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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위임식
제 8장은 7장까지의 제사의 5대 종류 및 4대 제사 방법 등이 설명된 뒤의 제사를 직접 집전할 제사장에 관한 제사장 임명식 규례이다. 성막이 완료되고 제사장들이 업무를 수행할 준비가 되었을 때,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제사장으로서의 업무를 위임받는 과정을 보여준다. 제사장의 위임식은 권위나 특권을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봉사자로서 섬기는 책임을 맡는 것이며, 이에는 전문적 훈련과 교육과정이 필요된다.
위임식 예물과 예복 및 준비
1- 9: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과 그 의복과 관유와 속죄제의 수송아지와 수양 둘과 무교병 한 광주리를 이끌고 3 온 회중을 회막 문에 모으라 4 모세가 여호와꼐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하매 회중이 회막 문에 모인지지라 5 모세가 회중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행하라고 명하신 것이 이러하니라 하고 6 아론과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물로 그들을 씻기고 7 아론에게 속옷을 입히며 띠를 띠우고 겉옷을 입히며 에봇을 더하고 에봇의 기묘하게 짠 띠를 띠워서 에봇을 몸에 매고 8 흉패를 붙이고 흉패에 우림과 둠밈을 넣고 9 그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관 위 전면에 금패를 붙이니 곧 거룩한 관이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더라
위임식이란 아론과 그의 후손들이 제사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위임받는 의식이다. 위임식이 진행되는 장소는 회막이며, 참석자는 전 회중을 모은 상황에서 진행된다. 각 지파의 장로들이 앞에 서고 다른 백성들은 그들 뒤에 따랐다. 이는 이스라엘 종교의 가장 중요한 한 부분으로 공적이고 직접 참여하는 성격의 예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제사장직을 선택하셨음을 전 공동체가 인정하도록 하신 것이다.
위임식 준비는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했다고 반복적으로 설명 하고 있다(5,9, 13, 17,21 ,29,34,36; 9:6,7,10; 10:15), 위임식의 준비는 제사장 의복, 관유, 제물 등이었다. 위임식의 명령자는 하나님이시며, 집행자는 모세이다. 위임 대상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다. 그리고 증인은 이스라엘 온 회중이다. 이 위임식에 백성들이 참석하게 된 이유는 공개적 위임식을 통해 제사장직의 신적 권위와 기원을 가르치며, 백성들의 순종을 위한 것이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정결 예식 성의 착용 및 기름부음 등의 절차가 나와 있다. 제사장들은 혈통적으로 아론 자손이어야 했고(대하 31:16- 19) 신체가 무흠해야 되었다(레 21:17-23), 그들은 의식적으로 도덕적으로 정결하며 절제해야 되었다(레 10:8-10), 그들의 직임이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는 것이다(레 10:3; 21:17; 민 16:5), 그래서 그들은 거룩해야 되었다(출 28:36), 그들은 거룩한 직임에 엄숙히 구별되어야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아론의 아들들은 나답, 아비후, 앨르아살과 이다말이다. 아론과 이들은 물두멍의 물로 씻는 의식을 거행하고, 의복을 입는 의식, 기름부음을 받는 의식, 제사를 드리는 의식 등을 거쳤다.
공식 복장을 입기 전에 먼저 물로 몽 전체를 깨끗이 씻는 정결 예식을 거행했다. 자신이 씻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씻어주어야 했다. 이것은 중생의 상징이다(딛 3:5),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준비요 거룩한 사명감으로 충만한 예식이었다.
이것은 공개적인 의식이었다.
제사장의 의복은 흰 세마포 속옷, 청색 겉옷, 띠, 에봇, 흉패, 관, 금패 등 7 부분으로 되어 있었다. 그 후에는 기름 붓는 의식이었다. 옷을 입는 순서는 가운 같은 겉옷인 흰 세마포 속옷을 입힌다. 그 위에 띠를 띄우고 청색 겉옷을 입힌다. 청색 겉옷 위에 에봇을 덧입힌다. 에봇의 흉패를 붙이고 흉패에 우림과 둠밈을 넣고 그 머리에 흰 세마포 관을 씌우고 그 관 위전면에 금패를 부착했다(출 28장). 제사장 의복의 화려함은 그가 상징하는 제사장직의 거룩함과 위엄에 기인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요, 민족의 죄를 대속하는 직임을 맡았기에 그의 지위에 상응하는 화려함과 아름다운 옷이었다.
