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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가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허창수
나봇의 포도원과 세 사람
열왕기상 21 : 1 - 10
함양 안의면에 정갑연(79) 할머니가 염소를 키워서 모은 전 재산 1억 원을 안의 고등학교에 장학금으로 기부하였다는 뉴스가 지난 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방송사들이 그 할머니를 ‘염소 할머니’, 또는 ‘삐삐 할머니’(머리를 삐삐 소녀처럼 양 옆으로 묶었음)라고 부르며 보도를 하였습니다. 지난 9월 30일에는 안의 고등학교 교정에 ‘염소 할머니’ 송덕비를 세우고 제막식을 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모은 전 재산을 학생들을 위해 기부하므로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결혼은 했지만 남편은 일찍 죽고 하나 있는 딸도 어려서 병들어 죽었답니다. 그래서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이 산속에 움막을 짓고 혼자 염소를 키우며 사는 것을 방송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자신은 배우지 못한 일자무식으로 한 평생을 어렵게 살아 온 것이 한이 맺혀 먹는 것도 아끼고 열심히 염소를 키워 평생 모은 돈을 어려운 학생들에게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으로 기부한 것입니다. 가진자들에게 1억 원은 별것 아니겠지만 그 할머니에게는 자신의 전부인 것입니다. 전 재산을 기부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욕심이 왜 없겠습니까? 욕심이 있었기에 1억 원이란 돈을 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욕심에 끌렸다면 불행하게 될 수 있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으로 기부하므로 많은 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방송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고 당시 이명박 대통령도 비서를 보내어 할머니를 격려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신문사와 방송사들이 다투어 신문에 보도하고 다규멘타리로 방송을 하였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던 산중에 이제는 안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매일 같이 찾아오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외롭지 않게 남은 여생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약 그 돈을 쥐고 있다가 도적이나 강도의 위험도 있을 수 있고, 또 병들거나 죽을 때도 자신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심심찮게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남은 여생은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죽음도 장례식도 외롭지 않을 것 입니다. 바라는 것은 예수 믿는 학생들이 전도해서 구원받게 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얼마 전에 모친과 형을 죽이고 산속 깊은 곳에 시신을 버린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모친이 가진 10억 정도의 재산을 탐내어 자신의 모친과 형을 죽인 파렴치한 아들이 잡혔습니다. 재산 문제로 죽이고 죽는 불행한 사건들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것을 듣고 봅니다.
나봇의 포도원 때문에 세 사람의 죽음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포도원을 욕심낸 아합 왕과 왕의 권력을 이용해서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은 이세벨의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아합은 이스라엘의 왕들 중에 가장 악한 왕으로, 그리고 이세벨 역시 가장 사악한 왕후로 그 이름을 남긴 것입니다.
북한에 김일성 왕조의 왕궁은 평양에 금수산 궁전입니다. 지금 김일성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금수산 궁정의 넓이가 서울의 여의도의 네 배나 된답니다. 그리고 북한 전역에 경치 좋은 수십 군데나 별궁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곳은 김정일이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별궁도 있답니다. 커텐을 비롯해서 모든 장식품들과 가계 도구들은 수입품으로 최고로 좋은 것이지만 한해 한 번씩 바꾸는데 그 모든 것 하나도 밖으로 유출하지 않고 보안상 전부 소각 한답니다.
이스라엘의 왕 아합 왕궁은 사마리아에 있고 또 400km(약 100리) 정도 떨어진 이스르엘에 별궁을 건축하였습니다. 이스르엘은 평온 지역으로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 호화스러운 별궁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런데 별궁 바로 옆에 나봇의 포도원이 있었습니다. 정원을 넓히고 꾸미는데 나봇의 포도원이 필요했던가 봅니다. 그래서 아합은 나봇을 불러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밭(정원)을 삼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라고 하며 거절했습니다. 나봇이 포도원을 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왕은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왕을 본 왕후 이세벨이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라고 말하며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서 그까짓 포도원 하나를 마음대로 가질 수 없느냐는 핀잔을 하며 그 포도원을 내가 빼앗아 줄 터이니 왕은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세벨은 왕의 이름으로 편지를 쓰고 왕의 인장을 찍어 이스르엘의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냈습니다. 편지는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세우고 불량자 둘을 증인으로 해서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하게 하여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이세벨의 이러한 편지를 받은 이스르엘 장로들과 귀족들은 나봇을 재판하여 돌로 쳐 죽이고 이세벨에게 보고했습니다.
나봇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이세벨은 아합 왕에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라고 말했습니다. 왕은 곧 일어나 이스르엘로 내려가 포도원을 차지했습니다. 이세벨은 포도원을 빼앗으려고 막강한 왕권을 이용하였고 불량자 둘을 위증자로 세워 재판을 해서 나봇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나봇만 죽인 것이 아니라 상속자인 자녀들까지도 죽였습니다(왕하9:26).
