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배리어프리 여행을 추구하는 ‘무빙트립’ 신현오 대표
- “장애 여부를 떠나 누구나 즐기는 여행을 꿈꿉니다”
일상을 잠시 벗어나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평소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는 것. 여행의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장애인이나 장애인 가족이라면 여행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장애인 화장실 여부는 물론, 주변 식당의 휠체어 접근은 가능한지, 체험 프로그램 참여가 원활한지 등을 체크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하고 싶다!’보다 ‘갈 수 있을까?’라는 말이 입 밖으로 먼저 나오는 게 현실이다. 2018년 창업한 액티비티 여행사 ‘무빙트립’의 신현오 대표는 “장애·비장애를 떠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여행을 꿈꾼다”고 말했다.
Q. 만나서 반갑습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무빙트립은 장애인, 비장애인 누구나 참여 가능한 배리어프리 여행 상품을 기획하고 서비스하는 관광 스타트업입니다. 현재 11명의 직원과 함께하고 있는데, 여행 상품 개발 시에는 직접 현장 답사를 하며 안전성 테스트를 진행합니다. 회사 홍보를 위해 공식 블로그와 유튜브 활동 등 SNS 관리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죠. ‘무빙(moving)’에는 움직임 외에도 ‘감동’이란 의미가 있고, ‘트립(trip)’은 여행 이외에 ‘이동’이라는 뜻이 있어요. 이 두 단어가 합쳐진 ‘무빙트립’은 장애·비장애를 떠나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는 여행, 어디에서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여행을 선사하려 노력합니다.
Q. 창업을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저는 4살 때부터 희귀난치병인 샤르코마리투스 병을 앓기 시작해 팔, 다리 근육이 위축되었어요. 말초신경 및 운동신경의 장애를 동반하는 질환이라 팔꿈치와 무릎 아래에 운동 기능 장애를 갖게 되었죠. 어릴 때는 제 장애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사회 활동이 늘고 주변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서 장애에 따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됐어요. 턱이나 계단이 불편했지만 저를 움츠리게 만들지는 않았는데, 점차 사람들의 관심으로 위축되더라고요. 장애인의 존재가 일상적이지 않기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구나 싶어 씁쓸했습니다. 집에만 있으면 이런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는 자각 또한 하게 됐죠. 그때부터 휠체어를 타고 장을 보는 등 소소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는지라 재활은 일상 영역을 지나 패러글라이딩 도전으로까지 이어졌어요. 당시 여러 업체에 문의를 했는데, 제 장애를 이유로 번번이 고개를 내젓더라고요. 충북 단양의 한 업체가 승낙해 할 수 있었는데, 하늘을 날면서 자유로움을 경험했던 게 창업으로 이어졌습니다. 저의 경험을 다른 장애인과 나누고 싶었거든요.
Q. 액티비티 여행사라니 테마가 무척 신선한데요.
A. 이색 체험, 근사한 자연 풍광 등 좋은 관광 상품이 있어도 장애인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장애인도 다채로운 체험에 대한 욕구가 있어요. 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영유아, 어르신 등 누구나 재미있게 여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어요. 저는 평소 해보지 않은 새로운 자극을 경험하는 게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은 신체 활동을 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그러한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어요. 현재 무빙트립의 액티비티 상품으로는 글램핑과 요트체험, 하이킹 등이 있어요. 2박 3일 일정의 제주도 패키지 여행 상품도 꾸준한 인기를 자랑하죠. 무빙트립의 장점은 교통편과 여행 시 이동 동선, 휠체어 경사로와 같은 장애인 편의 물품, 장애 유형별 특성을 이해하는 전문 가이드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만족도가 꽤 높아 85% 이상의 재방문 이용률을 보이고 있어요.
Q. 어려운 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
A. 창업 이후 8개월간 한 명의 고객도 받지 못했을 정도로 초창기엔 어려웠어요. 패기와 열정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휘청이기도 했죠. ‘장애인도 여행을 할 수 있냐’는 편견이 가장 큰 벽이었습니다. ‘2022 서울 관광스타트업 협력프로젝트 공개 오디션’, ‘우수 해양관광 상품 선정’ 등에 도전해 지원을 받았지만, 위축된 경기로 운영이 어려웠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고객들의 감사 인사가 저를 붙들었어요. 뇌병변 장애를 가진 분이 첫 고객이었는데 “회사에서 직원 연수를 갈 때에도 늘 혼자 남아 아쉬웠다. 액티비티를 꼭 경험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제주도를 방문해 바다낚시를 했는데, 낚시를 마친 뒤 “꿈만 꾸던 일이 현실로 이뤄졌다”며 감사 인사를 남겼어요.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따금 여행 상품 기획이 난항을 겪을 때, 그 일을 떠올립니다. 저는 여행에 도전하는 고객을 보면서 용기를 얻습니다. 꿈을 꾸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막상 그 길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발걸음을 내딛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고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하는 등 신체적 한계에 굴복하지 않고 새로운 경험에 뛰어드는 고객들…. 제 가슴이 뛰는 이유입니다.
