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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암(골수성 급성 백혈병) 투병 일천아흔여섯(1096) 번째 날 편지,1(안부,소식)-2023년 9월 7일 목요일
사랑하는 큰아들에게
2023년 9월 7일 목요일이란다.
오늘 편지 배경음악은 엄마가 2023년 9월 3일 주일에 부른 💙내일 일은 난 몰라요.💚를 다시 한 더 올리니, 클릭해서 들으면서 편지를 읽어보시게….^^
사랑하는 큰아들아
오늘(9월 7일)이 혈액암 발병 3년째가 되는 날이라 혈액암(골수성 급성 백혈병) 투병 일천아흔여섯(1096) 번째 날 편지를 기록하고 있구나.
말이 혈액암 발병 3년째지만, 이는 가을비가 부술부술 오는 날 아침에 인천성모병원 응급실로 들어가 밤중까지 온종일 각종 검사와 수혈과 산소호흡기 등을 진행한 날이라네.
실제로는 한해 전인 2019년 9월 인천병원에서 입원하신 작전동 할아버지를 간병하고 있을 때부터 아빠 몸에 이상 증세가 있어서 더 이상 할아버지를 간병을 활수 가 없었구나.
하지만, 몸에 이상증세가 있어도 병원에 가는 것을 미루다 다음 해 코로나19가 전국으로 급속도로 퍼져 결국 아프기 시작한 지 1년을 보낸 후 인천성모병원 응급실로 들어갔구나.
사랑하는 큰아들아
오늘은 ‘삼 년을 잘 살아왔습니다.’라는 기도문과 혈액암 발병 선고부터 오늘까지 3년여간의 혈액암 투병 생활에 대해서는 편지에 종종 언급했구나.
그래서 오늘은 ♡하루 25시간을 살아왔다.♡는 글을 남기는데, 내 기록에는 순서대로 잘 기록돼 있으나 편지에는 요약하고, 줄이느라 여기저기 빠졌으니 정리하면서 읽기 바라네….
♡삼 년을 잘 살아왔습니다.♡
글: 주시(主視) 김형중
주님!
아~~~
드디어 삼 년을 잘살아왔습니다.
혈액암 선고 후 내 수명 기한이
불량수명이라 2년 이내라고 했었는데,
3년간의 투병 생활이 힘겹기는 했었지만,
나름 건강을 주셔서 잘 유지하며,
3년을 잘 살아왔으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보너스요 덤으로 주신 1년도
아주 귀하고, 소중하고, 감사하지만,
앞으로 더가올 수많은 나날들을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도우시고
지켜주시고, 보호하시옵소서. -아멘-
(2023년 9월 7일 목요일에)
♡하루 25시간을 살아왔다.♡
글: 주시(主視) 김형중
내 출생(出生)은 광산김씨(光山金氏) 수기 아버지 원로장로님과 원주김씨(原州金氏) 정희 어머니 목사님 슬하에서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180번지에서 출생하고 성장했다.
1983년 6월 25일(토)에 김해김씨(金海金氏) 기옥 님의 장녀 미선을 목포 후동교회에서 만난 후 내가 서울로 다시 올라와 약 4년간 서울과 목포를 오가며, 장거리 교제(연애)를 했다.
그러다 목회에 뜻이 하나 돼 1986년 12월 6일(토)에 당시 시무하던 서울 강남 신반포 장로교회에서 결혼(結婚)하고, 슬하에 1녀 2남의 귀하고,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자녀를 두었다.
학력(學歷)은 충북 진천군 광혜원면 만승초등학교에 입학(1학년 입학-3학년 1학기), 서울시 구로구 오류동 오류초등학교에 전학을 하고, 공부한 후 졸업을 했다(3학년 2학기-6년 졸).
그 후 서울시 구로구 유한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시 구로구 유한공업고등학교 기계설계과 졸업했다.
기계설계과에서 취득한 국가 공인 기계설계 2급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으나 자격증은 학교에서 서울시 구로구 궁동에 있는 산업용 보일러를 만드는 강원보일러에 취업을 나갔을 때 한번 사용했고, 산업용 대형 보일러를 설계했다.
