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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줄로 쓰는 시
― 김종겸 시집 도레미파솔라시도
안현심(시인·문학평론가)
1.
김종겸 시인은 시 「방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이방인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얼마나 믿음이 강하면 하나님의 언어로 기도를 할까. 나도 하늘에 올려 보낼 소리를 찾느라 끄적거려 보고 읽어보아도 방언은커녕 목멘 소리만 나온다. 나만의 절절한 시는 언제 나올 것이냐.”
나만의 소리, 나만의 색깔을 지닌 시를 쓰는 것, 이것은 모든 시인의 소망일 것이다. 지금까지 읊어진 노래가 아닌 나만의 가사, 나만의 음색을 지닌 시를 찾기 위해 자나 깨나 고투하는 것이 시인이다. 이러한 고투는 김종겸 시인도 비켜가지 않은 것이다.
김종겸 시인은 공사현장에서 몸 부려 일하는 노동자이다. 먼지 풀썩이는 현장을 누비는 만큼 그에게 시는 시간적・정신적으로 손잡고 가기 만만찮은 존재이다. 하지만 시의 촉수를 거두지 않은 채 육화된 시어로 직조한 그의 시는 가열찬 노동현장을 생생하게 대변한다. 때로는 너무 아프지만, 그 아픔은 미적 언어를 입고 생경한 감동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시작(詩作)한 시간이 길고, 치열하게 노력한 만큼 김종겸 시인의 작품세계는 종횡무진 다채롭다. 제한된 지면에 광활한 시세계를 담아내기 어려웠지만, 나름대로 굵은 줄기를 잡아 읽어가기로 한다.
2.
김종겸은 일찍이 ‘젊은 시’ 동인으로 활동하며 시창작의 열정을 불태웠었다. 스무 살 초반의 시인 지망생이 동인들과 함께 찾아와 문학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삼십여 년이 지나 다시 만났지만, 삶의 현장을 누비느라 그동안 시를 놓았었다고 한다. 시는 한번 앓으면 나을 수 없는 지병과도 같은 것, 어찌 아주 잊어버릴 수 있었겠는가. 김종겸의 열정은 다시 불타오르기에 이른다.
잡풀이 우거진 마당
허리만큼 자란 개망초가 마당을 휘돌아
맨발로 달려 나온다
마당가 풀 속에 듬성듬성
댕기머리를 동여맨 봉숭아가
보조개 설핏 머금은 누님같이
이제 오냐고, 기다렸노라고 반겨준다
다시는 오지 않겠노라 묻어둔 기억들이
숙제처럼 쌓여 서릿발 같은 아픔을 감추는데
아랫배에 힘주고 뜰팡에 서는 내게
처마 밑 거미가 달려들 기세다
해바라기 대궁이 썩어들던 지긋지긋한 가난이
탱자나무 가시로 일어서는 뒤뜰
감나무는 무심한 듯
부모 얼굴 닮은 나를 보고
서러움에 받쳐 얼굴이 붉다
― 「빈집」 전문
시인은 특히 유년의 공간에 영혼을 저당 잡힌 사람이다. 이때의 유년은 생기발랄하고 풍요로운 게 아니라 허기지고, 쓸쓸한 눈동자를 지니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한 영혼에 대한 연민이 시를 쓰게 하는 원천이 되는 것이다. 결핍이 클수록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애를 쓰게 되고, 그러한 자화상을 들여다보다가 연민이 싹트는 지점에서 시가 탄생하는 것이다. 시인이 자신의 생가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심리 때문이다.
