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에는 세상을 안아주는 포용력이 있다. 소외도 없다. 삐뚤어지고 쭈글어진 것이 진가를 발휘한다. 뜨거운 가마 속 맨 앞에 선 불막이용이나 기포가 생겨 꽈리를 틀어 존폐가 위태로운 옹기도 동등한 완성품이다. 그래서 우리의 항(缸)아리 옹기에는 평등이 기본이다. 늘 옹기가 그런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다. 현대화로 장독대가 사라지기 직전부터 옹기는 버려지고 잊혀지는 대표 품목이었다. 세간의 불평등을 그대로 간직한 잔흔이 옹기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런 옹기를 끊임없이 수집하고 전문박물관에 모이면서 새 생명이 탄생했다.
“옹기는 예술-생명의 합체…평등·조화 담아내”
항아리 옹기에 깃든 ‘평등정신’
BBS 문화센터 17년 ‘문화강좌’
불교방송에서 시작된 문화센타 강좌를 17년간 쉬지 않고 진행하는 이영자 옹기민속박물관장(66)은 옹기에 늘 새 이름을 붙여준다. 그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박물관인대회(ICOM)가 서울에서 2004년 개최될 당시, ‘쭈글이전’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주저앉은 독에 ‘프레스’란 이름을 붙이고 예술과 생명을 합체시킨다. 지난 10월 내내 울산에서 열린 ‘세계옹기문화엑스포’의 주역으로서 ‘상상 그 이상의 옹기체험’을 연출해냈다.
10일 찾은 서울 쌍문동 옹기민속박물관에는 혜화여고 학생들이 학예사의 지도아래 옹기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별관의 체험 학습장, 개인 박물관이 경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실전 중시의 현장을 고수한다. 그 자신도 주 전공인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고 강의에서 실전 비중도 여전히 높다. “그림 그리기에서 내일을 본다. 문화센터 강좌에서 사회적 지위와 학벌 전공, 그리고 연령의 격차가 무의미해지는 걸 체험한다.” 그는 문화센터 강의 현장에서 마음이 넓어지는 것을 체감했다. 여기에 옹기민속박물관이 평등과 조화를 체화시켰다. “민화는 평등과 보시를 깨우쳐주고 가르쳐준다. 전통교육과 사립박물관은 그 가교이다.”
1993년 옹기민속博…2500여점
울산 세계옹기문화엑스포 주역
11월2일 ‘단청이 있는 박물관전’
그만큼 옹기는 그에게 세상의 가교다. “옹기는 끝이 없다. 도자기가 잘못되면 깨버리지만 옹기는 모두 가치있게 실용적으로 쓴다. 부서져도 쓸 용도가 있고, 뚜껑은 맞춰진 것이 아니라 별도로 만들어진 것을 치수로 맞추고, 심지어 판자를 잘라 써도 적당하다. 물이 새면 옷 보관함에 제격이다.” 버려지는 옹기가 더 가치있다는 것을 알면서 그의 가치도 달라졌다. 집요하게 박물관 건립을 추진했던 고(故) 정병락씨가 1991년 고려민속박물관을 설립, 1993년 옹기민속박물관으로 문화관광부 등록과 기틀을 완성한 이후, 그는 화가와 박물관 경영의 겸행이란 과제를 떠안았고 옹기가 자연 정체성 확립의 초석이 됐다. 이미 옹기 2500여점, 민속생활 용품 1500여점을 넘어 소장품에서 대형급 박물관에 화가의 전문성이 더해졌다.
오는 11월2일부터 특별전으로 열리는 ‘단청이 있는 박물관전’이 그런 형태다. 나무판 액자를 직접 만들고 단청문양을 찍고 그리며, 보는 박물관에서 참여하고 즐기는 박물관으로 다가간다. 보다 다양한 단청문양을 위해 경복궁 등 5대 궁 단청을 담당했던 단청장 홍창원씨의 퇴촌 공방을 직접 찾아 작품을 골라 옮긴다. 물론 박물관에는 사찰과 궁궐의 단청문양 800여종이 별도의 ‘단청 전시실’에 보존돼 있다. “새로운 문양이 경험을 살린다. 문화센터에서 평범한 시골 할머니가 민화의 초 그림을 독립적으로 완성하는 것을 봤다. 오랜 농축 경험이 새로운 창작을 자극한다.” 그런 교육 현장에는 늘 창작 욕구를 자극하는 과거와 현재의 연결이 있었다.
