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설에 중국 고전을 인용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세계적 현상이다. 어떤 문장이 인용에 좋을까. 중국인에게 국학대사(國學大師)로 추앙되는 지셴린(季羨林·1911~2009) 전 베이징대 부총장은 중국의 명문 148개 구절을 엄선했다. 그는 “이를 다 외우면 경계가 한 단계 올라간다. 문학 방면에 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양있는 중국인은 모두 암송하는 문장들이다. 한·중 양국은 연간 1000만 명이 왕래한다. 중국인을 만났을 때 읊조릴 수 있도록 독음과 함께 현대 중국어 발음을 덧붙인다.
25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논어(論語)』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낙지자/즈즈저부루하오즈저 하오즈저부루러즈저/zhīzhī zhě bùrú hǎo zhī zhě hǎo zhī zhě bùrú lè zhī zhě)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즐기는 사람이 낫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교육정책을 밝히며 인용한 문장이다. 시진핑 국가주석 역시 2013년 중앙당교 개교 80주년 기념 축사에서 같은 말을 인용했다. 공자는 아는 사람(知之者)은 고사하고 “막혀도 배우지 않는 사람(困而不學)”도 있다며 개탄했다.
26 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 『논어(論語)』
(기신정 불령이행 기신부정 수령부종/치선정부링어싱치선부정 쑤이링부충/qí shēn zhèng bù lìng ér xíng; qí shēn bùzhèng suī lìng bù cóng)
자신의 몸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해지고, 자신이 바르지 못하면 비록 명령해도 따르지 않는다.
-“정치는 바른 것(政者正也)”이라는 공자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구절이다. 솔선수범의 뜻이다. 시진핑 주석이 과거 한 칼럼에서 매력적인 인격으로 자신을 관리하는 지도자가 우수한 리더라며 인용했다.
27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논어(論語)』
(삼인행 필유아사언 택기선이종지 기불선자이개지/싼런싱비유워스옌 쩌치산어충즈 치부산저어가이즈/sān rénxíng bì yǒu wǒ shī yān Zé qí shàn ér cóng zhī qí bùshàn zhě ér gǎi zhī)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 선한 것을 골라 따르고 선하지 못한 것은 가려서 고친다.
-주위 환경도 배움에 활용하라는 말이다. 교육자다운 말이다. 타산지석·반면교사와 일맥상통한다.
28 大道之行 天下爲公 『예기(禮記)』
(대도지행 천하위공/타타오즈싱 톈샤웨이궁/dàdào zhī xíng tiānxià wèi gong)
대도가 행해지면 천하가 공평무사해진다
-고대 이상 사회인 대동(大同)을 설명하는 첫 구절이다. 공평과 복지는 현대사회의 과제다. 대도를 행하는 것은 정치 지도자의 임무다. 쑨원(孫文)의 좌우명이다.
29 凡事預則立 不預則廢 『예기(禮記)』
(범사예즉립 불예즉폐/판스위쩌리 부위쩌페이/fánshì yù zé lì bù yù zé fèi)
무릇 모든 일은 준비하면 이뤄지고 준비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취임사에 좋은 구절. 항상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취임사가 필요한 자리로 승진도 가능할터다.
30 學然後知不足 教然後知困 『예기(禮記)』
(학연후지부족 교연후지곤/쉐간허우즈부쭈 쟈오란허우즈쿤/xué ránhòu zhī bùzú jiào ránhòu zhī kùn)
배우고 난 뒤에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되고 가르치고 나서야 고달픔을 알게 된다.
-모른다는 것을 알기위해 공부하는 것이 학문이라고 한다. 교학상장(敎學上長)이라고 했다. 가르침 역시 배움이다. 배움의 어려움을 말하는 곤학(困學)의 또 다른 표현이다.
* 오늘의 묵상 (220624)
세리나 죄인과 같이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을 받아들이시고 가까이 하시며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셨던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비유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루카 복음 15장은 세 가지 비유, 곧 되찾은 양(3-7절 참조), 되찾은 은전(8-10절 참조), 되찾은 아들(11-32절 참조)에 대한 비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 복음은 되찾은 양의 이야기로, 예수님께서는 이를 통하여 잃었던 당신 자녀를 다시 찾았을 때 느끼시는 하느님의 큰 기쁨을 전하십니다. 백 마리의 양 가운데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고자 나머지 아흔아홉 마리는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밤낮으로 길을 헤매며 애쓰는 목자, 마침내 잃어버린 양을 찾고서는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 이웃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목자의 마음이 바로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이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우리는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을 지내면서 예수님의 그 마음을 기억하고 그분의 성심 안에 머물며 본받고자 다짐합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시는 착한 목자, 우리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심장마저 꿰찔리시어 피와 물을 다 쏟으신 예수 성심은 오늘도 우리를 당신 품으로 초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8-29). 예수님께서는 또한 성체로 우리 안에 찾아오시어 목마르고 굶주린 우리를 당신 생명으로 가득 채우시고 다시 살게 하십니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요한 7,37-38).
오늘 하루, 예수 성심과 하나 되어 그분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며, 우리도 누군가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따뜻한 마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울러 사제 성화의 날인 오늘, 세상의 모든 사제가 예수님의 성심을 닮아 주님의 착한 목자로 충실히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대구가톨릭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