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보리의 노래- 박두진 시인

[연당 김태근]

한국의 명시 감상  

갈보리의 노래  

< 박두진 시인 >

 

< 1 >

해도 차마 밝은 채론 비칠 수가 없어

낯을 가려 밤처럼 캄캄했을 뿐.

방울방울 가슴의

하늘에서 내려 맺는 푸른 피를 떨구며,

아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늬………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늬………

그 사랑일래 지지러져 죽어간 이의

바람 자듯 잦아드는 숨결 소리 뿐.

언덕이어. 언덕이어. 텅 비인 언덕이어.

아무 일도 네겐 다시 없었더니라.

마리아와 살로메와 아고보와 마리아와

멀리서 연인들이 흐느껴 울 뿐.

몇 오리의 풀잎이나 불리웠을지,

휘휘로히 바람결에 불리웠을지,

언덕이어. 죽음이어. 언덕이어. 고요여.

아무 일도 네겐 다시 없었더니라.

< 2 >

마지막 내려 덮는 바위 같은 어둠을 어떻게 당신은 버틸 수가 있었는가?

뜨물 같은 치욕을, 불붙는 분노를, 에여내는 비애를, 물새 같은 고독을, 어떻게 당신은 견딜 수가 있었는가? 꽝 꽝 쳐 못을 박고, 창끝으로 겨누고, 채찍질해 때리고, 입맞추어 배반하고, 매어 달아 죽이려는, 어떻게 그 원수들을 사랑할 수 있었는가? 어떻게 당신은 강할 수가 있었는가?

파도같이 밀려오는 승리에의 욕망을 어떻게 당신은 버릴 수가 있었는가?

어떻게 당신은 패할 수가 있었는가? 어떻게 당신은 약할 수가 있었는가?

어떻게 당신은 이길 수가 있었는가?

방울방울 땅에 젖는 스스로의 혈적(血滴)으로, 어떻게 만민들이 살아날 줄 알았는가? 어떻게 스스로가 神인 줄을 믿었는가? 크다랗게 벌리어진 당신의 두 팔에 누구가 달려들어 안긴 줄을 알았는가?

엘리......엘리......엘리......엘리......스스로의 목숨을 스스로가 매어달아, 어떻게 당신은 죽을 수가 있었는가? 神이여! 어떻게 당신은 인간일 수 있었는가? 인간이여! 어떻게 당신은 神일 수가 있었는가?

아! ...... 방울방울 떨구어지는 핏방울은 잦는데, 바람도 죽고 없고 마리아는 우는데, 마리아는 우는데, 人子여! 人子여! 마즈막 쏟아지는 폭포 같은 빛줄기를 어떻게 당신은 주체할 수 있었는가?

< 3 >

무엇이 여기서는 일어나야 하는가. 갈보리의 하늘은 여전하구나. 하늘도 해도 있고 여전하구나.

비틀거리며 비틀거리며 지고 오른 나무들엔 피와 땀의 기름 번들거려 하늘 아래 고웁기도 하구나.

내가 쓰는 면류관 가시관 위에, 아으 무지개처럼 이제야 둘러 피는 원광을 보라!

진달래를 이기듯, 네 군데의 못자국은 네 군데의 꽃! 솟구쳐 나온 고운 피여!

먼 먼 은하에도 한줄기의 피와 강은 서는데, 떨궈지는 방울마다 타는 목마름, 아으 죽음소리,

어둠소리……한낮의 갈보리는 캄캄해져 오는데 땅들은 갈라지고 무덤들은 트는데,

엘리…… 엘리…… 엘리…… 아으 사랑하게 하라. 사랑하게 하라.

이제야 다시 한 번 껴안게 하라. 죽음을, 원수를, 어둠을, 밤을 이제야 다시 한 번 껴안게 하라.

쏟아지는 먹비 대신 찬란한 빛 발하는 함빡 빛발들이 쏟아져 오면 가슴마다 새로 발해 빛이 솟으면,

사랑이여! 꽃 빛깔 꽃 빛발에 쓰러지게 하라, 파다아하게 서로 안게 쓰러지게 하라.

파다아하게 서로 안고 일어나게 하라.