세마포 속옷이란 베로 싼 옷으로 띠를 띠었다(출 28:39). 탈무드에 의하면 띠는 장식된 끈으로 48 피트(14.4 미터)의 길이었다고 했다. 속옷 위에 겉옷을 입혔다. 이것은 에봇 아래 받쳐입는 청색실로 싼 옷인데 무릎 아래까지 내려가는 통으로 싼 옷으로 아래쪽에는 청색, 자색, 홍색실로 석류를 수놓고 금방울을 간격으로 달았다(출 28:31-34). “에봇 받침 겉옷" (출 28:31), 또는 “에 봇 받침 긴 옷" (출 39:22) 이 라고도 했다. 겉옷 위에는 에봇을 입었다. 이 에봇은 제사장의 대표적 의복이다. 이 말의 뭇은 “딱 맞는 옷” 이란 뜻인데, 겉옷 위에 입는 옷으로 소매 부분이 없는 긴 앞치마나 조끼 모양의 옷으로 양쪽 어깨에는 이음새와 양쪽 허리에는 에봇의 기묘하게 싼 띠가 있었다. 이것은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 및 가늘게 싼 베실 등 다섯 가지 색상의 실로 만들어 졌다. 이 옷은 고대근동의 제의에서 쓰였던 화려하게 장식된 황금 예복이었다.
에봇 위 가슴에다는 흉패가 있었는데, 한 뼘 정도(출 28:16)의 정사각형 모양의 양털과 세마포로 싼 천으로 여기에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12개의 보석이 박혀 있었다. 이로써 대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봉사할 때는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고 있다는 것과 그들을 그의 가슴에 품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늘 지성소의 예수님은 우리를 그분의 가슴에 품으시고 돌보시고 봉사하신다. 이 흉패 위에는 우림과 둠밈이라는 신탁 기구(돌 혹은 보석으로 만든 주사위 같은 것)들이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쓰였기 때문에 ‘판결 흉패’라고도 불리었다(출 28:30).
어떤 문제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했을 때 우립에 광채가 나면, 그것은 가하다는 뭇이고 둠밈에 구름이 덮이면 불가의 뜻이 있었다. 우림은 “빛" 이라는 뜻이고 둠밈은 “완전하다” 라는 의미로 알려져 있다(b. Yoma 73b). 70인역에는 우림과 둠빔을 “계시와 진리” 라고 설명하고 있다(출 28:26). 머리에는 “여호와께 성결" 이란 글이 쓰여진 관을 썼다.
제사장 의복은 여호와 예배의 미와 위엄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백성들 앞에 세우신 그들의 권위를 중거한다. 이 의복의 상징적 의미는 의복에다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은유에서 보여진다: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입고" (시 132:9), “구원의 옷” 을 입는다고 언급한다(사 61:10; 욥 29:14; 골 3:12; 살전 5:8).
여기서 제사장의 의복의 중요한 의미와 기능을 볼 수 있다.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흉패나, 어깨 위 견대의 두 개의 보석 호마노는(출 -28:9- 12)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어깨와 가슴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제물을 드린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 나아가 백성의 죄와 허물을 어깨에 메고 가슴에 안고서 하나님 앞에 중보하는 제사장적 기능을 나타낸다. 이것은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님께서 우리를 어깨에 메고 가슴에 품으시며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판결 흉패는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선지자적 의미를 보여준다. 그리고 앞이마에 붙은 “여호와께 성결 "이 쓰여진 금관을 썼다. 이 말은 대제사장은 하나님께 성결된 자이며, 거룩한 직무에 바쳐진 자임을 나타낸다. 이 관은 또한 왕적인 기능을 나타낸다. 이로써 대제사장 의복에는 그리스도 예수의 메시아의 직분 곧 제사장적 선지자적 그리고 왕적 특성을 보여 주고 있다.
