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키타 히데이에 권율장군이 이치전투에서 승리한 후 1만 병력을 몰고 임진년 12월 말 수원의 독산성(禿山城)으로 진군하자 당시 한양에 주둔 중이던 히데이에는 병사 2만명으로 독산성을 포위했다. 성으로 들어가는 물줄기를 막아 고립시키려했으나 권율장군이 쌀로 말을 씻기는걸 보고 조선군 측이 물이 많은 것으로 착각하고 포위를 풀었다고 한다
가등청정 전쟁을 싫어했음
전쟁나자 선봉으로 빛의 속도로 평양 까지감
안잡힌 선조가 더 대단ㅡ책임자가 오리 이원익 정승
주치의가 허준
명나라 까지 갈수도 없고 동쪽으로 간 가토는 정문부 만나 작살 나고 군량미는 바닥 인데 명군이 온다고 해서
평양성에서 농성
바다로 일군이 온다 했는데 명량에서 이순신에게 막힘
후퇴후 남해서 일본성 쌓고 강화모드
죽다 못해 살아나 귀국 했는데 가토는 배신
죽음의 자리에서 할복권유에 천주교라 자살 거절
고니시 유키나가 小西行長
임진왜란 일본 제 1군 총대장
정유재란 일본 제 2 선봉대 총대장
전쟁 내내 조선군으로부터 악명 높았던 일본군 제 1의 선봉장, 반면에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것으로도 유명
임진왜란 당시에는 파죽지세로 북상하여 한양을 함락시키고, 평양성을 점령하지만 그 이후로는 쭉 털리는 전적이 대다수다. 원래부터 전쟁을 반대했기에 주군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속여가면서까지 강화를 주도하였다. 그렇게 발생한 명나라 심유경과의 사기극으로 정유재란을 발생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정유재란 초기 가토 기요마사의 상륙 정보를 조선에 흘렸고, 이에 넘어간 조선 조정은 이순신을 파직시킨다. 그러나 직산 전투와 명량 해전 이후 일본군의 북상과 황해 진출이 좌절되며 순천 왜성에 갇히게 되고, 노량 해전에서 시마즈 요시히로, 타치바나 무네시게와 함께 이순신에게 탈탈 털리며 겨우 겨우 빤스런에 성공한다.
이시다 ㅡ행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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