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는 작으나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 “사라 할머니”(수정)
카투만두에서 짚으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아씨스!
해발 1,700미터의 산골 마을에서 사라 할머니를 만났다. 그는 삭개오처럼 키가 작고 몸집이 왜소하고 검정 굵은 테의 안경을 쓴 눈에 띄지 않는 초라한 노인이었다. 그러나 허리가 꼿꼿하고 눈빛이 살아 있고 자기 생각을 찬찬히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내내 나는 부끄러움과 부러움, 감사와 경이로 가슴이 뜨거웠다.
그는 내가 살고 싶어 하는 단순하고 담백하고 청빈한 삶의 여유와 자유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살고 싶어하는 세속에 거주하는 수도자처럼 살면서 자신의 삶의 가치, 고귀함을 전혀 모른다.
단순한 그의 삶은 환경론자들이 부르짖는 오염 제로의 친환경적 삶이었다. 불편하고 투박한 그의 생활은 지구온난화와 전혀 무관한 친 자연적인 생활이었다. 미식과 거리가 먼 거친 그의 식생활은 참으로 원시적이었다. 그는 문맹이지만 소유와 소비로 성공과 행복지수를 말하는 물질만능시대로부터 자유로워진 존재였다. 그는 21세기 과학과 문명의 시대에 히말라야 절벽에 핀 한 송이 꽃이었다. 누구도 쳐다보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 절벽에 핀 하늘 꽃!
사람들은 그를 불쌍한 독거노인으로, 가난한 빈민으로, 아무 것도 아닌 초라한 노인네로 취급하였으나 내 눈에 그는 성인(聖人)이었다. 아씨시의 성 프랜시스와 다름없는 성자(聖者)였다.
그는 십대에 일찍이 복음을 받아들였고 예수 이름 때문에 욕을 먹고 박해를 받아 고향을 떠나면서 까지 믿음을 지켰다.
그는 믿음 때문에 개종한 자가 겪는 온갖 배척과 박탈과 소외로 말미암아 외롭고 가난하게 살면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인생의 굽이굽이에서 믿음 때문에 시시각각 다가오는 고난과 고통을 겪으며 하나님 나라에의 소망을 잃지 않았다.
그는 자기를 핍박한 고향의 친인척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고향으로 돌아와서 기도제단을 쌓으며 모두의 구원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있었다.
그는 바울 사도가 말한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 였다.
나는 쌀을 전달한 후에 메시지를 전하고 기도하려던 마음을 접고 가지고 간 기도문을 함께 읽었다.
믿음으로 가난과 고난, 고독과 고통을 이긴 믿음의 승리자에게 무엇을 가르치겠는가?
그의 집은 산자락에 간신히 기대어 지어진 양철과 대나무를 촘촘히 엮어서 지은 이간의 긴 네모 형태의 집이다.
길에 면한 양철 대문은 그대로 부엌문이기도 하다. 부엌입구에 흙벽돌에 흙을 발라서 만든 작은 화덕이 땅에 붙어 있다. 화덕 좌측으로 이보 정도 거리에 슬레이트와 짚으로 엮어서 두른 벽이 산비탈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고 우측은 대나무 기둥에 함석으로 반만 막은 침실이 있다. 화덕에서 두어 걸음 나간 구석에는 화덕에 사용할 나무 삭정이와 옥수수 알을 털은 자루가 가득하였다. 대나무 기둥을 세우고 반을 막은 침실 공간에는 쇠로 만든 그물 침대와 얇은 이불과 베개가 놓여 있고 바닥은 아무 것도 깔지 않은 흙바닥 그대로였다. 침실 반대편 공간에는 옷가지들과 작은 살림들이 어설프게 자리 잡고 있었다.
집안을 둘러 본 후 사라 할머니와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문) 가족은 몇 사람인지요?
답) 남편은 일찍 죽고 딸 하나가 있는데 먼 곳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문) 연세가 얼마나 되는지요?
답) 86세요.
문) 아씨스 마을에서는 언제부터 사셨는지요?
답) 아씨스는 네 고향입니다. 제가 십대에 선교사에게 복음을 듣고 개종을 했어요. 제가 예수 를 믿는데다 마을에서 가장 낮은 계급이었으므로 천대와 핍박을 많이 받았어요. 놀림과 왕 따가 일쑤였고 마을에 문제가 생기면 제가 예수 믿어서 마을 수호신이 노해서 그런다며 저 를 마구 구타하였습니다.
그러는 중에 같은 가문의 개종한 청년과 결혼을 하였는데 사람들이 너무 괴롭혀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핍박을 피해 고향을 떠나 우여곡절 끝에 어떤 목사님 을 찾아가서 교회 청소와 관리를 하며 기쁘게 살았지요. 그러나 남편이 죽고 딸을 결혼 시킨 후에 저를 핍박했던 고향 사람들의 영혼이 너무 불쌍해서 울며 기도를 하였지요. 그 리고 제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려고 약속을 믿고 돌아온 거지요.
문)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환영을 받으셨는지요?
답) 핍박을 받았지요. 모든 사람들로부터요.
