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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歲暮)
박 완 서
많이 늙었다. 이마에 늘어진 머리카락 속에 몇 가닥의 흰머리도 보인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그가 좋다. 지난날의 어느 때보다도 둘이 연애하던 때보다도 지금의 그가 좋다. 그가 좋아서 막 신바람이 날 만큼 그렇게 좋다.
돈을 잘 버는 남편을 가졌다는 건 얼마나 큰 기쁨이요, 자랑일까. 가난했던 게 바로 일 년 전쯤인데 아니, 아주 형편이 편 건 바로 올 가을쯤부터인데 어쩌면 가난은 그렇게 멀고 구질구질한 것일까.
하늘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약속하듯이 부드럽게 흐렸고 자선냄비 곁에서 구세군의 종소리가 처량하다.
세모의 거리에서 종소리가 없다면 一그래, 가난이란 바로 구세군의 종소리를 위해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냉큼 생각할 만큼 내 재치는 놀랍고 가난은 내게서 그렇게 멀다.
백화점으로 사람이 꾸역꾸역 몰려들어가고 나는 슬며시 남편의 팔짱을 끼고 그 인파에 섞인다.
핸드백 속에 지폐뭉치를 넣고 쇼핑의 인파에 섞이는 유열(踰悅)로 나는 상기 한다.
새침한 점원 아가씨의 눈이 짙은 속눈썹 속에서 약삭빠르게 내 눈치를 살피더니 쌩긋 웃으며 치렁치렁한 머플러를 건네준다.
“잘 어울리실 거예요.”
서슴지 않고 받아 머리와 목을 한 바퀴 동이고도 머플러의 한 쪽 끝은 발둥을 덮게 길고, 실크의 감촉은 매끄럽고도 따습다.
“어쩜 예뻐라!”
아가씨의 경탄과 동시에 금빛 테를 두른 둥근 거울이 내 앞에 와 있고 나는 헝클어진 무지개처럼 풍성한 색조에 둘러싸인 내 얼굴을 본다.
나는 거울 속의 나에겐지, 점원 아가씨에겐지 상대가 분명치 않은 미소를 크게 지어 보였을 뿐 머플러는 풀어놓는다.
“왜요? 하주 잘 어울리시는데…… 최고품이에요.”
그러나 나는 사지 않는다. 머플러를 둘러보고 안 샀대서 조금도 미안하지 않다. 돈이 있고도 물건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안 샀으니까, 돈도 없는 주제에 고급품에 분수 없이 추파를 던진 게 결코 아니니까, 나는 자못 떳떳하고 오만하기까지 하다.
돈을 가졌다는 건, 이 백화점에 진열된, 제아무리 빼어난 고급품이라도 아양을 떨지 않고는 못 배길 돈을 가졌다는 건 얼마나 신바람나는 일이냐 말이다.
나는 여러 가지 물건을 구경도 하고 만져도 보았으나 하나도 절실하게 탐나지는 않는다.
다만 두둑한 핸드백을 들고 남편과 팔짱을 끼고 인파대로 휩쓸리는 게 디즈니 랜드에서 유람선을 탄 어린애처럼 천진스럽게 즐거울 뿐이다.
“당신 왜 아무것도 안 사지? 그렇게 벼르더니.”
“뭐 급해요, 천천히 사죠 뭐.”
“난 좀 피곤해서 그래. 벌써 몇 바퀴를 돌았다구. 어디서 차라도 마실까? 웬만하면 난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당신 혼자 쇼핑을 하든지.”
우리는 크리스마스 데커레이션이 요란한 구내다방에 마주 앉았다. 아닌게 아니라 남편은 몹시 피곤해 보인다.
남들은 돈을 벌면, 우전 배가 나오고 살갗에 기름이 오른다는데 그는 요새 한층 까칠해 보인다. 하긴 돈을 번 지가 일 년, 아니 제대로 번 지가 반년밖에 안 됐으니 배가 나오고 기름이 오르기는 좀 기다려야 할까보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전에는 아무리 의기소침 했을 때도 비분강개했을 때도 — 실상 돈을 못 벌 때의 그는 늘 그 둘 중의 하나였지만 ― 한결같이 그의 표정의 바탕색을 이루었던 의연한 기품이 엉망으로 구겨 보이는 건 어쩐 일일까?
그렇지만 나는 그 일에 오래 마음 쓰지는 않는다. 그런 부질없는 생각으로 모처럼의 유열올 침해당할 수는 없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다 말고 집에서 미리 메모해온 것올 꺼내 남편에게 보이며, “여보, 김교수 댁엔 와이셔츠 넥타이로 했는데 인삼으로 할까 봐요. 아까 보니까 고려인삼올 선물용으로 포장해놓은 게 값은 더하지만 볼품이 근사합디다. 그리고 황 전무한테는 그 집에 그까짓 조미료가 없을라구요. 거긴 자개소반으로 합시다. 그리고 민 대리한테는.”
“원 사람두, 돈이 얼마나 있기에 그렇게 마구 허풍을 떠누.”
