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생전 / 이규보
[01~04]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국성*의 자는 중지(中之)*니, 주천 고을 사람이다. 어려서 서막*에게 사랑을 받아, 그가 이름과 자를 지어 주었다.
그의 먼 조상은 원래 온(溫)이라는 땅에서 살았다. 농사를 지어서 넉넉하게 먹고살았는데 정나라가 주나라를 칠 때 포로가 되었다가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여 그 자손들은 간혹 정나라에 흩어져 살기도 했다. 국성의 증조부는 그 이름이 역사에 실려 있지도 않다가 조부 모(牟)가 주천으로 이사하여 눌러살면서 드디어 주천 고을 사람이 되었다. 아비 차(醝)에 이르러 비로소 벼슬을 하였다. 차는 평원 독우(督郵)*가 되어 사농경(司農卿)* 곡 씨의 딸과 결혼해서 성을 낳았다.
성은 어려서부터 도량이 넓었다. 손님들이 그 아비를 보러 왔다가도 성을 유심히 보고 귀여워했다. 손님들은 말했다.
“이 아이의 마음과 도량이 몹시 크고 넓어서 출렁거리고 넘실거려 마치 만경(萬頃)의 물결과도 같소. 더 맑게 하려 해도 맑아지지 않고, 흔들어도 더 흐려지지 않소. 그러니 그대와 이야기하느니보다는 차라리 성과 함께 즐기는 것이 낫겠소.”
성은 자라서 중산(中山)의 유영*, 심양(瀋陽)의 도잠*과 친구가 되었다. 이 두 사람은 말했다.
“단 하루라도 국성을 만나지 않으면 마음속에 비루하고 이상한 생각이 싹튼다.”
이들은 성과 만나기만 하면 며칠 동안 모든 일들을 잊고 마음으로 취하고야 헤어지는 것이었다.
국가에서 성에게 조구연을 시켰지만 부임하지 않았다. 또 청주종사로 불러, 공경들이 계속하여 그를 조정에 천거했다. 이에 임금은 조서를 내리고 공거(公車)를 보내어 불러서 보고 눈짓하며 말했다.
“저 사람이 바로 주천의 국생인가? 내 그대의 향기로운 이름을 들은 지 오래다.”
이보다 앞서 태사(太史)*가 임금께 아뢰었다.
“지금 주기성이 크게 빛을 냅니다.”
이렇게 아뢰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성이 도착하니 임금은 태사의 말을 생각하고 더욱 성을 기특하게 여겼다. 임금은 즉시 성에게 주객랑중(主客郞中)* 벼슬을 주고, 얼마 안 되어 국자좨주(國子祭酒)로 옮겨 예의사를 겸하게 했다.
이로부터 모든 조회의 잔치나 종묘의 제사·천식·진작의 예가 모두 임금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에 임금은 국성의 그릇이 믿음직하다 해서 승진시켜 재상으로 있게 하고 융숭한 대접을 했다. 출입할 때에도 교자를 탄 채로 대궐에 오르도록 하고, 이름을 부르지 않고 국선생이라 일컬었다. 혹 임금의 마음이 불쾌할 때라도 성이 들어와 뵙기만 하면 임금의 마음은 풀어져 웃곤 했다.
성이 사랑을 받는 것은 대체로 이와 같았다.
[중략 부분 줄거리] 성의 세 아들은 아비가 임금의 사랑을 받는 것을 믿고 방자하게 군다. 이에 모영은 임금에게 글을 올려 세 아들의 탄핵을 요구하고, 세 아들은 음독을 하여 죽는다. 성은 죗값으로 서인으로 폐해진다.
성이 벼슬을 그만두자 제(齊)* 고을과 격(鬲)* 마을 사이에는 도둑들이 떼 지어 일어났다. 이에 임금은 이 고을의 도둑들을 토벌하라는 명을 내렸다. 하지만 적임자가 쉽게 물색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성을 기용해서 원수로 삼아 토벌하도록 했다. 성은 부하 군사를 몹시 엄하게 통솔하면서도 모든 고생을 군사들과 같이했다. 수성(愁城)에 물을 대어 한 번 싸움에 이를 함락하고 나서 거기 장락판을 쌓고 회군하였다. 임금은 그 공로로 성을 상동후에 봉했다.
그 후 2년이 지났다. 성은 소를 올려 물러나기를 청했다.