그에게 ‘가교’는 숙명이다. 갑작스레 떠맡은 옹기민속박물관은 옹기에 대한 독학으로 빠르게 돌파했다. 그의 박물관에서 펴낸 <옹기와의 대화> <옹기나들이>는 대학의 도예과에서 필수 교본이 됐다. 2007년에는 경기서울지역 옹기조사연구를 주도하고 보고서를 통해 박물관에 새 정보를 채워나갔다. 서울 경기지역은 햇빛 차단이 남쪽보다 덜해 옹기가 주둥이와 밑바닥의 너비가 비슷하고 중간이 배부르며 약간 뾰족한 형태이고, 충청도는 대류현상에 맞춰 이 보다 중간이 더 불룩한 타원형이며, 강원도는 이동편리와 해산물이 많아 작으면서 잘 깨지지 않게 하기위해 배부분이 거의 일직선이거나 주둥이가 아주 좁은 형태, 농경지가 발달해 크고 둥글며 배부분보다 어깨부분이 더 불룩한 형태의 전라도 항아리, ‘오지그룻’의 제조가 활발했던 경상도 내륙지방과 달리 해안선을 따라 독의 유통이 많았던 경상도 지역의 옹기는 어깨부위가 발달돼 있고 입지름과 밑지름이 좁다. 조사가 진척될수록 옹기에서 삶의 지혜와 실용성이 만나는 접점을 다시 보게 한다.
“조선조에서 숭문천기(崇文賤技)로 인해 찬란한 전통 문화가 순박한 민예품이나 생활용구로 스며들면서 항아리에 다양한 문양이 남았다. 작가의 의도가 중시되는 현대공예와 달리, 공정 과정이나 재료의 특성을 살린 시유 방법에서 다양한 점토의 특성을 미로 승화시켰다.” 형식과 길들여진 사고가 개입되지 않고 작업의 연장으로 손놀림이 연장처럼 문양이 새겨지는 전통기법이다. 이를 ‘환을 친다’는 용어로 민중예술의 뿌리를 보여준다.
가장 흔한 대나무잎문과 활모양 문양, 산(山)이 지니는 부드러운 선의 형태를 연속으로 테를 둘러 둥근 항아리에 조화를 이룬 형태, 물결 문양 파도 문양, 술병의 용수철 문양, 풀꽃문 구름문 등은 자연과 항아리에 조화미를 안긴다.
사찰 항아리의 연꽃이나 민간의 물고기 문양은 염원의 상징이라 변화가 크다. 단청의 필수품 연꽃이 시대별로 잎에서 피고 꺽이고 반전되는 변환이 나타나듯, 민화에 흔한 물고기는 다산(多産) 입신출세 재물의 상징이란 전통의 축에서 역사 흔적을 포용한다. 옹기에서 가장 흔한 물고기 문양의 역사는 남다르다. 그의 연구조사로는 1866년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령으로 프랑스 신부 9명과 8000여명의 신자들이 체포.처형당한 사건(병인사옥) 이후 산 속으로 피신한 가톨릭 신자들이 옹기와 숯을 구워 생계를 유지하고 옹기파는 집을 거점으로 포교가 이뤄지면서 옹기 문양에서 물고기가 커지고 생생해졌다. 이는 당시 옹기가 일찍 세계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앞서 1894년 프랑스의 <르 몽드> 일뤼스트제 삽화에 ‘긴 물동이’가 그려진 것도 이의 연장으로 볼 수 있고 몇 해전 프랑스에서 전통의 우리 여인이 앞가슴을 드러내 채 동이를 머리에 이고 서있는 사진이 전시됐던 사례와도 연결된다.
우리의 ‘동이’는 일찍부터 은연중 세계인의 뇌리에 파고 들어왔다. 여기서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첩’ 중 우물편에 그려진 ‘옥동이’와 1894년 프랑스의 ‘긴 물동이’가 그려진 유사성을 연상할 수도 있다. 그만큼 문화의 깊은 구조에 옹기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 농촌의 물길이용 ‘동이’가 생활필수품이었기에 역사의 주인공이란 주장이 그렇게 성립된다. ‘동이’는 구연부에 귀를 붙인 ‘귀때동이’에서 귀가 떨어지고 실금이 가면 소변 통이나 가축의 먹이저장통으로 재활용되며 생활용기로 끈질기게 살아남아 우리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속담 ‘이왕 깨려거든 질동이’가 하찮은 것의 지칭을 넘어 ‘재활용’의 가치를 깨우치는 지혜가 된다.
