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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강단-400 예수님의 선구자(마태복음3장1-9절)
성경말씀은 마태복음 3장 1절에서 9절까지 봉독합니다.
[마태복음 3장]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3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4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오늘 마태복음 제 3장에서는 세례요한의 사역이 등장합니다.
오늘 제목을 제가 ‘예수님의 선구자’라고 이렇게 제목을 붙였는데, 선구자(先驅者)라는 말을 우리가 잘 안 쓰죠. 요즈음은..
옛날에는 더러 선구자 이런 말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우리가 유교문화권이라든지 아니면 일제문화에서 이렇게 눌려있다가 아주 뭔가를 깨닫고 이렇게 앞장서서 나서는 사람, 이런 사람을 ‘시대의 선구자’ 이런 말을 썼어요.
요즈음은 거의 다 지식이라든지 거의 다 평균인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내가 아는 것을 누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아는 것 네가 다 알고, 네가 아는 것 내가 다 알고 하니까 선구자가 없어요. 지금..
선각자, 보통 선구자 선각자 이것 우리가 예전에 쓰던 말이죠.
그런데 성경에 와서 선지자가 나온 거예요. 선지자..
우리가 옛날에 선각자 선구자 하다가, 성경을 보니까 선지자가 나오고 선견자가 또 나와요. 선견자..
그리고 예언자까지 해서 한 다섯가지 이름이 있는데, 세례요한에게는 이것 다 붙여도 괜찮아요.
예수님의 선구자 선견자 선지자 선각자 예언자 다 붙일 수 있는 인물이 세례요한이예요.
그래서 우리가 선구자라는 말도 가물가물한데, 조두남씨가 작곡한 ‘선구자’ 때문에 선구자라는 말이 입에 남아있고, 우리 회화체에서 선구자라는 말이 사라진지 오래 되었어요.
제가 선구자라는 말을 준비하면서 도대체 이 아름다운 감동적인 가사를 누가썼는가 보니까,
작곡은 조두남씨이고, 윤해영이라는 분이 작사를 했는데, 윤해영을 아무리 찾아도 못 찾았어요. 어디를 갔는지..
조두남씨의 회고록에서는 1932년도에 하얼삔에서 윤해영을 만나서 호텔에서 여관방에서 가사를 자기가 전해받아서 곡을 붙였다고 회고록이 있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나중에 김종화씨 같은 그런 분들이 다시 조사를 해서 보니까 윤해영씨가 그 시인이 활동한 것은 세월이 10년 정도 흘러서 1940년 이후에 활동한 것으로 드러나게 되면서 학계에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고 해요.
지금 결국은 이 선구자를 쓸 때만 봐도 틀림없이 내용을 보면 한반도 여기 있다가는 딱 일제에 체포되기 좋겠다 싶으니까 이것을 벗어나는 길이 옛날에 간도로 간다든지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든지 상해로 간다든지 아니면 아예 미국을 간다든지 이렇게 했는데,
이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선구자의 가사를 살펴보면,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그러니까 민족정신이, 늙고 죽은 사람은 죽어도 나라를 사랑하는 민족정신이야말로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하면서,
지난 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이게 선구자(先驅者)입니다.
선(先)자는 ‘먼저 선(先)’자고 구(驅)자가 ‘말 몰아갈 구(驅)’자예요.
앞에서 말을 몰아가는 사람..
그러니까 그런 것 있죠?
무슨 일이 있으면 시동 걸어놓고 고함지르는 사람 있죠.
‘빨리 나와!’ 하면서.. 이게 선구자야. 요새 말을 안 타니까..
대개 남자들은 그냥 시동 걸어놓고 나오라고 하는데, 여자는 아직도 계속 메이크 업 하고 앉아있는 거야.
시동 걸어놓고 나오라고 소리지르는 것이 선구자인데, 옛날에는 자동차가 아니고 말이니까..
그냥 명령만 떨어지면 말 몰고 제일 먼저 나서는 사람 이런 사람을 선구자라고 하는 거예요. 국어 공부 시간 같죠?
지난갈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2절에,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소리 들릴때
뜻깊은 용문교에 달빛고이 비친다
이역하늘 바라보며 활을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누구를 향해 활을 쏘았겠어요?
왜놈들이죠. 일본사람이 아니고 왜놈들..
그런 놈을 보고 활을 쏘고 허공을 보고 활을 쏘면서 말을 달리면서 꿈을 키웠는데, 지금은 그 거친 숨결과 그 꿈이 어디에서 깊어졌을까..
그렇게 정말 애국충정을 담은 그런 노래거든요.