“허풍이 아네요. 이왕 신세진 사람들한테 선물할 바에야 좀 눈에 띄는 걸로 합시다. 우리도 이만큼 살게 됐으니 다신 신세 안 지겠습니다 하는 투로 말예요. 돈은 염려 말아요. 제 걸 안 사면 될 게 아녜요.”
“당신 걸 안 사다니…… 며칠을 두고 그렇게 벼르고서.”
“막상 사려니 어디 마땅한 게 있어야죠. 물건이라고 맨 요란번쩍했다뿐이지 정작 눈에 차는 건 없습디다.”
남편은 내 지껄이는 양을 물끄러미 보더니 쓸쓸하게 웃고는 메모지를 확 빼앗아다가 꾸깃꾸깃 재떨이에 던져버린다.
“그만둬요, 선사고 뭐고. 그치들을 언제 다시 볼 거라고 선사야.”
아까보다 좀더 쓸쓸하게 그리고 좀 밉게 웃는다.
“그야 그렇죠. 다시는 남의 신세 안 지고 살아봐야죠. 그렇지만 과거에 신세진 건 진 거니까 이럴 때 도리를 차리는 게…….”
“글쎄 고만두라면 고만둬. 다시는 김교수네 집에 얼씬거리며 번역 나부랭이를 구걸하지도 않을 테고 사장이니 전무니 하고 출세한 동창놈들한톄 돈 취하러 다닐 턱도 없으니까. 난 이제 어엿한 장사꾼이란 말야. 좀더 실속 있는 투자를 해야겠어.”
“실속 있는 투자라뇨?”
“당신 뒤를 따라다니면서 문득 생각한 건데…… 상가고 백화점이고 고객 유치 작전이, 새록새록 눈부시더구먼. 배우 일일점원이니 선물부 사은 대매출이니 하고. 우리도 우리 고객에게 사은을 좀 합시다.”
“네? 어떻게요?”
“단골집 식모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줄 만한 걸 생각해봐요. 하다못해 싸구려 머플러라든가 양말이 라든가·….”
“어머머…… 어쩜 당신도 그런 생각을.”
나는 좀 호들갑스럽도록 들뜬 소리를 내고 다방이 아니라면, 남의 이목만 없다면 와락 안아주고 싶게 그가 사랑스럽다.
그가 그런 잇속 있는 생각을 짜낼 수 있다니, 그가 철두철미한 이악한 장사꾼일 수 있다니. 비로소 다시는 가난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자신이 확고해진다.
실은 여직껏 좀 불안했던 것이다. 세모의 거리에서 지나치게 들떴음도 그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완전히 놓여난 내가 썩 미덥지 못하고, 마치 좋은 꿈을 꿈인 줄 알고 꾸고 있을 때처럼 아슬아슬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남편은 내 정겨운 시선에 다시 쓸쓸하고 좀 미운 웃음을 보낸다. 그러나 나는 곧 그의 미운 웃음까지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유복한 사람의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은 얼마나 친근하고 아름다운 것일까? 구석자리에서 서로의 손을 애무하는 연인들. 아까부터 기고만장 토론을 벌이는 장발(長髮)의 청년들. 알사탕 같은 전구를 조롱조롱 매단 은빛 크리스마스 트리. 그리고 미더운 내 남편.
나는 문득 잘사는 여러 친구들의 이름을 아무런 아픔 없이 구구단처럼 암송할 수도 있어진다.
“난 여기 있을게 어서 다녀와요. 오후엔 인수 학교도 가봐얄 게 아냐.”
“참 그렇군요. 내 정신 좀 봐.”
나는 시계를 보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인수네 학교. 오렌지빛 교복이 멋진 명문의 사립학교 ― 인수! 내 막내아들이자 외아들, 딸을 넷씩이나 낳고 마지막으로 얻은 귀하디귀한 아들, 앞니가 두 개 빠지고 귓바퀴엔 버들강아지 같은 솜털을 두른 이 소중한 외아들에 대한 애정은 가슴이 저릴 만큼 절실하다.
어떻게 끗발에 그래도 고추 달린 놈을 낳았노 생각할수록 신통하고 누구에게랄 것 없이 두루 감사하다.
아침에 큰길까지 나가 오렌지빛 스쿨버스에 틀림없이 태워줬건만 잘 갔나가 궁금하고, 학교 파하고 집에 돌아올 때 행여 스쿨버스를 안 타고 한길 구경이라도 하려고 걸어오지 않을까 근심스럽게 한번 시작한 근심에 갖가지 방정맞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잇따른다.
딸들을 넷씩이나 보낸 공립학교를 지척에 두고 공연히 먼 곳의 사립학교에 보내가지고서 밤낮없이 애를 태우나보다고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그게 어떤 아들이라고 남의 모에 빠지게 키우랴.
