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Prayer - The Platters : with Lyrics(korean translation)
청산회 山行日誌 - 603차
1. 일시 : '24년 10월 13일. 日. 10:00. -------------------------------------------------------------------------- 603차 산행.
2. 코스 : 우이역 #2출구 – 711마트 – 관할부대 경비초소 - 우이령 – 송추 - 섬진강 메기매운탕. 若 6km.
3. 山行 素描 :
도봉산역 #2 출구 길건너편.
베캄선수 이상읍시 선착. 특별히 2인의 隊長도 출격. 국방부 합조대 포청천 신대장이 그 첫번째,
우크라이나 평원을 말 달리며 만월도를 휘두르던 코삭크 대장 부리바가 그 두번째.
국선도 임사범은 간만의 결번. 현재 8명 노견 탁주 8병 등짐 지고 좌측 들머리로 출발.
초소 아랫길 초입에서 휴식1.
우측으로 횡단하여 검문소 통과길 목전에서 잠시 왼쪽길로 들어서는 와룡의 휴식공간1. 조선 재래 음석
해박자 베캄 선수의 재래차. 前次 모주처럼 약간의 度數 상향조정이 필요한 ㅉㅋ, 배낭 빼갈 한 돋구리
급조달. 아울러 맥반석 구이 오징어도 함께. 꺼낸 김에 탁배기도 같이.
우이령 날맹이 휴식 카페2 & 화룡점정(畫龍點睛).
1. 설악산, 지리산을 허연 눈썹 휘날리며 혼자 섭렵하던 신대장 가라사대 "내가 몇십년 산에 다녔어도 우이령
고개만은 오늘 첨 넘어본다.." 그의 등산 일지속 용 그림이 우이령에 그의 발길이 찍히는 순간 한마리 용이
되어 靑山의 하늘을 나는 것이다. ㅉㅋ노 전설따라 삼천리 였슴돠~
2. 날망 야설무대에서 휴식과 점심을 하는 거이 일상이나 와룡의 선택은 오늘 유별나다. ㅉㅋ 신대장에게
"본시 저 무대 마루는 여러 과객덜 점심자리"라고 일러줬다. 그러나 오늘은 점심 무렵임에도 파리만.
마무리 - 아기 엄마 일가족 차에 편승, 매운탕집까지.
너나 나나 모두 다리 맛탱이가 그러므로 2,3km 더 걷기도 거시기하여 신호대기중인 차에 다가가 편승.
매운탕집에 선착, 자리를 잡았다. 전보다 더 좋아진 인심과 여유가 돋보이는 가게. 성업중.
침선생이 오늘 못온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라는 생각이 .
산신령과 그동안 못나왔던 선수들의 출격과, 여러 미참동기들 성원으로 금일 안전산행 감사드리며 귀가.
김삿갓
* 참가 및 경비
1.참가 : 8명.
- 와룡, 부리바, 사마, 신대장, 남보, 베캄, 닥종, ㅉㅋ.
2.수입 및 지출
수입 : 8만냥(당일 회비).
지출 : 166,800=노견酒8 12,800+섬진강 메기매운탕 154,000
시재 : 200,560= 287,360(前殘)+80,000-166,800
3.회비현황
가입회비 시재 : 27만냥=27만냥(前同)
4.여적(餘滴) :
"詩 한 편"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시름 많은 사람들과 "어두운 땅 한 평 가꾸다 갈래요/ 우리나라 하늘 한 평 비추다 갈래요"라고 노래했던
시인 고정희(1948~1991).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마치 그녀가 상한 영혼의 곁에 앉아 작은 목소리로
"흙에 심은 뿌리 죽는 법 보았나요"라고 묻는 것 같다. - 중략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했고 다분히 기독교적인 신앙에 기초한 시편들을 써낸 고정희 시인은 기독교의 현실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칼을 들이댔다. "하느님을 모르는 절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이쁜 우매함인가"라고 질문했고, 동시에
"하느님을 등에 업은 행복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맹랑한 도착 신앙인가"라며 고민했다. 그녀가 비판하고 날카롭게 투시한
대상은 눈앞의 현실 그 자체였으며, 돌봄이 있는 따뜻한 공동체는 그녀가 꿈꾸는 세계였다.
고정희 시인은 한 생애를 정열적으로 살다 간 여성운동가이기도 했다. -중략- 조금의 호락호락함도 없이 평소 신념을
시 창작과 생활에서 실천했다. 한 시대의 깊고 어두운 계곡을 묵상했으므로 그녀의 시는 미지근하거나 융융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시는 80년대의 격문이면서 '우릉우릉 폭발하는 화산(火山)'이었다.
1991년 6월 지리산 뱀사골을 오르다 폭우로 불어난 물에 휩쓸려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충격적인 죽음을 생각하면 생전에
쓴 시 '지리산의 봄 1-뱀사골에서 쓴 편지'가 자꾸 떠오른다. "아득한 능선에 서 계시는 그대여/ 우르르우르르 우뢰 소리로
골짜기를 넘어가는 그대여/(…)/ 아름다운 그대 되어 산을 넘어갑니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승천합니다"라고 쓴 시.
그녀의 시를 읽고 있는 오늘 새벽은 내 가슴이 아프다. 大尾.
- ...& 나도 가슴 아프다. 동시대를 선구자로 살다가, 모르는 새 예언자처럼 가버렸으므로. ㅉ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