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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하시는 하나님
고린도후서 1:3~11
오늘 본문 말씀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써 보낸 편지로서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어서 사도 바울을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게 했던 상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고린도교회 회복을 위하여 많이 애썼는데 그렇게 애썼으나 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많은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소아시아 에베소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었는데 그 본인 자신도 죽을 만큼 힘든 환난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마치 사형 선고를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다 끝났다 싶을 정도로 깊은 나락에 떨어진 상태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안팎의 고난과 환난 속에서도 그는 힘을 얻고 목회의 용기를 얻었으며 문제가 많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오늘 본문 말씀에서 밝히고 있기를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3절을 함께 읽읍시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기의 하나님이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을 정의하기를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겪는 모든 환난 중에서 하나님께서 자기와 자기 동료들을 위로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받은 그 위로를 통하여 자기와 동료들이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해주시더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기들이 체험적으로 받은 하나님의 위로를 전달해줌으로써 그 위로를 받은 성도들도 역시 자기들이 받는 고난을 견딜 수 있게 해주실 것이라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시어서 모든 고난당하는 자기 백성들을 위로하십니다. 그 위로는 큰 힘이 되어서 주의 백성들로 하여금 고난당하는 자들을 너끈히 위로하여 그들로 환난을 이길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 삼위 일체 하나님을 알되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알거나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어주는 분으로만 알거나 심판하고 정죄하고 감시하는 하나님으로만 알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도리어 자기 백성을 불쌍히 여기고 위로해주시고 품어주시고 용기를 주시는 위로자이심을 우리가 더 많이 마음에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고자 오신 분입니다. 그는 세상에 오신 보혜사이신데 보혜사라는 뜻 자체가 위로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장 25절에 보면, 시므온 선지자가 그리스도의 초림을 기다리는 것을 두고서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역하실 때에 이르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복음 11:28~30)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세상의 수많은 짐 진 자들을 부르셔서 그 짐을 거의 대신 지시고 짐을 가볍게 하고 멍에를 지우되 쉽고 편하게 지워서 짐을 지고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무 힘도 없이 편한 마음으로 쉬엄쉬엄 지워진 짐을 지고 가게 도와주시러 오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사를 보면 다 짐을 지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육이오 전쟁통에 우리 선조들이 피난길을 떠났을 때나 지금 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피난민들처럼 다들 보따리 보따리를 짊어지고 작은 승용차 위에 이불과 메트리스를 얹고 줄로 꽁꽁 묶어서 피난길을 떠납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인생임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모든 인간은 존재의 부조리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전도서 1:2 말씀에 전도자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탄식한 것처럼, 인간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 후에 하나님을 떠나 그 영혼이 죽어 있고 삶에는 많은 무질서와 혼돈과 생명의 소실이 일어나곤 합니다. 슬픔과 질병과 악의 존재와 저주와 죽음의 쓰라린 독을 피할 길이 없고 그 가운데 삶 자체가 무거운 짐으로 다가옵니다. 불안과 두려움과 슬픔의 짐에서 피할 자가 없습니다.
또한 인간은 죄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모든 사람은 죄의 독이 탄 잔을 다 마신 영혼과 마음과 기질과 환경 속에 죄의 강력한 힘이 사람들을 끌어갑니다. 이 죄의 강력한 힘에서 자유롭고 선하고 의롭고 정결하고 착하고 진실한 삶만을 살아가는 자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 진리에 대하여 눈이 먼 영적 소경의 죄를 갖고 살아갑니다. 아무리 선한 사람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무관심하며 진리의 복음의 말씀을 들으면 그 마음이 무서운 분노와 미움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모두가 다 죄의 짐 아래 신음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은 생활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먹고 마시며 일하여 생계를 위하여 날마다 노동해야 하는 짐이 있습니다. 이런 생활의 짐의 부담이 별로 없는 부유한 사람일지라도 자녀를 양육하는 점에서나 부모를 섬기는 일에서나 사회 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고 힘써 싸워야 하는 마음과 몸의 고단한 수고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또한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관계의 짐도 지고 살아갑니다. 인간을 하나님은 다양한 성격과 기질로 빚으셨고 자라나면서 체험에서 우러난 개인적인 판단과 기준들이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그래서 서로의 관계에서 죽이 척척 맞아 서로 힘이 되는 관계가 있기도 하는가 하면 서로 잘 안 맞고 진이 빠지고 축축 쳐지는 인간 관계도 있습니다. 그런데 직장이나 사회의 여러 동료나 친구나 가족 관계에서 피치 못하게 만나야 되고 접촉해야 하는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서로의 인간 관계가 힘이 되기도 하지만 짐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인간은 고난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욥기에서 이른 대로,
