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속 소리를 듣다
최 화 웅
면대면(面對面, face to face) 커뮤니케이션은 표정이나 제스처는 물론 대화의 흐름이나 감정을 나누며 소통한다. 그러나 세상은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기회가 점점 어렵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젊은이들이 얼굴을 마주 하지 않으려는 언택트(un+contact, 非對面)와 키오스크 시스템을 선호하면서 더욱 그렇다. 심지어 혼밥, 혼술, 혼창, 혼영, 혼행, 혼캠, 혼놀, 혼클이 성행한다. 어느새 현대인은 자아개념에 휩싸인 외로운 페르소나가 되었나 보다. 그것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기에 접어든 과학기술과 인공지능의 영향이기도 하다. 스쿠바 다이빙을 위해 바다에 뛰어들면 어둠 속의 고요와 침묵을 만나게 된다. 그 물속에서는 손발과 몸짓에 의한 수화(手話)로 말한다. AI(Artificial Intelligence)에 밀려난 인간은 무향실(無響室)에 격리된 외톨일까?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의 등장과 함께 면대면 의사소통 방식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어느새 포노 사피엔스가 호모 데우스의 자리를 차지했나보다.
내가 방송기자로 일하던 지난 80년대「나직이 말 하세요」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제11회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다. 공공장소인 공연장이나 극장, 전시장과 대중교통수단 심지어 사사로운 식당과 카페의 소란스런 현장을 추적했다. 그 현장은 마치 정상배나 조폭들이 설치는 난장판 같았다. 그런 시끄러운 환경을 극복하고자 원인을 추적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그렇다고 무향실의 절대고요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소리가 사그라져 침묵으로 바뀌는 순간의 음향 공학적 고요와 물리학적 잔향(殘響)을 즐기려는 낮은 목소리의 속삭임을 희망했다. 음악회에서 연주곡의 마지막 음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박수를 친다. 이른바 ‘안다박수’다. ‘안다박수’로 여운을 즐기려는 관객의 여유를 빼앗아버리는 일은 남을 배려하지 않는 무례한 행동이다. 박수는 관객이 연주자에 대한 찬사와 감사를 표하는 매너다. 그러나 총성 같은 안다박수로 연주회를 망치는 경우가 잦다.
연주 마지막 음이 허공으로 채 흩어지기 전에 치는 박수는 어렴풋한 여음(餘音)을 들을 여유를 빼앗아가는 무대 폭력이다. 오죽했으면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나는 박수가 싫다.”고 했을까? 박수(Applause)는 원래 ‘가볍게 치다’라는 뜻의 라틴어 ‘아플라우데레(Applaudere)’에서 유래한 말이다. 방송국에서는 스튜디오를 무향실로 갖춘다. 무향실은 사방을 코르크로 감싸거나 흡음제를 덧씌워서 소리가 울리지 않도록 한다. 그러나 무향실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몸속에서 들리는 생명의 소리다. 쉬지 않고 뛰는 심장의 고동, 숨 쉬는 소리, 복부 장기에서 나오는 소리가 그것이다. 대화의 기본은 ‘만남’이고 '경청'이다. 대화는 상대를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상대의 얼굴을 대하지 않은 채 자기 말만 하는 것은 강요다. 무향실은 울림 없는 원음 그대로의 소리만을 허용하는 공간이다. 무향실은 일체의 울림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향실에서는 바람직한 소통을 기대할 수 없다. 소음을 거부하다보면 뭔가를 놓치고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는 자신의 몸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면 살아 있음을 재확인하고 삶의 의욕을 높이게 된다. 나는 일주일에 세 번의 투석치료를 받는다. 동정맥루 수술을 받은 팔에 채혈용 주사바늘(15게이지, 0.184mm)를 사용한다. 그 과정에서 혈관을 흐르는 피의 소리를 듣게 된다. 분당 250~300ml의 작은 패트병보다 많은 양의 피가 투석기와 혈관을 연결하는 관이 심장의 고동과 같이 뛴다. 그것도 치료를 받는 4시간 동안 계속되고 잠자리에서는 팔이 베개에 닿으면 더욱 선명하게 들린다. 다윈은 비글호 항해 중에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되새류를 관찰하면서 자연 선택의 메카니즘을 떠올렸다. 다윈은 진화의 개념을 논증하고 남미 칠레 엘 블라도르 언덕의 노래를 소개하기도 했다. 최근 영국 샐퍼드대학 음향공학과 트레버 콕스 교수는「지상 최고의 사운드」라는 저서에서 무향실을 소개했다.
내가 신장투석 치료를 받기 시작한지 만 5년이 지났다. 신장투석은 연명(延命) 수단이다. 투석치료를 받기 시작하면 살아 있는 동안 중단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는 10만여 명의 만성신장병 환자들이 투석치료를 받고 있다. 내가 다니는 병원의 투석실에도 문제가 많다. 첫째, 좁은 면적에 많은 침대를 들여놓아 옆자리 환자를 처치할 때 수액이 튀고 드나드는 간호사들의 몸이 침대에 부딪히며 둘째, 일부 투석환자들의 소란스런 잡담이 소음으로 견디기 힘들고 셋째, 의료진들이 투석실의 분위기를 정숙하게 유지하려는 돌봄 정신이 부족한 듯하다. 나는 야전병원 같은 투석실의 환경 개선을 건의하다 포기하고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사용하기로 했다.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은 내장된 마이크가 주위의 소음을 모아 기계적으로 처리해준다. 들을 소리만을 듣고 듣지 않을 소리는 듣지 않겠다는 일이 삶의 스트레스다. 그럴수록 나는 고요 속의 명상을 위해 몸속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몸속의 소리에 응답하는 침묵을 듣는다.
첫댓글 투석의 힘듦을 몸 소리 들음으로 승화시키시는 모습이 감동입니다
우릴 지어내신 창조주의 소리도
우리 몸 우주 안에 계심이니
하느님의 현존을 늘 체험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그리 하겠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명상을 누리시는 그리움님의 여유에 감동을 느낍니다...
늘 감사합니다.^^*
국장님 더운 날씨에 병마와 싸우시느라 얼마나 힘드십니까.
기도로 함께 하겠습니다.
힘내십시오.
나직이 소리를 듣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아~ 참 힘드시겠습니다.
환경이라도 좋으면 좀 나을텐데 그것도 어려우니...
방법을 찾으셔야했고, 억지로 적응해 나가시는듯 보입니다.
그럼에도 열심히 살고계시니 그 열심하심이 고맙습니다...
귀한 시간들 속에서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르려니'하고 살겠습니다.^^*
예수님 께서
가셨던 십자가의 길을
투병의 고통으로
뒤따르고 계시니
예수님과 함께
인내하시고
견디어 내시길
기도 드리며
세상이 줄 수 없는
예수그리스도의
평화와 기쁨이
넘쳐나시길
또한 기도드립니다...
힘내십시요...
하느님께서
우리를
많이 사랑하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