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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der Issue - 4 - 조선왕조실록의 <여자>
- 1. 태조실록 1권, 총서 9번째기사 / 익조가 여진 천호의 협공을 피해 알동의 백성을 거느리고 적도를 거쳐 의주에 정착하다女)들만이 있고 장정(壯丁)은 한 사람도 없었다. 한 여자에게 물으니, 대답하기를, "그 짐승이 많은 것을 탐내서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였다. 익조가 이에 돌아오다가 길에서 한 할멈[老嫗]이 머리에 물동이[水桶]를 이고 손에는 한 개의 주발[椀]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서, 익조가 갑자기 목이 말라 물을 마 시고자 하니, 할멈이 그 주발을 깨끗이 씻어 물을 떠서...
- 2. 태조실록 1권, 총서 92번째기사 / 태조의 공적을 치하하는 창왕의 교지계를 마음대로 다니면서 군읍(郡邑)을 분탕하고 남자와 여자를 죽이고 노략질하여 3도(道)가 소연(騷然)하였는데, 원수(元帥) 배언(裵彦)·박수경(朴修敬) 등이 패하여 죽었다. 경은 죽기를 각오하고 삶을 돌보지 않는 계책을 내어 그 휘하를 거느리고 인월역(引月驛)에서 최후까지 싸워 적군을 남김없이 포획하였으니, 백성들이 힘입어 편안 하게 되었다. 그 행군(行軍)할 적...
- 3. 태조실록 2권, 태조 1년 9월 21일 기해 3번째기사 / 환관의 제어, 불교의 배척, 여자의 외출제한 등 12개 조목을 건의한 대사헌 남재의 상서문하고 잘못한 사람은 징벌하게 하소서 . 1. 옛날에는 여자가 이미 시집을 간 경우에는 부모가 죽었으면 근친(覲親)하는 의리가 없었으니, 그 근엄(謹嚴)함이 이와 같았습니다. 고려의 말기에 풍속이 퇴패(頹敗)해져서 사대부의 아내들이 권세 있는 집안에 찾아가 알현하면서도 태연히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니, 식견이 있는 사람은 이를 수치스럽게...
- 4. 태조실록 6권, 태조 3년 7월 21일 무오 2번째기사 / 도성 축조 부역의 기피에 대한 도평의사사의 장계자는 여러가지 꾀를 부려 부역을 면하고, 빈한한 호(戶)에서는 아이나 여자를 내보내니, 심히 온당치 못한 일입니다. 지금부터는 누구든지 집 있는 자는 다 장정을 내어 보내되, 대호(大戶)는 2명, 중호(中戶)는 1명, 소호(小戶)는 세 집이 합하 여 1명씩 나오게 하고, 만약에 부역을 궐하거나 아동이나 여자를 내어 보내는 자는 호주를 논죄하도록 하소서."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 5. 태조실록 8권, 태조 4년 12월 3일 임진 1번째기사 / 남편 고종제와 간통하고 남편을 교살한 여자를 교형에 처하다산원(散員) 최안종(崔安宗)의 아내 중보(重寶)가 그 남편의 고종제(姑從弟) 김중명(金仲明)과 간통하고 안종을 목 졸라 죽였다. 일이 발각되어 형조에서 추국(推鞫)하니, 중명은 도망쳤고, 중보는 교형(絞刑)에 처하였다.
- 6. 태조실록 11권, 태조 6년 3월 20일 계유 1번째기사 / 천신산에서 사냥하고 평주에 머물다임금이 천신산(天神山)에서 사냥하고 평주(平州) 땅에 머물렀다. 한 여자가 따라 다니는 것을 보고 물으니, 사복시(司僕寺)의 종[婢]으로 그 관리를 공궤하는 자이었다. 곧 명하여 놓아 돌려보내고 그 판사(判事) 이비(李丕) 등 다섯 사람을 가두었다가 이튿날 용서하였다.