- 『거미와 星座』(기독교서회 1962) 중에서

● 해설 _ 편집국

박두진 시인(朴斗鎭 1916-1998)은 정지용의 추천으로 <묘지송 墓地頌>을 발표하며 등단하여 청록파의 일원으로서 자연과의 교감을 노래하다가 이후 기독교적 신앙을 바탕으로 민족과 사회의 현실 및 인간의 존재성을 통찰하는 지조 높은 시 정신을 보여 주었다.

<박두진 시인 연보>

·1916년 경기 안성 출생

·1939년 문예지 <문장>으로 등단

·1946년 조지훈, 박목월과 함께 시집 <청록집> 출간 - 이후 청록파로 명명됨

·1949년 시집 <해> 출간

·1956년 아시아자유문학상 수상

·1973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정교수

·1976년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

·1984년 <박두진전집> 출간

·1998년 타계

<혜산(兮山) 박두진 선생님은 시로써 기도하고, 시로 노래하므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빚어낸 시인이었다.

그는 교회에 출석하고, 교인들과 어울려 공동체 생활을 체험하는 편이기보다는 은둔자적인 신앙생활을 통해 삶의 본질을 깊이 생각하는

철학적 명상가에 가까운 삶의 모습이었다.

그가 세상에 눈떴을 때 식민지하의 가난과 무지는 이땅의 모순개념으로 인식되었다. 여기서 그는 삶의 실존성, 미래의 절망 등

조숙한 인생의 문제와 부딪쳤고, 이런 문제를 신앙의 차원에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먼저 누님이 안성 성결교회에 교인이 되었고

그 누님의 권유로 가족이 모두 신앙생활에 합류할 수 있었다.

‘… 어느날 나는 기독교의 문을 두드렸고 혼자서 인왕산 골짜기에 파묻혀 성경 한 권을 들고 단식기도를 하기도 했다.고

그는 한 산문에서 고백했다. 성경 속의 이야기와 지리적, 시간적 분위기 속에서 빚어낸 초기의 작품 ‘향현(香峴)’ ‘해’의 이미지에서

더 격정적이고, 도전적인 호소력으로 완성한 ‘갈보리의 노래 2’를 읽어보자.

갈보리의 노래 (2)

마지막 내려 덮는 바위 같은 어둠을 어떻게 당신은 버틸 수가 있었는가?
뜨물 같은 치욕을,
불 붙는 분노를,
에여 내는 비애를,
물새 같은 고독을, 어떻게 당신은 견딜 수가 있었는가?
꽝 꽝 쳐 못을 박고 창 끝으로 겨누고, 채찍질 해 때리고,
입맞추어 배반(背叛)하고, 매어 달아 죽이려는,
어떻게 그 원수들을 사랑할 수가 있었는가?
어떻게 당신은 강(强)할 수가 있었는가?
파도같이 밀려오는 승리에의 욕망을 어떻게 당신은 버릴 수가 있었는가?
어떻게 당신은 약(弱)할 수가 있었는가?
어떻게 당신은 패(敗)할 수가 있었는가?
어떻게 당신은 이길 수가 있었는가?
방울 방울 땅에 젖는 스스로의 혈적(血適)으로,
어떻게 만민들이 살아날 줄 알았는가?
어떻게 스스로가 신(神)인 줄을 믿었는가?
크다랗게 벌리워 진 당신의 두 팔에 누구가 달려들어 안길 줄을 알았는가?
엘리.엘리.엘리.엘리. 스스로의 목숨을 스스로가 매어 달아,
어떻게 당신은 죽을 수가 있었는가?
신(神)이여! 어떻게 당신은 인간일 수 있었는가?
인간이여! 어떻게 당신은 신일 수가 있었는가?
아.. 방울 방울 떨구어지는 핏방울은 잦는데,
바람도 죽고 없고 마리아는 우는데, 마리아는 우는데,
인자(人子)여! 인자여!
마지막 쏟아지는 폭포 같은 빛 줄기를 어떻게 당신은 주체할 수 있었는가?

마태복음 27장에 기록된 사실에 대한 화자의 참회록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 받으려는 참회요 예수 그리스도가 당한

고통과 모욕에 대한 감당할 수 없는 배반 심정의 참회인 것이다

이 ‘갈보리의 노래 2’는 하나님 나라의 의(義)를 위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희생의 고통을 감내하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회의 기록이다.

