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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묵상 #439
영원하신 주님의
(O ich armer Sünder)
찬양곡: 403장 영원하신 주님의
독일어제목: O ich armer Sünder
러시아어제목: О, я грешник бедный!
작사자: 니콜라우스 루트비히 폰 친첸도르프 (Nicolaus Ludwig Graf von Zinzendorf, 1700–1760)
작곡자: Sbornik Duhovnyh Pesen, Moscow
찬송곡조(Hymn Tune): Shornik
찬송가사:
1.
영원하신 주님의 은총 아니면
나는 진정 가련한 죄인이로다
이 죄인이 구원을 받지 못했더라면
나는 이미 오래전 죽었으리라
2
세상 사람 모두 다 믿지 말래도
마음속에 소망과 믿음 가지고
주님 말씀 들으며 찬양하리 주님께
맘과 뜻을 다하여 영광 돌리리
3
주님 나의 선하신 목자 되시니
모든 죄와 두려움 사라지도다
기쁜 마음 가지고 주와 함께 가면서
힘써 사랑하면서 봉사하리라
4
하나님은 우리의 거룩하신 왕
영원하신 진리의 말씀이시니
가난하고 연약한 나의 영혼 살피사
주와 함께 숨 쉬며 살게 하소서
[찬송 묵상]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시편 119:92)
어쩌면 한국교회에서 많이 불려지지 않는 찬송가 중 하나인 러시아 곡조의 찬송가이지만 이 찬송가를 천천히 부르다 보면 한 사람의 신앙 여정을 네 단계로 바라보게 된다.
은총으로 구원받은 죄인 → 믿음과 소망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사람 → 목자 되신 주님과 동행하며 사랑하고 봉사하는 사람 → 하나님과 함께 숨 쉬며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는 흐름이다.
은총으로 구원받고, 믿음과 소망으로 살아가며, 주님과 동행하고, 마침내 주님과 함께 숨 쉬며 사는 삶이다.
1절은 매우 솔직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영원하신 주님의 은총 아니면
나는 진정 가련한 죄인이로다.’
신앙의 출발점은 내가 무엇을 잘했느냐에 있지 않다.
내가 얼마나 선한 사람이냐에 있지도 않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에서 시작되었다는 고백이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인생에도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까’ 싶은 순간들이 있다.
내가 잘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내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셨음을 깨닫는다.
넘어질 때 일으켜 주셨고, 잘못된 길에 들어설 때 돌아오게 하셨으며, 내가 알지 못했던 위험에서도 지켜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고백한다.
‘이 죄인이 구원을 받지 못했더라면 나는 이미 오래전 죽었으리라.’
이것은 단지 육체적인 죽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없었다면 우리의 영혼도, 우리의 소망도, 우리의 삶도 온전히 설 수 없었을 것이라는 고백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첫걸음은 자랑이 아니라 감사다.
‘내가 무엇을 이루었다’가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다’는 고백이다.
2절에서는 구원받은 사람이 세상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믿음과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모습이 나타난다.
‘세상 사람 모두 다 믿지 말래도
마음속에 소망과 믿음 가지고…’
세상의 가치와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세상이 소망을 잃어버릴 때에도 우리는 소망을 품을 수 있다.
사람들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어리석다고 말할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수 있다.
그 믿음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다.
‘주님 말씀 들으며 찬양하리 주님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고, 그 믿음으로 찬양하는 것이다.
신앙은 어려움이 없어서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에 찬양하는 것이다.
형편이 좋아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형편을 넘어 계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찬양은 입술에만 머물지 않는다.
‘맘과 뜻을 다하여 영광 돌리리.’
우리의 마음과 뜻, 곧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데까지 나아간다.
3절에 이르면 신앙은 더욱 구체적인 삶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주님 나의 선하신 목자 되시니
모든 죄와 두려움 사라지도다.’
목자는 양을 앞에서 이끌어 간다.
양이 모든 길을 알고 있기 때문에 목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길을 알지 못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목자가 필요하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지만 주님이 나의 목자이시기에 걸어갈 수 있다.
