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nyan
Who gets to define what Asia means? 누가 아시아를 정의할 것인가?
A new book on inter-Asian exchange shows how hard it is to pin down
Jan 19th 2023
When Rishi Sunak became Britain’s first non-white prime minister last October, Ronny Chieng, a Chinese-Malaysian comedian, was charged by “The Daily Show”, an American satirical current-affairs television programme, with commenting on the news. “I know everyone is really excited that this is the first Asian prime minister. But let’s be clear: Indians are not Asians,” he declared.
지난 10월 리시 수낙(Rishi Sunak)이 영국 최초의 비백인 총리로 취임했을 때 중국계 말레이시아 희극인 로니 쳉(Ronny Chieng)은 미국의 TV 시사풍자 프로그램인 ‘데일리쇼(The Daily Show)’에서 한 발언으로 비난을 받았다. “최초의 아시아인 총리라는 사실에 모두가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합시다. 인도인은 아시아인이 아닙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The segment provoked a minor backlash in America. But some viewers in Asia nodded along, for Mr Chieng’s tongue-in-cheek rant struck at something they recognised. For centuries the people of the region’s western and southern parts and those of the east and south-east have struggled to make sense of each other. That struggle is at the heart of “How Asia Found Herself”, a new book by a historian, Nile Green, who teaches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이 부분이 미국에서는 약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일부 시청자의 공감을 받았다. 로니 쳉의 거친 발언 내용이 아시아 시청자들이 인지한 어떤 지점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수 세기 동안 아시아의 서부와 남부 지역 사람들과 동부와 남동부 지역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애써왔다. 이들의 힘겨운 노력을 캘리포니아 대학교(UCLA)의 사학자 나일 그린(Nile Green) 교수의 신간, “How Asia Found Herself”가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The term Asia was coined by Greek geographers some two millennia ago and did not appear on the continent it described until the 1600s, at the dawn of the age of European empire. The foreign roots of the word—and the concept—are visible in the transliterations that Asians made as they grappled with the idea: Asiya in Arabic, Persian and Urdu; Esiya in Bengali and Gujarati; Ajia in Japanese; Yaxiya in Chinese.
‘아시아’라는 말은 약 2000년 전 그리스 지리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이후 유럽 제국 시대 초기인 1,600년까지는 ‘아시아 대륙’에서도 사용되지 않았다. 이 단어의 외래 어원은 아시아인들이 그 개념에 대해 고심하며 만들어 낸 음역(音譯)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아랍어, 페르시아어 및 우드르어로는 Asiya, 벵골어와 그자라트어로 Esiya, 일본어의 Ajia, 중국어로는 Yaxiya를 들 수 있다.
It took until the 19th century for the term to catch on, and even then its most salient use was oppositional: Asia as an anti-colonial device, as “not Europe”. Even the “Asian values” promoted by Lee Kuan Yew, Singapore’s founder, are best understood in opposition to Western ones. The irony, as Mr Green notes, is that it was European colonial infrastructure that in many cases made inter-Asian cultural exchange possible, whether through steamship routes that opened up the ports of the Indo-Pacific to traders, missionaries and intellectuals, or, more notably, through European languages that served as a bridge between the vast number of Asian tongues.
‘아시아’라는 용어는 19세기부터 활발히 사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반식민 장치로서의 아시아, 즉 ‘유럽이 아닌’이란 개념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싱가포르의 국부로 존경받는 리콴유 전 수상이 주창한 ‘아시아적 가치’라는 표현조차도 서구적 가치와 대비시킬 때 가장 잘 이해가 된다. 그린 교수의 지적처럼, 아이러니한 것은 무역상과 선교사, 지식인에게 인도태평양 항구가 개방되도록 한 기선항로를 통해서든 아니면 수많은 아시아 언어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한 유럽 언어를 통해서든 아시아 국가 간 문화 교류를 가능하게 한 것은 유럽의 식민지 기반 시설이었다는 점이다.
As late as the 20th century there were few dictionaries between major Asian languages such as Japanese, Urdu, Chinese and Persian, let alone between minor ones. Sometimes this led to comic outcomes. When Baha’i missionaries sought to convert Japanese in 1914, they resorted to the use of Esperanto, a language invented in Poland in 1887. Similarly, indigenous literature on other Asian cultures was scant, requiring scholars to look to English, French or Russian sources.
