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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1장 19-26절. 바울이 성전에서 결례를 행함. 요약설교
19절.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1. 바울이 문안하고
바울은 불신 유대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도 문안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25년 전에 예루살렘 교인들을 심하게 핍박했고, 이방인에게 전도한 다음에 할례와 유대인의 규례(정결 규정과 절기와 성전 제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예루살렘 교인들과 장로들까지도 만나서 반갑게 문안 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실로 감개무량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랑의 선물(구제 헌금)은 원수 된 관계를 화목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습니다.
2.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에게 과거의 핍박 죄를 용서받고, 장로들과 동일하게 예수 믿는 신자로 인정을 받자, 곧바로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서 이방인들을 예수 믿게 하고, 또 많은 이방인 교회를 설립하게 하신 사건들을 낱낱이 보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역을 통해서 이방인들을 예수 믿게 하고, 많은 교회들을 설립하게 하신 사건들을 직접 생생하게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에게 간증 보고를 했습니다.
이 보고를 들은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은 처음에 오순절 날 성령께서 임하시고 예루살렘에 놀라운 전도의 역사를 일으키신 과거의 체험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이 이방인들도 구원 얻는 회개 주신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간증 보고는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이 더 이상 이방인 교인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거나 율법의 규례를 지키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파와 반바울파의 문제를 구제 헌금과 바울의 간증을 통해서 해결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입니다.
20절.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1.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1)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은 바울의 이방인 선교 보고를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전에는 바울의 전도사역을 마치 반율법적인 사역처럼 여겼던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하나님이 바울의 전도사역을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들처럼 이방인들도 회개와 중생의 은혜 주신 것을 깨닫고, 바울의 하나님이 예루살렘 교회의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인 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요나처럼 유대인들만 하나님의 백성이고, 이방인들은 더러운 개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선교 보고를 듣고,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구원 얻는 믿음 주신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2.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 교인들 중에 율법에 열성적인 신자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장로들은 이 율법주의 신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바울에게 성전에 가서 구약식으로 결례 제사를 드리라고 권했습니다.
이것은 장로들이 복음 진리를 확실히 깨닫지 못한 타협주의였습니다.
정말 장로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 진리를 올바로 깨닫고, 이방인들도 율법이나 할례나 결례 제사가 필요 없이 오직 믿음으로 완전한 구원 얻는 것을 확신했다면, 예루살렘 교회의 율법주의자들을 설득했어야 옳습니다.
바울은 장로들의 말을 듣고, 결례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바울의 모습은 신앙적으로 타협했다기보다는,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인 교회가 화목하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포용 주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21절.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1. 바울이 이방인 지역에 가서 전도할 때, 먼저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에게 전도했습니다.
(1) 그런데 바울이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은 바울의 복음 전도를 배척하고,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배척당한 이유는 바울이 예수만 믿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유대교인들처럼 할례받을 필요가 없고, 모세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고, 성전 제사나 절기나 정결 규례들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불신 유대인들의 반대가 예루살렘 교회의 율법주의 성도들에게까지 소문이 들렸다는 것입니다.
이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었어도 유대교인들처럼 할례나 모세 율법이나 성전 제사나 절기나 결례를 다 지키는 성도들이었습니다.
단지 불신 유대인들과 다른 것은 예수님이 바로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라고 믿은 사실이었습니다.
22절.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1.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시기가 오순절 절기입니다 (행 20:16).
(1) 그래서 세계 각처에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불신 유대인들이 바울에게 반유대교주의자라고 비방하는 말을 예루살렘 교회의 율법주의 신자들도 들을 것이란 말입니다.
자기들끼리는 불신 유대인과 교인 유대인들이 서로 친척이고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예루살렘 교회의 율법주의자들은 예수 믿는 것만 다르지, 불신 유대인들과 차이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23절.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1. 야고보와 장로들은 바울에게 율법주의자들에게 잘 보이려는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이 때 장로들이 바울이 전하는 은혜의 복음을 정말 철저하게 깨달았다면,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답게 율법주의 교인들을 설득했어야 옳습니다.
그런데 머리로 잠시 은혜받는 것과 실생활에서 습관을 바꾸는 것은 크게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머리와 가슴은 거리가 30센티밖에 안 되지만, 30년만큼 거리가 멀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유교의 제사 문제도 신자들은 제사가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로는 제사 때 절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새벽기도가 좋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실제로 밤에 늦게 자고 새벽에 안 나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한 술 담배가 나쁜 것인 줄 잘 알면서도 실제로 술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원수 지지 않고 화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로 만나면 화목하지 못하고 원수 시 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이렇게 아는 것과 실제로 행동하는 것은 큰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는 믿음을 행위로 실천할 때 참된 믿음인 것을 입증한다고 강조했습니다.
2.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예루살렘 교회에는 아직도 나실인 서원을 하고 결례를 행하려는 사람들이 4명이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고 거룩한 생활을 하는 신약시대 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예루살렘 교회에는 유대교의 관습을 그대로 지키는 신자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 나실인의 서원은 신앙생활을 잘해보고자 하는 사람이 구약시대의 삼손처럼 나실인 서원을 해서 술을 먹지 않고, 머리털을 깎지 않고, 시체를 만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으로 살고자 서약하는 것을 말합니다.
삼손뿐만 아니라, 사무엘도 그랬고, 세례 요한도 그랬습니다.
