이다.
여하튼 세라피나와 브레이든은 저택에서 사라진 아이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조사에 착수한다. 그러다 숲속에서의 사건으로 세라피나는 ‘검은 망토’가 브레이든을 노리고 있음을 직감한다. 현재까지 빌트모어 대저택에서 사라진 아이들은 이렇다. 지하실에서 행방불명된 노란색 드레스의 피아노 신동 클라라 브람스, 미로 정원에서 실종된 러시아 대사의 딸 아나스타시야 로스토노바, 숲속에서 검은 망토에게 당한 마차를 잘 다루는 소년 놀란, 끝으로 목사님의 아들까지.
빌트모어 대저택을 찾은 손님들의 자녀가 계속 사라지자 저택은 유령의 집과 같은 분위기로 변한다. 과연 검은 망토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는 왜 아이들을 집어 삼키는 것일까? 그리고 세라피나는 그의 어두운 옷자락에서 친구 브레이든을 지킬 수 있을까?
“우리 인격을 결정짓는 것은 전투의 승패가 아니라 우리가 용감히 맞서 싸운 전투 그 자체이다.”
‘세라피나와 검은 망토’는 현실을 무대로 판타지 미스터리를 가미한 작품이다. 우선 책에 주요 무대가 되는 벤더빌트 대저택부터가 실제 건물이고, 브레이든의 삼촌 부부로 등장하는 조지 벤더빌트와 이디스 벤더빌트도 실존 인물이다. 아니, 벤더빌트 가문 자체가 한때 미국의 철도를 주름잡던 집안이다. 이처럼 픽션과 논픽션을 한데 뒤섞으니 이야기는 더욱 생동감이 넘친다.
글의 시대는 1899년, 남북전쟁이 끝나고 미국의 경제가 급속하게 팽창하던 시절이다. 이렇게 말하면 감이 안 온다. 간단히 말하자면 에디슨과 카네기 등의 걸출한 인물이 활동하던 시대라 하겠다. 과학의 산물이 차차 번지고 있지만 아직은 미지와 어둠에 대한 공포와 신비가 남아 있다. 이 점은 소설 속에서도 은근히 암시되고 있다. 전등과 엘리베이터로 대변되는 저택의 첨단 시설들, 하지만 발전기가 고장나자 곧장 어둠이 그 자리를 채운다. 그러자 화려하고 웅장한 빌트모어 대저택은 으스스하고 음침한 분위기로 변한다. 한편 그 부분은 숲에 대한 묘사에서도 나타난다. 이처럼 미지의 공포를 낮과 밤으로, 혹은 빛과 어둠으로 뚜렷하게, 그러면서도 친근하게 이끌어낸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그래서 ‘세라피나’라는 독특한 소녀의 이야기도 현실성을 얻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작품의 수수께끼는 2가지인데, 첫째는 세라피나에 얽힌 비밀이요, 둘째가 검은 망토의 정체이다. 우선 주인공에 대한 비밀은 아빠의 입을 통해 밝혀지는데, 사실 밝혀지기 전부터 어림짐작을 하고는 있었다. 세라피나의 독특한 외모와 그녀의 아빠가 신신당부하던 “숲으로는 가지 말라”는 대사가 주요한 힌트였다. 그 흔한 늑대인간 설정이 아니라는 부분이 마음에 든다. 고전인 정글북은 재미있다. 하지만 다소 과하게 설정을 차용당해서인지 이제 조금은 식상하다. 좌우간 세라피나가 야행성이고 민첩하고 쥐를 잘 잡는 건 그 동물에 능력이 유전된 거다. ‘쥐 잘 잡는 CRC’라면 야옹 하고 우는 ‘그 동물’이고, 세라피나 역시 그 ‘동물과’에 속한다는 점만 밝힌다. 참고로 작가가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글속에서 그 ‘동물과’는 숲속 공동묘지에 사는 그 ‘동물’뿐이다.
한편 사건이 진행되고 추리가 궤도에 오를수록 ‘검은 망토’의 윤곽이 살짝 드러난다. 먼저 구두, 그는 발소리가 무겁다. 그것은 꽤나 고급스러운 구두를 신었다는 뜻이고, 하인이 아닌 부유한 신사라는 반증이다. 물론 저택에 사는 인물도 포함해서 말이다. 마침 빌트모어 대저택에는 상류층 사람들이 초대되어 모여 있다. 그럼 누가 검은 망토의 남자일까? 혹시 조지 벤더빌트 씨? 그가 어떠한 이유에서 조카의 생명을 노리고 있단 말인가? 아니면 손님으로 온 누군가? 그렇다면 왜 아이들을 노리는 걸까?
해결의 실마리는 우연히 엿듣게 된 대화에서 나온다. 토른 씨와 딸을 잃어버린 러시아 대사의 말 속에서 ‘Otets Batya’라는 러시아어 단어와 함께. 그 뜻은 아버지, 아빠. 토른 씨는 왜 로스토노브 씨를 그렇게 불렀을까? 그저 단순한 말실수?