- 7. 태조실록 12권, 태조 6년 12월 24일 임인 2번째기사 / 권근이 원종 공신에 참여되기를 빈 상서문. 설장수와 함께 공신에 추록되다바라보았으나, 스스로 나오고 중매하는 것은 선비와 여자의 추한 행실이므로 감히 표현하지 못하고 말을 하려다가 다시 침묵한 것이 몇 해가 되었습니다. 또 스스로 생각하건대,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은 자식이 아비 섬기는 것과 같으니, 자식이 하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아비에게 말하여 숨김이 없는 것이 정(情)과 친(親)의 지극한 것입니다. 지금 전하의 ...
- 8. 정종실록 1권, 정종 1년 1월 9일 경진 13번째기사 / 문하부에서 윤문수노가 거상중에 장가들었다고 죄를 극력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다랑을 갚는 것입니다. 옛사람이 상을 당하여 병이 나서 여자 종으로 하여금 환약을 짓게 한 자가 있었는데, 향당(鄕黨)에서 오히려 나쁘게 여겼으니, 하물며 상을 당하여 가취(嫁娶)하는 일이겠습니까? 지금 윤문수노가 아비 상을 당하여 겨우 1년이 넘었는데, 스스로 최복을 벗고 마음대로 아내를 얻고서 뻔뻔스럽게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면서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 9. 정종실록 1권, 정종 1년 5월 1일 경오 6번째기사 / 사헌 잡단 안순을 여자 문제로 파직하다사헌 잡단(司憲雜端) 안순(安純)을 파직하였다. 처음에 안순이 헌부(憲府)에 부임하였더니, 감찰(監察)이 맞아들이지 않고 안순의 죄를 조목조목 들어서 본부(本府)에 고하였는데, 하나는 안순이 처형(妻兄)인 죽은 정당(政堂) 정총(鄭摠)의 기첩(妓妾) 중천금(重千金)을 간통하였다는 것이고, 하나는 안순이 정처(正妻)를 소박하고 비첩(婢妾)을 가까이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 10. 정종실록 1권, 정종 1년 5월 16일 을유 2번째기사 / 조박을 이천에 조휴를 해주에 귀양보내다데, 이것은 그 아비 이거이(李居易)가 일찍이 관계한 여자이다. 부자간에 한 여자를 간음하여 천상(天常)을 더럽히고 어지럽혔으니 , 이것은 논핵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미처 발론(發論)하기 전에 서유(徐愈)가 자기 집 다락 위에서 다른 사람과 더불어 논핵하고자 하는 뜻을 말하였는데, 그 사위가 다락 아래에 있다가 이를 듣고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였다. 또 ...
- 11. 정종실록 1권, 정종 1년 5월 21일 경인 3번째기사 / 전 판서 남궁서의 아내를 때려죽인 장사정을 공신이라 하여 청주에 안치하는 데 그치다고, 또 이웃 마을 남녀 5, 6인을 매질하여 임신한 여자가 거의 죽기에 이르렀으니, 장사정은 어떤 사람이기에 감히 이와 같이 합니까? 왕법(王法)에는 반드시 주살(誅殺)하도록 되어 있으니, 마땅히 극형에 처해야 합니다. 다만 공로가 있다 하 여 직첩만 거두고 함주에 귀양보내니, 장사정은 머리를 보전하게 되어 다행이지마는, 함주(咸州)는 왕조의 자취가 일어난 땅이니...
- 12. 정종실록 1권, 정종 1년 6월 15일 갑인 4번째기사 / 곽충보가 간통한 고 참찬문하부사 김인찬의 처 이씨의 폭로로 여러 여자의 간통사건이 거론되다임의로 간통하였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양가(良家) 여자를 강간하고 죄 없는 사람을 때려 죽여, 죄악을 쌓은 것이 심합니다. 본부와 법관(法官)이 교장(交章)하여 죄주기를 청하였으나, 유윤( 兪允)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신 등은 생각하건대, 전하께서 전에 장사정을 용서하셨으므로 사람들이 실망하고 있사온데, 또 곽충보를 용서하니, 악을 징계할 길이 없습니다. 원...
- 13. 정종실록 2권, 정종 1년 8월 29일 병인 3번째기사 / 청천백 이거인의 무고가 탄로되어 청주에 귀양보내다佇)는 군(君)의 사위 조박(趙璞)이 그들 부자가 한 여자를 관계한 일을 폭로시키려 한 것을 원망하여, 가만히 밤을 타서 군사를 일으켜 조박을 죽이려 한다." 하고, 또 이거이에게 이 르기를, "조박이 재기(才氣)가 있고, 또 회안공(懷安公)·정안공(靖安公)·이무(李茂)에게 모두 인아(姻婭)의 관계가 있으니, 조박이 만일 용서를 받아서 돌아오면, 화가 반드시 군의 부자에...