20세기 말까지 일본어, 우드르어, 중국어, 페르시아어 같은 주요 아시아 언어 간 사전은 거의 없었고 소수 언어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1914년 일본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바하이 선교사들은 에스페란토어를 사용해야 했다. 마찬가지로 다른 아시아 문화에 대한 현지 문헌이 거의 없어 학자들은 영어, 프랑스어 또는 러시아어로 된 자료를 찾아야만 했다.
When intellectuals from across the continent chose to engage with the idea of Asia as something that united them, it was often as a form of self-projection. Chinese intellectuals looked upon India, whose people had been unable to fight off colonisation, as a lesson in how not to fail. Indians speculated on the influence of ancient Hindu scriptures on Daoism, or of India’s warrior caste on Japan’s samurai.
아시아 대륙의 지식인 사회가 자신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무언가로 ‘아시아’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했을 때, 종종 자기 투영의 한 형태를 띠었다. 중국 지식인들은 식민지화를 막아낼 수 없었던 인도를 실패하지 않는 방법을 배울 교훈으로 여겼다. 인도 지식인은 고대 힌두 경전이 도교에 미친 영향 또는 인도의 전사계급(크샤트리아)이 일본의 사무라이에 미친 영향에 대해 사유(思惟)했다
Asian Muslims attempted to reconcile the new (to them) religions of Buddhism, Confucianism, Daoism and Shinto with their own faith, casting the Buddha as an Islamic prophet or Confucius as a philosopher. Japan’s Asianists saw their own country as a natural leader, notably through the imperialist project of a continental “co-prosperity sphere”. Acceptance of the idea of Asia did not automatically lead to a sense of brotherhood or respect. As Mr Green writes, “the search for solidarity always raised the question: unity on whose terms?”
아시아 무슬림은 부처를 이슬람의 예언자로, 공자를 철학자로 여기며 불교, 유교, 도교 및 신도 등 새로운 종교와 자신들의 신앙과의 조화를 꾀했다. 일본의 아시아주의자들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제국주의 구상을 통해서 자국을 ‘생득적 지도국가’로 여겼다. 아시아라는 개념의 포용이 국가 간의 형제애나 존중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린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연대를 구하는 일은 ‘누구의 조건으로 통일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항상 제기했다.”
In the 1930s an Indian freedom fighter, Rash Behari Bose (who married a Japanese woman and would die a Japanese citizen), proposed to the proto-Hindu-nationalist Veer Savarkar that “every attempt should be made to create a Hindu bloc extending from the Indian Ocean up to the Pacific Ocean.” Some 70 years later Abe Shinzo, then prime minister of Japan, extolled to India’s parliament the idea of a “broader Asia” taking shape “at the confluence of the two seas of the Indian and Pacific Oceans”. What geopolitical analysts have more recently come to call the “free and open Indo-Pacific” now takes in America and Australia as partners in the grouping known as the Quad, which seeks to counterbalance the rise of China.
1930년대에 인도의 독립운동가 라쉬 비하리 보스(Rash Behari Bose)는 원시 힌두교 민족주의자였던 비어 사바카(Veer Savarkar)에게 “인도양에서 태평양까지 이르는 힌두교 블록을 만들기 위한 모든 시도가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약 70년 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인도 의회에서 “인도양과 태평양 두 해양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확장된 아시아’ 개념이 뚜렷한 형태를 띠고 있다며 찬사를 보냈다. 최근 지정학 분석가들이 말하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은 미국과 호주를 중국의 부상에 대항하기 위한 협의체인 쿼드(Quad)의 파트너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Not for the first time, the idea of inter-Asian co-operation includes—and indeed relies upon—the technology and infrastructure of the West. And once again, as one Asian country seeks to draw smaller states into its own sphere, other powers find themselves asking: “Asia on whose terms?” The concept of Asia has for centuries and despite many efforts defied definition. And so once again, in the guise of the Indo-Pacific, it is at its most useful when defined in opposition.
아시아 역내 협력이라는 개념에 서구의 기술과 기반 시설이 포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한 아시아 국가가 다른 약소국을 자국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상황에서 다른 강대국은 “누구의 조건에 따른 아시아인가?”라고 자문하게 된다. 아시아라는 개념은 수 세기 동안, 그리고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정의와 어긋났다. 이번에도 역시 인도-태평양이라는 미명하에 반대로 정의될 때 그 개념의 유용성이 최대치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