자식이 제 먹을 것은 갖고 태어난다는 말이 얼마나 허황한 거짓부리 인지는 맬서스의 인구론이 아니더라도 딸 넷을 낳는 동안 뼈에 사무치게 알고도 남는 처지이지만, 이 막내놈만은 여느 애들하고는 좀 다르다. 이놈만은 먹을 것뿐이랴 배울 것까지도 타고난 놈이다. 친정어머니가 인수란 어엿한 이름 제쳐놓고 복두꺼비니 업둥이니 부를 만큼 이 막내놈은 찢어지게 가난하던 집에 엄청난 복을 갖고 태어난 놈이다.
인수를 배어 만삭이 되던 해 겨울, 만돌린같이 부푼 배를 안고, 빚에 쪼들리다 못해 대대로 살던 시내의 집을 처분해 빚을 갚고 전셋거리밖에 안 남은 걸 가지고, 그래도 집을 사겠다고 변두리란 변두리는 다 쏘다니다가 말이 서울특별시지 전기도 수도도 없는 얼마 전까지도 광주군이던 곳에 채마밭이 딸린 조그만 초가집을 사서 이사라고 할 때의 그 올씨년스러운 몰골이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술술 나올 만큼 가엾었다.
이사 온 지 며칠 후에 인수를, 어쩜 아들을, 를림없이 고추가 달린 놈을 낳았던 것이다. 그 촌구석에서 산파도 없이. 그 당시의 우리의 가난은 참담했다. 남편은 대학까지 나오고 그의 출근처는 관청가의 장엄한 팔층 건물이었고, 월급도, 공무원으로서의 급수도 정상적인 상승률을 보였으나 내 왕성한 생식능력엔 멀리 미치지 못했다. 우리는 둘 다 어딘지 크게 잘못돼 있었다.
나는 한 해 결러 하나씩 규칙적으로 자꾸 식구를 늘리고, 그는 얄팍한 월급봉투에서 교통비니 담뱃값까지 타다 쓰는 걸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그만한 푼돈도 어떻게 마련해 쓰지 못하느냐고 핀잔을 주면 공무원에게도 뭐 팁이 있는 줄 아느냐고 짐짓 근엄한 얼글을 했다.
나는 기가 차서 딴 사람들은 공무원질을 해서도 얼마만큼 잘 살더라는 얘기를 신들린 것처럼 유창하게 주워섬기고, 그는 곧 귀라도 씻으러 나갈 듯한 거북한 모습으로 내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내 기억 속에는 지금도 생생한 한 폭의 지옥도(地獄圖)가 있다. 아침에 아이들이 책가방을 든 채 방 문지방이나 대문간에 꼭 붙어서서 학교에 오늘까지 꼭 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돈을 재촉한다.
“기성회비 오늘까지 안 가져가면 교실에 못 들어간단 말야.”
“오늘까지 수업료 안 내면 시험도 못 치른단 말예요.”
자못 표독하다. 돈은 정말로 한푼도 없다. 꿀 데는 더군다나 없다.
아무리 좋은 말로 타일러도 아이들은 마치 그 자리에 박아논 말뚝처럼 요지 부동이다.
벌써 아이들은 내 자식이 아니다. 가장 비정한 세리(稅吏)다.
나는 악을 쓴다. 잡히는 대로 내던진다. 학교고 뭐고 우선 저 년들을 내쫓지 않으면 곧 내가 미치고 말 것 같다.
이런 나를 아이들은 꼼짝도 안 하고 말끄러미 싸늘하게 노려본다.
이미 세리도 아니다. 모녀간도 더군다나 아니다.
핏발 선 증오가 머리끝까지 오른 원수끼리다.
설사 불구대천의 원수끼리도 이 순간처럼 뜨겁게 미워할 수 있을까.
이건 마귀다. 전설에도 없는 마귀. 제 자식에 대한 미움으로 미쳐가는 마귀 얼마나 끔찍한 지옥의 풍경일까.
빤짝이는 바늘산, 설설 끓는 기름가마 따위, 유연한 옛사람이 생각해낸 극한 상황들은 이에 비하면 얼마나 낭만적이고 미소롭기까지 한 것일까.
이중에 인수가 태어난 것이다. 인수의 고추를 보고 남편은 당신 참 큰 기적을 이룩했군 했다. 나는 당신도 좀 기적을 이룩해 보라고 뻐겼다.
나는 좀 뻐기느라고 한 소리인데 그는 정말 기적을 이룩하기 시작했다. 월급 외의 돈을 마련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공무원이 국록 외에 팁을 받을 수 있게 된 게 아니고 옛 은사의 연줄로 번역 같은 걸 맡아 하게 되고 그런 연줄을 찾으러 ㅡ 물론 떳떳이 역자(譯者)의 서열에도 못 오르는 번역이지만ㅡ부지런히 싸다니기도 하고 제법 친구 교제가 넓어지더니 아쉬울 때 돈을 돌려오는 재주까지 피우게 되었다.
아내가 아들을 낳고, 남편이 돈을 버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 못난 우리에겐 크나큰 기적이었다.
그러나 더 큰 기적은 운명이 베풀어주었다.
땅값이 오른 것이다. 마구 올랐다. 조그만 채마밭을 파랗게 덮은 상추는 이미 상추가 아니라 백원권이었다. 한 평에 몇백원씩 하던 땅이 그렇게 꼭 백원권으로 한 평을 덮을 만큼 그렇게 올랐다.