생가를 찾아가면 허기진 가슴이 채워질 것만 같았는데, 가난한 마당을 뒹굴던 혈육은 온데간데없고, 더 큰 슬픔만 밀려온다. 개망초 우거진 마당에서 “듬성듬성/ 댕기머리를 동여맨 봉숭아가” 누님인 듯 반겨줄 뿐이다. 아픈 기억을 누른 채 “아랫배에 힘주고” 올라서는 뜰팡, 처마 밑 거미가 왜 이제 오느냐며 달려들 기세다. “해바라기 대궁”마저 “썩어들던 지긋지긋한 가난이/ 탱자나무 가시로 일어서는 뒤뜰”에서 “부모 얼굴 닮은 나를 보고” 감나무가 눈시울을 붉힌다. 아무리 부인해도 내 몸엔 이들의 유전자가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김종겸 시인이 본격적인 시세계로 들어서기 위한 관문과도 같은 성격을 지닌다. 작품성을 따지기에 앞서 김종겸이란 시인을 잉태하고 길러낸 자궁이기에 간과할 수가 없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홀딱 벗고 뛰어놀던 다섯 살의 어느 칠월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올라가셨다
아버지가 내 입에 사탕을 물려준 건
초등학교 여름방학
“맴맴맴맴 매미 소리가 즐겁게 퍼질 때 성경학교 기다리는 곳”
그곳에서 아버지를 처음 불러봤다
사탕을 주시는 아버지가
거기 계셨다
― 「아버지」 전문
김종겸 시인의 결핍의식은 “홀딱 벗고 뛰어놀던 다섯 살의 어느 칠월”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올라”간 이후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아버지의 존재를 체감하지 못하고 자라다가 “아버지가 내 입에 사탕을 물려준 건/ 초등학교 여름방학 맴맴맴맴 매미 소리가 즐겁게 퍼질 때 성경학교”에서다. “사탕을 주시는 아버지가/ 거기 계셨”던 것이다.
시 「아버지」는 교회에서 부르는 ‘하나님 아버지’와 실제 아버지의 의미를 교차적으로 오가며 아릿한 감동을 불러온다. 시인은 교회에서 ‘아버지’라는 호칭을 마음껏 불러보고, 사탕도 얻어먹으며 아버지의 큰사랑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부존재에 의한 결핍의식이 시를 쓰도록 추동했을 것이라는 측면에서 이 작품 역시 김종겸이 시인이 되는 데 중요한 지점을 차지한다고 하겠다.
장롱 위의 구부정한 지구본을 꺼내
어깨에 앉은 먼지를 닦습니다
거꾸로 빙빙 돌리며 닦다가
새침해진 지구를 바라봅니다
지구도 나를 바라봅니다
아침보다 빨리 저녁이 오고
해보다 달이 먼저 뜹니다
겨울 다음에 가을이 오고
여름 다음에 봄이 오나 봅니다
꽃이 핍니다
조팝나무꽃이 언덕에 무리 지어 피었습니다
어머님과 형님이 환하게 웃습니다
그토록 쥐고 다니던 유년의 돌멩이 하나가 태평양에 뚝 떨어집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어지럽습니다
― 「유년의 돌멩이」 전문
시인은 어느 날 “장롱 위의 구부정한 지구본을 꺼내/ 어깨에 앉은 먼지를 닦”는다. “거꾸로 빙빙 돌리며 닦다가/ 새침해진 지구를 바라”보는데, 지구는 왜 새침해졌을까? 그것은 아마도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도록 거꾸로 돌리며 닦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구본을 거꾸로 돌렸더니 “아침보다 빨리 저녁이 오고/ 해보다 달이 먼저” 뜨는가 하면, 계절도 거꾸로 돌아 “여름 다음에 봄이” 와버린 듯, 돌아가신 어머니와 형님이 조팝나무꽃으로 피어 환하게 웃는다. 마지막 연의 “그토록 쥐고 다니던 유년의 돌멩이 하나가 태평양에 뚝 떨어”졌다는 형상화는 유년을 잃은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지구본을 거꾸로 돌렸더니 시공간조차 거꾸로 운행되었다는 상상력, 신선하고도 탁월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은 돌아가신 어머니와 형님을 소환해오기 위해 지구본을 거꾸로 돌리는 행위를 도입한 것이다. 어머니와 형님은 함께 살던 빈집과 함께 그리움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유년은 돌아갈 수 없는 신화적 공간이 되었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만나보고 싶은 간절함이 시의 행간에 숨 쉬고 있다.
3.
시인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지배당하는 사람, 빈틈없는 생활인이기보다는 천진스런 어린애의 심성을 지닌 사람이다. 그래서 시인은 성공한 기업인이 될 수 없고, 정치인도 될 수 없다. 만약 성공한 사업가가 시를 쓴다면, 심금을 울리지 못하는 가식적인 말잔치에 머물고 말 것이다. 시는 직접체험을 육화한 언어가 형상화되었을 때 그 공감력이 크기 때문이다.
