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군가를 만날 때,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것으로 첫 대면을 시작한다. 이름을 듣고 부를 때면, 그 대상에 대한 이미지도 함께 떠올리게 된다. 그렇기에 이름은 단지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담게 마련이다.
새로운 생명체를 찾아서 분류하는 계통분류학자들에게 “이름짓기”는 고민스러운 창작활동이다. 보통은 생김새와 대사과정, 혹은 서식지에 따라 독특한 이름을 붙여주기도 하고, 이미 알고 있는 개체와 비슷한 생명체를 발견하면 사촌, 혹은 형제 같은 의미를 덧붙여서 이름을 짓기도 한다. 돌림자를 써서 형제들 이름을 짓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혹시 다른 생물에 같은 이름이 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간혹 난감하게 지어진 이름들을 발견할 때면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예전에 분류학을 가르치시던 교수님께서 “도대체 누가 청초롬하게 예쁘게 핀 꽃에 "개불알꽃", “며느리 밑씻개”라거나, 식감도 좋고 맛있는 해변가 동물에게 "개불"이라는 "몹쓸(?)" 이름을 지었을까” 하시면서 열변을 토하셨다. 나중에 그런 몹쓸 이름들도 일본 식물학자가 이름 지은 것을 그대로 옮긴 일제시대의 잔재였다는 것을 알고 씁쓸했다. 그 교수님은 나중에 도감을 출판하시면서 개불알꽃을 복주머니꽃으로 부르자고 하셨다는데, 결국 그 꽃의 이름이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복주머니꽃 (학명: Cypripedium macranthos)
도대체 곰팡이란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 "곰팡이"라는 이름도 그다지 아름다운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곰팡이"라는 이름은 반사적으로 식탁에 두고는 한동안 잊어버렸던 식빵 위에 포슬포슬하게 피어 오른 푸르스름하고 거무튀튀한 솜방울 같은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누군가가 이 생물체를 먼저 보고 떠오르는 대로 이름을 붙였거나, 사는 모양을 관찰하고 이름을 지었을 거라고 상상해 본다.
우리말로 ‘곰팡이’는 이 미생물의 삶을 잘 반영한 이름이다. 어느 조상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름 한 번 참 잘 지으셨다. 우리말 어원을 보면 '곰팡이' 의 원래 형태는 '곰' 이었다고 한다. 이 '곰' 이라는 단어 자체는 ‘곰탕, 곰삭다’ 처럼 오랜 시간을 두고 끓이거나, 묵은 음식에 쓰였던 말로 '곰 피다', '곰이 피다' 등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팡이'는 '피다'의 어간 '피-'에 작은 것을 뜻하는 접미사 '-앙이' 가 붙어 생긴 말이라고 한다. 즉 오래 묵은 음식이나 어떤 사물에서 발생하기 시작해서 피어오르는 (점점 자라는) 어떤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야말로 곰팡이는 오래된 유기물이나 사체를 분해해서 양분으로 사용하고 자라나는 생물이 아닌가? 곰팡이라는 사물을 이미 알고있는 입장에서는 이름을 보고 "아.. 그래, 그 모양과 딱 맞는 이름이야.. " 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아마 우리가 보아온 곰팡이의 인상이 이름에 투영되어서 그럴 것이다. 만약 곰팡이라는 이름이 아름다운 생물의 이름이었다면 (꽃이라는가), 우린 다른 모습을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대상을 먼저 보고 대상의 이미지를 이름에 대입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이름을 먼저 알고 나서 사물을 보면 어떨까? 이름에서 막연히 연상되는 상상력을 동원한 추측? 이름으로부터 실제 그 "어떤 것"에 대해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과연 얼마나 될까? 만약 우리가 부르는 곰팡이 혹은 대장균 같은 이름들이 그들의 진짜 이름이 아니라면 또 어떨까? 우리가 보통 부르는 이름과는 판이하게 다른 그들의 진짜 이름에는 또 어떤 의미들이 담겨있을까?
진짜 이름 찾기-생물의 학명에 담긴 의미
단지 생물의 이름 뿐 아니라 “이름짓기” 자체는 그 대상을 어떠한 범주에 통합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된다. 가령 어떤 사람의 이름이 '홍길동'이라면 우리는 그가 홍씨 가문의 일원임을 안다. 만약 이름에 “동” 자가 돌림자였다면, 항렬을 추측해서 그 가족 내의 친척관계까지 알아낼 수 있다.
생물들의 진짜 이름인 학명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생물들의 이름은 예전에 어느 코미디 쇼에서 나왔던 '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로 시작되는 이름만큼이나 긴 범주들을 포함한다. 고등학교 생물학시간에 외었던 '종-속-과-목-강-문-계'가 그들의 이름이다. 긴 이름을 다 써야겠지만, 보통은 다 줄이고 속명 genus과 종명species을 써서 진짜 이름을 표기한다. 속명은 그 생물이 포함된 보다 넓은 가계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람 이름으로 치면 성씨에 해당하고, 종명은 그 생물 고유의 특성을 담은 것으로 우리의 이름과 같은 셈이다.