이미 전기 수도가 들어오고 번지르르 기름진 아스팔트까지 깔리자 채마밭의 백원권은 다시 오백원권으로 둔갑했다.
남편은 또 한번 재주를 부려 은행 융자까지 맡아다가 초가를 헐고 큼지 막하게 블록집을 지었다.
강남 바람을 타고 허허벌판에 하나 둘 주택이 들어서더니, 주택은 아니 저택은 자꾸 늘어서 아름다운 저택가를 이루었다. 적어도 백 평 이상의 정원을 갖춘 집들이라 제일 먼저 대규모 화윈이 생겼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시장이 먼데도 구멍가게 하나 안 생겼다. 그런 지저분한 걸 해먹고 살 집이 있을성싶지 않았다. 드디어 남편은 그 장엄한 팔층 건물을 사직하고 식품점을 차렸다. 물론 고급 주택이니만큼 명동의 유수한 식품점을 본떠 고급 식품만을 취급하기로 했다.
남편의 상재(商才)는 놀라웠다. 그런 재주를 그 팔층 건물 속에서 십 년이 넘도록 썩혔던 것이다.
특히 그는 포장이나 진열에 천재적인 솜씨를 보였다.
부자들이란 H제과나 O제과에서 나오는 대중적인 것보다 좀더 나은 것을 자기들은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남편은 방산시장에서 사모은 허드레 사탕이나 과자도 능란한 포장과 진열로 부자들의 허영심을 만족시킬 만한 최고급품으로 위장시킬 줄 얄았다.
게다가 부자들은 밤참이나 아이들 군것질거리에 이르기까지 거의 식모들에게 내맡겼으므로 식모들만 잘 구슬려놓으면 부르는 게 값일 수도 있었다.
차차 미제 깡통까지 취급하게 되고, 단골은 자꾸 느는데 가게가 더 생길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독점사업이란 얼마나 알토란 같이 실속 있고 고소한 것일까?
그러다 올 봄부터는 뒷산까지 택지가 조성이 되고 다시 한번 건축 붐이 일었다.
아아! 인부들이나 공사 감독들이 매일매일 먹어대는 빵과 맥주라니. 마치 그 더운 여름날, 다만 우리집에 돈을 갖다주기 위해 그 힘든 일을 하고 있는 듯이 나에게 보일 만큼, 그렇게 그들은 버는 대로 먹었다.
매일 한 트력은 됨직하게 듬뿍 빵을 받아놔도 저녁에는 달렸다.
그리고 그 돈! 밤에 남편과 돈을 세는 재미라니. 부피 많은 돈을 세는 재미에 비할 인생의 열락이 다시 있을까. 맹자님이 지금 세상에 살아 계시다면 별수 없이 돈 세는 재미를 인생 삼락 중 으뜸가는 열락으로 꼽으셨으리라. 가게를 닫고 금고를 들여다가 남편은 마구 섞인 돈을 백원권과 오백원권으로 분리만 해놓고 나는 적당한 부피를 집어다가 척척 넘겨간다. 간혹 백원권 중에 오백원권이라도 섞여 있으면 혀를 끌끌 차고 쏙 뽑아내어 무릎 밑에 넣는 맛이라니, 어찌 숲속에서 알밤을 줍는 재미 따위에 비하랴.
아무리 적어도 삼만원, 대개는 그 이상 ― 아무리 부피가 많은 돈을 셀지라도 나는 절대로 물을 쓰지 않고, 가끔 아랫입술을 아래로 훌렁 뒤집고, 엄지손가라 끝에 침을 듬뿍 묻혀가며 센다.
지폐가 새로 탄생했을 때의 그 생경한 체질에서 차차 세파를 겪으면서 우아하고 원만하게 늙어갈 때의 체취는, 어떤 동식물의 체취하고도 안 닮은 착잡한, 그러나 비할 데 없이 구수한 것이다.
“얼마나 남았을까? 이익 말예요, 이익.”
“이 할쯤. 외상이 있으니 더 줄잡아야지. 아마 일 할 오 부쯤…….’
“뭘, 더 되죠? 그렇죠, 더 되죠? 당신이 잔꾀를 부렸으니까 훨씬 더 될걸. 그렇죠, 그렇죠?”
나는 그의 턱살을 치받치며 다그치고 그는 대답 없이 쓸쓸하게 그리고 밉 게 웃고 고만이다.
그러나 오랜 가난 끝에 번 돈이란 마치 가뭄 끝에 가랑비처럼 시원히 고이는 법이 없어 공연히 허욕만 앞서는 초조한 나날이기도 했다.
인수를 사립학교에 넣을 때만 해도 미처 건축 붐도 일기 전 겨우 식품점이 자리를 잡기 시작할 때라 남편이나 나나 은근히 켕기기도 했지만 다행히 추첨에 들고, 또 사립학교에 대한 나의 오랜 선망이 좀 과한 기부금이 아깝지 않은 용기가 되었다.