직언(直言)의 화술로써 울부짖는다 ‘어떻게 당신은 강할 수 있었는가? 어떻게 당신은 약할 수 있었는가?

어떻게 당신은 패(敗)할 수 있었는가?’ 이 절규의 의의와 깊이를 새겨보면 숙연해질 수 밖에 없다. 소리내어, 반복해서 부르짖을 수 밖에 없다.

박두진 선생께서는 유신시절에 정의, 자유, 박애등 삶의 질과 질서를 회복하기위해 권력에 저항하는 시인이기도 했다.

그 치하에서 당한 고초가 생활에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는 예술윈 회원으로 세 차례나 추대됐으나 모두

거절함으로써 그의 정의감에 따른 정신적 지조를 지켜내기도 했다.
그런 불굴의 정의감은 중등학교 국정교과서에 실렸던, 북한 괴뢰군의 남침으로 야기된 민족적 비극을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짖밟아 오던 날을~’로 이어지는 노래로 반공 정신을 강화, 자유민주주의의 국가적 정체성을 강조했다.

또 3.1운동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유관순 누나’라는 작품 등은 대한민국의 민족적 독립정신을 확립하는데 큰 힘이 되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업적이기도 하다.

한국문단에서 그의 문학적 업적은 큰 산맥을 형성하고 만인에게 회자되나 그의 개인적인 삶은 항상 외로운 삶이었다.

이를 구해 줄 수 있었던 것은 성경을 통한 구원의 길이었다. 예수의 생애를 거울삼아 자신의 정신적인 질곡의 역사를

시로써 참회하고 인내하는 신앙의 내면을 작품을 통해 고해(告解)한 것이다.

부활절별편(復活節別篇)

비둘기가 나는 소릴 들었습니까.
열마리, 百 마리, 數萬마리 비둘기가,
쏴, 와, 와, 와, 쏴, 와, 와, 와, 날아 내려오겠지요
아모들의 어깨에나 내려 앉아 주겠지요
....꾸룩, 구, 구, 구, 꽃잎처럼 가벼이

(제2연 생략)

눈처럼 펄, 펄, 펄, 꽃이파리 오는 데서,
그냥 막, 아모들의 가슴이고 활짝 트이는 데서,
무엇이고, 무엇이고
못 견디게 좋은 데서,
나는 그 때는, 비둘기를 타겠어요
나는 그 때는, 鶴을 타겠어요.(1행생략)

(제4연생략)

참말로 먼 먼 섬을 찾아 가겠어요.
눈물도 없고, 죽음도 없는,
춥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은,
배도 안 고프고, 아픈 일도 없는,
구슬 같은 파도가 기슭에 와 부서지는
언제나 아침뿐인,
먼 먼 푸른 섬엘 찾아 가 살겠어요.

이 작품은 제목이 지시하는 선입감(예수가 부활한 사건)을 이끌고 읽어가노라면, 그런 고정관념은 깡그리 빠져버린다.

성스럽고 신비로운 환희의 소리로써, 체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삶의 의지를 인식하게 된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말씀이 아닌 감성의 의식을 펼쳐나간다.
‘쏴, 와, 와, 와’, ‘꾸룩, 구, 구, 구’, ‘펄, 펄, 펄’등의 소리나 나래짓 같은 집합적 이미지의 창출은 이른바 은혜라는 뜻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싱싱한 수사(修辭)이다.

또한 성서 속의 의미를 초자연적인 수사로 확산함으로써 의도적이거나 도식적인 신앙시의 틀에서 벗어난다.

이는 신앙인이 지켜야 할 율법이나 윤리성의 구속력에서도 벗어나 무한의 감격으로 표상된다.

박두진은 이 작품에 대한 자신의 해설에서 ‘신학적이고, 종교적이고, 예언적인 부활보다는

우리 인간이(특히 나)상도하고 묘사할 수 있는 한 극치적인 국면의 하나를 나의 휴매니티의 전개가 가능한 한도 안에서 설정, 형상’했다고 쓰고 있다.

시 평가인 박양균은 이 작품을 두고 ‘- 기독 정신에의 귀의를 희구하는 박두진의 시 정신이 담겨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박 선생님의 유족으로 미망인 李禧成여사(아동문학가)와 3남 1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