3절에,
용주사 우물가에 저녁종이 울릴때
사나이 굳은마음 길이새겨 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아무리 가사를 봐도 그야말로 애국심으로 똘똘뭉친 그런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조금 있다가 세월이 10년 이후에 그의 활동을 보면 전혀 아니거든요.
‘용정의 노래, 만주 아리랑, 오랑캐 고개, 해란강, 아리랑 만주, 사계, 발해고지, 척도기, 낙토만주..’
이런 것은 전부 다 친일적인 노래를 이 사람이 유행해서 쓴 건예요.
이렇게 우리가 윤해영씨를 깊이는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는데, 분명히 선구자라는 작사를 할 때는 이렇게 애국심으로 똘똘뭉쳐 있던 분이 시대가 완전히 조선 독립이라든지 이런 것이 전혀 가능하지 않고 이제는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친일쪽으로 변절 했었더라는 말이냐?
이런 것을 짐작하게 하지만 고인은 말이 없고 친일파 조사위원들의 명단에 올라 있습니다.
아쉽죠.
그래서 사실 우리 민족지도자 치고 친일파 아닌 사람이 있었나요? 사실은..
똑똑한 사람은 다 친일파로 간 거야.
오늘 조금 있다가 보면 친일파만 나쁘냐? 친미파도 나쁘다.
친미파 친중파 친소련파도 나쁜 거야. 다..
그래서 저는 친일파를 찬양하는 마음은 없습니다만, 친일파나 친미파나 친소파도 그 때 우리 국민 우리 민족정신 자체가 어떤 주체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을만큼 주관이 없었던 시대이기 때문에 참 우리가 그것을 막 누구를 정죄만 할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마음으로 그분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 거죠.
우리가 용서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세례요한이야말로 그 당시에 정말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한 거예요.
여러분 이 세례요한이라는 분을 우리가 너무 소홀히 다루는데, 세례요한을 제대로 평가한 분은 예수님 밖에 없는 거야.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 보다 더 큰이가 일어남이 없다.’ 이렇게 외쳤다는 거예요.
그리고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나는 그의 신들메를 풀 자격도 없다.’ 이렇게 한 것이고,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그보다 더 큰이가 없다.’ 이렇게 한 거예요. 서로..
여러분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기는 쉬워도 다른 사람을 세워주기는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제가 세례요한을 ‘예수님의 선구자다’ 이렇게 말할 때는 예수님을 세상에서 가장 가까이 가장 밀착되어서 소개했던 그런 예언자요 선견자요 선각자요 선구자예요.
그리고 더 위대한 점은 이 사람 세례요한의 말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죄를 자복하고..
죄의 사람에서 죄와 결별하고 죄를 요단 강물에 씻고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예비한 준비한 그런 인물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어떤 것으로도 세례요한보다 더 크다고 할 게 없어요.
키가 큰 것도 아니고 몸무게도 많이 나간 것도 아니고 이적 기사를 많이 행한 것도 없잖아요.
아무 것도 없는데 목숨을 걸고 그것도 외치는데 사람들 많은 데 가서 약장사처럼 외친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외쳤어요.
광야에서 외치는데 사람들이 몰려오는 거예요. 그게 능력이죠.
여러분 우리 샤론교회가 마산에 있어서 안 된다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마산에 있어도 우리가 바르게 외치면 사람들이 몰려오게 되어 있어요.
광야 빈들에서 외쳐도 오는데..
그런데 어디에서 오느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사람들이 몰려왔다는 거예요.
물론 지금 사람들은 마음이 강퍅해서 잘 안 옵니다만 그래도 세례요한의 용기에 대해서 내가 아주 찬탄을 마지않는 것은 예루살렘 시내 한복판에 가서 외친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외쳤다는 거예요.
그래도 사람들이 몰려온다는 겁니다.
3장 1절 봅니다.
[마태복음 3장]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광야에서’ 줄을 그으세요.
요즈음도 ‘광야의 소리’ 그런 잡지도 있죠.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광야에 아무도 들을 사람이 없을 텐데..
광야에서 돌멩이와 이름 모를 풀 이런 것 밖에 없을 텐데 거기에서 외치는 거예요.
3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4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그러니까 고운 세마포 옷을 잘 차려입은 게 아니야.
꼭 무슨 유명 브랜드 그런 옷을 입은 게 아니고, 약대 털옷.. 보나마나 자기가 만들었을 거예요. 자기 손으로..
그리고 먹는 것은,
..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메뚜기는 아는데, 석청은 잘 모르죠. 석청은 꿀이예요.
석청과 목청이라는 꿀이 있는데, 벌들이 바위틈에 집을 짓거나 나무 구멍 속에 집을 짓는 수가 있어요.