- 14. 정종실록 3권, 정종 2년 3월 4일 기사 1번째기사 / 민씨를 봉하여 세자 정빈으로 삼다. 책문그대의 아름다움을 기뻐하노라." 중궤(中饋) 여자의 일. 곧 부엌일. 계명(鷄鳴) 《시경(詩經)》 제풍(齊風)의 편명. 애공(哀公)이 황음(荒淫)하고 게을러서, 현비(賢妃)가 닭이 울어 조신(朝臣 )들이 모이겠으니, 애공에게 어서 일어나라고 경계하였다는 고사(故事). 인지(麟趾) 《시경》 주남(周南)의 편명. 문왕(文王)의 후비(后妃)가 인후(仁厚)하여, 그 자손이 번성하기를 빈 것임.
- 15. 정종실록 5권, 정종 2년 7월 2일 을축 20번째기사 / 길재가 사직하고 돌아가다. 사신의 인물평문하 주서(門下注書)에 이르렀습니다. 신이 듣건대, ‘여자는 두 남편이 없고, 신하는 두 임금이 없다.’고 합니다. 빌건대, 놓아 보내 전리(田里)로 돌아가게 하여, 신의 두 성(姓)을 섬기지 않는 뜻을 이루게 하고, 효도로 늙은 어미를 봉양하게 하여 남은 여생을 마치게 하소서." 임금이 보고 괴이하게 여겨 말하기를, "이것이 어떤 사람인가?" 하니, 좌우가 말하기를, "한미...
- 16. 태종실록 1권, 태종 1년 4월 30일 무자 4번째기사 / 우사·원단·사직에 비를 빌고 무당을 모아서 기도하다이달에 가물었다. 임금이 근심하여 사신을 보내서 우사(雩祀)·원단(圓壇)·사직(社稷)에 비를 빌고, 또 여자 무당을 모아서 기도하였다.
- 17. 태종실록 2권, 태종 1년 10월 10일 을축 3번째기사 / 사헌부에서 지형조사 권진을 탄핵하다는가?" 하고, 또 고에게 묻기를, "전일에 이 같은 여자가 있었는데, 어째서 국문하지 않고 나씨만 추문(推問)하는가?" 하였다. 고가 대답하기를, "그 남편 이강달(李剛達)이 질질 끌고 증인을 세우지 않기 때문에 국문을 못한 것입니다." 하였다. 헌사(憲司 )에서 나씨가 송염과 통한 까닭을 국문하니, 나씨가 말하기를, "송염의 누이인 권진(權軫)의 처가 중매를 ...
- 18. 태종실록 3권, 태종 2년 5월 11일 계사 1번째기사 / 이지직과 전가식을 순군에 내리고, 파직시키다》을 보건대, ‘제후(諸侯)가 한번 장가드는 데 아홉 여자를 데려오는 것은 계사(繼嗣)를 넓히려는 까닭이요, 데려올 때 반드시 동시(同時)에 데려오는 것은 근본을 어지럽히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정실(正室)의 자손이 번성한데도 또 권씨(權氏)를 맞이하시니, 이것은 전하께서 호색(好色)의 마음을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데려오되 동...
- 19. 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4월 4일 경술 3번째기사 / 사간원에서 상례의 정비 및 법 개정의 신중 등 시무에 관해 건의한 상소문아니하여 간혹 미비한 것이 있습니다. 예전의 부녀자(婦女子)의 상제(喪制)는 출가(出嫁)한 자가 본종(本宗)을 위하여 한 등(等)을 감한 것을 제외하고는 남자와 같은데, 지금은 3년상에 남 자는 모두 본복(本服)을 좇으나, 부녀자는 아직도 전조(前朝)의 폐습(弊習)을 따라 모두 백일(百日)로 한계를 삼아 복(服)을 벗고, 혹은 자식이 아비의 복을 입어 바야흐로 최질(衰絰) 중에...