내가 모든 문제의 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평안한 것이 아니라, 나보다 앞서 가시는 주님을 믿기 때문에 평안한 것이다.
그래서 죄와 두려움이 사라지고, 그 다음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기쁜 마음 가지고 주와 함께 가면서
힘써 사랑하면서 봉사하리라.’
여기서 이 찬송의 신앙은 매우 아름답게 전환된다.
받은 은혜가 삶의 섬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주님께 사랑받았으니 사랑하고,
주님께 섬김받았으니 섬기며,
주님께 은혜를 받았으니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나누는 것이다.
신앙은 나 혼자 구원받고 평안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주님과 함께 걸어가면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섬기며, 내가 받은 은혜를 삶으로 나누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4절은 한층 더 깊은 기도로 우리를 인도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거룩하신 왕
영원하신 진리의 말씀이시니…’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진리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기준은 세상의 변화하는 기준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
그런데 마지막 두 행에서 우리의 시선은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가난하고 연약한 나의 영혼 살피사
주와 함께 숨 쉬며 살게 하소서.’
얼마나 깊은 기도인가.
‘주님, 나를 성공하게 해 주십시오’가 아니다.
‘주님, 나에게 많은 것을 주십시오’도 아니다.
‘주와 함께 숨 쉬며 살게 하소서.’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게 해 달라는 기도다.
숨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계속 쉬게 된다.
숨을 멈추면 살 수 없다.
그렇다면 ‘주와 함께 숨 쉬며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특별한 시간에만 찾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기도할 때만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일할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기뻐할 때도, 어려움을 만날 때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다.
결국 이 찬송은 우리에게 한 가지 아름다운 삶의 방향을 보여 준다.
은총으로 시작하여
믿음과 소망으로 살아가고,
사랑과 봉사로 열매 맺으며,
마침내 주님과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삶.
우리의 신앙도 그렇게 깊어지기를 소망한다.
처음에는 ‘주님,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주님, 나와 함께 걸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게 되고, 더 나아가 ‘주님, 제가 주님을 위해 사랑하고 봉사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며, 마침내 ‘주님, 남은 생애를 주님과 함께 숨 쉬며 살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돌아보면 우리가 살아온 날들도 모두 하나님의 은총이었다.
앞으로 살아갈 날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이렇게 고백하고 싶다.
“영원하신 주님의 은총 아니면
나는 진정 가련한 죄인이로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고 싶다.
“가난하고 연약한 나의 영혼 살피사
주와 함께 숨 쉬며 살게 하소서.”
이것이 이 찬송이 우리에게 남겨 주는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이다.
작사자: 니콜라우스 루트비히 폰 친첸도르프
(Nicolaus Ludwig Graf von Zinzendorf, 1700–1760)
니콜라우스 친첸도르프는 독일의 귀족이면서 경건주의 운동과 모라비아 형제회(Moravian Brethren)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1700년 드레스덴에서 태어났으며, 후에 자신의 영지에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온 모라비아 형제들을 받아들여 헤른후트(Herrnhut) 공동체를 발전시켰다.
이 공동체는 이후 세계적인 선교운동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는 약 2천 편의 찬송시를 지었다.
친첸도르프에게 찬송은 단순히 예배 때 부르는 노래가 아니었다.
신앙의 체험을 노래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찬송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구원, 은혜, 그리고 주님과 신자의 친밀한 관계가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이 찬송에서도 그것이 잘 드러나고 있다.
O ich armer Sünder (오, 나는 가련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찬송은 죄인의 고백으로 끝나지 않는다.
mein lieber Heiland (나의 사랑하는 구주)
그리고 마지막에는 mein Bräutigam (나의 신랑)이라고 고백한다.
즉 ‘죄인인 나’에서 시작하여 ‘나를 버리지 않는 구주’를 거쳐 ‘나의 신랑이신 그리스도’에게 이르는 신앙의 여정이 이 짧은 찬송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작곡자: Sbornik Duhovnyh Pesen, Moscow
이 찬송가의 작곡자에 대하여는 여러 견해들이 있다.