그게 진짜 정말 아주 설탕 하나도 안 들어간거야.
오리지날이죠.
그런데 그게 이스라엘 땅에 그게 많을 수밖에 없는 게, 1년에 비가 오는 게 겨울에 벌들이 활동하지 않을 때 비가 오게 되고, 벌들이 활동할 때에는 일절 비가 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데에 벌이 잘 되고 포도가 잘 되고 양이 잘 돼요.
한국은 벌을 할 때에 장마가 오면 그냥 벌이 장마를 제일 싫어하니까..
꽃은 피었는데 비가 와봐요.
그리고 양들도 습기가 많으면 입과 발에 병이 생깁니다. 구제역이라고.. 병이 생깁니다.
그쪽은 젖과 꿀이 흐르게 생겼어요.
3월달에 이스라엘 땅에 가보면 꽃 안 피는 나무가 없고 꽃 안 피는 풀이 없어요.
풀이란 풀은 다 꽃피고 나무란 나무는 다 꽃을 피우는 거예요.
그러니까 벌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삼손도 꿀을 내 먹기도 하고 요나단도 꿀을 지팡이로 쿡 찔러서 빨아먹고 그렇게만 했는데 눈이 밝아졌다고 하죠.
그런 꿀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그렇죠?
그 때 꿀이 많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리산 쪽에도 보면 목청이나 석청이 가끔 있습니다.
돌 사이에 있는 수가 있어요.
그 영양분으로 하면 탄수화물과 미네랄 원소가 많이 들어있고 비타민도 많이 들어있고, 그리고 단백질도 많이 있어요. 아주 고급 음식이죠.
그 때로 봐서는 정상적인 식탁에 앉지 못할 사람들이 이렇게 먹는 건데, 우리가 지금 보면 하나님이 광야에서 음식을 예비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석청도 있고 메뚜기도 있습니다.
농약만 안 치면 메뚜기도 먹을 수 있죠.
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이게 놀라운 게 그 당시에 종교 지도자들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한 거예요.
여기 독사의 자식들이 헬라어로 ‘게넴마타 엑키드론’ 이렇게 했는데, 예수님도 똑같은 말인데, 여기서는 ‘독사의 자식들아’ 이렇게 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똑같은 헬라어인데, ‘게넴마타 엑키드론’ 했는데, 우리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는 ‘독사의 새끼들아’ 이렇게 했어요.
이런 것은 번역의 일관성의 원칙을 위배한 거야.
‘독사의 자식들아’ 할려면 다 ‘독사의 자식들아’ 할 것이고, ‘독사의 자제분이시여’ 하든지..
‘독사의 아들’이라 하든지 일관성이 있게 해야 되는데, 어떤 데는 ‘독사의 자식들아’ 하고 어떤 데에서 ‘독사의 새끼들아’ 했는데, 예수님이 더 말을 거칠게 한 것처럼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일관성 있게 해야 됩니다.
‘독사의 자제분’ 이렇게는 안 하겠죠. 그러면 ‘독사의 아들아’ 그 정도로 안 할거야.
그러면 뭐예요?
독사의 자식들아 그 정도가 맞는 말이예요. 그렇죠?
독사의 자식들아 그 정도가 맞을텐데, 어떤 데에는 독사의 새끼들아 이렇게 표현한 데가 있어요.
번역한 분의 감정이 나가지고 한 거예요.
처음에는 감정이 덜 났는데, 가다보니까 감정이 더 나가지고..
바리새인들이 악한 놈들이다 싶어서 이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한 거예요.
..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여러분 오늘날도 제가 두려운 것이 교회 지도자들이 성도들보다, 잘못될 때는 성도들 보다 지도자들이 더 잘못될 수가 있어요.
성도들은 정말 바르게만 가르치면 바르게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데, 목회자들이 바르게 안 가르쳐서 교회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하면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죠.
세례요한이 초신자를 보고 이 독한 말을 한 게 아닙니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이예요.
바리새인들은 율법적으로 자기들이 제일 신령하고 율법적으로 가장 거룩하다고 교만떨고 있는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었고,
사두개인들은 제사장 계열이니까 종교 직제에서 제일 높은 계급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전부 종교적으로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이 독사의 자식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이렇게 한 거예요.
전에는 이런 말을 들을 때 저도 세례요한 편에 서가지고, 맞아 바리새인들 나쁜놈들 하다보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나보고 하는 말 같은 거야.
저도 어느 날 보니까 목회자가 되어있고 남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데, 혹시 우리가 이런 식으로 책망 들을 수 있지 않겠나..
오늘 세례요한이 나타나면 오늘날 목회자들을 보고 ‘너희는 정말 바리새인처럼 하지 않았고 사두개인처럼 하지 않았고 정말 양들의 친구로서 겸손히 잘 섬겼다. 상 받으라..’