- 20. 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5월 15일 신묘 1번째기사 / 임피에서 여자가 벼락에 맞다임피(臨陂)에서 여자가 벼락맞았다.
- 21. 태종실록 7권, 태종 4년 1월 12일 갑인 2번째기사 / 조부녀의 손자 김한제가 형조에서 노비 변정을 잘못했다고 신문고 친 사건화상(大和尙)이란 자는 이거이(李居易)의 종이다. 그 여자가 양(良)이라면 그 소생이 모두 거이의 종이 될 수 있지마는, 조부녀가 옳다 면 이거이가 부끄러운 일이다. 만일 거이 때문에 마땅히 천(賤)으로 할 것을 천으로 하지 않는다면 어찌 공도(公道)이겠는가?" 대간(臺諫)에 명하기를, "노비의 송사를 결단하는 것이 비록 너희들의 직책은 아니지마는, 혐의스러운 것을 변...
- 22. 태종실록 7권, 태종 4년 2월 27일 무술 2번째기사 / 상전을 강간한 사노(私奴) 실구지 형제와 박질을 능지 처참하다주로 내려가서 살자고 청하였다. 내은이가 말하기를, "여자의 도리는 안방 문[閨門]을 나가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지금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니 어찌 네게 가서 살 수가 있느냐?" 하였다. 종이 말하기를, "상전[主典]의 의식(衣食)이 우리들 두 사람에게 있 으니, 만일 우리 계교를 듣지 않는다면 장차 돌보지 않고 도망하겠습니다." 하였다. 내은이가 부득이하여 그의 집에...
- 23. 태종실록 9권, 태종 5년 5월 11일 을사 2번째기사 / 여자 무당을 모아 송악·개성의 대정에서 비를 빌게 하다여무(女巫)를 모아 송악(松岳)과 개성(開城) 대정(大井)에서 비를 빌었다.
- 24. 태종실록 10권, 태종 5년 9월 6일 무술 2번째기사 / 의정부에서 해마다 수판한 것을 모아 작성한 20항의 노비 판결에 관한 규정자신이 사용(使用)하고, 남편이 다른 아내를 얻거나 여자가 다른 남편에게로 간 것은 사손(使孫) 사촌(四寸)에 한하여 나누어 주고, 사촌이 없으면 속공(屬公)하며, 남편이 허여(許與)한 노비는 허여한 것으로 전계(傳系)하고, 아내가 허여한 노비는 인신(印信)·수촌(手寸)으로 취신(取信) 하여도 분변(分辨)하기가 어려우니, 증인(證人)과 필집(筆執)으로 하되...
- 25. 태종실록 10권, 태종 5년 9월 22일 갑인 1번째기사 / 천인이 양인 여자에게 장가드는 것을 금하다하는 자는 다른 사람의 진고(陳告)를 허락하여, 남자·여자 및 주혼자(主婚者)와 본주(本主)로 서 정상을 알고도 금하지 않는 자는 율(律)에 따라 논죄(論罪)하고, 포(布) 2백 필을 받아서 고(告)한 사람에게 상(賞)으로 주고, 강제로 이혼(離婚)시키며, 남자·여자 및 그 소생은 속공(屬公)한다. 본주(本主)가 정상을 알지 못한 자는 논(論)하지 않고, 그 노비(奴婢)도 또한 속공(...
- 26. 태종실록 10권, 태종 5년 11월 21일 계축 2번째기사 / 의정부에서 불교의 퇴폐상을 열거하고, 금산사 등의 토지와 노비를 환수할 것을 청하다설법(說法)하는데, 아난(阿難) 이 마등가(摩藤加) 여자를 보고 참지 못하여, 마침내 범(犯)하였습니다. 석가가 능엄경(楞嚴經)을 설법하여 음란한 것으로 제일계(第一戒)를 삼았습니다. 청정(淸淨) 죄가 없이 맑고 깨끗함. 정혜(定慧) 선정(禪定)과 지혜(智慧), 선정(禪定)은 참선(參禪)하여 삼매경(三昧境)에 이름을 말하고, 지혜(智慧)는 사물(事物)의 실상(實相)을 ...