“재난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고생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니라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욥기 5:6,7)
고 한 말씀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힘겨운 고난이 끊임없이 일어나곤 합니다. 고난 없는 평탄한 삶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고난에서 면제되지 않습니다. 의인에게도 고난이 많습니다. 이 수많은 고난들 역시 모든 인생이 피할 수 없이 져야 하는 짐입니다,
또한 신앙인에게는 사역의 짐도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백성으로서 주어진 일들, 예배와 기도와 봉사와 전도의 사명이 짐으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기뻐서 해야 하지만 억지로라도 해야 하기에 이것이 짐이기도 합니다. 고린도전서 9:16,17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이르기를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고 밝히고 있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행하면 상을 얻지만 자원하는 마음이 들지 않아도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까닭은 자기가 사명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피하고 하지 아니하면 그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복음 전하는 그 일은 부득할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복음 전한다고 하여 자랑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사역자로 부름받아 그 일을 하는데, 그 일 한다고 부르심받은 주님 앞에서나 교회 앞에서 자랑하고 위세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는 당연히 사명감으로 해야 하는 일을 할 따름인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성도들은 사도만이 아니라 각자 다 부름받은 섬김의 사역자들인데, 이 사명을 감당할 때에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힘이 너무 들어서 낙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세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광야의 이스라엘을 이끌다가 지쳐서 하나님께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기도한 적도 있고 선지자 엘리야도 그렇게 낙심하여 로뎀 나무 그늘 아래에서 그렇게 하나님께 자기 영혼을 데려가 달라고 청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모든 사람은 다 짐을 지고 살아가는 짐꾼들입니다. 인생 자체가 가지는 인생의 부조리한 실존적 불안과 슬픔의 짐이 있고 죄가 가져다 주는 죄의 짐이 있고, 먹고 살아가야 하고 자기 삶을 영위하는 데 반드시 져야 하는 생활의 짐이 있고 인간 관계의 짐도 있고 예상치 못한 가운데 찾아오곤 하는 끊임없는 고난의 짐도 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져야 하는 사역의 짐도 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짐들을 모든 사람들은 예외없이 다 짊어지고 인생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이 짐이 너무 무겁고 힘들어서 버거워. 그 낙심이 극심하여 엘리야처럼 로뎀나무 아래 지쳐 쓰러져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한 인간들의 짐들의 무게들을 너무나 잘 아시기에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초대하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도 이미 성령께서 시인들을 통하여 이렇게 권면하신 바 있습니다.
시편 55:22 말씀에 이르기를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또 시편 68:19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바요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초대하신 바대로 이 세상 인생 길에서 우리가 지고 있는 삶의 모든 짐들을 우리 하나님께 아뢰면서 짐을 대신 짊어져주시기를 간청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모든 고생과 슬픔과 질병과 근심에 휩싸여 고통 중에 있던 이들을 보실 때마다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을 자유하게 하시고 위로해주셨던 것을 우리가 다 아는 바입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 보내신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께서는 인생 길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힘들게 걸어가고 있는 모든 인생들에게 위로해주시며 짐을 벗겨주시고 짐을 가볍게 해주시는 일을 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자기가 보내실 성령님을 “파라클레이토스” 곧 위로자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사도행전 9:31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행하시는 사역 중에 중요한 것이 바로 위로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도 그러하고 성도들도 역시 서로 위로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 자체가 위로 공동체인 것입니다. 이사야 40:1 말씀에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들을 심히 위로하시는 분이시기에 주의 백성인 우리도 서로 위로하는 자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위로자로 살기 위하여 우리는 인간 모두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불쌍한 존재인 것을 알고 서로 불쌍히 여겨야 하겠습니다. 알고보면 다 불쌍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살면서 상처받고 있고 무거운 짐들을 지고 비틀거리며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삶이 꽃밭과 같다고 노래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곧 그 사람도 인생이 꽃밭이 늘어진 길 대신에 진흙탕길과 가시밭길을 만나고 무거운 짐을 지게 되어 허덕이게 되어 있으니까요. 인간 관계의 가시에 찔리고 질병과 실패의 짐에 허덕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볼 때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부자도 불쌍한 존재요 세상의 권력자도 불쌍한 존재요 소년도 불쌍한 존재요 어린아이도 불쌍한 존재입니다. 