그렇게 할 것인가..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까딱하면 그 때 바리새인이나 그 때 사두개인들 이상으로 잘못될 수 있다는 겁니다.
심각한 문제예요.
제가 성경강좌를 하면서 조금 알려지게 되고 ‘CTS 성경의 힘’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알려져서 이런 저런 교회에서 들려오고 밀려오는 그런 교회의 어떤 아픈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오늘 세례요한이 나타나면 이 이상으로 말하지 않겠나 싶거든요..
끔찍한 일이예요. 끔찍한 일..
..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지금 진노가 임박한 거예요.
왜냐하면 세례요한이 이렇게 말할 때가 AD30년경 되었는데, 그 임박한 진노는 AD70년에 끝장나지 않습니까?
40년 정도 남아있었는데, 어떻든 그 바리새인들이 사두개인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서 나온 게 아니라 ‘뭐가 와서 떠드는 거야?’ 하면서 나오니까 이렇게 질타하는 거죠.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우리 같으면 대한예수교장로회 정통이다. 그런 소리 하지 말라는 겁니다.
정통인지 깡통인도 그것은 우리가 판단할 일이 아니라고..
하나님이 판단해야 정확한 판단인 것이지, 사람들이 정통이라 해도 아닐 수 있어요.
여러분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이 정통이라는 거예요.
사두개인들은 자기들이 사독의 자손들이다.
최고 정통이라는 사람들이예요. 그런 사람들이..
그런데 최고 정통이라고 하는 바리새인들 최고 정통이라고 하는 사독의 자손들을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잖아요.
이들은 십일조 땡전 하나 떼어먹지 않습니다. 안식일 철저하게 지킵니다.
정통파 사독 자손들이야.
그런데 세례요한이나 예수님 두 분 다 똑같이 독사의 자식들로 이렇게 점수가 나왔다는 거예요.
우리가 무슨 정통이니 그런 소리 하면 안 돼요.
그렇다고 일부러 정통 아닌 것으로 갈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정통이라고 하는 그 교단에 속한 것만 가지고 하나님 앞에 우리가 점수가 나오느냐?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로마 카톨릭 봐요.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합니다.
사도 베드로의 수위권을 계승한 정통이라고 해요.
희랍 정교회에 가봐요. ‘우리가 그릭 오도독스 처치(the Greek Orthodox Church)다..’
우리가 정교회라는 거예요. 정교회..
오순절 교단 가봐요. 우리가 순복음이래. 순복음..
그럼 우리는 뭡니까?
제가 지금도 우리 한국교회에서 잘못되어 가는 교회를 보니까 예수교도 아니고 기독교도 아니고 목사교에 가까운 거야.
거기에는 성도들 책임이 있습니다.
목사님을 막 신격화시킨 것도 성도들에게 책임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오늘 교회가 이렇게 되어가지고 교회를 10년 20년 30년 40년 다니면서도 성경 66권 중에 한권도 배우지 못한 가르치지 못한 목사에게 일단 책임이 있지만, 배울려고 하지 않은 성도들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혹시 여러분 우리 교회에서는 제가 오히려 성경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는지 몰라도 만약에 무슨 일이 있어서 다른 교회에 가서 신앙생활하거든 목사님을 졸라대야 돼요.
‘목사님 이렇게 하지 말고, 우리는 66권 중에 한절도 안 빼고 다 배우고 싶습니다.’ 하고 자꾸 보채고 덤비고 목사를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들어야 돼요.
여러분 공부 안 할려고 하는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는 교사는 세상에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못해요. 그것은..
안 배울려고 하는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거예요.
우리가 배울려고 해야 돼요. 배울려고..
절대로 말 안하고 있다가 정말 알고 싶기는 알고 싶은데, 누가 무료성경신학원 하니까 거기 몰려가서 5만명이 넘어요. 지금..
전부 다 기성교회 집사님들이예요. 집사님들..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이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성령불 받으라’ 이렇게 하는 거예요.
성령불도 오순절에 보면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있었다는 말이 있으니까 끝없이 우리 한국교단에서는 ‘성령불 받으라. 내가 불로 세례를 주겠다’ 하는데, 보세요.
11절 끝에,
..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키’라는 것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농기구인데,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하는 것이 성령으로 하는 것이고,
여러분 ‘키’라는 게 바람을 가지고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데, ‘바람’이라는 단어와 ‘영’이라는 단어가 똑 같아요.
그 다음에,
..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이게 불세례라는 겁니다.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성경학자들은 대개 이렇게 말하는데, 부흥강사들은 ‘성령의 불세례를 받으라.’ 이렇게 하니까..