옥타비오 파스는 ‘치명적 도약’을 거친 존재만이 참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치명적 도약이란, 죽음과 견줄 정도의 나락으로 떨어져본 자의 경험을 말한다.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다시 일어선 사람, 일어서서 긍정과 연민으로 세상을 끌어안는 사람만이 참 시를 쓸 수 있다. 거짓과 위선이 판치는 세상에서 참 시인이 존립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여보,
이거 한번 읽어 봐
아내에게 툭 던진 시
들릴 듯 말 듯 지나가는 바람 소리,
시에서 쌀이 나와 돈이 나와
목련 꽃잎이 주눅 들었다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펄쩍펄쩍 뛰는
저것들
― 「꽃샘추위」 전문
이와 같은 이유로 시인은 늘 고독하다. 일가친척은 물론 부모와 자식으로부터도 진정한 응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활인의 시각에서 볼 때, 시인의 행위는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 「꽃샘추위」에는 이와 같은 시인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 있다.
시인은 아내가 읽어주기를 바라며 시를 내밀어보지만, 스치는 바람처럼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시에서 쌀이 나와 돈이 나와” 한다. 그 말 한마디에 “목련 꽃잎”은 주눅이 들고 만다. 호기를 부려보았지만, 꽃샘추위를 만난 목련 꽃잎이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서 ‘목련 꽃잎’은 ‘시’를 은유하기도 하고, ‘시인’을 지칭하기도 한다. 마지막 연의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펄쩍펄쩍 뛰는/ 저것들”이란 형상화에는 박수 받지 못하면서도 시를 포기할 수 없는 몸부림이 동물적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다.
이 시를 이해하려면 표면적인 의미에 함몰되지 말아야 한다. 시는 본질적으로 역설과 아이러니를 지향하기 때문에 표현된 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문자 너머의 진실에 집중하다보면 아내의 은근한 사랑을 인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녁밥을 먹고 난 뒤 사과를 깎고 있는 아내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를 한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하는 사과 껍질은
두껍게 반쯤 잘려나가고
시시콜콜 화를 내는 것이 안쓰러워 무조건 사과를 한다
사과를 한 입 베어 문 아내의 혀에서 사과가 도르르 굴러 나왔다
이 도둑놈아
안절부절, 거실 바닥을 굴러다니던 사과가 주방으로 갔다
무엇이 대수냐는 듯 당차게 설거지를 한다
― 「갱년기」 전문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가서
술값만 계산하고 왔다
노래방비도 냈다
카드 영수증을 본 아내가 버럭 화를 내며
술을 처먹을 거면 처음부터 같이 먹든지
당신은 호구야
이 등신아
― 「수담 9」 일부
인용한 두 작품도 「꽃샘추위」와 동일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먼저 「갱년기」를 보면, “저녁밥을 먹고 난 뒤 사과를 깎고 있는 아내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하는 화자가 등장한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한 채 “시시콜콜 화를 내는 것이 안쓰러워 무조건 사과를” 한다. 이때, “사과를 한 입 베어 문 아내의 혀에서” 사과가 “도르르 굴러” 나오고, 굴러 나온 사과는 “이 도둑놈아”라는 호통으로 환유되기에 이른다. 어찌할 줄 모르고 거실 바닥을 굴러다니던 사과는 주방으로 가서 설거지를 하는데, 이때의 사과는 화자 자신이다.
이 시는 언어유희를 도입해 ‘사과’의 의미를 노련하게 주무른다. 제1연에서는 ‘과일’로서의 사과와 ‘잘못을 비는’ 사과가 변주되면서 이중적으로 읽히도록 장치해놓았다. 사과는 잘못을 비는 ‘행위’임과 동시에 잘못을 비는 ‘행위자’로 변이되기도 하면서 다양한 의미를 생성하고 있다.
「수담 9」는 저녁을 먹다가 친구들이 불러준 것이 고마워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가는 화자가 등장한다. 술값과 노래방비까지 내고 와서는 지청구 듣는 장면이 앞의 작품과 동일한 맥락을 점하며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져준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성보다 감성에 친화력을 느끼지만, 사회생활에 최적화된 가면을 쓴 채 본성을 감추고 살아간다. 따라서 독자들은 부끄러운 부분조차 진솔하게 표현한 시를 읽을 때 내 일인 듯 공감하는 것이다. 삶의 형태는 별반 차이가 없는 것, 화자와 같은 일을 경험했거나, 앞으로 경험할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고백인 듯 대리만족할 수밖에 없다.