먼저 독일어 찬송 자료 가운데에는 이 찬송의 선율을 Karl Gross(1818)로 기록한 자료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찬송가에 사용된 현재의 선율 작곡자가 Karl Gross라는 뜻은 아니다.
한국찬송가는 러시아어로 번역된 친첸도르프의 찬송시에 러시아 민속 선율이 붙은 형태를 채택한 것이다.
즉 한국의 여러 찬송가 해설에서는 작곡자로 이 곡의 선율을 러시아 고유의 민속음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이 찬송가의 작곡자에 대하여는 여러 자료를 근거로 다음과 같이 정리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이 찬송가의 원작사자는 독일의 니콜라우스 루트비히 폰 친첸도르프이며 독일어 원제목은 O ich armer Sünder, es ist wahr, ich bin's로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러시아어 제목은 О, я грешник бедный!(오, 나는 가련한 죄인입니다)로 러시아어로 번역자는 미상이며 러시아어 번역 시기는 1902년경으로 러시아교회에서 찬송가에 수록하면서 러시아 민속 선율로 전승된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어 자료에서도 찬송의 원작이 독일어이고, 번역자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1902년에 번역이 출판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이 찬송가는 한 곡이 여러 나라의 신앙문화를 거쳐 우리에게 온 사례로 소개하여야 될 것 같다.
결국 이 찬송가는 단순히 '러시아 찬송 한 곡'이라고 하기보다, 독일의 모라비아 경건주의 찬송시가 러시아의 교회음악 전통을 거쳐 한국교회에 들어온 찬송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은, 러시아어 가사와 독일어 원문을 나란히 놓아 보면 한국어 가사가 원문을 그대로 직역한 것이 아니라 상당히 자유롭게 정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단순히 러시아어 가사를 한국어로 직역한 것이 아니라, 한국 찬송가에서는 원래의 찬송시를 한국 교회 찬송의 문맥에 맞게 번역·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찬송곡조(Hymn Tune): Shornik
곡조는 러시아 고유의 민속음악이라 단조에다가 어김없이 우울한 분위기다.
발랄라이카나 러시안 바얀 같은 민속악기가 곁들이니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고 부드러우면서도 영감 있다.
[독일어 원문 가사]
O ich armer Sünder
1.
O ich armer Sünder, es ist wahr, ich bin's!
Wär mein lieber Heiland keines solchen Sinns,
dass Er meine Seele gar nicht lassen kann,
Er hätt Seine Gnade längst von mir getan.
오, 나는 가련한 죄인입니다. 참으로 내가 그러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구주께서 그런 마음을 품고 계시지 않으셨다면,
곧 내 영혼을 결코 버리실 수 없는 분이 아니셨다면,
주님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나에게서 그 은혜를 거두셨을 것입니다.
2.
Nun, ich will mit Freuden sehen, was Er tut,
wie Er mir wird helfen, weil Er doch nicht ruht,
bis Er mir kann halten Seinen teuren Eid,
dass ich noch soll werden Seine ganze Freud.
이제 나는 기쁨으로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바라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쉬지 않고 나를 도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귀하신 약속을 내게 이루어 주시기까지,
마침내 내가 주님의 온전한 기쁨이 될 때까지
주님은 쉬지 않으실 것입니다.
3.
Wenn ich daran denke, so verschwindet mir
Furcht und Angst und Zweifel, ich vergehe schier,
Herr, vor Freud' und Hoffnung über meinem Glück,
sowie über Deinem künft'gen Liebesblick!
내가 이것을 생각하면
두려움과 근심과 의심이 모두 사라집니다.
주님, 나에게 베푸실 은혜를 생각하면
기쁨과 소망으로 내 마음이 벅차오릅니다.
장차 주님께서 사랑의 눈길로 나를 바라보실 것을 생각하면
나는 그 기쁨을 감당하기조차 어렵습니다.
4.
Amen, teures Amen, liebes Gotteslamm!