- 27. 태종실록 11권, 태종 6년 3월 16일 병오 1번째기사 / 제생원에 명하여 어린 여자아이에게 의약을 가르치게 하다제생원(濟生院)에 명하여 동녀(童女)에게 의약(醫藥)을 가르치게 하였다. 검교 한성 윤(檢校漢城尹) 지제생원사(知濟生院事) 허도(許衜)가 상언(上言)하였다. "그윽이 생각건대, 부인이 병이 있는데 남자 의원으로 하여금 진맥(診脈)하여 치료 하게 하면, 혹 부끄러움을 머금고 나와서 그 병을 보이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여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원하건대, 창고(倉庫 )나...
- 28. 태종실록 11권, 태종 6년 5월 3일 임진 6번째기사 / 개국 공신 한충의 아들인 장군 한을생의 직첩을 거두고 귀양보내다사노(私奴) 김철(金哲)의 아내 보패(寶棑)라고 하는 여자를 간통(奸通)하여 아이를 가지게 하였다. 김철이 또 잡아서 형조에 고소하니, 한을생이 본 고향 이천현(伊川縣)으로 도망하였는데 , 임금이 외방의 군역(軍役)에 정하도록 명하였다. 얼마 아니되어 한을생이 몰래 서울로 돌아와 또 보패와 대낮에 간통하니, 김철이 또 잡아서 고소하였다. 형조에서 한을생을 군역(...
- 29. 태종실록 11권, 태종 6년 6월 9일 정묘 3번째기사 / 대사헌 허응이 개가와 가묘 문제 등에 관한 시무 7조를 올리다(婦道)를 바르게 하도록 하소서. 삼종(三從)의 의리 여자가 지켜야 할 세 가지의 도리. 어릴 때는 어버이를 쫓고, 출가해서 는 지아비를 쫓고, 지아비가 죽은 뒤에는 아들을 쫓는 것을 말함. 자녀안(恣女案) 고려 때 음란 방종한 부녀자의 이름과 죄명을 기록한 문부. 그 세째는 신축년 이전의 사건은 여러 번 금령(禁令)을 내렸으면, 각사에 속공(屬公)된 노비(奴婢)와...
- 30. 태종실록 11권, 태종 6년 6월 28일 병술 1번째기사 / 유후사의 여자 건이가 벼락 맞다유후사(留後司) 부녀(婦女) 건이(件伊)가 벼락맞았다.
- 31. 태종실록 12권, 태종 6년 8월 22일 무신 1번째기사 / 대간에서 전위하는 것을 철회하도록 청하다전위(傳位)하는 일은 비록 어리석은 남자나 어리석은 여자라 할지라도 모두 그것이 불가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어찌하 여 갑자기 대위(大位)를 내놓아서 어린 세자에게 맡기려 하십니까? 대저 인심(人心)이 향(向)하는 곳에는 하늘의 뜻이 있는 곳이므로, 경홀(輕忽)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인심(人心)을 굽어살피시고, 하늘의 뜻을 우러러 ...
- 32. 태종실록 13권, 태종 7년 1월 12일 정묘 1번째기사 / 사헌부에서 사사(寺社) 노비의 처리문제를 아뢰다2석을 받고, 장비( 壯婢)는 2석을, 남편 없는 자는 1석을 받고, 노비끼리 서로 혼인한 자는 정오승포(正五升布) 각각 1필씩을 받고, 15세 이하와 60세 이상인 자는 징수하는 것을 면제토록 하소서." 장노(壯奴) 건장한 남자종. 평석(平石) 15두를 1석으로 하는 계량 단위. 세종 대에 제정된 20두를 1석으로 하는 전석(全石)과 구별된다. 장비(壯婢) 건장한 여자종. 하 니, 그대로 따랐다.
- 33. 태종실록 14권, 태종 7년 11월 10일 경신 1번째기사 / 정비가 민무질의 처를 궁중에 불러들인 것이 문제 되다佐耳)를 시켜 명령을 전하기를, 「미미(微微)한 일가 여자가 들어 오는 자가 있을 것이니, 금하지 말라.」고 하시었습니다. 김인봉이 이 명령을 듣고 동판부사(同判府事) 이용(李龍 )에게 고하니, 이용이 대답하기를, 「중궁에서 명령이 있으면 금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조금 있다가 좌이(佐耳)가 바깥에서 부인을 인도하여 들어왔습니다. 이튿날 꼭두새벽 달이 지...