4.
김종겸의 시는 노동현장을 소재로 삼거나 현장에서 깨달은 것을 주제삼아 쓴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시 「바비인형」은 그 중 대표작으로서 고된 노동 중에도 미적 시각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기계의 열기가 먼지를 모으고
소용돌이치는 블랙홀 속에서
햇빛이 파벽을 향해 시위를 당기는데
저만치 나자빠진 폐 콘크리트 덩어리를 바라보노라면
어느 행성의 보석이었나,
허공을 유영하던 파편에서 반짝 빛이 난 것도 같은데
길거리에서 건들거리는 양아치 같기도 해서
함부로 대드는 삽질이 서글프기만 하다
칼칼해지는 목에 그늘이 들고
가슴속 한숨 소리가 철커덩 발 앞에 떨어지면
그래도 이것들 환한 웃음소리가 자꾸만 밟혀
밖에 나가 맞서는 바람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들숨보다 날숨이 많아지는 날엔
벽 속에서 바비인형이 나오고
어린 새싹이 나온다.
― 「바비인형」 일부
시 「바비인형」의 앞부분은 다음과 같이 함축할 수 있다.
“해머드릴이 벽을 헤집고 있을 때, 금간 벽 사이에 둥지를 튼 푸른 이끼가 안 떨어지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풀썩 주저앉는다.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헉헉거리는 숨소리, 초점이 사정거리에서 벗어나면 시멘트 파편이 튕겨 올라 얼굴을 때린다. 망치로 내리쳐야 떨어지는 것들의 고집스러움도 잠시, 웅성거림 속에서 철근이 뽀얀 얼굴을 내밀면, 덜 깬 모습으로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하는 딸처럼 햇살이 자잘하게 부서진다.”
이 시의 백미는 “저만치 나자빠진 폐 콘크리트 덩어리를 바라보노라면/ 어느 행성의 보석이었나/ 허공을 유영하던 파편에서 반짝 빛이 난 것도 같은데”라고 형상화한 부분이다. 해머드릴과 망치로 떼어낸 폐 콘크리트는 형상이 험악할 것인데, 그것을 어느 행성의 보석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미적 안목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상화는 강한 긍정의 마음 혹은 연민의 눈을 지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마지막 연의 ‘들숨보다 날숨이 많은 날’은 떼어낸 폐 콘크리트가 많은 날, 즉 노동의 양이 많은 날을 의미한다. 그런 날은 “벽 속에서 바비인형이 나오고/ 어린 새싹이” 나온다고 형상화하고 있다. 바비인형은 눈이 크고 예쁜 인형인데, 어떻게 부서진 벽 속에서 인형이 나올까. 바비인형은 시멘트 벽 속에서 뽀얀 얼굴을 내미는 철근을 은유하기도 하고, 잠이 덜 깬 모습으로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하는 딸의 얼굴이기도 하며, 어느 행성의 보석을 환유하기도 한다.
또 ‘어린 새싹’은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므로, 부서지는 벽은 ‘폐허’가 아니라 ‘아름다운 재건’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김종겸 시인처럼 현장 일꾼이 아니면 절대로 끌어올 수 없는 상상력이라고 하겠다.
쉬었다가
다시
한 옥타브 올려 낮은음자리표와 높은음자리표의 경계에서 생수로 목청을 가다듬고,
좀 찢어지게
오르락내리락 다그치기도 하고,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더 높은 음으로 괴성도 질러보고,
벌써
일당을 허투루 보고 느슨해지는 해거름 녘
도레미파미레도 미파솔도레미
뒤죽박죽 여기저기서 괴성이 흘러나오는데, 악다구니의 음높이는 부르지 못한 노래가 되어 구부정하게 기울고 있다.
