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터키, 그리스 순례기 9
7월 8일, 날씨: 아침부터 뜨거운 태양이 작열함. 5시 기상, 7시 출발. 하루가 길 것을 예감할 수 있었음.
오전 순례지는 그 유명한 '팔미라'이었습니다.
그대가 '팔미라'가 관광지이지 왜 순례지이냐고 물으신다면, 불국사가 일반인들에게는 관광지이지만 불교도들에게는 순례지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시라고 말하오리이다!
'팔미라'는 유명한 고대 도시국가 유적지이지만 거기에도 성당이 있었기에 우리에게는 순례지이기도 합니다.
3 시간을 넘게 황량한 사막(거기서 가이드가 그렇게 부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광야)를 달리다가 갑자기 멀리 보이는 풍광이 나타나는데, 가까이 가면서 그것이 푸른 나무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검은 점들이 푸른 잎을 띄우는 나무로 변하면서 나타나는 오아시스. 팔미라는 불어로 오아시스를 뜻한다고 하네요.
바그다드 카페
팔미라에 가기 전에 들린 '바그다드 카페'부터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유명한 영화, 아니 그 영화의 주제 음악 Calling You가 더 유명하지요. '바그다드 카페'의 영화 음악은 누가 제게 주었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음악에 문외한인 저도 그 CD를 가지고 있을 정도이니까요. '바그다드 카페'의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쟈스민 부부는 독일에서 미국으로 관광을 왔다가 말다툼을 합니다. 싸움은 크게 되고, 쟈스민은 짐을 꾸려 차에서 내려버리지요. 그때 남편의 가방을 가져오게 됩니다. 가방을 땅바닥에 끌며 사막을 걷다가 그는 사막한가운데에 초라하게 서 있는 ‘바그다드 카페’에 다다릅니다. 이 모텔 '바그다드 카페'의 안주인 브렌다도 남편을 방금 내쫓는 참이었지요. '바그다드 카페'에 오래 머물게 된 쟈스민은 어느 날 까페 손님에게 우연히 마술을 보여준 것을 계기로 용기를 내서 계속 마술을 하기 시작하지요. 까페는 마술을 구경하러온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하고 쟈스민은 브랜다 가족의 일원이 되어가면서 보여주는 인간미와 해학이 넘치는 내용이지요.
바로 이 영화의 타이틀을 딴 휴게소 카페가 팔미라로 가는 광야 한 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바그다드 카페'. 정겨운 이름이었습니다. 베두민 유목민들의 천막을 만들어 놓고, 그들의 옷을 빌려 주고 사진을 찍게 하는 곳이기도 하여, 사람들이 신나게 옷 입고 사진을 찍고 좋아했지요. 이 '바그다드 카페'는 영화에서처럼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되어 '바그다드 카페' 2호점이 생기더니, 3호점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버스 타고 오면서 2호점과 3점도 지나가게 되었지요. 가이드 수진씨 말로는 형제자매 가족들이 2호점과 3호점을 내었다고 하네요.
바그다드 카페의 베두인 천막
바드다드 카페 별관
카페의 문을 통해 밖을 본 풍경
버스가 팔미라에 가까이 다가오면서 첫 인상은 에페소의 로마 유적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까이 가 보니, 또 다른 정취를 풍기는 유적지였습니다.
팔미라 벨 신전 외부 기둥들
팔미라는 구약성서에서는 타드모르라는 이름으로 솔로몬 왕이 세운 도시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가이드 수진씨 말로는 역대기에 나온다고 한 것으로 기억하여 찾아 보았습니다. 역대가 하 8, 3에 솔로몬은 광야에 디드몰(공동번역 표기)를 건설하였다고 되어 있네요. 팔미라는 사막 가운데서 비옥한 삼각지대에 위치한 오아시스이기 때문에 로마가 번성하던 시대에 인도에서 이어지는 동서 교통로에서 거점이 되는 교역의 요충지로서 비교적 큰 도시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페트라와 더불어 대상들에게 중요한 도시였다가 페트라가 망하면서 더욱 부각된 도시였다고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여성 작가, 추리 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가 말했답니다.
"뜨거운 모래사막 한 가운데 땅 속에서 솟아오른 환상의 도시 팔미라여"라고.
시리아의 동부 사막지대 한복판에 세워진 대도시 팔미라는 흔히 사막의 궁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광야를 달리다 마주치게 되는 오아시스에 세워진 고대 도시 팔미라는 지친 나그네의 마음을 적셔주고 경이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갑자기 나타난 마술과도 같은 도시 유적지입니다.