계시록에는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띤”그리스도의 하늘 제사장 봉사를 묘사하고 있다(계 1:13). 이스라엘은 한 민족으로서 제사장 왕국으로 부름을 받았다(출 19:6).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도 그렇다(벧전 2:5; 계 1:6). 고대 이스라엘은 대제사장의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의복에서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인 신분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성도들도 우리의 가족 이웃 그리고 민족과 세계를 위한 사명을 인식하며, 그리스도를 본받고 따름으로써 영광스러운 신분으로 선교적 사명을 부여받고 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이것과 관련하여 상징적으로 설명하기를 성도들을 “믿음과 사랑의 흉패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살전 5:8)고 권면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골 3:12)으라고 말씀하신다.
기름부음 예식
10-13: 10 모세가 관유를 취하여 장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11 또 단에 일곱번 뿌리고 또 그 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12 또 관유로 아론의 머리에 부어 발라 거룩하게 하고 13 모세가 또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웠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더라
관유는 거룩한 종교의식을 위해서 만든 기름으로 감람유에 몰약, 육계, 창포, 계피 동의 향품을 섞었다(출 30:22-25). 이것으로 장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기구들에 발라 거룩하게 했다.
거룩하게 구별되어 하나님을 위해서만 사용되는 성물이 되었다. 이것은 영원히 세속적 용도로부터 분리되어 오직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주는 수단으로 하나님의 성령께서 사용하실 기구였다. 이 기구들은 관유를 바르는 순간부터 영원히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는 헌물을 받는 용도로만 사용되어야 했다. 그리고 번제단에 일곱 번 뿌렸다. 특별히 희생 제물을 불태워 제사드라는 장소의 거룩성과 완전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에는 아론의 머리에 관유를 부었다. 구약 전승은 아론의 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에 흐르고 옷깃까지 흘렀다고 했다(시 133:2). 이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말은 특수한 직무를 위하여 능력과 권위를 부여하는 의미가 있다(삼상 16:13; 사 61:1). 구약에서 대표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직임은 제사장(출 30:30), 선지자(왕상 19:16), 그리고 왕(삼상 9:16; 16:12; 왕상 1:34; 19:15) 이었다. 기름부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의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능력과 권위를 부여하시고 도우실 것이었다. 메시아란 말이 바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뭇인데, 이것의 헬라어는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켓세마네 동산에서 기름을 짜는 듯이 마치 피방울이 땀처럼 흘러내린 고뇌의 기도를 드리시고, 십자가에 달려 인간의 범죄와 악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을 받으시고 심장이 파열되고 찢어지고 상한 폼에서 피를 다 흘리셨다. 마치 죄인들의 모든 죄와 죄악에 대한 심판을 받아 인육을 기름 짜듯 고난을 받으셨다. 그러나 그분의 고난과 죽으심으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게 되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죄인들에게는 구원과 생명의 기름이 흘러 념치게 되는 메시아의 대속적 희생이었다. 또한 신약에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으셨다고 했마(행 10:38). 오늘날에도 성도들은 성령의 기름으로 인침을 받아야 한다(업 5:18). 아론의 아들들에게도 속옷을 입히고 띠를 띠우고 관을 씌웠다. 이는 겉옷, 에봇, 흉패, 금패 등은 대제사장의 의복이었다. 아론의 아들들도 기름부음을 받았다(출 40:15).
위임식 속죄제
14-17: 14 모세가 또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끌어오니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속죄제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매 15 모세가 잡고 그 피를 취하여 손가락으로 그 피를 단의 네 귀퉁이 뿔에 발라 단을 깨끗하게 하고 그 피는 단 밑에 쏟아 단을 속하 여 거룩하게 하고 16 또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꺼풀과 두 콩팥과 그 기름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르고 17 그 수송아지 곧 그 가죽과 고기와 똥은 진 밖에 불살랐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더라
정결 예식, 성의 착용식, 기름부음 의식이 마치고 위임식 제사가 진행된다. 먼저 속죄제를 드린다. 여기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는 우선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위임식이 끝나기 전이므로 모세가 여기서는 제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이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제사장직이 계승되고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제사와 정치가 완전 분리되는 정교 분리가 시작된다. 이것은 제사장의 속죄제 의식과 같다(레 4:3-12).