― 「도레미파솔라시도」 일부
리모델링을 순조롭게 끝내기 위해서는 음계를 밟아 올라가듯 차근차근 진행해야 하는데, 시 「도레미파솔라시도」는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도가 레가 되기 위해선 계단을 사뿐 오르면” 되고, “레가 미가 되기 위해선 엉덩이의 괄약근을 살며시 조이면” 되며, “미가 솔이 되기 위해선 아무 생각 안 하면” 되지만, “라가 시를 넘어” 높은 “도가 되기 위해선 가랑이를 벌리”고 “아이들만 생각하면” 된다는 형상화이다. 일을 시작할 때는 숨을 가다듬고 괄약근만 조이면 되지만, 노동 시간이 길어져 지쳐갈 때는 ‘아이들만 생각하면’ 된다는 형상화가 눈에 띈다. 힘든 노동을 견디게 하는 아이들, 결국 김종겸 시인도 가장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인지되는 부분이다.
높은 도에 이르면 잠시 쉬었다가 생수로 목청을 가다듬지만, 이후에는 좀 찢어지는 소리가 나오기도 하고, 뒤죽박죽 다그칠 뿐 아니라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괴성을 지르기도 한다. 그러다가 해거름엔 지치고 늘어져 음계가 뒤죽박죽되어버린다는 형상화이다.
음계의 법칙을 도입하여 아침부터 해거름까지의 노동현장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기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시멘트를 깨부수는 현장 이미지와 음악 이미지는 매우 상반적이지만, ‘낯설게 하기’ 기법처럼 서로 다른 이미지를 연관시킴으로써 신선함을 배가한 것이다. 이것은 시 「바비인형」에서 폐 콘크리트 속에서 바비인형이 나왔다고 표현한 것과 동일한 맥락의 기법이라고 하겠다.
한편, 시 「목수들」은 “수평선이 왜 촌구석으로 왔는지 생각하며 땀을 훔치는데/ 그 짠 것이 눈으로 뛰어 들어와/ 발을 헛디딘 심씨가 사다리에서 떨어지고” 만다. “아픈 곳은 없는지, 부러진 데는 없는지/ 생수 한 모금 먹이며 토끼눈을 뜨는데,/ 심씨는 수직과 수평이 만나는 구석으로 가더니/ 담배를 한 모금 빨며 씩 웃는다 심씨는 순간, 찰랑찰랑한 고향바다를 떠올렸을 것”이라고 형상화되고 있다.
건축 일을 할 때 목수들은 수직과 수평 맞추기를 원칙으로 여긴다. 수직과 수평을 추구하는 목공 원리에 착안하여 수평적인 고향바다의 출렁임을 도입하고, 방구석을 수평과 수직이 만나는 접점으로 형상화한 기법 역시 김종겸 시인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공사현장에서 몸으로 체득한 언어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바닥에 널브러진 자재 사이
땀범벅 된 몰골을 빤히 올려다보는 못,
찬찬히 안경 너머로 내려다보는데
비아냥거리듯 다리를 꼬고 누워 있는 꼴이
영락없는 양아치다
어디서 철거되어왔는지
어느 벽에서 액자를 모시다 왔는지
독기를 내뿜으며 반쯤 닳은 대가리를 들이대는데
어디서든 진득하니 잘 살라고
휘어진 다리를 망치로 툭툭 내리쳤더니
관절의 통증이 내 손가락으로 전해져온다
연장통에 집어넣는다,
머리통 세게 얻어맞더라도
다음에 제대로 한번 붙어보자고
― 「못」 일부
“인부들이 우르르 담배 피우러 나가”자 화자도 “아무렇게나 포개진 박스 더미에” 포개져 누워 있는데, “널브러진 자재 사이”에서 못이 “땀범벅 된 몰골을” 빤히 올려다본다. 안경 너머로 찬찬히 살펴보자 “비아냥거리듯 다리를 꼬고 누워 있는 꼴이/ 영락없는 양아치다”.
국어사전에서는 ‘양아치’를 ‘품행이 불량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리를 꼬고 있는 듯 휘어진 못을 보고 양아치라고 표현한 것은 못을 인격체로 인식해 대화를 시도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김종겸의 작품 속에서 공사현장에 동원된 연장들은 자주 의인화되는데, 그것은 같이 일하는 사물조차 동료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디에 박혀 있다가 철거되어 왔는지 모르지만, 다른 곳에 가서도 잘 살라면서 휘어진 다리를 잡아주는 것은 연민의 마음이 투사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또, 다음에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고 말한 것은 바로잡은 못을 다른 곳에 박아주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양아치 같은 못을 바로잡아 올바르게 쓰겠다는 형상화에서 타인이 잘 되기를 바라는 인간됨을 유추할 수 있다.