그런 후, 간혹 " 돈을 줄터이니, 기계설계 2급 자격증을 빌려달라."는 이가 있었으나,모두 거절했고, 지금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이 기회에 한 번 찾아보아야겠다.
그리고, 한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신학교 신학과 4년 중퇴하고(당시 공부할 시간이 안 돼서), 아시아신학대학 신학자협의회 인정 문학사 학위(1984년./B.A-Bachelor of Arts-문학사 학위),
국문학을 하고 싶어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입학했으나, 간혹 주일에 출석해 공부해야 해서 1학년을 마치고, 문학 공부를 포기하고 중퇴했다.
어머니 목사님이 소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한영) 교단 한영신학대학교신학대학원에 입학해서 공부후 졸업했다(미, 리신학신학대학 대학원)-(M.A-Master of Arts-문학 석사 학위).
연세대학교연합신학대학원 목연과정 신학과에 입학해 공부하고, 졸업했다.
우리 교회 개척 준비 중에 전 교단 소속 중진 목사님이 "두 교회 거리가 가깝다."며 "우리 교회를 즉시 폐쇄하든지, 아니면 교단을 떠나서 연락하지 말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교단을 떠나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옮길 교단을 알아보는 중에 지금 소속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교단으로 옮김으로 편목이 되어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신학과에서 2년간 다시 공부하고, 졸업했다.
그리고, 1979년 3월 초 신학을 하면서부터 성도교회 지도교사, 장호원교회 교육전도사, 새삶장로교회 교육전도사, 목포축후동교회 전임 시무전도사, 연희교회 전임 시무전도사, 화곡교회 부교역자, 신반포중앙장로교회 부교역자를 끝으로 부교역자 생활을 마쳤다.
개척교회를 위해 1987년 10월 말에 부교역자를 사임하고, 1987년 11월 초에 50평을 임대해 성전으로 꾸민 후 교회명을 서울반석교회라 정하고, 1988년 1월 1일 첫 공식 예배를 드렸다(성전을 꾸미는 중에도 주일과 수요일과 금요일 등에는 가족들과 함께 예배를 드림).
설립 후부터 성도들이 늘어나 동년(同年) 3월 13일에 목사님들과 가족들과 지인들과 우리 교회 성도들과 설립 예배를 드리고, 서울반석교회 담임목사(위임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설립 17주년인 2005년 5월 1일에 위임식을 하고, 위임목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회를 시작하기 전부터, 그리고 교회를 설립하고도, 매주 목요일 밤에는 사시사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가리지 않고, 산기도를 다녔다.
우리 교회 성도들과 40일을 작정하고 기도하는 40일 특별새벽기도회와 40일 저녁기도회 등을 수차례 진행하며, 기도 운동 역시 아주 뜨거웠었다.
전도도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은 후부터 ‘매일 1명 이상에게 전도하지 않으면 잠들 수가 없다.’는 영혼구령(靈魂救靈)의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전도지 사영리를 들고, 매일 매일 만나는 사람들에게 맨투맨으로 수십 명에게 열정적으로 전도했다.
시외버스 안과 전철 안에서 수시로 전도를 해서 수십만 명에게 전도를 하며, 살았었고, 매주 목요일 오후에 서울 남산과 명동에 나가서 한두 시간 이상씩 예수님을 전하며, 살았고, 교회 개척 후에는 어깨띠를 항상 두르고 다니며, 언제 어디서나 전도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에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한 이후부터 성경을 읽는 것이 너무도 재미있고 좋아서 하루도 쉬지 않고, 성경을 읽어 오늘날까지 구약 창세기부터 신약 요한계시록까지 수백 번을 정독하며 읽었다.
그래서 가죽 성경을 들고, 너무 많이 읽어서 가죽이 너덜너덜 해지고, 낡아지므로 매년 초마다 성경을 새로 사야만 했다.
당시에 단순하게 성경만 읽었을 뿐 아니라, 내가 접할 수 있는 장로교와 순복음과 루터란 아워(극동방송) 등에서 진행하는 엄청나 분량의 성경통신 공부를 각 관에서 정해진 과정들을 모두 이수하기도 했다.