Q. 여행 상품 기획에서 고려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A. 무빙트립의 추구 방향이 배리어프리 여행이므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사, 점자로 여행 정보를 받아보길 원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팸플릿 등의 서비스를 갖추고 있습니다. 휠체어 사용자를 고려해 전등 스위치가 앉은 상태에서 손에 닿는지, 테라스 티 테이블은 적당한 높이와 간격을 갖췄는지 등을 꼼꼼히 체크하죠. 그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건 ‘장애인을 위한’ 여행이 아닌, ‘장애인도 할 수 있는’ 여행을 만드는 일입니다. 장애인이 만족감을 느끼는 여행, 장애인 가족이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늘 어떤 체험을 하고 싶은지, 어떤 여행을 희망하는지, 누구와 함께 어디서 출발하고, 어느 곳에 가고 싶은지 등 고객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무빙트립 누리집에 회원가입 후 이용할 수 있는 ‘맞춤여행’ 메뉴가 있는데, 장애 정도와 자신의 취향, 가고 싶은 지역 등을 입력하면 그에 맞춰 컨설팅을 해 드립니다. 고객의 정보를 통해 새로운 여행 상품을 기획하기도 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Q.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2030 자문단으로도 활동 중이신데요.
A. 그렇습니다. 장애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배리어프리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활동입니다. 장애인이 여행 전문가로서 주도적으로 관광을 기획하는 ‘무장애 관광 코디네이터 프로젝트’를 제안했습니다. 실행 가능성과 관련 인프라, 커리큘럼 등을 검토하고 있는데, 무장애 관광 코디네이터가 장애인의 새로운 직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밖에 장애인 창업을 지원, 컨설팅하는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의 이사를 맡고 있어요. 저도 과거 지원을 받은 경험이 있기에 감회가 남다른데요,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가 제게 큰 힘을 주었듯, 저 역시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많은 격려와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Q. 대표님의 목표와 무빙트립의 비전이 듣고 싶습니다.
A. 실제 현장을 반영해 정확한 무장애 여행 정보를 담은 플랫폼을 완성하는 게 목표입니다. 배리어프리 여행지로 소개되어 있지만 막상 방문하면 인터넷 정보와 실제 현장 상황에 간극이 있어 곤란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죠. 무빙트립의 로고는 휠체어 바퀴와 그 움직임을 형상화한 문양입니다. 그 로고처럼 장애·비장애를 떠나 여행에 소외된 이들을 새로운 경험이 있는 곳, 그를 통해 꿈을 꾸며 도전할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하고 싶어요. 무빙트립이 모든 장벽과 턱을 없앨 수는 없지만 그 단차를 넘을 수 있는 든든한 바퀴가 되길 바랍니다. 장애인들이 전국 곳곳을 누비고 어울리며 여행하다 보면 장애·비장애의 거리도 분명 줄어들 것이라고 믿어요. 여행지에서 추억을 공유하고 그를 통해 형성된 공감대는 그 어떤 장벽도 넘을 수 있는 힘이 될 겁니다.
○ 무빙트립이 추천하는 여행 코스
- 찬란한 지금의 계절을 위한 힐링, ‘임실 오지GO 숲속 캠핑’
약동하는 자연을 온몸으로 느껴보는 오프로드 캠핑 상품. 치즈뿐만 아니라 청정 환경으로 유명한 임실, 그중 봄의 생기로 충만한 두만산 숲속에서 일상에 지친 심신을 충전하자. 캠핑장에 장애인 화장실은 기본으로 구비되어 있고, 소담한 봄꽃 경관과 함께 캠핑의 묘미 바비큐도 즐길 수 있다. 밤에는 임실 숲속에서 보는 별빛의 낭만이 기다리고 있다.
캠핑 투어 패키지 포함 사항: 대형 텐트 1동, 테이블과 의자, 조명, 2인용 침대 및 침구, 식기, 보드게임, 숲 체험 활동권 등
- 다가올 여름을 위한 추억 여행, ‘고창 갯벌 생태체험’
전라북도 고창 갯벌을 온몸으로 느껴볼 수 있도록 기획한 상품. 바다 휠체어, 이동식 경사로 등의 설비를 갖춰 운신이 어렵거나 이동이 불편한 분들도 접근이 가능하다. 갯벌에 직접 들어가 맛 좋은 해산물을 채취해보는 즐거운 체험도 즐겨보자. 갯벌 진흙 마사지와 함께 추억을 쌓을 수 있다.
갯벌 체험 여행 패키지 포함 사항: 장애인 전문 서포트, 바다 휠체어, 이동식 경사로, 목욕 의자, 식사 등
관련 자료 무빙트립 홈페이지: https://movingtrip.co.kr
김수정·신혜령 기자
* 월간 간행물 <손끝으로 읽는 국정> 통권 187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