모세가 짐승의 피를 취하여 손가락으로 단의 네 귀등이 뿔에 발라 단을 깨끗하게 하였다. 여기서 단을 깨끗하게 했다. 이는 죄와 죄의 부정을 제거했다는 것이다. 죄를 짓다는 말은(Qal) 다른 의미에서 “죄를 제거하다, 정결케 하다, 속죄하다” 는 의미가 있다(Pi‘ eI). 죄라는 의식 자체가 사람으로 하여금 낙심하게 하고 절망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죄의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예수님 안에서 마련해 놓았음을 웅변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즉 죄와 함께 회개한 죄인을 위해서는 속죄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인은 예수님을 바라보며 죄용서와 구원의 은총을 믿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살게 된다. 죄인들은 죄의식과 함께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의 은총이 이미 이루어졌으며, 그분 안에서 믿음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도전할 의지를 가지게된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 의 은혜 인가! 누구든지 어떤 죄나, 어떤 환경에서도 낙담 또는 좌절하거나 포기할 이유나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에 의한 구원이 넉넉히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위임식 번제
18- 21: 18 또 번제의 수양을 드릴새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수양의 머리에 안수하매 19 모세가 잡아 그 피를 단 주위에 뿌리고 20 그 수양의 각을 뜨고 그 머리와 각뜬 것과 기름을 불사르고 21 물로 내장과 정갱이들을 씻고 그 수양의 전부를 단 위에 불사르니 이는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 드리는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는화제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더라
이것은 위임식 번제를 드리는 과정이다. 위임식 속죄제를 드린 다음 다시 번제를 드리는데 하나님께 속죄를 한 다음에는 전적인 헌신으로서의 번제를 드린 것으로 보인다. 보통 번제에는 여러 종류의 제물이 헌제자의 형편에 따라 허용되었지만, 제사장 위임식의 제물은 수양으로 규정되어 있다. 헌신과 충성을 다짐하는 제사이지만, 번제단에 피를 뿌리는 의식이 있다. 이것은 모든 제단 사역에는 희생 제물의 피가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것은 이미 1장의 번제에서 언급했듯이 인간이 대제사장이 되시고 희생 제물이 되시어 갈바리 십자가 상의 자신의 보혈의 공로로 인간을 위하여 중보하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위임식 화목제
22-29: 22 또 다른 수양 곧 위임식의 수양을 드릴새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수양의 머리에 안수하매 23 모세가 잡고 그 피를 취하여 아론의 오른 귓부리와 오른손 엄지 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바르고 24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 오른 귓부리와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그 피를 바르고 또 그 피를 단 주위에 뿌리고 25 그가 또 그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꺼풀과 두 콩팥과 기름과 우편 뒷다리를 취하고 26 여호와 앞 무교병 광주리에서 무교병 한개와 기름 섞은 떡 한개와 전병 한개를 취하여 그 기름 위에와 우편 뒷다리 위에 놓아 27 그 전부를 아론의 손과 그 아들들의 손에 두어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게 하고 28 모세가 그것을 그들의 손에서 취하여 단 윗 번제물 위에 불사르니 이는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 드리는 위임식 제사로 여호와께드리는 화제라 29 이에 모세가 그 가슴을 취하여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았으니 이는 위임식 수양의 모세의 응식이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더라
여기서는 위임식의 마지막 순서이다. 이것은 모세가 두 마리 수양을 준비한 것 중 한 마리는 번제로 드렸고, 나머지 다른 한 마리를 두리는 것인데, 위임식 수양이라고 언급한다(2절). 위임식을 위한 제사가 3가지로 나타난다. 먼저 속죄제를 드려 죄와 불결에 대한 속죄를 행하고 그 다음으로 번제를 드려 헌신과 충성을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위임제 수양을 화목제 희생으로 드려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표현했다. 제사장직 임명은 오직 하나님의 임명에 의한 것이다. 이처럼 제사의 반복적 행위를 통해 모형적 제사의 불완전성을 보게 된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단 번에 드린 희생은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음을 대조되어 이 해 할 수 있다(히 9:12).