그래서 목회를 하면서 우리 교회 전 상도가 최소한 성경을 1독 이상을 읽어 그리스도인으로 자긍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 성도들이 우리 교회에서 며칠씩 모여서 성경 읽기를 해서 대브능 성도들이 성경 1독 이상을 읽도록 했다.
특별히 성경 통독 모임에는 2급 지체 장애를 지녀 홀로 이동하지 못하시는 아버지 원로 장로님도 언제나 한 시간도 빠짐없이 참석하셔서 성경을 수차례 읽으시기도 했으니 대단하셨다.
교단을 옮기기 전에 소속했던 전 교단에서 교단 헌법위원회 위원과 교단홍보국장, 교단 공과 편찬위원 및 여름성경학교 강습회 강사를 했다.
교단을 옮긴 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용천노회 소속해 용천노회 여름성경학교 교사 강습회 강사, 교역자회 총무, 홈페이지 운영자, 서부시찰 서기, 하나로선교회 서기, 하나로선교회 총무를 했다.
노회 분립 후 경일노회 부회록 서기, 임원회에서 홈페이지 운영자로 선임돼 홈페이지를 만들고 운영, 부서기, 노회 서기, 자립지원위원회 서기, 자립지원위원회 감사,
교역자회 서기, 정치부 서기, 서부시찰회 시찰장, 자립지원위원회 감사, 교역자회 서기, 정치부 서기(2017.4.~2019.4.), 자립지원위원회 위원을 했다.
97년 민족통일성령화대성회 준비강사단 부총무, 97년 민족복음화 대성회 준비강사단 중앙위원, 세계기독교부흥협의회 협동 총무, 세계기도원부흥사협의회 기획 회장,
세계교회영성운동본부 기획 회장, 2004년 3.1절 목회자 금식기도대성회 실행위원회 총무, 회계를 했다.
기독교 21세기 중앙위원, 세계복음화협의회 회원, 세계 복음 선교센터 회장, 세계기독교선교부흥단 사무총장, 한국기독교평화교육협의회 통일대책위원회 북한 돕기 중앙위원,을 했다.
세계기독교선교부흥사회 서울지역 상임회장, 세계기독교선교부흥사회 상임회장직을 했다.
갈릴리목우회 회장, 선목회 회장, 어린이 전도단 단장, 광영여고 2학년 학부모회 회장,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52기 총동문회 총무, 부회장 및 52기 신학과 동문회 회장을 했다.
북방신학대학대학원대학교 기획실장 및 전임교수, 북방신학대학대학원대학교 교무처장을 했다.
1988년 11월 5일부터 육군 7273부대 215연대 3대대 군종 담당관 및 서울 강서구 화곡본동 향목, 서울 강서구청 교구 협의회와 강서경찰서 경목(警牧)을 했다.
교회 사무기 동급 회사인 (주)영광기업, (주)영광사무기 사목(社牧), 크리스탈로 성구를 만들어 공급하는 (주)영광크리스탈성구사 대표이사 사장(社長), 영광선교회 회장을 했다.
우리 교회 전 성도들과 성탄절 전야제 예배(크리스마스 이브)와 행사를 교회에서 마치고, 버스를 타고 밤새 달려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에 있는 구름포해수욕장에 가서 2007년 25일 오전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기름 제거 봉사를 했다.
2004년 1월 19.일 국회 방문 및 당시 현안이 된 문제를 두고, 국회 윤리위원회와 간담회를 가졌다.
2010년 3월 3일 국군방송 행복바이러스 방송에 육군1군사령부에서 군 복무하고 있는 우리 큰아들에게 쓴 편지가 전국 방송을 탔다.
2010년 3월 3월 26일(금)에 국군의 방송 행복바이러스 ‘행복한 데이트’에 15사단 승리신교대와 1군사령부 부모님들을 대표해서 방송에 나가 오전 10부터 12시까지 생방송으로 방송되다.
2011년 10월 25일 국방부 이종걸 차관과의 대화의 시간 및 8사단 경기도 포천 포병부대 병영시찰을 하고 탱크에 승차해 탱크가 안락하게 이동하는 시범을 경험했다.