[A] <“신은 본래 가난한 집 자식이옵니다. 어려서는 가난하고 천한 몸이라 이곳저곳으로 팔려 다니는 신세였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폐하를 뵙게 되자, 폐하께서는 마음을 터놓으시고 신을 받아들이셔서 빈천한 몸을 건져 주시고 강호의 모든 사람들과 같이 용납해 주셨습니다. 하오나 신은 일을 크게 하시는 데 더함이 없었고, 국가의 체면을 조금도 빛나게 하지 못했습니다. 저번에 제 몸을 삼가지 못한 탓으로 시골로 물러나 편안히 있었사온데, 비록 엷은 이슬은 거의 다 말랐사오나 그래도 요행히 남은 이슬방울이 있어, 감히 해와 달이 밝은 것을 기뻐하면서 다시금 찌꺼기와 티를 열어젖힐 수가 있었나이다. 또한 물이 그릇에 차면 엎어진다는 것은 모든 물건의 올바른 이치옵니다. 이제 신은 몸이 마르고 소변이 통하지 않는 병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사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명령을 내리시어 신으로 하여금 물러가 여생을 보내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나 임금은 이를 승낙하지 않고 중사(中使)를 보내어 송계, 창포 등의 약을 가지고 그 집에 가서 병을 돌봐 주게 했다. 성은 여러 번 글을 올려 이를 사양했다. 임금은 부득이 허락하여 마침내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그는 천수를 다하고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우는 현이다. 현은 즉 탁주다. 그는 벼슬이 2,000석(石)에 올랐다. 아들이 넷인데 익, 두, 앙, 남이다. 익은 색주, 두는 중양주, 앙은 막걸리, 남은 과주이다. 이들은 도화즙을 마셔 신선이 되는 법을 배웠다. 또 성의 조카들에 주, 만, 염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적(籍)을 평씨(萍氏)에게 소속시켰다.
사신(史臣)은 말한다.
[B] <국씨는 원래 대대로 내려오면서 농가 사람들이었다. 성이 유독 넉넉한 덕이 있고, 맑은 재주가 있어서 당시 임금의 심복이 되어 국가의 정사에까지 참여하고, 임금의 마음을 깨우쳐 주어 태평스러운 푸짐한 공을 이루었으니 장한 일이다. 그러나 임금의 사랑이 극도에 달하자 마침내 국가의 기강을 어지럽히고 화가 그 아들에게까지 미쳤다. 하지만 이런 일은 실상 그에게는 유감이 될 것이 없다 하겠다. 그는 만절(晩節)이 넉넉한 것을 알고 스스로 물러나 마침내 천수를 다하였다. 『주역』에 “기미를 보아서 일을 해 나간다.”라고 한 말이 있는데, 성이야말로 거의 여기에 가깝다 하겠다.>
*국성: 맑은 술을 의인화한 표현.
*중지: 곤드레만드레. 술에 취해 뻗은 모양.
*서막: 중국 위나라의 지독한 애주가.
*독우: 벼슬 이름.
*사농경: 농사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벼슬.
*유영: 중국 서진의 사상가.
*도잠: 중국 동진의 시인.
*태사: 천문과 역사를 맡은 직책.
*주객랑중: 손님을 맞이하는 일을 하는 벼슬.
*제: 배꼽을 뜻함.
*격: 가슴을 뜻함.
01. 윗글에 나타난 ‘성’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임금의 총애를 받으며 융숭한 대접을 받은 바 있다.
② 천수를 다하고 고향에서 조용히 세상을 하직하였다.
③ 도량이 넓고 성품이 쉽게 흔들리거나 변하지 않았다.
④ 임금의 마음이 불쾌할 때에 마음을 풀어 주기도 하였다.
⑤ 고을의 도둑들을 토벌한 공로로 승진하여 재상이 되었다.
02. <보기>를 참고할 때, 윗글에 대해 보인 반응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가전(假傳)은 전(傳)의 형식 중 하나로, 술, 대나무, 종이, 지팡이 등과 같은 사물을 의인화하여 교훈을 전달하고자 한 것이 특징이다. 가전은 인물의 가계 및 행적, 사신의 논평 등으로 구성되어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작가는 의인화된 사물에 대해 긍정적·부정적 측면을 다루는데, 이를 통해 바람직한 삶의 태도를 드러내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세상사나 삶의 태도를 풍자하였다. 실제 존재했던 지명이나 인명을 활용해 현실적 요소를 부각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①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성’의 일생에 관한 내용으로 서사를 구성하고 있군.
② 술을 ‘성’이라는 인물로 의인화해 신하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형상화하고 있군.
③ 공간적 배경을 중국으로 설정하여 사대주의(事大主義) 사상을 엄중하게 풍자하고 있군.
④ ‘유영’, ‘도잠’과 같은 실존 인명을 활용해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 아님을 드러내고 있군.
⑤ ‘성’의 가계와 행적을 제시한 후에 사신의 논평을 덧붙이는 순으로 서사를 전개하고 있군.
03. [A]에 대해 바르게 설명한 것은?
①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여 상대의 잘못된 언행을 문제 삼고 있다.
② 상황을 과장하여 상대의 제안이 실현 불가능함을 드러내고 있다.
③ 자신이 처한 상황을 들어 상대에게 요구하는 바를 간청하고 있다.
④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신의 행위가 정당함을 표현하고 있다.
⑤ 세상의 이치를 근거로 상대에게 닥칠 부정적 영향을 강조하고 있다.
04. [B]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외교에 능수능란했던 ‘성’의 모습에 대해 언급하며 긍정적인 면모를 칭송하고 있다.
② ‘성’이 임금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리다 탄핵당한 일은 당연한 귀결임을 언급하고 있다.
③ 임금의 심복이 되어 국가의 정사를 농단하다 자가당착에 빠진 ‘성’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④ 국가의 기강을 어지럽힌 ‘성’의 행적을 비판하며 ‘성’의 우유부단함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있다.
⑤ ‘성’으로 인한 폐해를 언급하면서도 ‘성’이 스스로 물러난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