“문화에서 옹기가 치지하는 비중은 크다. 서민들의 삶을 대변하는 산물이면서 자연친화적이라 오랜 역사를 포용한다. 응어리진 삶을 자유분방하게 표출한 민(民).기(技).예(藝)를 겸한 종합예술이며 민중미술의 산실이다.” 그는 도자기 용어가 식민사관에 오염돼 일본용어가 많은 것을 치유하기 위해 옹기의 전통용어 살리기에 집중한다. 몇 남지 않은 옹장이들의 이야기를 모아 작업장 용어들을 그대로 써보는 재연에 치중한다. 잿물 유약에 점력을 높이는 ‘깨기질’과 ‘곧매질’, ‘수래’와 ‘도개’로 벽다지기, 도구로서 물레 밑가새칼 근개 무가새칼 물가죽 들보, 유약으로 검댕이, 질그릇에서 구울 때 온도를 높이기 위해 소금을 뿌려 광택을 겸해 내는 ‘푸레독’, 오짓물로 유약을 쓰는 옹기인 ‘오지’ 등의 용어는 안타깝게 없어져 간다.
확독은 확(풋돌)과 독(그릇)의 복합이며 음양사상이 배여 있다. 보리를 갈거나 숭늉용 쌀뜨물을 내리는 넓직한 그릇이다. 손맛 유지를 위한 기능 때문에 태토의 점력이 강하고 높은 온도로 굽는다. 옹기장이의 기술력을 검증할 수 있지만, 조리기구의 개량화로 일찍 퇴조해 용어조차 없어졌다. 흔한 양념통의 연원에는 우리의 ‘단지’가 있다. 수분이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서 짝을 지어 평형 연결고리에 손잡이를 만들어 삼단지 사단지 이단지를 만들고, 오단지는 사단지에 위로 한 단지를 올려붙여 기하학을 응용했다.
그는 민화 때문에 몽골에 3차례 갔다. 오히려 노동력과 유통이 문화발달에 밀접하게 맞물린 역사를 확인하며 유통과 옹기의 유관적합성도 다시 본다. 문화재청 요청으로 지난해 추운 겨울 내내 보온밥통에 아교를 넣고 그린 ‘십장생’ 병풍, 근본에서 일미(一味)의 미세 의식이 중단없이 이어지는 일미온(一味蘊)의 원리로 사립박물관의 새 역사를 쓴다.
이영자 씨는…
옹기민속박물관장이며 화가로서 사립박물관의 원조이다. 1999년 사립박물관 미술관 문화상품전을 시작으로‘그릇빚기전’, 미국 오하이오대 초청 ‘Korea Art Exhibition-Onggi Potter / Folk Painting’ 전시, 2001년 ‘세계도자엑스포2001경기도’ 여주 <옹기전> 전시, 2002년 2002 월드컵기념특별전 ‘옹기 문양전’, 단청특별전 ‘오색 빛을 찾아서’, 2005년‘옛 옹기 그리고 지금은…’, 특별전 ‘필름 속에서 꺼낸 항아리’, 파주 어린이 책 잔치 옹기시연 ‘독짓는 늙은이’, 몽골에서 열린 ‘The Korea-Mongolia Cultural Exchange Project 2006-The Korean traditional Onggi and Folk painting Exhibition’ 전, 2007년 특별전 ‘옹기, 운현궁에 나들이가다’, 2008년 서울시박물관협의회연합전 ‘서울이 아름답다’ 2008베이징올림픽기념특별전 중국전 ‘한국민화초대전’, 2008베이징올림픽기념특별전 한국전 ‘현대민화작가전’, 2009년 2009특별전 ‘서울.경기도의 옹기’, 연합전 ‘근대100년 한국인의 삶’,‘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 박물관 대축전’, 2010년 단청특별전 ‘단청이 있는 박물관’전 등을 줄기차게 열어왔다.
옹기와 관련된 책 발간 실적도 상당하다. <숨쉬는 항아리> <옹기와의 대화> <옹기 나들이> <옹기전> <옹기문양> <쭈글이 옹기.빼뚤이 민화> <오색 빛을 찾아서> <옛 옹기 그리고 지금은…> <옹기> < The Korean Traditional Onggi and Folk paintings Exhibition> <옹기민속박물관> <숨 쉬는 그릇, 옹기> <경기도 옹기점 현황조사 보고서> <단청이 있는 박물관> 등을 개인 저술이나 박물관 자료집으로 내왔다.
첫댓글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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