24절.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1.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1)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은 바울에게 4명의 나실인 서원자들을 데리고 가서 바울이 결례 비용을 대라는 것입니다.
즉 네 사람의 머리털을 빡빡 미는 데 드는 비용과 양 3마리씩 5명(바울을 포함)을 위해서 속죄제, 번제, 화목제를 드릴 비용을 대라는 것입니다.
이 비용은 900만 원은 되었습니다. (2024년 기준)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제사 비용 대는 것을 크게 선한 일로 칭찬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바울이 유대교의 규례를 비방한다는 오해를 풀기 위해서 이런 결례 제사를 바울이 실천하고, 또 제사 비용까지 대납하면, 불신 유대인이나 율법주의 교인들이 바울에 대한 오해를 해소할 것이란 타협안이었습니다.
(2) 그러나 이런 타협안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어리석은 촌극에 불과했습니다.
워낙 바울이 세계 각처에서 유대교를 비방하고 다녔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성전에서 결례 제사를 행한다고 유대인들의 깊은 오해가 해소될 리 만무했습니다.
오히려 바울이 평소에 하지 않는 성전 제사 행위를 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바울이 고의적으로 성전을 모독하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 바울을 죽이려고 폭동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2.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1) 당시에 유대인들은 신 불신을 막론하고 바울이 성전과 율법을 무시한다고 화가 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은 바울에게 성전에 가서 율법대로 결례를 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에 대한 비방이 사실이 아니고, 거짓말인 것을 알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바울이 성전을 존중하고 율법을 지켜 행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타협안은 진정한 바울의 모습이 아닙니다.
즉 바울은 예수님이 성전 제사를 완성하셨고, 율법의 정죄를 예수님의 피로써 다 해결하셨다는 은혜의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이 때 바울은 장로들의 타협안을 따를 것이 아니라, 장로들에게도 예수님이 성전 제사를 완성하셨고, 율법의 정죄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주셨다고 복음을 전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장로들의 타협주의에 타협하고 말았습니다.
과거에 베드로에게는 외식한다고 책망을 했던 바울인데(갈라디아 2장), 장로들에게는 타협을 했습니다.
이 장로들은 처음에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되었을 때, 오순절에 성령 받고 온갖 핍박 속에서도 불타는 열정으로 전도했던 그런 초심을 잃어버리고, 유대교인들과 타협하는 차가운 신앙으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오순절 때나 27년 후인 AD 57년이나 유대교인들이 위협과 핍박하는 것은 변함이 없는데, 오직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의 신앙은 차갑게 변질되고 타협주의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유대교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이런 타협주의로 가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바울마저도 이방인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의 화목을 위해서 그리고, 바울 자신을 거짓 사도라고 모함하는 율법주의자들과 화목하기 위해서 타협주의로 가고 말았습니다.
25절.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1. 주를 믿는 이방인 성도들에게 4가지 사항을 결의해서 지키도록 한 것은 이미 15장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의한 내용입니다.
즉 사도행전 15장 5절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율법주의자들이 이방인 신자들에게 모세의 율법을 지키게 하고 할례를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와 베드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행 15:11)
그러자 회의의 회장 되는 야고보 장로가 이방인 신자들에게 할례나 율법을 강요하지 말고, 4가지 사항만 준수하게 하자고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21장 25절에서 다시 야고보 장로는 15장 예루살렘 회의의 결의사항을 다시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야고보는 이미 바울이 알고 있는 사항을 다시 반복했을까요?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 교회들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예루살렘 총회 때 야고보 장로 자기가 이방인 성도들에게 지시한 것처럼, 지금 바울도 야고보 장로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26절.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
1. 바울이 야고보 장로의 말을 듣고 바로 이튿날 나실인 서원을 한 예루살렘 교회 성도 네 사람을 데리고, 성전에 가서 결례를 행했습니다.
즉 바울이 자기까지 다섯 사람의 결례 비용(약 900만원)을 대서 속죄제, 번제, 화목제를 드리고, 머리털도 제단 숯불에 태웠습니다.
(1) 결례의 만기 된 것을 고했다는 것은 나실인의 서원은 일정 기간(일주일) 이행하는데, 그 서원 기간이 끝나면, 나실인 서원을 한 사람이 성전에 가서 제사장 앞과 많은 사람 앞에서 이제 나실인 서원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이후에는 평민으로 살아가고 자유롭게 처신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린 것을 가리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은 나실인인데, 마음대로 머리를 깎고 술도 먹고, 시체도 만진다는 비난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속죄 제물과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드려서 제사장이 제사를 드리게 하면 끝납니다.
이 제물은 날마다 드리는 것이 아니고, 제사장이 일주일 안에 세 가지 제사를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야고보 장로의 타협안을 듣고, 네 사람의 비용까지 드려서 일주일간 결례를 행하고, 제사장과 여러 사람들 앞에서 서원이 만기된 것까지는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때 아시아의 에베소에서 전도했는데, 그 때 아데미 우상 숭배자들과 함께 폭동을 일으켰던(행 19:33) 유대교인들이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왔는데, 이 사람들이 다시 바울을 죽이려고 폭동을 일으키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복음 진리를 위해서 타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교나 불교나 천주교나 이슬람교나 이단들에게 타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신앙의 자유를 누리시고, 성령님의 충만한 은혜 가운데서 날마다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