- 34. 태종실록 14권, 태종 7년 11월 11일 신유 1번째기사 / 민무구·민무질의 직첩을 거두고 신극례는 논하지 말라고 명하다" 미생(尾生) 춘추(春秋) 시대 노(魯)나라 사람. 여자와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는데, 마침 비가 와서 여자는 오지 않는데, 가지 않고 기다리다가 큰물을 만나 기둥을 안고 죽었음. 일명 미생고(微生高)라고도 함. 백공(白公) 춘추 시대 초(楚)나라 사람. 평왕(平王)의 손자 . 태자(太子) 건(建)의 아들. 어려서 오(吳)에 망명하여 있었는데 자서(子西)가 ...
- 35. 태종실록 14권, 태종 7년 11월 28일 무인 2번째기사 / 남편을 살해한 충청도 연산현의 내은가이를 저자에서 거열하다은 없었다." 하고, 황희(黃 喜)에게 묻기를, "이 여자가 범한 것 같은 것을 외방의 수령은 어떻게 형벌하는가?" 하니, 황희가 대답하기를, "곧 목을 벱니다" 하였다. 임금이, "율에는 능지(凌遲)의 법이 없느냐?" 능지(凌遲) 가장 참혹한 형벌(刑罰)의 하나. 먼저 팔·다리의 사지(四肢)를 절단하고 그 다음에 머리를 베는 것. 수(隨)·당(唐) 이래로 없어졌으나 원(元)나라 ...
- 36. 태종실록 15권, 태종 8년 3월 7일 병진 2번째기사 / 서북면 가주의 효녀 충개에게 정려문을 세워 주다가주(嘉州)의 충개(蟲介)라는 여자의 문려(門閭)를 세워 정표(旌表)하도록 명하고, 인하여 쌀·콩 20석을 주었다. 서북면 도순문사(西北面都巡問使) 이귀철(李龜鐵)이 상언(上言)하기를, 문려(門閭) 마을 입구에 있는 문과 집의 문. 정표(旌表) 선행(善行)을 칭찬하여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것. "도내(道內) 가주(嘉州)에 이름이 충개(蟲介)라는 여자가 있사온 데, 나이 ...
- 37. 태종실록 15권, 태종 8년 4월 2일 경진 14번째기사 / 황제가 무영전에 좌기하여 세자에게 준 어제시이 정성을 펴서 조정(朝廷)을 섬기어, 남자는 밭갈고 여자는 베짜서 강역(疆域)이 편안하도다. 갈대 피리를 불고 북을 쳐서 날마다 즐거움을 삼으니, 넓은 들에는 응당 송아지를 차고 다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송아지 병기(兵器)를 말한 것임. 압록강 물은 잔술[巵酒]과 같고, 마읍(馬邑)의 여러 산은 조그만 구릉(丘陵)에 연하였도다. 시험삼아 지나간 자취를 보라 이미...
- 38. 태종실록 15권, 태종 8년 4월 2일 경진 15번째기사 / 황제가 세자 일행에게 금은 등을 내리다. 시종관들에게 차운하라며 준 찬불시薄)한 돌밭을 부지런히 매어 가꾼다. 천곡(千斛)의 진여자(眞如子)를 거두어 이루니, 낱낱이 둥글고 밝아서 세상에서 듣기 드물도 다. 일기(一機)도 움직이지 아니하고 징적(澄寂)을 깨달아, 성경(聖境)을 초월(超越)하여 울타리가 없도다. 어리석은 자는 지리(支離)하게 분별(分別)함이 넓어서, 환(幻)이 진실(眞實)이 아닌데도 한갓 말만을 하도다. 아아! 떼로 모여 배불...