그래서 우리 노래도 ‘불길 같은 성령이여..’ 계속 ‘불 같은 성령..’
성령이 불 같다는 말은 한번만 나오는 예긴데, 여기에서는 ‘성령과 불로’ 할 때 불같은 성령으로 한 게 아니고, 성령 세례와 불세례를 준다 하는데, 그 성령 세례는 알곡은 모아서 곳간에 두는 것이고, 불세례는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운다.
이렇게 성경 학자들은 다 그렇게 해석했는데, 한국의 부흥강사들은 불성령을 받으라 해가지고 불받으라 불받으라 한 거예요.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14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님 세례받는 장면인데, 아직도 우리 교회에 세례 안 받고 있는 분이 있으면 생각 해보세요.
예수님도 세례요한에 의해서 세례를 받는데 우리가 세례 안 받고 ‘세례 안 받아도 나는 믿음이 있다’ 그런 말 하면 안 돼요.
성경에는 분명히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요.’ 했어요.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
믿음없이 세례받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믿고 믿으면 반드시 세례를 받게 됩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고 믿지 않는 자는 정죄함을 받을 것이다.
여기 삼위일체가 함께 나오는 장면인데, 하늘에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오시고, 그 세례를 받는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으로 이렇게,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나타나는 장면이죠.
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인데,
..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게 일반적인 용어가 아니고, 이게 대관식 할 때 쓰는 공식용어라는 거예요.
예를 들면 다윗에게 아들들이 첩에서 낳은 아들 말고 19명의 아들이 있잖아요.
다윗이 나이가 많아서 임종을 할 때 누가 후계자가 되느냐? 하고 아주 초미의 관심이 집중될 때, 둘러보고 오랫동안 다윗이 만약에 왕이 생각해두었던 카드를 꺼내가지고 솔로몬 이리오너라. 하면서 다른 형제들에게 소개하면서 ‘보라 이는 내 기뻐하는 자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저의 손에 입 맞추라.’
이렇게 하면 모든 다른 왕자들이 와서 무릎을 꿇고 형님이든 동생이든간에 솔로몬에게 가서 손에 입맞추어야 돼요.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리 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망하리니’ 그런 말이 있는데, 이게 바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는 것이 왕이 후계자를 형제들 앞에 소개할 때 하는 용어라는 거예요. 대관식 용어처럼..
누구에게도 우리가 가서 입맞추어서는 안 되고, 예수님 앞에 무릎끓고 손에 입맞추는 사람이 되어야 돼요.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역자입니다. 반역자..
그 자리에서 바로 반역자야.
만약에 분명히 그 아버지 부왕이 자기 황태자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렇게 했는데, 가서 무릎을 꿇고 차기 왕의 후보자에게 손에 입맞추지 않으면 바로 그 길로 반역자로 간주한다는 겁니다.
왕의 아들이라도 지금 후계자의 동생 되는 사람이라도 반역자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이 어마어마한 선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할 때 온 세상은 불교 유교 다 놔두고 내려와서 예수님 손에 입 맞춰야 하는 겁니다. 이게..
이제 딴소리는 하면 안 돼요.
하나님께서 이 인류 역사 인류를 시작하시고 이 세상을 구원하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어떤 사람에게도 이런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한 적이 없어요.
예수님께만 이렇게 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그리스도, 기름 부음 받은 자 메시야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예수 믿는 일에 제일 먼저,
그러니까 율법으로 하면 예언자라는 그런 율법과 선지자의 마침이 되면서, 새롭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선구자로 나온 사람이 세례요한이예요.
[마태복음 4장]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자,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얘긴데, 예수께서 분명히 세례를 받았어요.
여러분 세례를 받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례받으면 그 때부터 시험이 있습니다.
세례 받기 전에 교회 왔다 갔다 하는 것은 그냥 왔다 갔다 하는 거야.
신자도 아니고 제자도 아니고 그냥 교회 왔다 갔다 하는 사람 교인 하나의 종교인이죠.
영어로 하면 ‘church commer’예요.
교회에 오는 사람이야 그냥..
교회 오는 사람은 거지도 왔다 갔다 하잖아요.
아니면 저 뒤에서 앉아 있다가 부목사님께 찍힌 사람도 있고..
교회에 오는 사람이면 안 되고,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돼요.
세례를 받아서 예수님 몸에 연합되는데, 세례 받으면 다 된거냐?
아닙니다. 그 때부터 시작하는데, 뭘 시작하느냐?
시험부터 시작합니다. 시험..
여러분 여성들이 요즈음에는 그런 것 없습니다만, 처녀때에는 제멋대로죠.