Mann von wahren Worten und mein Bräutigam!
Nimm mich, wie ich da bin, gib mir, was Dich preist,
Dich und Deinen Vater und den Heil'gen Geist.
아멘, 귀하고 귀한 아멘, 사랑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여!
참된 말씀을 하시는 분, 나의 신랑이신 주님이여!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 주시고,
주님을 찬양하게 하는 것을 내게 허락하소서.
주님과 주님의 아버지와 성령을 찬양하게 하소서.
[러시아어 가사]
О, я грешник бедный! (오, 나는 가련한 죄인입니다)
1.
О, я грешник бедный! Правда, я таков;
Если б Бог бессмертный
Не был полн даров,
Не был полн любовью
И не спас меня,
То погиб давно бы
В мире этом я.
오, 나는 가련한 죄인입니다.
참으로 그러합니다.
불멸하신 하나님께서 은혜의 선물을 가득 베푸시고,
사랑으로 충만하셔서 나를 구원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오래전에 이미 멸망했을 것입니다.
2.
Буду с верой в сердце
Я к Нему смотреть,
Если «мир» не скажет, —
Мне им не владеть.
Если ж я услышу
Слово от Него, —
Буду славить сердцем,
Буду петь Его.
는 믿음을 마음에 품고 주님을 바라보겠습니다.
세상이 나에게 “평안”을 주지 않는다 해도
나는 세상의 평안을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주님께로부터 말씀을 듣게 된다면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노래하겠습니다.
3.
В сладком размышленье,
Что Ты Пастырь мой,
Исчезает сразу
Грех и страх людской;
Радостно желаю
Я в Тебе пребывать,
Для Тебя трудиться
И с Тобою жить.
주님께서 나의 목자이심을 달콤하게 묵상할 때,
죄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나는 기쁨으로 주님 안에 머물기를 원하며,
주님을 위해 일하고 주님과 함께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4.
Да, мой Бог! Ты дивный
Царь даров святых,
Слово Правды Вечной
И души Жених.
Пусть я буду бедным
Духом пред Тобой,
Чтоб в Тебе нуждаться
И дышать Тобой!
나의 하나님, 주님은 놀라우신 분,
거룩한 은사를 베푸시는 왕이십니다.
영원한 진리의 말씀이시며 내 영혼의 신랑이십니다.
주님 앞에서 나는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되어
오직 주님을 필요로 하며 주님으로 숨 쉬며 살아가게 하소서.

첫댓글 황수섭: 1. 찬송가를 많이 부릅시다
2. 피피티를 사용합시다
3. 보청기를 권장합시다.
할바흘매들을 위해서 찬송가를 많이 부르자고 주장하는 면에서
선배님의 찬송가 해설을 적극지지합니다.
이 좋은 찬송들을 접어 두고 어렵고 난해한 ccm. gospel song을 많이 부르는데 불만입니다ㅎㅎ
젊은 목사님들
찬송가 가사 1,2,3,4절로 좋은 설교 한편도 작성할 수 있는 걸 모릅디다 ㅎㅎ
최정미: 가사가 은혜롭고 멜로디가 특이한데 아마 불러보지 않은 곡이라~
계속 듣고 잘 익히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
박기철: 아름다운 신앙고백이 가슴을 벅차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신앙고백이 가슴을 벅차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귀한 찬송가 묵상으로 심령을 만져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기철: 늘 고맙습니다~ 귀한 찬송가 묵상으로 심령을 만져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게 해 주셔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건강조심하시고 가까운 날에 찾아뵙겠습니다~!
양승학:
모라비아(Moravia)는 대부분의 한국 성도들에게 생소합니다.
우리가 접하는 경우는 종교개혁의 역사를 보게 될 때로, Moravian Church로 보지요.
이 지역을 흐르는 Morava 강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지금 체코 동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9C 정도에 대모라비아국이 중부 유럽의 초기 슬라브 국가로 있었고, 동로마제국에서 키릴과 네토리우스 두 선교사가 기독교를 전파했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