2012년 6월 22일 금요일에 국방부에서 주관하는 ‘한미 연합 통합화력시범행사’에 참석하기에 서울 국방회관에서 모여 국방부에서 제공한 버스 편으로 경기도 포천으로 이동했다.
8사단 승진훈련장에 도착해 국방부 주관 한미연합 통합화력 전투 훈련 참관했고, 아빠가 시범 화력 참관을 한 장면이 6.25 뉴스 화면으로 나왔다.
55사단 5171부대(안성부대) 2대대에서 55사단 사단장과 군 복무 여건 개선을 위한 간담회 시간을 가졌다.
교수로서 활동은 총회신학교 강사, 전임 교수(신학 개론, 변증학), 총회신학교 주간 학년 담임 교수(1학년부터 4학년 졸업반까지 4년간), 인천 장로교신학교(신학 개론), 충북 청주시 청주신학교에서 강의(신학 개론, 갈라디아서) 를 했다.
대한신학교(교리사, 장로교회사), 개혁신학교(세계교회사), 국제개신총회신학교(장로교회사, 신학 개론, 초대교회사, 갈라디아서), 국제개신총회신학교(구약 역사서, 갈라디아서) 등에서 강의를 했다.
내게 주어진 인생을 살아오면서 내가 살아온 삶의 발자취를 돌아본다면, 워낙 부지런하셨던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를 닮아서 새벽예배를 드리는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매일 매일 하루 25시간을 살아왔다.
아니, 세벽 4시경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잠도 안 자고, 미친 듯이 괴물처럼 25시간을 살아왔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아버지 원로장로님이 1997년 3월 5일(수) 직장에서 뇌출혈로 쓰러지고, 이대목동병원을 거쳐 영등포병원에서 신경외과 3과장인 옥영찰 박사님의 집도로 응급 수술을 하신 후 응급실과 중환자실과 병상을 오가시며, 약 10여 년간을 입원하셨다.
그래서 아버지 병간호와 교회 일과 노회 일과 학교 강의 등을 병행(竝行)하느라 정말 더 바쁜 삶을 살아왔고, 우리 아버지께서 10여 년간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러다가 2005년 12월 31일 퇴원 하신 후에는 통원 치료를 위해 매주 일주일에 세 번씩 아버지를 내 등에 업거나 휠체어와 차를 이용해 병원에 모시고 다녀야 하는 아주 분주하고, 바쁜 삶을 살았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아버지를 등에 업고 다닐 수 있는 동생 김 변호사와 사위 3명이 있었고, 시간이 흘러 정성한 우리 자녀들과 조카들과 있었다.
그러도데도, 1997년 3월 5일 우리 아버지 수술 이후부터 내가 혈액암 발병 이전까지 다른 사람에게 아버지를 업는 것을 맡기지 않고, 내가 항상 업고 모시고, 다녔다.
그런데도, 우리 교회 운영과 예배 인도와 성도 돌봄과 노회 분립 전 소속 용천노회와 분립 된 후 현 소속 경일노회와 우리 교단 총회 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다.
신학교들의 강의와 신학교 때부터 전국 교회들에 초청받아 다니면서 인도한 헌신예배와 다수의 다양한 집회와 부흥회를 인도하고, 안양 갈멜산기도원 강사 및 여러 기도원 부흥 집회를 인도했다.
하지만, 언제나 최선을 다해 다른 일에 지장을 주지 않는 일정을 짜서, 다른 이들에게 표나지 않게 조용히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편찮으신 우리 아버지를 등에 업고 모시고 다녔다.
힘에 벅차도록 그렇게 많은 일들(사역)을 하는 나를 보고도 사람들이 우리 아버지를 업고 다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이들이 다수였다.
간혹, 차를 타고 가다가도 아버지께서 “대소변이 급하다.”고 하시면, 차를 급하게 길가에 세우고(주정차 위반 딱지도 수차례), 아버지를 등에 업고, 화장실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어렵게 화장실을 찾아서 대소변을 해결해 드렸는데, 그런 일이 부지기수였다.
혼자서는 이동이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중환자라 이동이나 데 소변 처리 시 반드시 사람 손이 가야 했는데, 차를 타고 가시다가도 대소변이 나오려고 하면, 참지 못해 화장실을 찾는 일이 조금만 늦어도 업고 가는 내게 온갖 욕설을 하시면서 그대로 일을 보기도 했었다.