약혼했을 때도 괜찮아.
그런데 결혼식 올리고 시댁에 들어가면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때부터 시험이야.
그냥 국 쏟고 그릇 깨고 이웃집 개싸움 붙이고.. 실수 연발하는 거죠.
그러면서도 그것을 배워야 돼요.
그런 것처럼 세례를 받고 교회의 공동회의의 꼭같은 회원이 되었으면 이런 저런 시험이 있으니까 단단히 마음을 다잡아야 돼요.
여러분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끝나느냐?
아니죠. 그때부터 싸움이 시작되는 거죠. 그 때부터..
예수님을 믿게 되면 바르게 믿을려면 무릇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시험이 있어요. 이 시험에 옳다고 인정함을 받은 후에 주께서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다.
그래서 여기 우리 교회는 그래도 새로 믿는 분들이 있잖아요.
처음 믿는 분들 완전히 새로 믿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런 분들이 세례 받으면 끝나는 게 아니라, 제가 미리 예언을 합니다.
제가 예언을 잘 안하는데, 그런 예언은 해요.
세례 받고 나서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다는 겁니다.
갑자기 집안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고 시비를 걸고 넘어진다든지 갑자기 남편이 살자 말자 이렇게..
그럴 때 ‘아 시험이 있다더니 올 것이 왔구나, 있다더니 있구나.’
그럴 때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고..
마음을 딱 다잡고 절대로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돼요.
그런 시험을 다 통과 해야 돼요.
세례받으면 끝나는 게 아닙니다.
세례 받고 일꾼 될려면 반드시 시험이 있어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시험이 있다니까..
아브라함도 시험하시고 이삭도 시험하시고 야곱도 시험하시고 요셉도 시험하고 다윗도 시험하고 다 시험이 있는 거예요.
시험 없이 갈 수 있는 곳 딱 한군데밖에 없어요. 그게 지옥이예요.
천국까지 가는데 여러 번 여러 단계 시험이 있다니까..
그럴 때 포기하거나 물러서거나 하면 안 돼요.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봐도 안 돼.
그래서,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저는 가능하면 우리 성도들 40일 금식기도 하라 그런 말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도 자신이 없고 또 40일 금식기도 한 사람은 대개 교만을 떨어요. 명함에 ‘40일 금식기도 1번, 20일 금식기도 2번.’ 그것을 써가지고 다녀..
그렇게 할려면 아예 하지마.
어떤 분은 40일 금식기도 하다가 예수님만큼 했다 그런 것이 내 머리속에 교만의 씨앗으로 남을까 싶어서 39일 하고 말았다고 해요.
우리가 금식하는 게 우리 영혼을 맑게 하고 피를 맑게 하고 좋은 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교만의 재료가 될 것 같으면 하지마.
나는 40일 금식기도 한번하고 20일 금식기도 두번 했는데, 그분이 방언의 은사를 받았으면 방언뿐 아니라 종이에 방언 글을 쓰는 거야.
영서라고 하는데,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교회에서 말썽은 혼자 다 부려요. 그런 것을 봤어요.
그럴 것 같으면 안 받는 게 좋습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은사를 받았으면 덕을 세울 수 있어야 돼요.
3 시험하는 자가,
‘시험하는 자’는 마귀죠.
..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님 눈에 둥글넙적한 돌이 빵으로 보이게 하라는 거죠.
그렇게 배가 주리실 때에 마귀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게 아주 굉장히 못된 소리죠.
그럼 그것 안 하면 하나님 아들 아니게..
그런 것 하든 안 하든 그런 기적이 나타나든 나타나지 않든 하나님 아들이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네가 만약 진짜 예수님 믿거든.. 그런 소리 할 때 사탄아 물러가라고 해요.
그런 것 안 해도 나는 믿는다.
거기 넘어가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딱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대적하셨는데,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줄을 그으세요.
중요한 것은 기록된 게 중요한 거야. 기록되었으되,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예수님은 ‘기록 되었으되,’
..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또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죠.
‘만일’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의 아들이예요. 그냥..
..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마귀도 따라하죠? ‘기록하였으되’ 라고..
마귀도 똑같이 따라합니다.
..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시편 91편에 있는 말인데, 귀신도 성경을 귀신같이 알아요.
꼭 어디 이런 구절을 알아가지고 인용을 해요. 여러분은 잘 몰랐죠. 이런 구절..
그런데 마귀는 알아요.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예수님께서 ‘또 기록되었으되..’
뭐라고 기록되었는지 우리가 알아야 돼요.
..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귀가 잘못 짚었죠.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또 그러죠.
..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맨 마지막은 십자가 같은 골치 아프고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길을 가지 말고 간단하게 쉬운길로 가라.