요즈막에야 아주 자리가 잡힌 것이다. 가게에 전화도 놓고 점원도 두고 은행 빚도 갚고, 그리고 큰맘먹고 옷도 한 벌 해입어 처음으로 참관일에 학교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은 참관일 치고도 올해 마지막이자 방학과 크리스마스를 내일모레로 앞둔 참관일. 나는 사립학교의 풍습은 잘 모르는 채 빈손으로는 갈 수없는 것으로 짐작하고만 있었지, 선생님께 드릴 선물은 식모 선물 고르기처럼 만만치가 않았다. ˙
키가 작고 오동통한 그 여선생님을 인수는 얼마나 좋아하고 따르는 것일까.
“오늘 선생님이 나 손톱 깎아줬다. 좀 길대.”
“저런, 아휴 미안쩍어라. 내가 진작 봐줄걸 선생님이 엄마 욕하셨겠다.”
“엄마는…… 우리 선생님은 아무도 욕 안 해. 얼마나 좋다구. 그리구…… 웅, 말야, 난 엄마가 깎아주는 것보다 선생님이 깎아주는 게 훨씬 기분 좋은걸. 그래서 일부러 엄마한테 손톱 안 보였어.”
“저런 녀석 좀 봐, 그래 선생님 이 너도 귀여워하시든? 혹시 엄마가 자주 찾아가지 않아서 구박하지 않아?”
나는 안 할 소리까지 하고 만다.
“엄마 참 이상하다. 우리 선생님은 우리 반 애가 똑같이 예쁘대. 머리 쓰다듬어줄 때도 똑같이 쓰다듬어주는걸.”
“그게 정말이 겠지? 인수야.”
“그럼 왜 거짓말을 해. 우리 선생님이 거짓말하는 애가 제일 싫댔는데.”
“그렇구나 참 그렇구말구. 고마우셔라. 고마우셔라.”
누가 학원의 부패니, 교육자의 타락이니 함부로 씨부렁대 선생님의 권위를 훼손하려 드는 것일까?
입학 때 몇 번 보고 가정방문 때 처음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어본 것뿐인 이 오동통하고 늙도 젊도 않은 여선생님이 내 심상(心象) 속에서 점점 거룩하게 윤색돼, 그분의 손을 꼬옥 잡고 대화를 나누어보고 싶다는 갈망과 그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이 청정(淸淨)한 샘물처럼 내 내부에서 넘치고 있었다.
그래서 그분의 선물 사기는 더 쉽지 않았다. 그분에게 드리기에는 온통 조금씩 미흡했다. 너무 간소해도 안 되고 너무 요란하거나 사치스러워도 그분에 대한 내 진정에 사념(邪念)이 끼어드는 것 같아 싫었다. 시간은 자꾸 갔다.
나는 공립학교에 딸을 넷씩이나 보내본 경험으로 참관일날 빈 손으로 가서 그야말로 수업 참관만 하고 돌아온다는 것이 얼마나 면목 없는 일인가를 익히 알고 있었다.
돈을 걷는 소위 대의원이라는 자모가 끔찍이 두려워 슬슬 피하다가 어쩌다 잡히는 날이면 멋쩍 게 비실비실 웃으며
“저어― 오늘 마침 돈을 안 가지고 나왔구먼요…….”
“아유 그러셔요. 호호호, 뜻만 있으시면 애기 이름하고 액수만 적어놓으시고 내일 애기 편에 보내주셔도 돼요, 호호호. 애기 이름이……? 네……?”
“그게 글쎄, 요다음달부터나 어떻게, 이달엔 흐흐 히히…….”
나는 열없게 비적비적 웃으며 내 웃는 꼴이 얼마나 흉할까 혼자 속으로 몸서리를 친다.
상대방은 이미 웃음을 거두고, 모멸의 일별을 던지고는 다른 자모에게로 옮겨간다.
멋모르고 큰애 때, 몇 번 가보다가 다음 애부터는 아예 졸업식 때까지 학교 근처엔 얼씬거리지 않는 것을 수로 알게끔 돼버렸다.
“난 아무리 손을 들어도 딴 애만 시킨다구. 치 엄마 때문이야.”
“난 올 겨울 내내 난롯가에 한 번 못 앉아봤다. 엄마가 와이롤 안 쓰니 별수 있어.”
샘 많은 계집애들이 일러바치는 소리가 분노나 슬픔이 되어 와 닿기에는 나는 그때 너무도 가난했었다. 지금은 사정이 아주 달라진 것이다. 인수란 놈만은 남부럽지 않게 키울 수 있게 된 것이다. 학교만 해도 그놈은 우선 이부제에다 한 반에 백 명씩 쓸어넣는 치사스러운 의무교육의 공립학교가 아니라 수익자 부담의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이다. 사람 구실도 부모 구실도 돈이 다 시키는 거나 진배없으렷다.
나는 다시 한번 신바람이 난다.
상가마다 사람들이 붐비고 그런 세모의 혼잡이 조금도 싫지 않다.