위임식의 수양에서 위임이라는 말은 “손을 채우다"로 제사장의 손에 그가 거제로 드릴 제물을 놓는다는 뜻이다. 위임식에서 기름, 내장 및 간 꺼풀, 그리고 우편 뒷다리, 무교병 광주리에서 취한 떡과 전병 등을 거제로 드리기 위해서 아론의 손에 놓았다. 이것이 위임의 의미이며 위임식의 이미지이다. 아른의 손에 제물로 채운다는 것이다. 이것들을 요제로 삼아 단 위에 불사르어 향기로운 냄새로 하나님께 화제로 드렸다. 이 위임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봉사자들의 손에 그분께서 나누어주시기를 바라시는 것들로 채우신다는 의미이다. 위임식 수양의 피를 취해서 아론의 오른 윗부리와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발랐다. 이 부분들은 신체의 대표적 중요 기관들로 전 인격과 전 삶을 성별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것들에 피를 바른 사실은 모두 피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제사장은 항상 피의 능력 아래 있어야 함을 보여 준다. 오른 컷부리에 피를 바른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오른손 엄지 가락의 피 바름은 모든 행위가 올바르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히 10:7; 요 4:34). 오른발 엄지 가락의 피를 바름은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요 진리와 의를 행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이 예식은 오늘날의 성도가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할 자세를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십자가 보혈의 공로 밑에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White, Desire of Ages, 84) 성도의 삶 전체가 기도하며 성경을 연구하고 증인의 삶을 영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변하고 그분의 뜻에 합당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의롭게 행한다는 것이다. 또한 제물의 피를 제단에 다시 뿌렸다. 이미 언급했듯이 제사장은 피 공로로 인한 속죄의 은혜 아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속죄제의 피와 번제의 피도 역시 제단에 뿌렸다. 이에 더하여 위임식의 수양의 피도 뿌려졌다는 사실은 번제단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는 것이다. 일반 화목제의 경우 여러 기름과 콩팥 부분은 화제로 번제단에 불살랐고 우편 뒷다리 부분은 거제로 드려 제사장의 몫이 되게 했다. 그러나 위임식의 화목제는 기름과 콩팔, 그리고 우편 뒷다리에 무교병 한 개, 기름섞은 먹 한 개, 그리고 전병 한 개를 취하여 모두 요제로 드린후 번제단에 불살랐다.
칠일간의 위임식
30-36: 30 모세가 관유와 단 위의 피를 취하여 아론과 그 옷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에 뿌려서 아론과 그 옷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을 거룩하게 하고 31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이르되 내게 이미 명하시기를 아론과 그 아들들은 먹으라 하셨은즉 너희는 회막 문에서 그 고기를 삶아 위임식 광주리 안의 떡과 아울러 그 곳에서 먹고 32 고기와 떡의 나머지는 불사를지며 33 위임식은 칠일 동안 행하나니 위임식이 마치는 날까지 칠일 동안은 회막 문에 나가지 말라 34 오늘날 행한 것은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속하게 하시려고 명하신 것이니 35 너희는 칠 주야를 회막 문에 거하여 여호와의 부탁을 지키라 그리하면 사망을 면하리라 내가 이같이 명령을 받았느니라 36 아론과 그 아들들이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신 모든 일을 준행하니라
여기서는 관유와 피를 취하여 아론과 그의 아들들 및 그들의 옷에 뿌려 성별했다. 피를 뿌린 것은 피의 능력 곧 죄사함을 상징하는 것이고 하나님과의 화해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관유를 뿌렸다는 것은 그들이 거룩한 직임을 위하여 거룩한 능력과 자격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성직을 수행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성도들은 이와 같은 경험이 필요 된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피뿌림의 경험을 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주의 사업에 헌신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위임식이 완료되고 화목제의 희생 제육을 먹는순서이다. 위임식의 고기를 삶아 떡과 함께 회막 문에서 먹도록 명하셨다. 위엄식 광주리 안의 떡은 무교병, 기름 섞인 무교병, 그리고 기름 바른 무교전병 등이 있었는데 이중 한 개씩은 기념물로 화제로 드렸다. 광주리 안의 나머지 떡을 삶은 고기와 함께 거룩한 장소인 회막 플 내에서 먹었다. 고대근동에서는 언약/조약을 체결할 시에는 짐승을 쪼개고 그 사이를 계약 당사자가 지나가며 계약 이행을 엄숙히 서약하고 그 쪼갠 고기를 함께 먹는 회식이 있었다(창 15:9-11; 26:26-31).