어떻게 이 광야에 도시가 세워질 수 있었을까 의아하지만 오늘날도 이곳의 에프카라고 불리는 샘에서는 맑은 물이 솟아나 일대를 푸른 나무로 가득 채워주고 있습니다. 가이드 수진씨는 이곳 신전 담벽 위로 저희를 데리고 가서 10m가 넘는 큰 아쟈나무들이 숲을 이룬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원래 이곳 지명의 이름이었던 타드모르는 고대 셈족어로 야자수를 뜻했다고 하네요.
팔미라는 쉽게 말해, 사막을 왕래하며 장사를 하던 카라반들이 피곤한 몸을 쉬고 물을 공급받던 사막의 경유지였습니다. 셀레우스코 왕조 때부터 중개무역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팔미라는 로마가 점령했던 기원전후 약 400년간 전성기를 누렸다고 합니다.
오늘날 팔미라에 복원되고 있는 유적들의 대부분은 1~3세기의 로마시대에 건축한 것이라고 합니다. 에페소의 로마 유적과는 달리 표면은 거칠지만 오히려 세련미가 훨씬 더 돋보이는 건축들은 뛰어난 미적 감각을 지니고 있어 그 시대의 건축기술과 예술성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팔미라에서 먼저 찾아간 곳은 팔미라를 대표하는 신전인 벨 신전이었습니다. 벨은 성경에서 나오는 바알에 해당하는 신이라고 합니다. 바로 풍요와 다산의 신이지요. 벨 신전이라고 불리지만 처음에 신전으로 지어졌기 때문이고, 시대의 변천에 따라 달리 사용되었지요. 나중에 비잔틴 시대에는 성당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역사의 흐름 안에서 흥망성쇠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벨 신전은 처음 (대략 기원후 30 년 경) 셈족의 신전으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합니다. 신전은 외부의 성벽과 내부 성소로 구분되는데 200m 길이의 성벽이 사면으로 매우 높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넓은 마당 안쪽에 가장 신성한 장소인 신전이 있는데 이곳에서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제물을 바칠 때는 짐승을 죽여서 피를 흘리게 하였다고 하니, 피 냄새가 진동하였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피 냄새를 얼마나 역겨워 하셨을까 생각하며, 예언서의 말씀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축제 때마다 바치는 분향제 냄새가 역겹구나.
친교제물로 바치는 살진 제물은 보기도 싫다.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 흐르게 하여라.”
벨 신전의 문
신전 앞쪽에 거대한 문이 있고 주위로 코린트 양식의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현재 건물의 뒤쪽에만 남아 있습니다. 신전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뉘여 있는 돌판에는 풍요와 다산을 나타내는 신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여러 과일, 젖, 여체 등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신전 제단- 서쪽
성당 제대- 동쪽
벽면의 프레스코화 흔적
내부로 가면 동서의 양쪽으로 움푹 들어간 제대와 제단이 있습니다. 동쪽에 있는 제대는 비잔틴 시대 때의 성당의 제대이고, 서쪽의 제단은 신전에 속한 것이라고 합니다. 비잔틴 시대의 성당의 제대는 항상 동쪽에 두었습니다. 제대는 태양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에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에 둔 것이지요. 가이드 수진씨 설명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바로 당신이 태양이시기 때문에 동쪽에 위치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다른 신전은 태양이 비춰주어야만 하기 때문에 반대쪽인 서쪽에 두고 있다고 하네요.
벽에는 비잔틴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프레스코 벽화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조금 남아 있는 천장에는 별자리가 그려져 있고 오른편엔 고대 팔미라의 세 신의 모습도 그려져 있는 것이 남아 있습니다. 이 신전은 로마의 영향을 받았지만 전형적인 시리아 건축 양식이라고 합니다. 건물 앞에는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깨끗이 몸을 씻도록 하기 위해 물을 받아둔 웅덩이도 남아 있습니다.
외부를 한 바퀴 돌고나서 저는 다시 신전이며 성당인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동서 양쪽의 제단과 제대를 비교하며 살펴보았습니다. 성당의 제대 옆의 장식은 단순한 반면에 선전의 제단 옆의 장식은 화려한 문양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역시 화려함보다는 단순함 안에 성당의 미적 감각이 돋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