오랜만의 나들이이자 흥얼대는 인파에 소외되지 않은 첫나들이. 나는 문득 제아무리 사립학교라도 돈을 걷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돈을 걷는데 섣불리 선물 꾸러미를 들고 가 그 돈 걷는 축에서 빠지기도 싫고 돈도 내고 선물도 드리고 둘 다 해서 ― 실상 둘 다 못 할 것도 없지만 ― 딴 자모한테 눈총을 받기도 싫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틀림없이 돈을 걷고 있을 것 같고 나도 돈 내는 축에 꼭 끼어들고 싶었다.
수첩을 슬쩍 넘겨다보며 제일 많이 낸 액수만큼 척척 세어주고는
“호호호 이름은 강인수; 네, 네, 강인수 엄마예요. 사업이 좀 바빠서 고만 그 동안 학교에 등한했었나봐요. 앞으론 적극 협조하겠어요. 호호호…… 별말씀을…… 다 제 자식 위한 노릇인데. 호호호 수고하세요.”
이럴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세상에 돈으로 못 사는 게 없는 바에야 돈보다 윗길에 드는 선물이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물건은 그 물건으로서의 성능이 주는 기쁨을 줄 뿐이지만 돈은 물건과 더불어 물건을 사는 유열까지를 줄 수 있지 않은가?
나는 다방에서 기다리는 남편에게 식모들에게 줄 선물 꾸러미를 들려 혼자 집으로 보내고 학교로 향했다.
멀리 언덕 위에 동화에 나오는 집같이 아기자기한 인수네 학교가 보인다.
가까이 갈수록 아기자기하기보다는 차라리 웅장하다는 느낌이 든다.
넓은 풀 — 겨울에는 스케이트장도 될 수 있는 — 잘 다듬어진 잔디, 월동 준비를 단단히 한 장미밭, 유리에 함빡 땀을 흘리고 있는 온실, 아이들이 만든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 장식물로 성장을 한 전나무 측백나무 들, 각종 운동틀이 알맞게 자리잡은 넓은 운동장. 이 아름다운 배치를 아늑히 포웅한 벽화가 그려진 길고긴 담장. 이 광활하고 아름다운 고장이 바로 내 아들의 영토인 것이다.
복도는 좀 답답할 정도로 훈훈한데 포인세티아의 화분이 창틀 마다 놓여 있고 복도에서 교실을 들여다볼 수 없게 창에는 오렌지빛 커튼이 무겁게 드리워져 있으나 선생님의 상냥한 목소리와 아이들의 “네 네” 하는 힘찬 소리는 잘 들렸다.
나는 조용히 교실 뒷문으로 해서 안으로 들어섰다.
아이들의 오렌지빛 스웨터가 눈부셨다. 어머니들은 벌써 많이 와서 양옆과 뒤에 서 있었다.
수업은 벌써 끝난 모양으로 아이들은 책가방을 챙겨 책상 위에 놓고 산만한 모습으로 선생님의 주의말씀을 듣고 있다.
“찻길을 건너는 어린이는 신호둥을 잘 보고 건너도록…… 무슨 불이 켜지면 건너나?”
“파란불이요.”
“아유 착해라. 잘 맞혔어요. 꼭 그렇게 해요.”
“네.”
“그리고 곧바로 집으로 가야지, 친구집이나 만화가게에서 놀다 가면 안 돼요. 알았지요?”
“네.”
아이들은 가방을 만지작거리며 궁둥이를 반쯤 들고 건성 악만 쓴다.
“그럼 〈안녕〉 노래하면서 조용히 한 줄로 서서 나가요.”
“헤어지면, 언제 만나, 새해에 새달에, 아니 아니 내일, 바로 바로 내일, 만나자 아안녕.”
선생님은 자기 앞을 일렬로 지나는 아이들에게 정겨운 미소를 보내며 옷매무새도 고쳐주고 모자도 바로잡아주고 악수를 청하는 놈에겐 악수도 해준다.
아무리 보아도 싫증날 것 같지 않은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들 사이에선 아무도 돈을 걷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벌써 걷었나 아니면 나를 깔보고 빼돌리는 거나 아닌지.
명동에서도 저 유명한 백화점에서도 별로 초라한 줄 몰랐던 내 차림새가 갑자기 초라해 보이며 나는 좀 풀이 죽었다.
그렇지만 인수를 위한 일인데 조신하게 뒷줄에 처져 있다니 안 될 말이다.
나는 눈치껏 대의원 벼슬이 알맞을 만큼 살집 좋고 거만해 보이는 부인 옆으로 가서 섰다. 붉은 벨벳코트 위로 살진 은빛 밍크목도리가 눈부시도록 아름다워 나는 좀더 위축됐지만 안심은 되었다. 설마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빼돌리진 않겠지 하고.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기미는 안 보이고 벌써 몇몇 어머니들은 선생님에게 목례를 던졌을 뿐으로 자기 애를 따라 귀가하고 말았다.
이미 끝난 것일까?
