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민일보 2024년 11월 1일 금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나무에 기대어 약속하다
문현미
찬바람이 이쪽, 저쪽 가리지 않고 분다
바람의 뒤축을 좇아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낙엽들
뺨을 후려치는 바람의 갈퀴를 붙들고
꿋꿋이 서 있는 나무의 결심을 잠시 빌린다
추락할 때는
중심을 잡고 사뿐 우아하게 떨어질 것
짓밟힐 때는
너무 아작아작 밟히지는 말 것
누구를 따라 가더라도
영혼 없이 무리지어 휩쓸려가지는 말 것
고개를 숙이더라도
비에 젖은 가랑잎처럼 되지는 말 것
쓸쓸함이 이스트처럼 부풀어 오르더라도
붉고 노랗게 물드는 가슴을 유지할 것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더라도
안녕-이라는 다정 한 움큼을 잊지 말 것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못난 짐승 한 마리 내 속에 살고 있어서
자꾸만 꿈틀거리고
자꾸만 바스락거리고
♦ ㅡㅡㅡㅡㅡ 생각대로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염원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생각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추락하고 짓밟히더라도 무리에 휩쓸려가지는 말자, 이별도 쓸쓸함도 우아하게 쿨~하게 살자고 다짐하고 다짐하지만 내속에 살고 있는 못난 짐승 때문에 ‘자꾸만 꿈틀거리고 / 자꾸만 바스락거리고’
어찌할 수 없는 내 속의 못난 짐승은 본능일까 원죄일까. 생각 따로 마음 따로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일까. 말하고, 행동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나는 누구이며, 내 마음은 어디에 있는 걸까. 후려치는 혹한에도 꿋꿋이 서있는 나무에게 기대서라도 의연해지고 싶은 것이다.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