문) 핍박에 어떻게 대처하셨는지요?
답) 제가 나이가 많기 때문에 옛날처럼 구타하지는 않았어요.
우물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거나 집에 돌을 던지거나 다니는 길을 가로막았지요.
친인척들의 행사에 불러주지 않고 제가 먹고 살기 힘들어서 지쳐서 나가기를 바랬지 요. 그러나 저는 돌아올 때 이미 각오를 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분노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 이름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을 감사하며 핍박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위 해서 기도하며 그들이 병 들었을 때 찾아가보고 일꾼이 필요할 때 가서 일을 거들어 주며
지냈어요. 긴 세월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하며 지내다 보니 사람들의 마음이 서서히 열렸어 요. 성령님께서 사람들을 감동시킨 거지요. 그리고 올 6월에 교회가 세워져서 마을 사람들 과 함께 예배를 드리니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문) 식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답) 아침 일찍 일어나서 찌아(밀크티)를 한 잔 마십니다.
10시에 옥수수나 감자를 먹거나 또는 밀가루로 밀개떡 만들어 먹어요. 오후 5시에는 녹 두 스프에 밥을 비벼 먹어요. 가끔 치킨스프와 카레를 먹기도 해요.
그리고 힘이 없어서 식사 시간 외에 찌아를 마십니다.
문) 논밭이 있나요? 농사를 지으시는지요?
답) 논밭은 하나도 없어요.
문) 그러면 어떻게 살았나요?
답) 날품팔이로 살았지요. 채소는 산을 일구어서 조금씩 심었어요.
남은 채소를 팔기도 하면서 어설프게 살았는데 굶주리지 않았어요.
헐벗지도 않고요. 하나님께서 먹여주시고 입혀주셔서 그럭저럭 산거지요.
문) 아팠을 때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셨는지요?
답) 크게 아플 겨를이 없었어요. 그리고 어지간한 것은 참고 견디다 보면 나았고요.
문) 지금 기도 제목이나 희망이 있으신지요?
아씨스마을 모든 사람들이 복음으로 구원 받아서 함께 평화롭게 살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원수처럼 싸우는 옆집 사람들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길 바라고요. 제가 예수를 믿는다고 아직도 비웃고 괴롭히고 있는 이웃과 친척들이 있는데 그들이 구원받길 희망합니다. 그리 고 사람을 괴롭히는 계급제도가 마을과 네팔 전역에서 사라지길 기도합니다. 또한 저를 비롯하여 때때로 식수 부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식수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날을 기다립니다.
문) 지금 자신의 삶에 만족하시는가요? 행복하신가요?
답) 인간적으로 볼 때, 세상적으로 볼 때 저는 불쌍히고 초라한 늙은이지요. 가난하고 늙고 병들고 혼자 살고 있고 집도 비바람이 들이치고 아들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지요. 그러나 저는 하나님 안에서 자녀로 사는 축복을 받았고 은혜로 지금까지 가난하지만 마음 편히 삽니다. 가난하고 못 배워서 억울하고 서럽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많았지만 믿음으 로 견디며 기쁘게 살았습니다. 제가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저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가난이나 불행과 고통에 대하여 불평하거나 원망할 수가 없었어요. 저 는 예수님을 믿어서 행복한 사람입니다.
히말라야 산골 마을에서 시간을 내려놓고 사라 할머니의 삶의 히스토리를 깊이 경청하면서 그의 고백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메시지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집과 얼굴과 마음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가슴을 쳤다. 뜨거운 감동과 감격, 부끄러움이 내 영혼을 덮쳤다. 그를 불쌍한 노인으로 취급하며 쌀 나눔을 하며 가르치려고 했던 나의 영적 오만이 부끄러웠다.
그는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땅벌레처럼 뒹굴며 쌀을 구걸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의 단순하고 명쾌한 대답과 초라하고 단순한 삶이 나의 위선과 영적 허영을 고발하였다.
그의 겸손과 가난, 노동과 기도가 나의 영적인 비만을 보여주었다.
그는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도 없고 나도 없고 사랑의 주만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 안에 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임마누엘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의식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는 성자처럼 살면서 자신이 성자인지 모르는 바보였다.
그는 심령이 가난하며 우는 사람이었고 자신을 핍박한 고향 사람들을 실로 긍휼히 여기는 자였다. 그는 예수님 때문에 욕을 먹었고 핍박을 당하였고 많은 악한 말을 들었다. 그는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 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고 말씀하신 세상에서는 작으나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이다.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라 할머니”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기도와 섬김, 그들의 고난과 고통, 그들의 참회와 회개로 말미암아 세상은 망할 듯 망하지 않고 용서받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계속 되고 있다는 사실!
세상에서는 작으나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인 “사라 할머니”가 있는 아씨스 마을을 축복한다.
78억 인류를 위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고난을 겪으며 초라하고 불편하게 사는 “사라 할머니”가 세상에 많기를 빌며 그 마음으로 하나님 없는 문명과 하나님 없는 시대를 축복한다.
2022.11월 21일. 월요일 새벽에
우담초라하니 수정해서 올리다.
첫댓글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