나는 하도 답답해 밍크목도리보다 좀 덜 거만해 보이는 어머니에게
“저, 선생님께 성의 표시를 좀 했으면 좋겠는데, 다들 어떻게 하셨는지요? 어느 분이 걷으시는지…….”
“걷기는 치사스럽게 누가 걷어요. 개인 플레이를 하지.”
마침 아이들이 완전히 교실을 비우고 선생님이 크게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자기 자리로 가니까 남은 자모들이 우르르 그리로 모여든다.
나는 미처 개인 플레이의 뜻을 물어볼 새도 없이 그 축에 횝쓸린다. 공교롭게도 선생님 테이블은 남아 있던 여남은 명이 둘러싸기에 알맞아 나 하나만 뒷줄에 처진다. 발돋움을 해도 작달막한 선생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드높은 가발이 내 발돋움한 시야를 가로막고, 은빛 밍크의 털이 코끝을 간질일 뿐이다.
“아유 선생님 캘린더도 많이 받으셨네. 모다 일제, 미제뿐이네요.”
“봉투도 꽤 들어왔죠?”
“그러게 내가 뭐랬어요. 개인 플레이를 하게 내버려둬야 선생님 수입이 오를 거라고 그랬잖아요. 개인 플레이로 하면 오백원을 하겠어요, 천원을 하겠어요. 줄잡아 이천원 삼천원은 할 거 아녜요.”
이런 소리들을 터놓고 하는 걸 보니 모두 선생님과 여간 친한 사이가 아닌 것 같다.
뒷줄에 있는 나는 선생님과 그만큼 친하지 못한 게 몹시 미안하고 조금 억울하다.
“선생님, 우리 미라 이번 성적 어떻게 나왔죠? 또 일등이겠죠?”
“일학년 땐 등수는 원칙적으로 안 내게 돼 있어요.”
처음으로 선생님이 입을 연다.
“내보나마나 아네요, 올 백이었으니까. 이학년 반장은 일학년 성적으로 정하겠죠? 네, 그렇죠?”˛
“우리 철이는 가끔 실수를 해서…… 그래도 아이큐는 미라보다 훨씬 위던데.”
“아이큐 그까짓 것 별것두 아닙니다.”
“그까짓 일학년 성적도 별거 아닙니다.”
“아유 싸우겠수 괜히. 우리 애희는 일학기 때 음악 하나가 미 길래 홧김에 피아노를 시키는데 글쎄 피아노 선생이 애희가 우리나라에선 드물게 절대음감(絶對對感)을 가졌다지 않소. 저희 아빠께서 그 소리를 들으시더니 단박 일본 있는 친구한테 연락을 해서 야마하 그랜드 피아노를 부쳐온다 법석이라우. 학교 성적이 어디 절대적 이유? 그저 한때 기분이지.”
선생님이 뭐라고 그러는 것 같았으나 들리지 않았다.
“우리 철인 어제 자가용이 조금 늦게 마중 왔다고 걸어왔지 뭡니까? 고 어린 게 찻길을 두 번이나 건넌 생각을 하니 소름이 쫙 끼쳐요. 운전사보고 미리 대기시키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아빠가 알고는 당장 그 자리에서 운전사를 해고시켰지요. 성미가 어떤 분이라구요. 선생님, 어려우시더라도 우리 철인 수업 끝나면 차까지 좀 데려다주셔야겠어요. 호호…….”
내 앞 밍크목도리의 푸념이다. 밍크의 정교한 눈이 나를 말끄러미 보고 있는 것 같아 딴 데를 보려니 내 앞의 여자뿐 아니라 선생님을 둘러싼 여자들이 일제히 밍크를 두르고 있어 밍크의 노란 의안(義眼)들이 한결같이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발돋움을 한다. 키 작은 선생님은 아니 뵈고 나는 어떻게 하든 선생님을 볼 수 있는 내 자리를 마련하려고 내 앞의 여자들 사이를 여기저기 비집어본다. 한 군데도 허술한 곳이라곤 없다. 요지부동이다.
밍크의 눈이 일제히 나를 비웃는다.
“아유, 운전사 곤조는 말도 말아요. 글쎄 밤에 우리 에스터 영어회화 배우는 데 태워다주고는 그 기다리는 새에 나가시를 하다가 들켰지 뭐유. 영감님이 당장 불호령을 내리고는 모가지를 시켜버렸지, 용서 있어요? 에스터 영어회화 말유? 벌써 언제부터라구. 어학은 어렸을 때 혀 굳기 전에 마스터해놔야 한대요.”
나는 이 엄청난 이야기들이 차차 지루해진다. 심심한 김에 저절로 개인 플레이의 뜻을 깨닫고 만다.
핸드백을 연다. 돈은 아직도 많은데 봉투가 없다.
나는 조용히 교실 뒷문으로 빠져나온다.
내가 섰을 때도 나올 때도 아무도 눈여겨봐주지 않는다.
강당 옆 교내매점에서 흰 봉투를 산다.
돈을 꺼내 센다. 그렇게 익숙하던 돈 세기가 퍽 어렵다.