다 나름대로 무거운 짐을 지고 걷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회를 보면 사람들이 분노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누가 한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면 모두가 달려나와 악어떼처럼 물어뜯는 것같이 행동하곤 하지 않습니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보면 무섭게 돌변하여 분노를 쏟아붓곤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이 거칠어져 있는 것은 지금 그들의 마음이 위로가 필요함을 거꾸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넉넉함이 없고 남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마음이 자리할 수 없을 만큼 지금 마음이 지쳐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지금 모든 사람들이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이 나라 백성이 지금 많이 불쌍합니다. 지고 있는 짐들이 많이 무겁고 사람들이 다 지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갖고 계신 그러한 마음 곧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에베소서 4:20 말씀에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고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고 사도가 가르쳐준 바대로 서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의 형제들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알아채어서 그 짐을 나눠 져야 합니다. 갈라디아 6:2 말씀에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고 사도가 명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사랑입니다. 짐을 지고 쓰러진 자를 그냥 지나치지 말라고 구약 율법에서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3:5 말씀에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그 짐을 부릴지니라”
고 명하고 있습니다. 미워하는 자의 나귀일지라도 그 나귀가 무거운 짐을 지고 쓰러져 버둥거리고 있을 때에 그를 도와 그 짐을 내려주고 풀어주고 그 나귀와 그 주인인 원수를 도와주라고 명하고 계실진대, 이것이 어찌 짐승을 돕는 일만을 두고 한 말이겠습니까?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의 짐, 삶의 짐들이 무거운 것을 보면 버려두지 말고 그 짐을 내려놓게 도와주라는 말씀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다른 사람의 짐을 가볍게 도와줄 수 있습니까? 우리 자신이 위로의 성령, 짐을 대신 짊어져주시는 주님의 위로와 힘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도 지치고 힘들고 쓰러져 있을 때 어디서 위로를 얻고 힘을 얻을 수 있고 짐을 가볍게 내려놓게 되느냐 결국 우리의 짐을 대신 져주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은 성령님이 만져주셔야 우리 마음의 짐이 벗겨집니다. 슬픔과 근심과 근심과 답답함이 해결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만져주시면 검은 구름장이 가득 덮인 마음이 성령 바람이 불어와서 어느틈엔가 그 근심의 구름이 다 어디론가 밀려나버리고 마음이 맑아지고 고요해지는 일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받은 마음의 상처로 인하여 미움과 저주가 가득차고 분노가 가득찼던 마음에 어느틈엔가 주님의 위로가 임하여 고통을 준 사람도 역시 겪은 마음의 상처들이 뚜렷이 보이게 되고 그 사람이 겼었을 상실감, 쓰라림, 길고 긴 슬픔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심히 불쌍해져서 미워하고 저주하던 마음이 봄눈이 녹듯이 사라지고 대신 우리와 격려의 마음을 갖게 되고 축복의 기도, 중보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에 위로의 성령이 충만해지면 모든 사람이 이제 고마운 존재가 됩니다. 귀하게 여겨집니다. 상처가 많고 힘든 이 험한 세상에서 그들이 잘 버텨주고 잘 참아준 것이 고맙게 여겨집니다. 그 고생을 잘 견디면서 그래도 살아준 것이 고맙게 느껴줍니다.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어준 것이 고맙습니다. 홀로라도 이겨 내준 것이 대견하게 보입니다.
성경에 보면, 에스겔서 16:6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기 백성을 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신 대목이 나옵니다.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이스라엘이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40일 동안 방랑하다가 약속의 땅에 들어오는 그 연약했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마치 아이가 태어났는데 들판에 버려진 어린아이를 본 사람이 그를 가여워하면서 “제발 살아만 다오”라고 비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연민과 사랑의 마음으로 연약한 모습을 잘 이겨내고 살아만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지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피투성이라도 살아만 다오”
“피투성이라도 살아만 다오”
지금도 우리 하나님, 우리 주님, 우리 성령님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응원하고 계십니다. 힘이 들고 지치고 짐이 무거워서 버거워하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게 맡기라고 말하면서 지금도 우리를 위로하고 계십니다. 힘을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피투성이라도 그냥 살아만 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으시고, 이 받은 위로를 힘입어 이 세상을 힘을 내어 살아갑시다. 짐이 무거우면 멈춰서서 주님께 그 짐을 기도로 맡기십시오. 주님께서는 언제든지 우리의 짐을 대신 맡아주실 준비를 하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면을 보면 상처 입고 지치고 쓰러져 있는 자들도 많습니다. 또한 거칠어져 있고 분노와 정죄와 냉정함으로 가득찬 마음을 갖고 있는 자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역시 상처 받은 자들이요 아픈 자들입니다. 주님의 위로가 필요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교회와 우리들에게 주신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도 그들의 짐을 나눠집시다. 주님께 받은 위로로써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위로합시다. 그들이 그 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잘 견뎌주고 있음을 고마워합시다. 살아 줘서 고맙고, 곁에 있어줘서 고맙고, 용기 내줘서 고맙게 생각합시다.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하십시오. 남편에게 고맙다고, 자식에게 고맙다고, 부모님에게 고맙다고, 직장 동료와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그렇게 서로 품어주고 고마워하며 격려하며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