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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이면서,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주님의 고난주일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오늘 오후부터 시작해서 금요일 까지 계속됩니다. 그래서 이번 주간을 주님의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일년 중에서 이번 주간이 가장 경건하고 엄숙하며 장엄하고 뜻이 있는 주간에 해당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 히브리 말로 골고다) 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 저희가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된 우리인생들을 죄와 사망과 멸망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고 구원함을 받은 자들인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바로 이해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는 옛날에 아주 처참하게 죄인을 처형하는 형틀이었습니다. 인류역사상의 가장 비참하고 추하고, 가장 저주스러운 죽음이 바로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십자가를 사형도구로 최초로 고안해 낸 것은 페니키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람을 죽이는 방법으로 '창으로 찌르는 방법' '끓는 기름 속에 던져 넣는 방법' '돌로 쳐죽이는 방법' '목을 조르고 물에 빠뜨리고 불에 태우는 방법'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방법으로는 죄수들이 너무 빨리 죽기 때문에 죄수를 천천히 참혹하게 그리고 가장 고통스럽고 잔인하게 죽이는 방법으로 '십자가에 달아 죽이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상 가장 무섭고도 끔찍한 사형방법이 바로 십자가형입니다. 이 십자가에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먼저 채찍으로 맞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 채찍은 가죽으로 만들어 졌는데 군데군데 삼각형모양의 쇠를 붙여 놓았습니다. 그래서 그 채찍으로 사람을 때리게 되면 맞는 사람의 살덩어리들이 같이 떨어져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반쯤 죽도록 채찍으로 맞은 사람이 실신하게 되면 다시 쉬었다가 기운을 차리도록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리게 되면 그에게 무거운 십자가를 지워 사형장으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채찍질을 당하시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서 무거운 십자가 형틀을 지고 가셨습니다. 밤새도록 심문을 받으시고 탈진한 몸에 무거운 십자가형틀을 지고 골고다언덕까지 가시다가 14번이나 쓰러지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 사형장에서 죄수의 옷을 벗겨 십자가에 답니다. 죄수의 손과 발에는 못을 박아서 세워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처참하게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달린 죄수는 몸의 수분이 다 빠질 때 까지 낮에는 뜨거운 햇볕을 온몸에 받아 목이 타는 고통을 겪습니다. 또 밤에는 차가운 바람이 상처 난 몸을 에이는 고통입니다. 아침과 저녁이 반복되면서 이런 고통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그냥 매달아 놓으면 이러한 고통을 온몸에 받기에 누가와서 죽여주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는 로마의 한 군병이 동정하여 차라리 빨리 죽으라고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것입니다. 이런 십자가 처형 방법을 로마인들이 배워 가지고 노예들과 식민지 나라의 반역자들에게만 이 처형법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이렇게 사람을 죽이는 방법 중 가장 악랄한 방법이 바로 이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이 견디기 가장 어려운 십자가의 형틀에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상에서 당하실 끔직한 고통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아버지여 할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의 제목을 다시 바꾸어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26:39)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종려주일,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날을 기념하는 주일이며, 그러기에 이번 주간은 예수님의 고난을 기념하는 고난주간이 됩니다. 우리는 이 기간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지신 십자가를 생각하며, 십자가의 복음을 다시 깨닫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도바울은 갈6장 14절에서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지시고 달리신 십자가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1.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그의 법을 어긴 죄인들의 죄를 그냥 눈감아주지 않고 반드시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내리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은 죄를 가볍게 생각합니다. 또한 죄를 은폐하고 숨기려고 합니다. 그 지은 죄를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저지른 죄를 가볍게 생각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저지른 죄를 잊지 않으십니다. 죄에는 반드시 값이 있는데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들을 심판하셨는데, 전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서 죄인된 인생들을 대신하여 벌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십자가는 공의의 하나님은 죄를 벌하신다고 하는 엄숙한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2.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 독생자를 보내신 목적은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한 목적입니다. 동기는 사랑입니다. 영생을 주시는 방법은 십자가입니다.