아내와 형제들과 자녀들이 나이 들어도 아버지를 업고 다니는 내 건강 걱정했지만, 내가 우리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하기에 내가 좋아서 업고 다니며, 모시고 다니는 것이라, 어디든지 모시고 다녔으며, 혈액암 발병 이전까지 내가 등에 업고 모시고 다녔다.
간혹, 중환자로서 나오는 우리 아버지에 관한 좋지 않은 모든 일들은 떠벌이거나 요란 떨지 않고, 나 혼자 조용히 묵묵하게 감당하면서 처리하고 살아왔다.
그래서 내 형제들도 이런 일은 알지 못할 정도고, 아버지의 발병 이후 투병 생활을 하시는 20여 년 동안에도 형제들 간에도 아무 이상 없이 우애 좋고, 화평하며, 무탈하게 살아왔다.
내 질병은 인천병원에서 아버지를 병간호하는 중이던 2019년 9월부터 서서히 몸에 이상 반응이 나타나 형제들과 가족들에게 호소했고, 2020년 4월부터 밥과 음식물을 먹지 못함에 체중이 급속도로 빠지는 등 건강 악화로 홀로 생활이 어렵게 됐다.
급기야 2020년 9월 7일(월) 이른 아침에 인천성모병원 응급실로 가서 병실에 입원하고, 혈액암(골수성 급성 백혈병)이라는 소견을 듣고, 1인 무균 음압병실에 입원해 치료하다가, 혈액암 치료를 위한 골수이식을 위해 2020년 9월 15일 서울성모병원 전원했다.
2020년 9월 24일(목) 오전에, 서울성모병원 1차 퇴원, 2021년 1월 26일(화) 국내 골수기증은행에서 35만 중 한 명의 적합한 골수기증자 찾음, 2021년 2월 17일(수) 서울성모병원 2차 입원,
2021년 2월 18일(목) 서울성모병원에서 히크만 카테터 주입 수술, 2021년 02월 19일(금)부터 일주일간 168시간 연속으로 항암치료했다.
2021년 3월 16일(화) 서울성모병원 2차 퇴원, 2021년 4월 18일(일) 서울성모병원 3차 입원, 2021년 4월 19일(월) 항암치료 시작, 혈액암 완치를 위해 2021년 4월 26일(월)~27일(화) 골수이식을 했다.
2021년 4월 29일(목) 항암치료 시작일 2021년 5월 13일(목) 서울성모병원 3차 퇴원, 2021년 6월 9일(수) 서울성모병원 4차 입원, 2021년 6월 22일(화) 서울성모병원 4차 퇴원, 2023년 6월 1일(목) 5차 입원을 했다(신장 조직검사 등).
2021년 2월 2일(화) 우리 교단 교단 기독신문사 기자가 서울성모병원으로 오후 2시 30분에 찾아와 30분간 인터뷰 하고, 당일 인터세 판에, 다음날 기독신문에 기사가 나갔다.
2021년 3월 17일(수) 오전 10시 CTS기독교방송국 ‘예수 사랑 여기에’가 진행돼 아내가 출연했고, 일 년 뒤 2022년 4월 22일(목) CTS 기독교 방송국 7000 미라클 특별 생방송에 오전 9시부터 오전 12시까지 출연했다.
내가 가장 잘한 것은 책을 읽는 것이었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학급 문과와 학교 도서관과 친구들 집에서 잠자고 있는 각종 전집류(덩시는 30권~100권 정도의 전집류가 많았음)와 책들을 빌려 읽는 등으로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들만도 십여 만권이 넘을 것 같다.
더구나, 책을 빌려 읽지 않고, 내가 돈을 들여 구입해 읽은 책들이 엄청나서 돈을 주고 구입한 책들이 한때 우리 집에는 3만 권 이상의 책들이 수십 개의 책장에 가득했었었구나.
그러나, 교회 경매와 이사 등으로 상당수 사라져 책장들도 정리하고 지금은 약 1만 권 정도만 남아 있다.