이러한 행위 이면에는 만약 계약을 파괴할 때는 쪼개진 짐승처럼 영원히 남남이 되며 피차간에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뜻에서 위임식의 화목제 회식은 하나님 앞에 신실한 임무 수행에 대한 엄숙한 서약과 죄 용서에 대한 감사 및 제사장 상호간의 친목 및 화해의 식사였다.
위임식의 고기와 떡은 화목제의 감사제와 같이 당일에 먹어야 했다(7:15). “위임식 고기나 떡이 아침까지 남았으면 그것을 불에 사를지니 이는 거룩한즉 먹지 못할 지니라" (출 29:34). 그래서 제사장들이 당일에 먹다 남은 고기나 떡은 모두 불태워서 제사장 위임식이란 거룩한 목적만을 위해서 성별된 것이기에 타인이 먹거나(출 29:33)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수 없었다.
위임식은 칠일 동안 계속되었고 이 기간 동안 제사장들은 부정한 것이나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도록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물론 7이라는 숫자가 완전성을 의미하여 제사장 직임을 위해서 완전하고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린다는 의미도 있지만, 이 일주일 동안 그들은 연구와 명상 및 거룩한 의식을 반복하여 드리는(출 29:35-37) 연습과 훈련기간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봉사가 제의 전문가(cultic specialist)로서 숙달된 봉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은 성직에 종사하는 자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렇게 거룩한 사업을 위하여 특별 훈련기간이 설정되고 교육을 받는 것도 의미가 있음을 보여준다. 고대인들은 어떤 특별한 사건을 위해서는 일정기간을 통과의례 (rite of passage)로서 보내야 한다고 믿었다. 결혼식을 수일간 거행하고, 죽은 자를 위해서도 여러 날을 애곡하면서 어떤 신분의 변화를 위해서 시간을 보냈다. 이처럼 제사장직에의 임명은 그들 지파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 올 것이었기에 이러한 특별한 기간이 필요했다.
마지막 분부로 칠 주야를 회막 문에 거하여 여호와의 부탁(미쉬마렛트)을 지키라고 했다. 제사장들은 회막 입구에서 기거하며 하나님과 아론 제사장들 간의 거룩한 교제를 누렸다. 부탁이라는 말이 원래 “지키다” 는 의미에서 나온 것으로 “범하지 않도록 지키다” 라는 뜻이 있다. 여호와께서 지시하신 위임식의 명령을 철저하고도 완전하게 준수하라고 명하신다. 그래야만 사망을 면할 수 있다는 준엄한 지시였다. 위임식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바대로 완벽하게 준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거룩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세속과 분리된 완전한 헌신과 철저하고도 전문적인 사역을 요구하시는 모습을 보게 된다.
구속사관:
위임식은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이 가능함을 보여 주는 실물 교훈이다. 중보자인 제사장에 관련된 각종 법규는 바로 유한한 인간 중보자인 제사장을 넘어서 영원한 제사장이신 우리 구세주를 예표하고 있다.
구약 제사제도에서 대제사장 아론은 신약 교회의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분의 제사장 의복에서 12지파의 이름을 새긴 흉패와 어깨 위 견대의 두 개의 보석에서처럼 예수님은 죄인들을 그분의 어깨와 가슴에 안으시고 권고하신다. 이는 바로 죄인의 죄와 불결을 안으시고 하나님 앞에 중보하신다는 의미이다. 판결 흉패에서처럼 주님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심판의 대주재이시다. 금관의 “여호와께 성결” 이 쓰여졌던것처럼 주님은 하나님께 성결된 모본을 보여주셨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주어지신 바 된 분이시다(사 9:6-7). 주님은 계시록에서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띤” 영광스러운 제사장 의복을 입으신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계 1:13).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메시아인데 헬라어로는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자신이 켓세마네 동산에서 기름을 짜는 듯한 과정을 보여주셨다. 피방울이 땀처럼 흘러내리고 심장이 파열되시는 죄인들과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다 받으셨다. 십자가 상에서 죄인들을 위한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흘려 죽으심으로써 대속적 희생을 치르셨다. 이 대속적 죽음을 통해서 죄인들에게는 생명과 구원의 강수가 흘러 넘치게 되었다.
