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대정읍 인성리 446번지
시대 ; 조선(대한제국)
유형 ; 방사탑
4호 탑 높이 200cm, 둘레 790cm, 상부 직경 220cm
석상 높이 90cm, 너비 43cm, 폭 30cm
조선시대 제주는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으로 행정구역이 나뉘어 있었다. 대정현은 제주의 서남부 일대를 관할하는데 대정현성은 대정읍 인성, 안성, 보성 등 3개 마을에 걸쳐 있었다. 인성리는 대정성지 동남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남쪽에 단산 서쪽에는 모슬봉을 두고 있다. 바굼지오름 서쪽 사이에 대정향교로 가는 농로가 있으며, 이 길을 따라 500m쯤 가면 알뱅디라 불리우는 넓고 기름진 밭들이 펼쳐진다. 농부들에게는 풍요로운 땅일 테지만 인성리 사람들은 이곳이 허(虛)하다고 여긴다. 앞부분이 허하여 잡귀가 들어온다고 믿어서 동서 방향으로 돌탑 4기를 쌓고 위에는 거욱대라는 석상(石像)을 만들어 세웠다. 마을로 오는 액을 막고자 함이다.
뱅디(벵디)는 평평한 땅을 이르는 제주어. 알뱅디는 아래(바다)쪽에 있는 뱅디.
이형상은 탐라순력도에 이 오름을 파군산악(破軍山岳)으로 표기했다. 풍수에서는 산의 형상을 아홉 가지(九星)로 나누는데 이와 같은 산의 모양이 그 가운데 파군(破軍)에 해당한다고 하며, ‘파군의 산이 있으면 형벌과 겁탈, 나쁜 질병을 유발한다’고 하여 흉산(凶山)으로 본다. 당시 이 목사가 풍수지리에 입각하여 이 오름을 파군으로 표기했는지는 알 수 없다.
풍수에서는 이 거욱대가 인성리·사계리의 바굼지오름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안성리 쪽에서 보면 이 오름은 자연스럽게 박쥐처럼 보인다. 이 산은 박쥐가 날개를 활짝 펴서 먹이를 덮치고 있는 형세로 마을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 기세에 눌려 마을에서 큰 인물이 날 수 없다고 믿는다. 다만, 이 주장에 따라 박쥐의 기세를 막고자 한다면 박쥐처럼 보이는 앞쪽에 탑을 설치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데 박쥐 형상의 뒤쪽에 설치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돌탑이 만들어진 시기는 대체로 마을의 설촌과 그 때를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며 이곳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1900년 이문사(李文仕)라는 사람이 ‘풍수적으로 마을 남쪽(바굼지오름쪽)이 허하여 마을에 액운이 있으니 탑을 쌓아서 액을 막아야 한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은 오름과 마을 중간에 4개의 거욱을 쌓았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인근 모슬포에 훈련소가 생기면서 막사를 짓다 보니 많은 돌들이 필요하여 이 돌탑마저 실어가 버렸다. 마을의 한 노인이 양팔을 벌리고 막아보았지만 훈련병들을 당할 수는 없었다. 그 후 인성리에는 젊은 사람을 비롯하여 가축들도 많이 죽고 원인모를 화재도 많이 일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논의 끝에 1959년에 한 집에 쌀 한 되씩을 모아 그 돈으로 돌탑을 다시 쌓았고 마을은 평온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탑의 돌을 처음 올려놓는 사람은 탑이 막는 액을 모두 맡게 되어 오래 살지 못한다’는 속설 때문에 누구도 처음 탑돌을 놓길 꺼렸다. 이 때 인성리 마을에서 가장 나이 많으신 어른이 나서서 “나는 나이가 많고 살 만큼 다 살았다. 내가 첫 돌을 올려놓고 그 액을 받겠다.” 하며 돌을 놓아 탑을 쌓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나이든 어른이 희생을 감수하였던 것이다.
돌탑은 알뱅디의 '거욱대세운밭'이라는 밭에 2기, 개죽은물에 1기, 머우논에 1기가 있는데 한때 거욱대세운밭에 2기만이 남아 있고 그나마 1기는 훼손 상태가 심했었다. 2003년에 2기가 더 복원이 되어 지금 인성리 마을에는 4기의 탑이 쌓아졌다.
제민일보 1994년 4월 26일 '제주도의 석조물'에는 ‘이곳에는 윗마을의 박씨할으방이 만든 것이라고 전하는 거욱 또는 하르방이라고 불리는 석상이 있다. 타원형 얼굴에 미소짓는 듯한 인상을 주는 석상은 간략화된 털벙것이라는 모자와 유난히 큰 눈과 코가 돋보여서 대정성 성문 앞에 있는 돌하르방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라는 기사가 있으나, 현재의 석상은 탑을 보수할 때 새로 만들어 세운 것이다. 원래의 석상이 어디에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4호 탑은 1호 탑에서 서북서쪽으로 600m 정도 떨어져 있는데 탑이 있는 밭의 동쪽에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다. 인성리 446번지인데 탑이 있는 곳은 농사를 짓지 않아 억새와 같은 잡초와 가시덤불이 자라고 있다. 속에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았고, 맨 위가 조금 오무라든 원통형인데 상부 원이 반듯하고 작은 돌을 가득 채웠으며 아주 곱게 잘 쌓았다. 안에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았다. 상부에는 사람 얼굴 모양을 새긴 상반신 석상을 세워놓았다.
《작성 21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