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22:36
하나님의 백성이 가는 길을 훼방하고 저주하려는 시도에는 시대가 따로
없습니다. 물론 주님도 적대하는 자들의 방해를 받으셨습니다. 옳음을 향해
가는 삶 자체가 거센 저항을 불러옵니다. 그럼에도 그 나라를 향한 진군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길을 어떻게 도우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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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가수가 불렀던 ‘세상은 요지경’이란 노래의 가사처럼 어째 갈수록
태산인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자 서글픈 초상이니 어쩝니까?
이윽고 일곱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을 저주할 것을 기대한 모압의 왕이
막상 발람에게서 저주대신 축복의 말을 듣자 항의하는 이야기로, 발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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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해 주신 말씀을 그대로 말할 수밖에 없다고 답변합니다.
모압 왕 발락이 선지자 발람을 영접하기 위해 국경 근처까지 나갔습니다.
발람이 주문한 것은 일곱 제단을 쌓고 그곳에다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별 뜻이 아니라, 발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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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메소포타미아의 관습에 맞추어 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을 뿐입니다.
그렇게 하므로 여호와께 응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듭 전해들은 발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만 전하겠다고
단언합니다. 그 자신이 말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도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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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겠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발람의 행태로 보면 오랜만에 발람에게서 선지자
다운 말씀이 나온 셈입니다. 과연 발람은 정신을 차린 것인가?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9).’
발람이 저주대신 이스라엘을 축복한 말입니다. ‘홀로 살 것이라’는 이스라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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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적으로 살거나 혹은 고립되어 산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은 다른 민족과
달리 특별한 민족으로 이 땅에 오래 살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말과 비슷한
말이 이어 나오는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는 말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독보적인 민족으로서 그 영광과 특혜를 이어간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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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했지만 이제는 자취를 감춘 고대 앗수르나 바빌론 같지 않고, 이스라엘은
시대를 초월하여 존속된다는 말입니다. ‘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이스라엘 사분의 일을 누가 능히 셀 고(10)’란 ‘누가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
들의 숫자를 셀 것이며, 어떤 자가 이스라엘 진의 1/4이라도 헤아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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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까?’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티끌은 그 옛날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동서남북으로 퍼져나갈 지며’
의 티끌입니다. 곧 이스라엘의 사람 수입니다. 이스라엘은 행군할 때나 멈출
때 늘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진을 이루며 행동하였습니다. 발람은 그 중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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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보고서 위세에 눌려 그와 같은 말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발람은 보이지는 않지만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두려움에 떨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보이는 모압 왕의 제안도 결코 놓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편도 들고, 왕의 편도 들기로 작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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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양수겸장입니다.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잡고의 작전으로
나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한 사람이 두 마리 토끼를 좇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은 다 잃고 마는 것이지요. 그는 한쪽만을 택해야 했습니다.
아깝지만 버릴 것은 빨리 버렸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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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은 것은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할 수 없어서
입니다. 즉, 강력한 모티브가 그 마음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모압 왕이 제안한 부와 명예 곧 돈 때문이지요. 우리도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할 수 없어서 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구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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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등입니다. 가만히 그 원인을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필경 무언가 우리
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판단하는 시금석이 있으면 좋겠는데 불행하게도
그런 것은 없습니다. 다행히 단서는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사람 마음을 타고
올라오는 욕심입니다. 사심 없이 일을 하다가도 슬그머니 개입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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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니다. 조금만 틈 만보이면 영락없이 고개를 드는 것이지요. 욕심은 우리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마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기회와 때를 놓치지 않고, 조건과 환경이 맞으면 여지없이 득세하지요.
사람인지라 욕심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마음의 빗장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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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니다. 마음에서 올라오는 데로 살거나, 그런 것들을 쫓다 보면 필경 그 결과
는 참담한 것으로 끝나는 것을 우리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 예가 발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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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잃고, 더 나아가 아까운 목숨까지 잃었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사망을 낳고
만 것이지요.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한 것
같습니다. 욕심의 잠복기간은 적어도 계속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물론 발락이 발람을 이용하여 은밀하게 이스라엘을 치려했지만 하나님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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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계셨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들을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시어
이스라엘이 자기 소유임을 확증하셨습니다. 자기 욕망을 향한 환대,
하나님의 말씀만을 방영하는 대언, 자기백성과의 언약을 지키신 하나님,
나는 말씀으로 비판만 하는 율법주의자가 아닌가?
하나님은 발락의 악한 계교를 어떻게 바꿔 내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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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락과 발람의 만남(36-40)
발람에게 임하신 하나님(41-23:5)
발람의 예언(6-12)
a.발람의 축복:6-10
b.발락의 불평: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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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락은 발람이 온다 함을 듣고(36a)
모압 변경의 끝(36b)
아르논 가에 있는 성읍까지 가서(36c)
그를 영접하고(3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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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락은 발람에게 이르되(37a)
내가 특별히 사람을 보내어(37b)
그대를 부르지 아니하였느냐(37c)
그대가 어찌 내게 오지 아니하였느냐(3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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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찌 그대를 높여 존귀하게 하지 못하겠느냐(37e)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38a)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38b)
무엇을 말할 능력이 있으리까(3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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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38d)
그것을 말할 뿐이나이다(38e)
발람이 발락과 동행하여(39a)
기럇후솟에 이르러서는(39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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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락이 소와 양을 잡아(40a)
발람과 그와 함께 한(40b)
고관들을 대접하였더라(40c)
아침에 발락이 발람과 함께 하고(4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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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인도하여 바알의 산당에 오르매(41b)
발람이 거기서(41c)
이스라엘 백성의 진 끝까지 보니라(41d)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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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하여(1b)
여기 제단 일곱을 쌓고(1c)
거기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1d)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소서. 하매(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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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준비한 후에(2a)
발락과 발람이(2b)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니라(2c)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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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3b)
나는 저리로 가리이다(3c)
여호와께서 혹시 오셔서 나를 만나시리니(3d)
그가 내게 지시하시는 것은(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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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당신에게 알리리다. 하고(3f)
언덕길로 가니(3g)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시는지라(4a)
발람이 아뢰되 (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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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곱 제단을 쌓고(4c)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렸나이다(4d)
여호와께서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시며(5a)
이르시되 발락에게 돌아가서(5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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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할지니라(5c)
그가 발락에게로 돌아간즉(6a)
발락과 모압의 모든 고관이(6b)
번제물 곁에 함께 섰더라(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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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이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7a)
발락이 나를(7b)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쪽 산에서 데려다가(7c)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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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7e)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8a)
내가 어찌 저주하며(8b)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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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찌 꾸짖으랴(8d)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9a)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9b)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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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9d)
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10a)
이스라엘 사분의 일을 누가 능히 셀 고(10b)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1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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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 하매(10d)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11a)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11c)
나의 원수를 저주하라고 그대를 데려왔거늘(1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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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오히려 축복하였도다(11e)
발람이 대답하여 이르되(12a)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12b)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까(1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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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 환대_
말씀 대언_
축복하는 발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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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백성과의 언약을 지키신 하나님,
발락이 발람을 억지로 부른 이유는 그의 주술로 하나님을 부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시대에 발람 같은 지도자들이 조찬기도회다,
국민 총 화합이다, 구국 기도회다. 에큐메니칼 운동 이다 면서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행태를 무수히 보았나이다. 저부터 오만한 자리에 앉지 말게
하시고 저들이 교회를 유린하지 못하도록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주옵소서.
2023.5.5.fri. 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