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金宗吉, 1926 ~ 2017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본관은 의성(義城)[1], 본명은 김치규(金致逵)이다. '종길(宗吉)'은 그의 아호이다.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문〉이 입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성탄제》(1969), 《하회에서》(1977), 《황사 현상》(1986) 등이 있다. 대중들에게는 제7차 교육과정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성탄제라는 시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경북 안동의 유학자 집에 태워났으므로, 증조부로부터 漢文을 배우면서, 5세 때 漢詩를 지었다고 한다.
스스로 호를 석하(石霞)라고 지은 것은 안동 출신 시인 이육사가 북한산 자락의 수유동에 살 때 육사가 지은 시에서 따왔다고 하였다.
한국시인협회장과 고려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2017년 4월 1일에 노환에 따른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2세.
좀 더 상세히 보면
1926년 11월 5일 경상북도 안동군 길안면 지례동(現 안동시 임동면 지례리) 635번지에서 태어났다. 이후 보통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청송군 진보면으로 이주했고, 경상북도 대구부(現 대구광역시에서 대구사범을 1945년 3월에 졸업하고, 안동초교에 발령 받았다. 6개월 뒤에 혜화전문학교에 진학하여 양주동에게 국문학을 공부했다. 다시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고려대학교 졸업 후 대구공업고등학교 교사, 경북대학교 강사를 거쳐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부임해 1992년까지 재직했다.
경북대학교에 근무할 때는 청마와 가까이 지냈고, 고향이 같다 하여 6세 년상인 조지훈과도 가까이 지냈다.
시인으로서는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1947년 <문>이 입선되어 등단한 이래, 1969년 <성탄제>, 1977년 <하회에서>, 1986년 <황사 현상>을 펴냈고 1988년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작품
시〈성탄제〉: 극심한 고통으로 사경을 헤매는 어린 화자에게 도움을 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어른이 되어 깊이 회상하는 것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시〈고갯길〉: 아버지를 여읜 슬픔을 절제된 언어와 구체적인 이미지를 통해 형상화한
작품이다. 짦고 간결한 언어 표현과 서리를 뒤집어써 하얗게 우거진 마른 풀의 모습,
차가운 봄 날씨, 허허로운 솔바람 소리 등의 구체적 이미지를 통해 아버지를 잃은
화자의 슬픔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20세기 영시선(英詩選)’ ‘현대 영시 산책’과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등을 우리말로 옮겼고 김춘수와 박두진의 시를 영어로 번역해 서구에 알렸다.
특히 1987년 영국에서 출판된 ‘한국 한시 백선, 더디게 피는 국화’(Slow Chrysanthemums)는 신라의 최치원에서 근대의 황매천에 이르는 한시(漢詩) 100편을 선별하여 영역한 것으로 이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저술이다.
김종길 시의 특징
김종길의 시는 다른 대개의 이미지스트들이 경박한 모더니티에서 머물고 마는 데 비해 고전적인 품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명징한 이미지와 고전적 품격에서 비롯되는 정신적 염결성은 그의 시적 특징이다. 그의 시는 조만간 사라질 유한한 것들의 아름다움이 구성하는 세계와 이 세계 속에 순간적으로 존재하는 자아라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진다.
그는 세계와 자아의 대립적 긴장 가운데 균형을 유지하는 절제의 정신을 견지한다. 이러한 절제의 정신은 김종길의 고전적 품격의 기반이 되는 것으로서, 그의 시에서 시적 자아는 언제나 대상이나 감정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절제와 극기의 태도는 그의 시적 감수성 속에 한시적 전통, 혹은 유가적 정신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신처사가>나 <고고>에는 세속에 처하면서도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고 초연한 태도를 견지하는 정신이 드러난다. <고고>에서 시인이 말하는 ‘높이’는 어둠과 빛 사이의 긴장된 냉랑함이 가득한 시간에 세계내적 초월의 비전이 여는 정신의 높이이다. 세속에 거주하면서도 삶과 시가 격(格)을 벗어나는 것을 용인하지 않으며, 인내와 초연함으로 염결성의 미학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달리 부른다면 유가적 선비정신으로 일컬어질 수 있다.
김종길은 과작의 시인인데, 그의 시는 시인의 염결적 태도를 반영하듯 높은 완성도와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김종길의 시가 보여주는 예민한 이미지스트로서의 감각과 유가적 정신성의 조화는 한국 현대시가 가지는 득의의 부분이라 할 것이다. 영문학자이면서도 고전적 소양에 시 세계의 근원을 둔 김종길은 시론 또한 고전적 안정성과 균형감각을 지니고 있어 학문적 성과를 뚜렷하게 하고 있다.
김종길의 시
(권영민의 글)
해방 직후인 1947년에 시단에 등단한 후 정서적 균형을 지키면서 비교적 완결성이 높은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현대시론의 이로적 정립을 위해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그의 시는 명징한 이미지와 고전적 품격에 비롯되는 정신적 고고함을 드러낸다. 그의 첫 시집 ‘성탄제(1969)에 수록된 작품들을 보면 고전의 품격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 많다.
대개의 이미지스트들이 경박한 모더니티 추구에 만족하는데 비하여 언어의 절제와 졍서적 균형을 잘 맞추고 있다. 그의 시는 조만간 사라질 유한한 것들의 아름다움이 구성하는 긴장된 세계를 놓치지 않는다. 이 세계 속에 존재하는 자아의 형성을 대비시켰다. 세계와 자아의 대립적 긴장 가운데 균형을 유지하는 절제의 정신을 견지한다. 이러한 절제 정신은 그의 고전적 품격의 기반이며, 시적 자아는 언제나 대상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신처사가(新處士歌)는 세속에 물들지 않는 고고함을 보여준다. ’고고‘에서 말하는 ’높이‘는 어둠과 빛 사이의 긴장 속에서 현실을 초월하려는 정신의 높이이다. 이러한 정신은 유가적 선비 정신이라고 하겠다. 그의 시집 ’하회에서(1977)‘ ’황사현상(1986)등에 수록된 작품은 이미지스트의 세련된 감각과 균형을 자랑하고 있다. 그의 고전적 소양과 유가적 정신의 현대적 조화는 한국 현대시가 가지는 득의의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첫댓글 김종길 시인님은 제가 경북의 문화예술을 담당할 때...
몇 번 뵈옵던 분입니다. 그 분의 문학에 대한 열정은 참으로 대단하셨습니다...
임하댐이 생기면서 선생님의 집도 이전하게 되었는데 임하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이었습니다...
고가체험으로 활용하며 숙박체험을 운영하셨는데 지금도 후손들이 운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고가의 기운이 절말로 있는 듯 했습니다. 그 집의 동동주는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