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기억, 그때의 기쁨
이제 바야흐로 감염병의 공포에서 벗어나 봄을 맞이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WHO(세계 보건 기구)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유행)에서
엔데믹(감염병 주기적 유행)으로 선언 했고(2023년 5월 5일, 세계보건기구총회),
우리나라 역시 6월 1일 기준으로 확진자에게 7일 ‘의무 격리’에서 5일 ‘격리 권고’로 완화하는 조치를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그동안 우리의 삶을 힘들게 했던 바이러스가
이제는 독감처럼 관리되는 수준으로 내려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마스크 의무 착용,
4인 이상 집합 금지,
10시 이후 영업 종료 등의 규정과 함께
백신 접종자만 가게 입장이 가능했던 시절을 생각해 보면
지금은 그런게 있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너무나 달라진 모습을 피부로 체감하게 됩니다.
저는 이러한 모습을 보며 지난 3년 4개월간 인류가 바이러스로 인해
가장 힘들었던 점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감염에 대한 두려움,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에서 오는 불안과 우울,
경제적 활동의 어려움 등 아마도 이러한 것들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러한 어려움들은 비단 신앙이 없는 이들만이 아니라 신앙이 있는 이들도 똑같이 처했을 상황이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신앙인들도 한 사회에서 같은 활동을 하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비대면으로 모임을 하거나 공동체 미사가 중단되었을 때
텔레비전으로 미사를 대신 드리던 모습들이 바로 그러합니다.
그런데 저는 근본적으로 신앙인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점은 이러한 것들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손으로 직접 받고 입으로 모실 수 없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평소엔 언제든 성당에 가서 성체를 모실 수 있었지만,
인원수 제한에 걸리거나 감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느 순간 성체를 모시는 기쁨은
우리 마음에서 서서히 멀어져 가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리모컨만 누르면 미사를 드릴 수 있다는 편리함에 취해
공동체 미사가 재개되었어도 성당에 오는 것을 꺼리는 모습을 보며,
신앙인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집 밖으로 나가는 것,
그 자체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교황님께서 공동체 미사가 재개되었을 때 쯤,
더 이상 텔레비전으로 미사를 드리지 말라고 강조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텔레비전으로 드리는 미사는 그 성격상 병중에 있어서 거동이 불편하거나,
오지에 살고 있어 사제가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어느새 건강한 사람마저 편리하다는 이유로 미사를 시청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텔레비전으로 드리는 미사는 궁극적으로 성체를 직접 받아 모실 수 없다는 중대한 결함이 있고,
이 말은 성체를 모실 때의 기쁨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교황님께서는 성당으로 가서 성체를 모실 것을 강조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봄이 오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 우리가 잊고 있었던 기쁨, 성체를 받아 모셨던 그 기쁨을 되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첫영성체 때 벅찬 감정으로 성체를 모셨던 기쁨,
처음으로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셨던 그때의 기억,
그때의 기쁨을 되찾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예수님께서는 나의 구원을 위해 빵의 형상으로 다가오십니다.
이제는 내 손을 펴서 예수님의 몸을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 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이영민 요한사도 신부 심곡본동 본당 보좌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주보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