나에게 절한번만 해라. 그러면 내가 이 세상을 다 네게 넘겨 주겠다. 이런 식으로 했는데,
그 어떤 것을 준다할지라도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그 길을 걸어가야지 쉬운길 편한 길 그렇게 하면 안 돼요.
그래서 그렇게 3단계, 첫째는 먹는 문제, 물질문제를 가지고 시험을 했고, 둘째는 명예, 셋째 경배의 대상..
이런 것을 가지고 시험을 했는데, 그 세 단계 예수님께서 다 기록된 말씀으로 물리치니까 결국은 사탄이 떠나갑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이와 같은 단계 이와 같은 수준의 시험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첫째는 먹고 사는 문제 물질문제 돈 문제, 이것가지고 시험합니다.
오늘 주일날 일하러 나가면 인건비가 하루 얼만데 하면서..
요즈음은 그런 것이 없지만 우리 때는 제일 힘들었어요.
농촌에 있으니까 모내기를 하는데, 지금 비가 와가지고 논에 물이 넘치는데 모내기 해야 되는데 옷 싹 갈아입고 예배드린다고 가니까 얼마나 미워하겠어요? 안 믿는 부모형제 자매 형수 제수 할 것없이..
그리고 우리 예배드리고 오니까 형님 형수 이웃 동네사람이 우리 논에서 모 심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욕을 얼마나 했을까..
내가 그 욕을 먹어서 오래 살지 않겠나..
내가 얼굴에 불을 담아 붓는 것 같아.
동민들이 우리 논에 모심으러 왔는데 주인이라는 사람이 교회 갔다오니까 속으로 욕을 얼마나 했겠어요?
그런데 욕 하거나 말거나 나는 주일날 예배하는 것을 내가 빠질 수 없다..
말이 그렇지 쉽지 않습니다.
나는 또 믿음이 있어서 그렇지 우리 집사람은 믿음도 없으면서 따라왔거든..
그때만 해도 우리 집사람은 거의 믿음이 없었는데도 굉장히 힘들었을 거예요.
그 제사 때마다 얼마나 경배 대상을 가지고 시험을 합니까?
또 뛰어내리라 이적 기사의 은사를 받아서 인기를 끌어봐라. 그런 것도 끊임없이 옵니다.
그래서 삼각산에 소나무 뿌리 뺀다고 올라가서 흔들고 있는 목사들이 많다는 거야. 지금도..
기적의 능력을 받아서 네가 명성을 날려봐라..
집사가 이렇게 하면 20명 30명 쓰러진다..
이런 시험과 유혹이 항상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돼요.
12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세례요한이 잡혔어요.
예수님께서 ‘나도 잡아가라.’ 이렇게 한 게 아닙니다.
사람이 물러설 때 다가설 때를 알아야 돼요.
그렇게 어려울 때는 피하는 겁니다. 잠깐..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거기가 선교 본부가 됩니다.
거기가 옛날에 스불론 땅 납달리 땅이 되었던 곳인데,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이사야서 9장에 있는 말씀이죠. 이 말씀을 이루려 하였느니라.
마태가 인용한 것 중에 이것 하나만 딱부러지게 인용한 것 같아요.
나머지는 대개 어쭙잖은 게 많아요.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천국’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나라가 가까왔다.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지 않고 ‘하늘나라’가 가까왔다.
‘kingdom of heaven’ 이라고 쓰고 있어요.
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이렇게 좀 따라오면 얼마나 좋겠나..
참 안 따라와. 안 따라와..
예수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형제를 동시에 부르는 것을 상당히 즐거워 하시는 것 같아요.
여기 제일 처음 부른 제자가 형제간이예요.
베드로 안드레, 그 다음에 야고보 요한, 또 마태와 작은 야고보. 둘 다 알패오의 아들인데, 소문이 잘 안나서 잘 모릅니다.
우리도 형제간 불렀잖아요. 우리 형제간이고..
나를 전도한 분도 형제간이 교역자예요.
요한 웨슬레 찰스 웨슬레도 형제간 불렀어요.
기독교 역사를 보면 형제간을 불러서 함께 일하는데가 많다는 거야.
그래서 혹시 여러분 형제간 부를 때 하나님이 둘씩이나 불렀겠나.
처음부터 둘씩 불렀어요. 처음부터..
그리고 형제간 둘이 부르심을 받은 것은 저는 복이라고 생각해요.
셋을 부르면 더 복이 있는 것이고, 넷이나 다섯이면 더 복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부르시는 것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물고기 잡으니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렇게 하셨거든요.
그런데 니고데모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니고데모에게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이렇게 했어요.