때 묻고 구겨진 돈들을 추리다보니 성한 돈이 별로 없다. 어쩌자고 게다가 맨 백원짜리뿐이다.
처음으로 돈의 늙음이 추하고, 나는 그게 섧다.
나는 마치 절에 가실 때의 어머니처럼 돈을 매만지고 추린다. 오래오래 구겨진 곳을 쓰다듭는다.
매점 아가씨의 눈이 밍크의 눈처럼 깜짝도 안 하고 나를 비웃는다.
될 수 있으면 아무도 못 보는 곳에서 이 일을 하고 싶다. 잔디 위 측백나무 밑에 앉는다. 다시 돈을 추린다.
어쩌면 한 장도 선생님 드릴 만한 돈이 없다. 나는 그래도 추린다.
오래오래 헛수고를 한다. 웬만한 새 돈도 자꾸 흠을 잡아 빼놓는다.
드디어 나는 왜 내가 이렇게 늑장을 부리며, 애꿎은 돈 타박만 하나를 안다.
나는 도저히 내 앞을 가로막은 밍크목도리를 뚫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사이를 헤집고 선생님 앞에 봉투를 내밀 수는 도저히 없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자 가슴이 답답하고도 아팠다.
인수의 손톱을 깎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준 고마운 손을 잡아 볼 수 없다니, 나는 앉은 채 발을 굴렀다.
그러나 밍크목도리들이 난공불락의 성새(城塞)처럼 나와 선생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의식이 좀더 분명해질 뿐이다.
그 질기고 견고한 성새를 지금 내가 헤집지 못하면 인수에게 그것을 그대로 물려주게 될 것이다.
인수의 앞길을 도처에서 그 성새가 가로막게 될 것이다. 꼭 그럴 것 같다.
성새 너머로 인수만은 밀어넣어야 한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지금 나는 인수를 도울 수 없는 것이다. 도저히 나는 그 성새를 뚫을 수 없는 것이다. 교실에서 밍크목도리들이 선생님을 옹위하고 나오더니 대기하고 있던 자가용에 분승한다.
여기까지 오기 전에 나는 빨리 터즛자리처럼 짚을 입은 장미 덤불 뒤에 몸을 숨긴다.
자가용이 지나갔다. 그래도 나는 숨어 앉았다. 나는 울고 있었다.
짚으로 잘 싸맨 장미나무는 꼭 어릴 적 시골집 뒤뜰의 터줏자리 같아서 섧다.
시월 상달, 김이 무럭무럭 나는 떡시루를 통째르 터줏자리 앞에 떼어다놓고 싸악싸악 두 손 모아 빌던 나의 어머니,
“……그저 집안이 무사태평하고, 어린것들 수명장수 비나이다.”
별로 욕심이 없던 나의 어머니의 소박한 염원.
그때의 내 어머니 노릇보다 지금의 내 아들의 어머니의 노릇이 너무도 어려워 나는 섧다.
또한 나는 빌 터줏자리가 없어서, 내 아들의 앞날을 빌 터줏자리가 없어 더욱 섧다.
한참 만에 학교를 빠져나온 나는 무턱대고 거리를 걷는다.
인파는 조금도 줄지 않고 흥청댄다. 책방에드 사람이 많다.
참 인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책을 사주마고 약속했지. 남편도 자기에게도 오랜만에 책 한 권쯤 사달랬던가.
나는 좀 마음이 밝아져서 책방에 들어선다.
한 질로 된 위인전이 눈에 띈다.
소크라테스, 링컨, 에디슨, 슈바이처, 퀴리 부인, 이순신, 김유신, 이율곡……소년들의 꿈의 인물들.
나는 그것을 흥정하려다 말고 그 책들이 와락 싫어진다. 마음이 좀더 어두워진다.
역경과 간난을 이기고 입신양명한 이야기들. 그건 적어도 스승과 제자, 스승과 제자의 어미 사이에 대화가 있었던 때의 이야기인 것이다.
스승과 제자,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렇게도 질기고 추한 허세와 허위가 성새처럼 가로막고 있던 때의 이야기는 결코 아닌 것이다.
나는 내 아들을 돕지는 못할망정 기만할 수는 없었다.
돌아나오려다 말고 남편에게 줄 만한 것을 사볼까 하고 선물용으로 된 아름다운 단행본 쪽으로 갔다.
수필집 소설 시집, 장정뿐 아니라 제목도 빼어나게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다운 말들이 모두 우리 말이라니.
그러나 지나치게 아름다워 꼭 밍크목도리 같다.
그 자신 생명도 없으면서, 죽었으면서, 요염하고 오만한 밍크의 허위.
이 책들은 남편에게 좀더 쓸쓸하고 좀더 미운 웃음을 웃게 할 것이다.
나는 사지 않는다.
어느 틈에 거리에는 눈이 오고 있었다.
나는 문득 작고한 어느 시인의 시가 생각나면서 가래침이 뱉고 싶어졌다.
“카악.”
목구멍을 크게 울렸으나 가래침은 나오지 않고 가래침은 그냥 고여 있고 가래침이 고여 있는 자리는 답답하고 아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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