브레이든의 말에 의하면 토른 씨, 토른 몽고메리는 다재다능한 신사였다. 성공한 사업가요, 사격 솜씨도 뛰어나고, 바이올린도 잘 켜고, 러시아어에도 능통하며, 마차도 잘 몰고, 나중에는 피아노 연주 실력도 출중함이 드러난다. 이런 재능이 하나하나 드러날 때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다. 물론 브레이든의 동경도 샀다. 그러나 세라피나는 아무래도 토른 씨가 수상하다. 클라라 브람스는 피아노 신동이다. 그래, 토른 씨와 같은 연주 솜씨를 가졌을 것이다. 아나스타시야는 러시아어를 할 줄 안다. 토른 씨도 통역으로 나설 정도로 러시아어에 능통하다. 놀란은 마차 다루는 솜씨가 뛰어난 소년이다. 토른 씨 역시도 알고 봤더니 훌륭한 마부였다. 과연 한 사람이 그 많은 재능을 가질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과거 가난뱅이였던 사람이 갑자기 부유한 부자가 되고, 상류층과 어울릴 만큼 다재다능한 재능을 가질 확률은? 그것을 하나씩 선보일 수 있는 능력이 되는 확률은? 그리고 그것이 실종된 아이들이 가진 재능과 겹칠 확률은? 어쩌면 ‘검은 망토’가 브레이든을 표적으로 삼은 것도 그가 가진 재능 때문인지도 모른다. 브레이든은 동물들과 교감하는 능력이 있으니까.
이런 수상한 점을 근거로 세라피나는 브레이든에게 자신의 의심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브레이든은 그녀의 의심을 믿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게 그는 토른 씨를 동경하고 있었으니까. 결국 세라피나는 혼자서 ‘검은 망토’와 마주하기로 결정한다. 그녀가 위험에 처했던 그 장소에서.
물론 그녀 역시도 두려웠다. 자신도 다른 아이들처럼 흡수당하면 어쩐단 말인가? 하지만 세라피나는 빌트모어 대저택의 CRC였다. 최고 쥐 잡이 책임자. 그 때문에라도 저택에 숨어들어온 나쁜 쥐, ‘검은 망토의 남자’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위의 저 문장을 떠올린다. 천사상이 있는 묘비에 써져 있던 그 문장을.....
따지자면 세라피나와 검은 망토는 똑같이 ‘어둠의 존재’였다. 적어도 세라피나 자신은 스스로를 곧잘 ‘어둠의 존재’로 여겼다. 그녀는 지하실에 숨어 살고, 어둠을 헤매고 다니며, 빛 아래 사람들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니까. 때문에 검은 망토 역시 어둠의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세라피나는 별 아래서 다짐한다. 똑같이 어둠의 존재라고 해도 그 존재가 어떤 이인지는 스스로 결정하겠노라고. 사람이 사람이라 해서 다 같은 인격을 지니지 않은 것처럼, 같은 어둠이라 해도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그 정의는 달라지리라. 어떤 일에 대한 결과가 있을 때 중요한 건 그것이 거둔 성과나 실패의 여부가 아니라,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행동했느냐인 것처럼.
결국 이야기는 해피앤딩으로 끝난다. 세라피나의 출생에 얽힌 비밀의 정체도 드러나고, 엄마와도 극적으로 해우한다. 세라피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빛 속에서 모습을 보이게 되고, 빌트모어의 저택의 어둠을 헤매던 CRC는 빌트모어 저택의 사자 동상처럼 파수꾼이 된다. 그것은 세라피나의 용기와 선한 행동이 불러온 결과일 것이다.
요즘 보면 ‘결과’를 중시하는 풍조가 만연한데 이 소설을 보면 그런 태도를 조금쯤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 작가 로버트 비티는 딸들에게 으스스하고 흥미진진하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하는데, 이 글은 정말 스릴 가득하고 모험심을 자극하는 데 뛰어난 면을 자랑한다. 분위기가 아주 ‘GOOD!’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전자도서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는지 중간중간 오타가 좀 되는 편이다. 또 간혹 나오는 러시아어 문장들이 원문만 써서 내용을 알아볼 수가 없다. 토른 씨와 로스토노브 씨의 대화가 좋은 예시겠다. 읽으면서 주요 힌트 부분은 어쩔 수 없지만 나머지 문장은 주석으로 해석을 좀 달아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참고로 이 책 ‘세라피나와 검은 망토’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게 통칭 ‘세라피나 시리즈’라는 사실. 즉 이게 1편이라는 뜻이다. 2편은 뭐더라, ‘세라피나와 비틀린 지팡이’였나? 아무튼 후속작이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3편까지 있다고 한다.
이쯤에서 독자에게 남길 조언 한마디. 만약 당신이 시각장애인 독자라면, 최소한 2편까지 전자도서로 제작된 후에 이 시리즈를 다운받길 바란다. 그 무렵이면 3편이 나오기까지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테니까. 나처럼 뭣도 모르고 들었다가는 2편은 언제 나오나 기다리다, 한숨으로 방바닥에 구멍 내기 실험을 할 수 있으니까.
PS. 현재 시점으로 세라피나 시리즈는 아이프리 전자도서관에 데이지도서로 3권까지 제작된 상태입니다. 2부 '세라피나와 뒤틀린 지팡이', 3부 '세라피나와 조각난 심장'이라고 하네요. 듣기로 4부도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