- 39. 태종실록 15권, 태종 8년 4월 16일 갑오 1번째기사 / 흠차 내사 황엄·전가화 등이 명의 칙서를 가지고 오다. 은과 비단을 보낸다는 내용내려 준다." 【휘(諱).】 하였다. 임금이 칙서(勅書)에 절하고 나서, 서계(西階)로 올라 가 사신 앞에 나아가서 꿇어앉았다. 황엄이 성지(聖旨)를 선유(宣諭)하기를, "네가 조선국(朝鮮國)에 가서 국왕(國王)에게 말하여, 잘 생긴 여자(女子)가 있으면 몇 명을 간택(揀擇)해 데리고 오라." 하였다. 임금이 고두(叩頭)하고 말하였다. "어찌 감히 마음을 다해 명령을 받들지 않겠습니까?"
- 40. 태종실록 16권, 태종 8년 7월 2일 무신 1번째기사 / 내사 황엄 등이 의정부와 더불어 경복궁에서 처녀들을 선발하다없겠느냐? 네가 감히 사의(私意)를 가지고 이와 같은 여자들을 뽑아 올린 것이지?" 하며, 곤장을 치려고 하다가 그만두고, 교의(交倚)에 걸터앉아 정승(政丞)을 앞에 세우고 욕(辱)을 보이고 나서 태평관(太平館)으로 돌아갔다. 임금이 지신사(知申事) 황희(黃喜)를 보내어 엄(儼)에게 이르기를, "이 계집아이들이 멀리 부모(父母) 곁을 떠날 것을 근심하 여 먹어도 음식 맛을 ...
- 41. 태종실록 16권, 태종 8년 7월 3일 기유 2번째기사 / 각도에 순찰사를 보내 다시 처녀를 선발하는데 경차 내관이 동행하다)시켜 천사(天使)의 사열( 査閱)을 기다리고, 만일 여자를 숨기고 내놓으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침구(針灸)하거나 머리를 자르고 약(藥)을 붙이고 하여 여러가지 방법으로 꾀를 써서 선택을 피하려고 꾀하는 자는, 통정(通政) 이하는 직접 처단하고, 가선(嘉善) 이상은 신문(申聞)하여 모두 ‘왕지(王旨)를 따르지 않는 죄’로 논하고, 직첩(職牒)을 회수하고 가...
- 42. 태종실록 16권, 태종 8년 10월 28일 임인 2번째기사 / 출가한 딸도 친정 부모를 위해 기년복을 입게 하다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출가(出嫁)한 여자가 본종(本宗) 부모(父母)를 위해 입는 복(服)을 시왕(時王)의 제도에 의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또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삼가 《홍무예제(洪武禮制)》를 상고하면, ‘출가한 딸이 본종 부모를 위하여 기년복(朞年服)을 입는다.’ 하였습니다. 이것이 시왕(時王)의 제도이니 그대로 따르소서."
- 43. 태종실록 16권, 태종 8년 11월 12일 병진 1번째기사 / 황엄 등이 경사에 돌아가다. 진헌 처녀 5명을 경사에 보내는 주문여자를 간택(揀擇)하여, 흠차관(欽差官) 등과 함께 여자 5명을 선택해서, 배신(陪臣) 이문화(李文和)를 보내어 흠차 태감 황엄 등을 따라 경사에 가게 하고, 각 여자의 생년월일과 아비의 직명(職名) 및 적관(籍貫)을 낱낱이 기록하여 삼가 갖추어 주문(奏聞)합니다. 한 명은 가선 대부(嘉善大夫) 공조 전서(工曹典書) 권집중(權執中)의 딸인데 나이 18세로서 신미(...
- 44. 태종실록 16권, 태종 8년 11월 25일 기사 1번째기사 / 처녀 진헌 문제와 관련, 일반 처녀로서 스무 살이 지난 경우는 혼인을 허락하다따랐다. 처음에 황엄(黃儼)이 돌아갈 때에, 엄이 임금에게 이르기를, "2등(等)으로 입격(入格)한 처녀 27인은 혼인을 금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대답하기를, "여자는 혼인 시기를 지나게 할 수 없으니, 만일 대인(大人)께서 그 연수(年數)를 정한다면, 내가 마땅히 혼인을 금하겠소." 하였다. 엄이 말하였다. "이문화(李文和)가 돌아올 때에 내 가 마땅히 정하여 기별하겠습니다."