십자가 희생을 통해서 그분께서는 죄인을 위한 중보자로서의 영원한 자격을 얻으셨다. 구약의 성소제도에서는 매일 짐승의 피를 통한 속죄를 이루셨지만 그분의 속죄는 단번에 영원한 효험이 있는 속죄이었다(히 5:7; 9: 11-12). 주님께서 대제사장이 되신 것처럼 그분을 따르는 신자들은 개인적 제사장이 된다.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자신을 성결하게 해야한다(히 9:14; 13:12; 살전 5:23; 딤후 2:21; 딛 2:14). 신약 시대의 제사장적 역할은 개인의 생애에서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올리고(벧전 2:9), 중보기도를 드리며(엡 3:14-21; 약 5:19,20; 요일 5:16) 봉사하고 전도하는 것이다(마 28;19- 20). 예수님께서는 제사장적 봉사를 위해서 교회에 영적인 권위를 부여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주는 도구로 교회와 하늘 왕국의 거듭난 신자를 부르신다.
교훈과 적용
1. 성직에 봉사하고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신적 부르심과 권위가 있어야하고 또한 공적인 인정이 있어야 한다. 위임식의 근본 의미는 특권이나 권리가 아닌 봉사자로서의 책임을 의미한다.
2. 하나님 앞에 섬기기 위해서는 중생의 체험이 필수적이다. 마치 제사장의 정결 예식에서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씻어 주었듯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는 경험이되어야 한다.
3. 거룩한 직분에 합당한 의복과 예모를 갖추어야 한다. 대제사장의 관에 “여호와께 성결”이란 글이 쓰여졌던 것처럼 오늘날의 목회자들도 성결된 자로서 거룩한 직무에 바쳐진 자들이며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4. 에봇의 흉패와 견대의 두 보석(호마노)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졌던 것처럼 지성소의 예수님은 우리를 그분의 가슴에 품으시고 돌보시고 봉사하신다. 우리의 운명과 삶이 전적으로 그분의 수중에 있다.
5. 메시아와 그리스도라는 말은 모두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말인데, 성령의 능력으로 직임을 위해 능력과 자격을 부여받는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은 성령의 은혜와 능력으로 충만함을 입어야 한다.
6. 위임식에서 속죄제, 번제 및 화목제가 드려진 것은 먼저 속죄제를 드려 죄와 불결에 대한 속죄를 행하고 그 다음으로 번제를 드려 헌신과 충성을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위임제 수양을 화목제 희생으로 드려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평화를 표현했다. 제사장직 임명은 오직 하나님의 임명에 의한 것이다. 이처럼 제사의 반복적 행위를 통해 모형적 제사의 불완전성을 보게 된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에 드 린 희생은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히 9:12).
7. 신앙 생애 전체가 십자가의 피 공로 아래 있어야 하고, 성도의 삶 전체가 기도하며 성경을 연구하고 증인의 삶을 영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변하고 그분의 뜻에 합당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의롭게 행한다는 것이다.
8. 성도들은 보혈의 공로로 피뿌림의 경험을 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주의 사업에 헌신해야 한다.
9. 성직에 종사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사업에 전적으로 헌신해야 하고 맡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되어야 한다. 특히 영혼을 인도하고 구원하는 일에 있어 고도의 수양을 쌓아야 한다.
10. 성직에 임하는 자는 화목제의 요제를 골고루 분배하는 것처럼 공평무사하게 신자들을 대하여야 한다.
11. 성직에서 봉사하는 자는 섬기는 자로서 책임을 감당하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한다(벧전 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