나봇의 포도원을 주인 없는 것으로 만들어 빼앗았습니다. 포도원을 빼앗으므로 그들은 과연 행복했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다 지켜보셨습니다. 포도원을 가지므로 좋아 할 여유도 없이 즉시 하나님은 엘리야를 아합에게로 보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를 핥으리라”(19),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라”(21)고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세벨에게도 “여호와의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고 하셨느니라”(23) 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은 것으로 인해 엄청난 죄값을 치루게 되었습니다. 당시 들개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들개들은 매우 사나웠으며 짐승이나 사람들의 죽은 시체를 먹었습니다. 그래서 들개들에게 자신의 피를 핥게 한다는 것은 당시 히브리인들은 매우 불명예스러운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왕이 개들의 밥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저주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아합에게 전해진 말씀대로 아합은 비극적인 죽음을 당했습니다. 아람과의 전쟁에서 아람 사람이 무심코 당긴 화살에 맞아 부상을 당해서 전쟁터에서 나와 피하려고 했지만 전쟁이 맹렬하여 피할 수 없어 병거 가운데 붙들려 피를 흘리다 저녁 때 죽었습니다. 죽는 것도 단숨에 숨을 거두는 것은 행복한 죽음입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피를 흘리며 죽는 고통은 최악의 죽음입니다. 아합은 화살에 찔려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 병거에 고여 해가 질때 죽었습니다. 병거에 묻은 피를 못에 씻으니까 개들이 피를 핥았습니다(왕상22:34-38).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다 비참하게 죽었을 뿐 아니라 그 영혼도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불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 이세벨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세벨 역시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아합이 죽고 아들 요람이 왕이 되어야 하지만 병들어 왕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예후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라고 엘리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예후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아합의 집을 치라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라’고 하였습니다(왕하9:7).
이세벨은 이스르엘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왕궁에서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눈을 그리며 머리를 꾸미고 창에 앉아있는 이세벨을 예후가 보았습니다. 예후는 이세벨 옆에 있는 내시들에게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라고 말하니까 이세벨의 내시 둘이 예후를 내다봅니다. 내시 두 사람이 예후의 편이 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후는 그들에게 ‘이세벨을 내 던지라’고 말하니까 내시들은 즉시 이세벨을 밖으로 내 던졌습니다. 밖으로 던져진 이세벨은 담 벽락에 떨어져 죽었습니다. 이세벨의 피가 담과 말에 튀었습니다. 그때 들개들이 몰려와 이세벨의 살을 물어 뜯어 먹었습니다. 장사하기 위해 시체를 찾아도 이미 개들이 살을 먹었기 때문에 두골과 발과 손 외에는 찾지 못했습니다. 이세벨의 시체가 묻힌 토지는 거름밭이 되었습니다(왕하9:30-37).
북한에 이설주가 지난 날에 모란봉 악단원으로 활동을 하다가 김정은이의 눈에 들어 최고의 권력자의 부인이 되었습니다. 근간에 이설주가 활동했던 그 악단원들에서 약간의 잡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김정은과 이설주는 단장을 비롯해서 아홉 명의 단원을 2000여명이 지켜보는 광장에서 공개 총살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 사건과 유사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4, 15)고 말씀하셨습니다.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에 욕심에 끌려 무서운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욕심’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있습니다. 사실 욕심이 없다면 세상을 살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욕심에 끌려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욕심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일들이 오늘날에도 비일비재합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왕과 왕후로서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금식을 선포하였습니다. 당시 금식을 선포하는 것은 국가적인 큰 어려움이나 재앙이 있을 때 행한 관습이였습니다. 이세벨은 마치 큰 재앙이나 일어난 것처럼 백성들에게 금식을 하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봇을 잡아 재판석에 앉혀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 하였다’는 거짓 증언으로 누명을 둘러씌워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나봇은 포도원을 조상으로부터 받은 유업이기 때문에 율법에 기록된 말씀대로 팔거나 주는 것을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나봇은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율법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였습니다. 엘리사는 나봇을 ‘여호와의 종’(왕하9:7)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나봇이였습니다.
왕의 말 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더 좋은 포도원을 준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어쩌면 왕에게 포도원을 넘겨 주므로 해서 왕의 총애를 받을 수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불량자들의 거짓 증언에 누명을 둘러쓰고 죄수 아닌 죄수가 되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나봇에게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그림자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었지만 죄수가 되어 타락한 인간들에게 잡혀 거짓 증인들의 증언으로 죄를 둘러쓰고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나봇은 예수님처럼 죄없는 죄수가 되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하늘이 열리고 주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던 것처럼 나봇 역시 주께서 면류관을 들고 서신 주님을 바라보고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포도원 때문에 나봇과 아합, 그리고 이세벨 세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의 죽음이 같은 죽음이 아니였습니다. 의로운 죽음이 있고 악한 저주의 죽음이 있습니다. 나봇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하다 죽었기 때문에 의로운 죽음입니다. 순교입니다.
그러나 아합과 이세벨은 욕심의 노예가 되어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은 죄값으로 죽었습니다. 나봇은 불의에 굽히지 않는 삶을 살다가 악한 권력에 의하여 돌에 맞아 죽었지만 그 영혼은 구원받아 천국에서 영광을 받으며 영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합과 이세벨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 받아 죽었습니다. 그 영혼들은 지옥불 속에 고통을 받고 있을 것입니다. 죽은 시체마져도 들개들이 먹고 피를 핥아 먹는 저주의 죽음이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욕심에 끌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우리들은 아닙니까? 나봇처럼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는 것이라면 죽음이 와도 거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손해를 보아도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는 것은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면류관을 받아 쓸 수 있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신실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