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건국과 발전
조선의 건국 과정은 위화도 회군(1388), 권력 장악, 과전법 실시(1391), 정몽주 등 반대파 제거, 조선의 건국(1392), 한양 천도(1394)의 순으로 진행이 됩니다.
고려 말에는 권문세족이 권력을 차지하고 있었고 신진 사대부가 이에 대항하고 있었으나 개혁하기에는 힘이 미흡한 상황이였습니다. 신진 사대부는 이성계 등의 신흥 무인 세력과 결탁을 하여 조선을 건국합니다. 신진사대부는 정몽주, 이색, 길재 등 고려 왕조를 유지하면서 개혁을 하자는 온건 개혁파와 정도전, 조준, 권근 등 새로운 왕조를 개창 하자는 급진 개혁파가 있었는데 이성계는 급진 개혁파를 선택합니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이면서 급진 개혁파가 장악을 하게 되고 온건 개혁파는 지방으로 내려가 사림을 형성하게 됩니다. 급진 개혁파는 훈구파를 형성하고 중앙 권력을 장악합니다.
조선이라는 이름은 1392년 태조 이성계부터 1897년 고종이 나라의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고칠 때까지 505년간 유지됩니다. 조선시대(1392~1910) 전기와 후기는 임진왜란(1592)을 기점으로 나눕니다.
태조(제1대 왕, 1335~1408, 재위 1392~1398)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고조선을 계승한다고 해서 조선을 국호로 사용하였고 1394년 풍수지리에 입각해서 한양으로 천도를 하고 종묘와 사직을 건설합니다. 한양은 한강유역에 위치해 농사짓기에 편리했고 수로 교통이 발달하여 인적 물적 교류는 물론 통치에도 효율적이였습니다. 태조는 친명 정책, 억불 숭유 정책, 농본억상정책을 하였고, 조선 건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정도전을 중용하였습니다.
개국공신인 정도전은 민본적 통치 규범을 마련하였습니다. 한양 천도 때 궁궐과 종묘의 위치, 궁문의 모든 칭호를 결정하였고 경국대전을 작성하여 법 제도의 기본을 닦았으며 사병을 혁파하여 국가에 병권이 집중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요동 정벌을 계획하였고 백성이 나라의 근간이 되는 신권이 왕권보다 강한 재상 중심 정치를 주장하였습니다. 저서로는 불교를 비판한 책 『불씨잡변』과 『조선경국전』 등이 있습니다. 정도전은 강력한 왕권을 원했던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태종)에게 1398년 1차 왕자의 난 때 피살 당합니다.
태종(제3대 왕, 1367~1422, 재위 1400~1418)
태종 이방원은 왕자의 난을 계기로 형제들을 죽이고 이성계의 다섯 번째 아들로 왕이 됩니다. 왕위 쟁탈전을 겪다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왕권을 강화하고 이를 위해 국가 재정을 확충하는 정책을 펼칩니다.
왕권 강화를 위해 정도전 등 개국 공신을 몰아내고 신하들의 권한을 축소하기 위해 6조 직계제를 시행하였고, 양반들이 사병으로 왕권으로 도전하지 못하도록 사병을 철폐하여 국가의 군대만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대신들을 견제하기 위해 사간원을 독립시켰습니다.
국가 재정 확충과 민생 안정을 위해 양전사업을 실시하고 호패법을 통해 16세 이상의 모든 정남에서 현재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호패를 차고 다니도록 하여 인구를 파악하고 사원의 토지를 몰수하였습니다. 억울한 노비를 해방하고 신문고를 설치하였고, 향·부곡·소를 폐지하였습니다.
의정부 서사제(6조에서 의정부로 보고를 하고 의정부에서 걸러진 다음 보고하는 형태. 신권의 조화. 세종, 성종)
의정부 직계제(6조에서 왕에게 직접 보고. 왕권 강화)
세종(제4대 왕, 1397~1450, 재위 1418~1450)
민족 문화 발전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훈민정음을 창제하였습니다. 세종이 명과 여진 세력을 몰아내고 4군(압록강, 최윤덕)과 6진(두만강, 김종서)을 개척하면서 오늘날의 한반도의 영토를 만들었습니다. 일본 해적에 대한 강압책으로 이종무를 쓰시마섬(대마도)에 보내 왜구를 토벌했습니다. 회유정책도 써서 여진족에게는 무역을 허락하기도 했고 일본에게는 삼포를 개항해 무역을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장영실을 등용하여 자격루와 측우기를 만들고, 갑인자를 주조했고, 관습도감에서 박연을 통해 아악을 정리하고, 한글을 만든 다음 제일 먼저 편찬한 『용비어천가』와 『삼강행실도』와 『농사직설』 등의 서적을 편찬하여 보급하였습니다. 세종은 유교적인 이상 정치를 꿈꿔왔고 의정부 직계제를 폐지하고 의정부 서사제를 실시하여 왕권과 신권을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세조(제7대 왕, 1417~1468, 재위 1455~1468 )
세조는 단종을 보좌했던 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르는 계유정난(1453)을 일으킵니다. 경국대전을 편찬(시작) 하고 과전법을 직전법으로 바꿉니다. 과전법은 전현직 관리 모두에게 지급했으나 토지는 제한되어 있고 관리의 수는 계속 증가하기 때문에 현직 관리에게만 지급하는 직전법으로 바꿉니다. 의정부 서사제를 폐지하고 6조 직계제를 다시 실시합니다. 집현전과 경연, 유향소를 폐지하고 종친을 등용합니다. 원각사10층석탑을 만들었다.
성종(제9대 왕, 1457~1494, 재위 1469~1494)
유교적인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완성합니다. 세조 때 시작된 경국대전이 완성되고 반포합니다. 경국대전은 조선시대 500년 의 기본 통치 이념을 지배했습니다. 경연과 유향소, 집현전을 부활하는데 집현전을 홍문관으로 개칭합니다. 중앙 정치조직과 지방 행정조직이 완비에 가까운 형태를 보입니다. 도첩제를 없애버려 승려가 되는 길을 막아버린다.
* 유교적인 통치 이념
조선은 유교 중심이면서 양반 관료 중심으로 전환이 됩니다. 성리학이 유교로 발전한 형식과 예를 중시하였고 유교를 강조하면서 여성의 희생을 강요합니다. 가부장제 질서, 제사의식 중시, 남아 선호사상이 득세를 하게 되면서 고려 시대 남녀가 평등에 가까웠던 여성의 권위는 추락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