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2년차.30대 중반에 들어 선 중견급 여가수 엄정화가 오랜만에 무대에 선다고 하는데도, 사 람들은“이번엔 얼마나 화끈한 무대를 보여줄까”라는 생각부터 한다. 그 기대에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엄정화는 이번에도‘섹시함을 코드로 한 볼거리’무대를 기획하고 있다.
뮤지컬 분위기로 건장한 남자들이 백댄서로 서고, 세계적인 디자이너 핼뮤트 랭의 의상을 입고 나온다. 디자인은 앨범 재킷만으로도 엿볼 수 있듯이 당연히 파격적이고 강렬하다.
조금 아쉬운 게 있다면 당분간 라디오에서만 만날 수 있다는 것. 제목이 무려 26자나 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의 개봉 즈음인 3월 초에나 TV에 출연할 예정이다.
지난해 드라마‘아내’와 영화 ‘싱글즈’로 연기자로서‘A+’급 평가를 받은 엄정화가‘본업’인 가수로 돌아와 최근 내놓은‘셀프 콘트롤(Self Control)’은 두장짜리 더블앨범이다.
한장은 TV무대에서 언제든지 부를 수 있는 기존 앨범 분위기이고, 나머지 한장은 클럽용이다.
엄정화가 관심을 두는 것은 마돈나가 상업적으로 성공시킨‘일렉트로니카’장르로 만든 후자다.
쉽게 말하자면 요즘 압구정동에서‘부티 나는’애들이 주말에 벌이는 파티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다.
친구이면서 현재 파리에서 공부하고 있는 전 베이시스 멤버 정재형이 유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타이틀곡‘이터너티(Eternity)’ 를 선사하고, 녹음을 총지휘했다.
“이태원이든 홍대앞이든 어디서나 공간만 마련된다면 공연할 수 있는 음악이에요.일본 클럽을 돌며 무대에 오를 계획이죠. 드라마나 스크린에서의 성공이 없었다면 이런 앨범을 내기가 어려웠을 거예요. 대중성을 얻기가 어려울지도 모르거든요.
사실 데뷔한 지 꽤 됐어도 상업적인 성공을 배제하고 내맘대로 하기가 어려웠는데 이제서야 가능하게 됐네요.” 엄정화는 요즘 마돈나의 음악을 대표하는 일렉트로니카에 심취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마돈나의 음악 행보와 비슷한 점이 많다. 말 그대로‘찢어지게’가난했던 과거도, 음악적인 평가보다는‘상업성’‘여성성’의 범위 내에서 언급 돼온 것도 닮았다.
12년간이나 아이돌스타, 보이 밴드 틈바구니에서 성공한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여가수였음에도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었다니…. 데뷔 7년 만에 집을 처음 장만해 몸이 약한 어머니와 두 손을 맞잡고 눈물을 펑펑 흘렸던 게 불과 5년 전이다.
스타 덤에 처음 올랐을 때 한 인터뷰에 서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먹고 살기가 힘들어 취미생활은 생각도 못했던 엄정화의 눈에는 대답 대신 눈물만 고였었다.
80만원 월급쟁이 합창단원이었다가 모 PD의“가수가 되면 81만원은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선뜻 음반계약을 맺었던 엄정화가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하고 싶은 음악’을 하게 됐다고 내놓은 음악이 일렉트로니카다. 80년대 초까지 클럽에서 가수의 꿈을 키우다 20년이 지나 마돈나가 선택했던 그 음악이다.
‘파티 음악’의 대명사 일렉트로니카는 멜로디나 가사보다는 전자음악적 감성을 실은 사운드를 중요시한다. 매우 기계적이며 비주얼과 스타일을 추구한다.
1970년대 디스코와 펑크를 바탕으로 독일과 영국에서 시작된 이 장르는 지금은 마돈나, U2 등 전 세계 주요 아티스트들이 채용하면서 록이나 팝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뉴 오더’‘프로디지’‘디팻시 모드’‘ATB’가 일렉트로니카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다.
90년대 중후반 국내에서 유행했던 레이브도 일렉트로니카의 소장르다.
미국의 슈퍼밴드 펫숍보이스는 일렉트로니카 장르에서 가장 성공한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하우스 계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