- 45. 태종실록 17권, 태종 9년 3월 19일 임술 1번째기사 / 사헌부에서 세포전·문묘 배향·여자의 의복 제도 등에 관한 시무를 올리다전장 문물(典章文物)이 모두 중국의 제도를 따르지만, 여자의 의복 제도만 은 아직도 구습(舊習)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니, 고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선 구제(舊制)에 따라 적당하게 상정(詳定)하여 그 참람한 것은 없애고, 사치스러운 것은 깎아서 등급(等級)과 상하(上下)의 명분을 분별하게 함이 옳습니다. 우리 나라 여자의 의복 가운데 존귀(尊貴)한 것은 오군(襖...
- 46. 태종실록 17권, 태종 9년 윤4월 23일 을축 2번째기사 / 천재지변과 시정의 잘못에 관해 언급, 간관의 간쟁이 필요함을 말하다말하였다. "내가 《삼국사(三國史)》를 보니, 어떤 여자가 간통(奸通)한 일로 옥(獄)에 갇혔었는데, 옥문에 벼락이 쳐서 탈출하여 도망한 일이 있었다." 한상덕(韓尙德)이 아뢰기를, "지금 절기(節期)가 무더운 여름철에 속하는데, 기후(氣候)가 그 조화를 잃어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아니하고, 가을 철 같이 서늘한 바람이 부니, 신은 임금이 실덕(失德)한 때문인지, 시정(時...
- 47. 태종실록 17권, 태종 9년 5월 1일 임신 3번째기사 / 형조 참의 허지가 충청도 경차관으로 파견되어 잘못했던 일을 스스로 인책하다형조 참의 허지(許遲)가 성서(上書)하여 자핵(自劾)하였다. 그 글은 이러하였다. "신이 지난해 9월에 충청도 경차관(忠淸道敬差官)의 명을 받고 성상의 뜻을 봉행(奉行)하였습니다. 손실 답험(損實踏驗)을 적중(適中)하게 하여 전하(殿下)의 인애(仁愛)하시는 마음을 어기지 아니하고, 민폐(民弊)를 제거하고자 하여, 주군(州郡)을 순행(巡行)하면서 친히 스스로 핵실(覈實)하여...
- 48. 태종실록 17권, 태종 9년 5월 3일 갑술 1번째기사 / 황엄 등이 경사에서 오다. 진헌 처녀 한두 명을 더 보내라고 요구하다포하였 다. "지난해 너희가 저곳에 데리고 와서 바친 여자들은 살찐 것은 살찌고, 마른 것은 마르고, 작은 것은 작아서 모두 매우 좋지 못하였다. 다만 너희 국왕(國王)의 공경하는 마음이 중한 것을 보아서, 우두머리 되는 자는 비로 봉(封)할 것은 비(妃)로 봉하고, 미인(美人)으로 봉할 것은 미인으로 봉하고, 소용(昭容)으로 봉할 것은 소용으로 봉하여, 모두 봉 (封)하기를 ...
- 49. 태종실록 17권, 태종 9년 6월 25일 병인 1번째기사 / 예조 좌랑 정효복의 상서문을 읽고, 사간원 우헌납에 발탁하다둔전(屯田)은 만민(萬民)이 모두 싫어하는 것이며, 여자(女子)는 환관(宦官)이 기르는 것이 아니오니, 이것을 금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정치를 한다고 하겠습니까? 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의 첫째입니다. 오행(五行) 만물이 생성하는 5가지 원소(元素).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 오사(五事) 다섯 가지의 큰 일. 즉 모(貌)·언(言)·시(視)·청(聽)·사(思). 홍범(洪範)...
- 50. 태종실록 18권, 태종 9년 8월 15일 갑인 2번째기사 / 호조 참의 오진을 경사에 보내다. 처녀 진헌과 약재 구매 요청에 관한 자문 승부武兩班), 그리고, 군민(軍民)의 집을 정성껏 찾아서 여자 2명을 뽑아 진헌(進獻)에 대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먼저 여자의 생년 월일(生年月日)과 아비의 직사(職事)·성명(姓名)·적관(籍貫)을 하나하나 개사(開寫)하여 삼가 주문(奏聞)하는 바입니다. 한 명은 전 조봉 대부(朝奉大夫) 지선주사(知宣州事) 정 윤후(鄭允厚)의 딸인데, 나이는 18세로 임신(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