“Escherich씨가 발견한 대장 미생물”: 예를 들어 우리가 잘 아는 대장균의 학명은 Escherichia coli이다. ‘Escherichia’는 대장균 가족들을 포함하는 가계이름으로, 처음 이름을 붙인 Dr. Theodor Escherich의 성에서 따온 이름이다. ‘coli’는 colon, 대장을 의미한다. Escherichia 속에는 coli말고도 다른 형제들인 albertii, blattae, fergusonii, hermannii, vulneris 등등 ..다양한 종들이 있다. Escherichia라는 속명을 보면 미생물학 좀 공부한 분들은 막대모양의 그람 음성균을 상상한다. 그리고 장 내에 서식하면서 당분을 분해할 수 있는 세균들이라는 것까지 짐작할 수 있다.
“불가리아에서 발견한 막대모양의 젖산균”: 발효 음료 중에 “불가리스”라는 이름은 우유를 젖산 발효하는 젖산균인 Lactobacillus bulgaricus의 학명에서 따 온 것이다. ‘Lacto’ 는 젖산 ‘bacillus’는 막대형, ‘bulgaricus’는 불가리아에서 발견한 균이라는 의미가 된다. 최근에 유전자 서열 조사를 해보니, Dr. delbrueck이라는 유명한 미생물학자의 이름을 따서 지은 젖산균인 Lactobacillus delbrueckii 의 아종이라는게 밝혀져서 지금은 Lactobacillus delbrueckii subsp. Bulgaricus 라고 부른다.
“당분을 좋아하는 곰팡이”: 맥주와 와인을 발효하고 빵을 부풀리는데 쓰이는 효모는 Saccharomyces cerevisiae라는 이름을 가졌다. Saccharomyces 의 ‘Sacchar-’ 는 라틴어로 당분, ‘myces’는 곰팡이의 의미이다. “당분을 좋아하는 곰팡이”가 이 녀석의 학명이다. Saccharomyces속에도 당분을 이용해서 발효를 하는 다양한 종의 효모들이 포함된다. 잘 익은 포도에 하얗게 앉은 것은 당분과 당분을 좋아하는 곰팡이들이다.
“하얗고 하얀 곰팡이”: 내가 연구하는 곰팡이의 이름은 Candida albicans, 라틴어로 “하얗고 하얀”이라는 뜻이다. 이 곰팡이는 입 속이나 내장, 생식기 주변에 사는 녀석인데, 우리의 면역력이 약해지면 왕성하게 자라서 “구강 아구창”, “질염” 등을 일으킨다. 감염된 자리가 하얀색의 반점처럼 보여서 ‘하얗고 하얀’ 곰팡이라는 이름이 붙었나 보다.
동물들의 이름도 마찬가지이다.
“과즙을 사랑하는 벌레”: 잘 익은 포도나 바나나 주위를 배회하는 초파리들을 한 범주에 묶어서 우리는 Drosophila 속이라고 부른다. ‘Droso’는 과즙( dew), ‘phil’a는 사랑하는 (loving), “과즙을 사랑하는” 생물이라는 뜻이다. 이 범주에는 우리가 실험실에서 많이 이용하는 D. melanogaster, D. erecta 등을 포함한 다양한 초파리 종들이 포함된다. “우아한 막대모양 벌레”: Craig Mello 박사와 그의 친구들에게 노벨상을 안겨 준 Caenorhabditis elegans라는 생물이 있다. 나는 아직도 ‘Caenorhabditis’ 를 읽으려면 발음이 꼬인다. 그래서 간단하게 C. elegans라고 부르면 참 우아한 느낌이 난다. ‘caeno-’ 는 요즘 (recent) , ‘rhabditis’는 막대모양으로 생긴 (rod-like), ‘elegans’ 우아한, 그럼 “막대모양의 우아한” 동물 정도? 우리 나라에서는 “예쁜꼬마선충”이라고 귀엽게 불린다. 정말 귀엽고 우아하게 보이나..다시 사진을 들여다 보게 하는 이름이다. 예쁜 꼬마 선충 (C. elegans), 정말 우아하지 않은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Caenorhabditis_elegans>
우리의 이름은 Homo sapiens, “지혜로운 사람”,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부르기에 좀 낯뜨겁기도 하지만, 어쨌든 우리도 학명을 가진 생물의 범주에 들어 있다.
물론 이름을 아는 것으로 학습의 큰 의미를 두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리차드 페인만의 말처럼 "어떤 대상의 이름을 아는 것과, 대상을 아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특히 생물학을 공부할 때 수박 겉핥기 식으로 대상의 이름이나 개념을 외우는 것은 실제 생명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배운 주입식 교육은 큰 감동을 주거나 궁금증을 유발하지 못 하고 생물학을 암기할 게 너무 많은 지루한 과목으로 밀어 놓았던 것 같다.
생물의 이름은 단순한 호칭 뿐 아니라, 그들의 생물학적 정체성에 대한 깊은 의미와 역사를 담고 있다. 그들의 생김새, 생활방식, 그리고 유전자 구조까지 조사해서 고유의 특징을 토대로 범주화하고 붙인 진짜 이름이다. 그래서 학명에 새겨진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서 그들을 알아가는 배움이 시작된다. 어떤 생물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거나, 신기한 생물을 우연히 접하게 된다면 먼저 그들의 진짜 이름, 학명을 한 번 찾아 보면 어떨까? 그들의 긴 이름을 더듬어가면서, 왜 그들에게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따라가 보는 색다른 생물학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의 [꽃] 중에서
| 박현숙 (California State Univ. LA) "미생물학자, '공부해서 남 주기’를 모토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합니다. 생명현상을 들여보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적어봅니다. 그들의 삶은, 그리고 우리의 삶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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