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27. 주일예배설교
시편 119편 105~112절
즐거운 상황이 아닌데 “즐거움”? 제정신인가?
(나를 구원하시는 말씀, 시편 119편-נ편)
■ ‘헛웃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이없는 일을 만났을 때, 마음에는 없는데 겉으로 웃는 웃음입니다. 그러므로 ‘헛웃음’은 화를 내고 싶지만, 허탈해서 웃음을 택한 경우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읽은 오늘의 본문 111절에서 보여주는 “즐거움”이라는 태도가 이런 ‘헛웃음’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듭니다. 분명 시편 기자는 “고난-공의-위기-악인”이라는 말을 휘몰아치듯 내놓고 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은 고난과 위기의 상황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절대로 필요한 위기 상황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즐거움”이라니? 그렇다면 이는 ‘헛웃음’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의 합리적 의심에 동의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않겠다고요? 이런~~
■ 여러분, 107절을 보시죠.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109절을 보시죠.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라고 하죠? 110절을 보시죠.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건 뭐 거의 제정신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즐거움”? 그러니 이건 헛웃음인 것이 분명합니다. 합리적 의심을 받기 충분합니다. 그런데 제가 뭘 놓치고 있다고요? 뭘? 107절, 109절, 110절의 앞부분만 읽고 뒷부분은 읽지 않았다고요? 뭐, 뒤엣것까지 안 읽어도 충분히 추리가 가능하지 않나요?
아니라고요? “니-나-나”를 놓치고 있다고요? “심하오니” “있사오나” “놓았사오나” 자, 그럼 다시 봅시다. 107절입니다.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109절입니다.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그리고 110절입니다.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아하, 그렇군요! 시편 기자의 상황이 고난이 매우 심한 상태이군요. 그렇지만 이를 넘어서는 신앙 태도를 보이고 있군요. 시편 기자의 생명이 위기, 그것도 항상 위기 상황이네요. 그렇지만 이를 넘어서는 신앙의 모습을 보이고 있군요. 시편 기자의 주변 곳곳에는 악인들이 놓은 사망의 올무가 교묘하게 숨겨져 있군요. 그렇지만 이를 넘어서는 믿음을 보이고 있군요.
그렇습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인 “즐거움”은 ‘헛웃음’이 아닙니다. 진정한 “즐거움”입니다. 이유가 분명한 “즐거움”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즐거움”을 의심을 한다면 이는 쓸데없는 의심일 뿐입니다.
■ 시편 기자는 본문의 시작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105절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왜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일까요? “등”과 “빛”이 절대로 필요한 곳은 어두운 곳입니다. 이곳에 등과 빛이 없다면 헤매는 것은 물론이고, 사고의 위험은 일촉즉발(一觸卽發)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등과 빛이 있다면 안전하고 안정적일 것입니다.
바로 주님의 말씀이 우리 인생에 주는 은총이 이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의 고백인즉, 비록 내 발이 어쩔 수 없이 죽음의 길에 들어서 있지만, 주님의 말씀으로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비록 내 길이 원치 않지만, 위험과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하더라도, 주님의 말씀으로 안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에 거하는 한,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붙잡혀 있는 한, 어디로 가든, 어디에 있든, 안전하고 안정하다는 것이 시편 기자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이어져 나온 고백이 106절입니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그렇기에 109절과 110절의 고백 또한 단호한 아름다움입니다.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사실 주님의 법을 잊지 않는다고 했지만, 주님의 법을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법도에서 떠나지 않겠다고 했지만, 주님의 법도를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의 능력과 은총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주님의 말씀을 잊을 수 없고, 떠날 수 없습니까? 아직 아니라면, 곧 이렇게 되시면 좋겠습니다.
■ 시편 기자는 주로 신앙고백을 드리고 있지만, 간절한 기도도 함께 드립니다. 107절과 108절입니다.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이 드리는 자원제물을 받으시고 주의 공의를 내게 가르치소서.”
신앙고백을 드리고 있지만, 여전히 어려움에 둘러싸여 있는 상태입니다. 오히려 신앙고백을 향한 집중 공격이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완벽한 상태에서 신앙고백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공의의 하나님께 믿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고백입니다.
그렇기에 신앙고백을 한다고 더는 간구가 필요 없는 상태라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더 절박할 수도 있습니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주의 공의를 내게 가르치소서!” 그러므로 저도 여러분을 완벽하게 보지 않지만, 여러분도 저를 너무 완벽하게 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연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111절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기업”이란 무엇인가요? ‘인생의 전부’라는 뜻입니다. ‘절대 의존’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증거들을 영원한 나의 기업을 삼았다는 말은 주님의 말씀에 인생 전부를 걸었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모든 것을 절대 의존한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영원히 말입니다.
이는 오직 주님의 말씀만이 가치 판단의 기준이고, 선택의 기준이라는 고백입니다. 오직 말씀으로만 결단하고 결정한다는 고백입니다. 생각도 행동도 말씀 안에서만 한다는 고백입니다. 바로 이를 두고 ‘오직 말씀’이라고 합니다. Sola Scriptura!
그렇습니다. ‘오직 말씀’입니다. 오직 말씀만이 길이고, 진리고, 생명입니다. 말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내 삶의 가치 판단이시고, 선택의 기준이십니다. 참으로 이래야 합니다. 참으로 이래야 삶은 그 어떤 고난의 상황에서도 “즐거움”이 됩니다. 이를 신앙이라고 합니다.
결국 시편 기자가 옳습니다. 112절입니다. “내가 주의 율례들을 영원히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내 마지막 순간까지, 변함 없이 주님의 율례를 지키기로 결심하였습니다.”(새번역) 그렇습니다. 영원히, 마지막 순간까지 변함없이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지키는 것, 이것을 결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너무도 잘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에 길과 진리와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 많이들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즐거움”은 믿기만 하면 저절로 오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아닙니다. 믿는다고 “즐거움”이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즐거움”은 주님의 말씀으로 모든 판단과 결정의 기준을 삼을 때 만날 수 있는 은혜입니다. “즐거움”은 예수님께 모든 의사결정권과 선택결정권을 내어드릴 때 누릴 수 있는 천국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오해를 벗어버리시길 바랍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의 삶의 우선순위에 예수님을 모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하고 싶은 것을 우선으로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것을 먼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필요에 우선권을 두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우선권을 두는 삶입니다.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입니다. 물론 이 우선순위의 삶이 만만치 않은 결단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단 결단하고 따르면 아주 쉽습니다. 오히려 왜 진즉 하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는 망설이지 마십시오. 더는 설마 하지 마십시오. 더는 시간을 늦추지 마십시오.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결단하십시오. ‘오직 말씀으로 살겠습니다!’하고 말입니다.
■ 여러분과 매일 매 순간 동일한 천국 말씀의 “즐거움”을 함께 누리고 싶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예수님의 제정신으로 말입니다. 헛웃음 끝, 제정신 시작!☺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