사마리아의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은 물 길으러 왔죠.
‘그러니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 마르지 않을 수 있어.’ 이렇게 했어요.
나같은 목수에게는 어떻게 했느냐?
‘집마다 지은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
그렇게 부르는 거예요.
여러분은 뭐라고 하면서 불렀습니까? 여러분은..
마태는 맨날 돈을 쫓아가니까 ‘돈을 쫓아가지 말고 나를 따르라. 일어나 나를 쫓으라.’ 아주 긴말 안 해요. 그렇죠?
그러니까 사람마다 부르심을 받은 간증이 똑같지 않다는 거야.
여러분은 여러분의 간증이 있어야지 나도 베드로처럼 불러주기를 그렇게 하지 말라고..
사람마다 다르다는 겁니다.
어떤 식으로든 여러가지 모양으로 부르는데,
베드로는 어부니까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놀고 있는 사람 부른적이 없습니다.
꼭 무슨 일을 하던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불러요.
빈둥빈둥 하는 사람을 부른 적이 없습니다.
항상 바쁜 사람 여러분 바쁜 사람에게 일을 부탁하라 그런 말이 있어요.
빈둥빈둥하는 사람은 실력이 없거나 뭐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빈둥거리고 있는 것이지..
그물 깁고 있는, 다음 출어하기 위해서 예비하고 준비하고 손질하는 사람 불렀다는 거죠.
22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천하에 복있는 사람들이죠.
여러분 인류 역사상 최고로 복있는 사람이예요.
나는 볼 때 베드로같이 복 있는 사람이 없는 거야.
세상에 맨날 그저 물고기 비린내 나는 일에 별로 돈도 벌지 못하는 것이고, 집에 가면 아내 바가지 긁고..
그런 집에서 비참하게 살았을텐데 베드로처럼 높여진 자가 없는 거야.
예수님처럼 낮아진 자가 없고 베드로처럼 높아진 자가 없지 않습니까?
저는 더해요.
저는 베드로처럼 배도 한 척 없었어요.
저 지리산 골짜기에서, 제가 지금도 자주 지리산에 가보는데, 왜 가보느냐?
내가 어디서 왔느냐? 너를 떠낸 우묵한 그릇을 한번 바라봐라.
내 분수를 헤아리기 위해서 제가 살던 곳..
꼴을 못베어가지고 가위 눌리던 곳 지금도 가끔 가봐요.
때는 다가오는데 꼴은 없고..
집에 가면 내가 무슨 낯짝을 가지고 들어가겠나..
그래서 막 기를 쓰고 있으면 ‘여보 새벽기도 나갈 시간이예요.’ 아 꼴 안 베도 되는 구나..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여기 가르치는 것이 제1사명이요, 둘째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고, 셋째는 약한 것을 고치시는 거예요.
‘가르치시고 선포하시고 고치셨다.’ 예수님의 3대 사역이라고 하죠.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데가볼리’ 하는 말은 데카폴리스예요. ‘열개의 도시’라는 뜻이죠.
열개의 도시는 ‘스키도폴리스, 히포스라, 가다라, 벨라, 필라델피아, 거라사, 디온, 가나다, 다메섹, 라비나’예요.
이렇게 열도시를 데카폴리스라고 합니다. 열개 도시..
갈릴리와 데카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다와 요단 저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와서 예수님을 쫓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허다한 무리가 쫓지만 나중에 보면 예수님 십자가에 못힐 때 되면, 다 버리고 도망가거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고 변절되거나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사람이거나 병이나 고쳐보겠다고 하는 사람이거나 이런 사람이 대부분이예요.
참 진리를 따라서 여기 바로 진리가 있고 생명이 있다 이렇게 인식한 사람은 다불과 500명에서 1천명.. 1천명도 채 안될 거예요.
예수님이 승천할 때 감람산에 일시에 500여 사람에게 보였다는 그 이야기인데, 500여명 정도가 그래도 예수님을 바르게 인식한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12제자, 70인 제자, 120문도, 500여 형제 이런 정도가 예수님을 인식한 것이고, 수만명 밟힐 만큼 왔어도 대개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이런 사람이 많았다는 거예요.
우리 샤론교회 성도님들은 그렇게 되지 말고 다 예수님 말씀을 들어서 그 안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을 발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세례요한을 통해서 이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한 예수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또 무슨 일을 어떻게 하시는지 보았고, 사람들을 불러서 일꾼을 세우시는 장면도 보았습니다.
우리도 주의 말씀을 가지고 나아가서 사람들을 일깨워서 예수님을 만나게 하고, 또 만난 사람 중에서 일꾼을 세워서 주님의 일을 계속해 나가는 하나님의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