시인의 공구에 대한 깊은 관심은 「멍키 스패너」에서 다음과 같이 형상화하기에 이른다.
“믿음이 가는 수공구가 있다/ 연장통에서 우두머리인 멍키 스패너다”. “멍키 스패너는 수도꼭지를 교체할 때나/ 볼트를 조이고 풀 때도/ 제 몸으로 일한다”. “시켜도 할 줄 모르는 사람/ 할 줄 알면서도 안 하는 사람이 있는데/ 알아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 나는 오늘 그 사람과 술을 마신다/ 입맛에 짝짝 맞는”.
이 작품에서도 사물과 사람을 구별하지 않는 김종겸의 시세계를 엿볼 수 있다. 자동화된 세상에서 아날로그적으로 일하는 멍키 스패너, 느리지만 알아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시인은 좋아하고, 그런 사람과 술을 마시면 입맛이 짝짝 맞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짝꿍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이 외에도 시 「믹스커피」를 보면, 쉬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먼지 두어 점, 햇살 두어 점 넣어 후후 불어가며 보약처럼 믹스커피를 먹는다. 몸을 달래가며 먹는 믹스커피는 종이컵에 먹었을 때 제 맛이며, 그 달달함이 스며들면 다시금 망치를 잡고 오후를 내리친다고 언급하고 있다. 공사현장을 뛰는 사람만이 길어 올릴 수 있는 ‘날것이미지’는 김종겸을 특별한 시의 주인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인문학을 전공하고 책걸상에서 일하는 사람이 시를 잘 쓴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전 세계 문학도들의 필수 이론서 촛불의 시학, 공기의 꿈 등을 집필한 ‘가스통 바슐라르’도 물리학자였다. 문학과 거리가 먼 학문을 했거나 몸 부려 일하는 노동자는 생경한 상상력으로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바비인형’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김종겸은 매우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고 하겠다.
5.
시인은 대부분 사회의 중심에 들어서지 못한 채 변방을 서성이는 사람이다. 아니, 스스로 변방을 벗어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맑고 순수해야 하는 시세계의 특성상 소외된 것들 즉, 변방을 사랑하는 것이 시인이기 때문이다. 김종겸 시인 역시 “변방에는 차가운 바람이 쌩 지나가고/ 알고 지냈던 여인이 쓸쓸히 걷고 있을 것 같은 생각,/ 난 이 단어가 아련해서 좋다”고 언급한바 있다(「변방에서」).
이러한 변방의식은 ‘중고의식’으로 변이되기도 하는데, 시 「나도 중고다」에서는 이렇게 피력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중고투성이, 수돗물도 중고다. 햇빛도 중고다. 일억 오천만 킬로미터를 거쳐 오면서 각이 꺾여 식을 대로 식어버렸다. 하지만 낡은 것이 세상을 따뜻하게 한다. 낡은 바람이 앞산 참나무를 흔들어 깨우고, 들녘의 미루나무를 어루만지다가 내게로 와서 땀을 식혀준다.”
새것이 아닌 중고가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낡은 바람이 앞산 참나무를 흔들어 깨운다는 역설적 아이러니가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공사현장을 누비며 혼신을 다해 일하지만,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만 한데, 시인은 그 궁금증을 신발에게 묻는다. 여기, 거짓 없이 아름다운 시 한 편을 선보이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식당에 들어서는데
신발이 아무렇게나 포개져 있다
신발에 페인트가 묻어 있으면 페인트공이고
백시멘트가 묻어 있으면 타일공이며
본드가 묻어 있으면 도배공일 터,
목수의 신발은 그래도 깨끗하다며 들이미는데
굽이 닳은 운동화가 왜 건드리냐면서 콜록거린다
신발장에 들어가지 않고
낮은 곳에 엎드려 살겠노라며
이곳저곳 누비다가 여기까지 왔다
복사꽃 피면 쉴 수 있을까
정년이 한참 지난 신발에게 길을 물었다
― 「신발에게 물었다」 전문
김종겸 시인의 첫 시집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앞으로는 몸도 살펴가며, 더욱 아름다운 시세계를 열어가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