마20:28에 보면 하나님의 보냄을 받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서, 곧 우리 죄를 위한 대속물이 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고,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사랑입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고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곧 세상 사람들을 무궁한 사랑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죄에서 건지기 위해서 아무 죄도 없고 흠도 없는 그의 아들을 십자가 위에서 벌하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와같은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에 대해서“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3. 대속의 죽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사53:4-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죄 없는 의로운 분이었지만, 죄인들을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죄란 그저 흐지부지 용서할 수가 없는 것이기에 누가 당하든지 그 죄값을 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엄하고 단호합니다. 죄 값은 죽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대속의 죽음인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섬김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오셨다."(마20:28)고 말씀했습니다. 이 대속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인된 우리인생의 죄사함이 있을 수 있게 되었고, 멸망가운데서 생명의 길이 비로소 열리게 된 것입니다.
1869년 '프렌티스'(E.P. Prentiss)는 결혼한 지 11년에 얻은 두 아이가 전염병으로 죽게 됩니다. 한 날 한 시에 그들을 묻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슬픔과 눈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낙심과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랑하는 프렌티스야, 많이 슬프냐.”, “예 많이 슬픕니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묻겠다. 너는 너의 영원한 저주와 사망을 대신하여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를 내가 네 대신에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사건에 대하여 슬퍼해 본적이 있느냐!” 프렌티스는 하나님의 이와같은 물음에 크게 가슴을 치며 회개했습니다. “주님, 저는 세상 기쁨만 위했습니다. 이젠 주님만 바라보겠습니다. 이것이 나의 소원이 되고 이것이 나의 기도제목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며 찬송시를 썼습니다.
찬송가 314장(511장)은 프렌티스 여사가 드린 기도문의 내용입니다.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엎드려 비는 말 들으소서 내 진정 소원이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이전엔 세상 낙 기뻤어도 지금 내 기쁨은 오직 예수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이 세상 떠날 때 찬양하고 숨질 때 하는 말 이것일세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4.능력입니다.
1)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죄인된 우리인생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죄용서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지옥과는 상관없는 천국 백성이 됩니다. 성경은 이 구원이 주님의 십자가로 된다고 가르쳐줍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십자가에서 죽는 자라까지 내어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죄인을 구원하는 능력이기 때문에 어떤 소망 없는 죄인이라도 십자가 앞에 나아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만 믿으면 모든 죄가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이유는 주님의 십자가에 이처럼 놀라운 구원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나무 십자가 자체가 이런 능력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로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롬1:16)이 죄인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들으면 죽었던 죄인이 살아나기 때문에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말입니다.
2) 십자가는 마귀를 이기는 능력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불행케 하고 실족케 하고 믿음의 자리에서 무너뜨려서 멸망케 하고자 늘 우리를 대적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천하를 모두 넘어뜨려도 십자가 앞에는 맥을 못 춥니다.
골2:14-15,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무장해제하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계12장 11절에 보면 말세에 믿음의 사람들이 마귀를 이기는데 "어린 양의 피로 이긴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십자가로 이긴다는 말입니다. 십자가가 마귀를 이기는 승리의 비결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마귀를 이기는 능력입니다.
마귀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는 마귀의 역사를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마귀가 없는 것이 아닌데 사람들은 마귀의 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마귀에게 속으며 살아갑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마귀에게 속아서 마귀에게 놀아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건 사고의 주인공이 되고 우울증이 많고 정신병자들이 많습니다. 자기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귀가 정신을 돌게 합니다. 죄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나오려고 발버둥 쳐도 안 됩니다. 마귀가 그 사람을 잡고 죄악으로 끌고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병들게 하고, 인간관계를 깨뜨리게 하고, 가난하게 만들고, 절망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불행하게 되고 실패하게 되는 일들의 배후에 이처럼 대부분 마귀가 숨어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어느 인도 교회에서 교회 나온지 얼마 안된 새 신자들이 귀신들을 쫓아내 지역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답니다. 이제 갓 예수 믿고 교회 나온 새 신자들이 어느 집에 모여 기도하고 있는데, 한 힌두교도가 찬송 소리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가족 중 귀신들린 사람이 하나 있는 데 우리를 괴롭게 한다. 우리를 좀 도와 줄 수 있겠느냐?”. 새신자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가서 기도했답니다. 그랬더니 귀신이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마을 사람들이 깜짝 놀라 80명 가량이 예수를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 새신자는 성경도 잘 모르고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낸 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기도할 때 귀신들이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십자가는 이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또한 주님의 십자가는 죄 없으신 우리주님께서 우리 죄를 위한 대속제물이 되심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죄와 사망과 멸망가운데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마귀의 권세를 페하시는 능력이 되심을 보여줍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