교회 일, 학교 강의, 아버지 병간호, 노회와 총회 일, 부흥사나 연합회 일 등으로 하루 24시간이 부족해 25시간을 살아오면서 내가 집필하고, 출간했지만, 판매되지 않은 책들과 교보문고에서 출간해 교보문고에서 판매된 57권의 책들이 있어 목록을 올려본다네….
김형중(金亨仲) 목사의 저서
그때는 그랬었지
『나의 부모님 이야기』
『나의 이야기』
『아내 이야기』
『우리 아이들 이야기』
『형제와 일가 이야기』
군에 간 작은 아들에게 아빠가 쓴 편지 『멋진 사나이』 상, 하권
군에 간 아들에게 아빠가 쓴 편지 『아들아 나의 아들아』 상, 중, 하권
15사단 승리신병교육대에서 훈련받는 아들들에게 『사랑하는 이들이 쓴 편지』
삶의 이야기들이 있는 시
『사랑은 강물처럼 흐르네.』
『자연과 사람 그리고 사랑』
『사랑이 글을 씁니다.』
사색에 잠기는 『추억은 아름다워라.』
비전에 사로잡히는 『꿈을 꾸어라.』
김형중 목사의 성지순례기 『출애굽 여정』 상, 하권
갈라디아서 강해 설교 『그리스도인의 참된 자유』 상, 중, 하권
데살로니가전서 설교 『믿음 안에서 정진(精進)하라.』 상, 중, 하권
데살로니가후서 설교 『오늘의 고난이 내일의 영광으로』
빌레몬서 강해 설교 『용서와 사랑』
주시(主視) 칼럼
1권 『2000년에 내가 본 세상』
2권 『그때를 아십니까?』
3권 『2001년에 이랬습니다.』
4권 『2002년대~~ 한 민국』
5권 『2003년에 이런 일들이』
6권 『2004년 충격, 대통령 탄핵』
7권 『2005년 소중한 꿈을 위해』 상
8권 『2005년 소중한 꿈을 위해』 하
9권 『2006년 유엔사무총장 당선』
10권 『2007년 대선과 교회』
11권 『2008년 꿈은 이루어진다.』
12권 『2009년 아~~ 충격』
13권 『2010년 밑바닥까지 추락』
14권 『2011년 다시 시작합니다.
15권 『2012년 칠전팔기(七顚八起)』
16권 『2013년 할 수 있다.』
김형중 목사의 목회 이야기 1권 『나랑, 목회할래?』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권
아내 김미선(金美善) 사모의 저서
김미선 사모의 종교 개혁지 탐방 『도전, 감동, 열정을 밟다.』
어머니 김정희(金貞姬) 목사의 저서
자서전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
(2023년 9월 7일 목요일에)
사랑하는 큰아들아
아침 기온은 15도~24도고, 낮 기온은 27도~31도로, 폭염특보인 일부 지역 체감온도가 33도까지 오르는 늦더위가 기승이고, 강풍특보인 경북 동해안은 오전까지, 경남해안은 오후까지 순간풍속 70㎞/h(20m/s) 이상 매우 강한 바람이 불고, 물결이 2.0~4.0m로 높다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행정안전부가 27년 동안 10만 원으로 유지되어 온 소방공무원 구조구급활동비를 처우 개선을 위해 내년부터 20만 원으로 인상하기로 했다니, 소방공무원으로 있는 우리 조카 승현이도 내년부터 10만 원 더 받겠네.
구조구급활동비는 119안전센터 구급대원과 소방서의 구조구급 담당 공무원 등 약 3만6천 명에게 매달 지급되는 경비로, 1996년부터 10만 원으로 동결돼 왔었다네.
소방공무원은 화재사고뿐만 아니라 태풍, 홍수 등 자연재난과 붕괴, 폭발, 교통사고 등 사회재난의 영역까지 그 역할이 확대되면서 구조구급 활동이 많이 증가했는데, 1996년 62만6000건이던 구조구급 활동은 작년 420만5000건으로 6.7배 늘어났다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아무튼, 오늘 아침에 기록한 편지 여기서 마치니, 오늘 하루도 안전하고, 건강하고, 늘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며, 주님 안에서 안녕히…….
2023년 9월 7일 목요일 오전에 혈액암 투병 중인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