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은총] 삼위일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분리(分離), 분단(分段), 분열(分裂)’. 나눌 분(分)자에 들어 있는 여덟 팔(八)자는 둘로 나누어져 있는 모습으로, 원래 ‘나누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가차(假借)되어 여덟이란 뜻이 생기면서, 원래의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칼 도(刀)자가 추가되어 지금의 나눌 분(分)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분리, 분단, 분열이라는 말이 그리도 날카롭게 들렸나보다. 전체에서 부분이 칼에 베여 잘려 나가는 분리, 분열, 분단의 모습을 보는 것은, 없어져야 할 것과 남아야 할 것을 가르는 것처럼 느껴지기에 그리 불편했나 보다.
함께하며 마주 보던 것이 등을 돌려 떠나 버리는 분리. 사물을 여러 단계로 나눈다는 말임에도, 우리에게는 한반도의 땅의 두 나라를 떠올리게 하는 아픈 단어인 분단. 공동체의 평화를 빼앗고 하나를 둘로 찢어 나누는 세력이 일으키는 분열. 이렇게 세상의 것에도 나눌 분(分)의 칼날은 아프고 불편하게 느껴질진데, 그 칼날을 하느님에게 들이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세 위격(位格)을 지니신다고 고백한다. 삼위일체(三位一體)에 대한 고백이다. 즉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의 하느님은 본질이 같은 한 분의 하느님이시다. 따라서 어떤 물건의 쓸 수 있는 부분과 쓰지 못 할 부분을 잘라내듯이, 한 분이신 그분께 분리[分]의 칼[刀]을 들이대 하느님의 기능을 잃어버린 부분과 새로운 하느님의 부분을 나눌 수는 없다. 하느님이시기에 그 신비를 인간의 머리로는 모두 깨닫기 어렵지만, 우리는 매일같이 하루를 시작하며 머리, 가슴, 양 어깨에 십자가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한 분이심을 고백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신비의 깊이 앞에 오만함을 드러내며, 자신이 하느님이 되기 위해 하느님을 위와 같이 나눠버린다.
삼위일체는 받아들이지도 않을 뿐더러 성부, 성자, 성령을 시대를 나타내는 주인공의 이름으로 치부해버린다. 어떤 시대는 성부 하느님만 존재하고 성자, 성령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고, 성부 하느님이 기능을 잃었을 때는 그 부분을 잘라내고 성자 하느님만이 존재하는 시대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성자 하느님이 기능을 잃어 그 부분을 잘라내고 남은 부분의 성령 하느님만 존재하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라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성부의 시대가 있었고, 성자의 시대가 있었으며 지금은 성령의 시대로서, 지금 시대에 하느님을 찾기 위해서는 성령을 찾아야 하며 성령이 자신에게 내렸기 때문에 자신이 하느님이라는 것이다.
삼위의 하느님께서는 단 한 번도 분리된 적 없으며 언제나 같은 한 분의 하느님이시다. 어떤 시대에는 성부 하느님만 존재한 것도, 어떤 시대에는 성부 하느님이 사라지고 성자 하느님이 등장한 것도 아니며, 성령 하느님만 존재하는 시대도 없다. 세 위격의 하느님은 모두 같은 하느님이시고, 한 번도 분리된 적이 없었고, 함께 계시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단지 완전히 드러나지 않아 숨겨진 모습이었지만, 세상이 만들어질 그때부터 아버지 하느님(성부)의 창조는 하느님의 말씀(성자)과 하느님의 영(성령)의 두 손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성자 예수님의 세례 때에도 비둘기의 모습으로(성령), 하늘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목소리(“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성부)로 함께 하셨다. 그리고 성령 강림의 날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는 완전하게 드러났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마음대로 분리해 버리고, 삼위의 위격을 하느님의 기능쯤으로 치부해 버린 이들의 주장 또한 인간의 오만에 불과한데, 하느님을 두고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 또한 다분히 인간적이며 하느님의 이야기를 한다고 말할 수 없다. ‘고대 시대, 중세 시대, 근대 시대, 현대 시대’를 말할 때의 ‘시대’나 ‘사이버 시대, LTE 시대’를 말할 때의 ‘시대’는 지나가는 기간이다. 새 시대가 오면 옛 시대는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하느님은 영원하다. 하느님은 시간을 만드신 분이시고, 시간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며, 시간을 넘어서는[超越] 분이시다. 그런 하느님에게 시대라는 이름을 붙여, 삼위의 위격은 일정 기간 계셨다가 지금은 계시지 않는 기능쯤으로 취급해 버리는 이들은, 구덩이를 파 바닷물을 부어 놓고 바다를 옮겼다고 말하는 이들과 같다. 하느님께서는 영원으로부터 계셨고 영원하신 분이시다.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실 한 분이시며 삼위이신 하느님께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이라는 신앙 고백으로 찬미와 영광을 드린다.
[2020년 9월 13일 연중 제24주일 인천주보 4면, 명형진 시몬 신부(선교사목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