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22:28~31And the LORD opened the mouth of the donkey, and she said to Balaam, "What have I done to you, that you have struck me these three times?" Then Balaam said to the donkey, "Because you have made a mockery of me! If there had been a sword in my hand, I would have killed you by now." The donkey said to Balaam, "Am I not your donkey on which you have ridden all your life to this day? Have I ever been accustomed to do so to you?" And he said, "No." Then the LORD opened the eyes of Balaam, and he saw the angel of the LORD standing in the way with his drawn sword in his hand; and he bowed all the way to the ground. 발람선지자에 관한 글을 묵상한다. 그에게는 평생을 같이한 당나귀가 있었다. 어느날 발람에게 발락이라는 모압왕이 보낸 사신들이 찾아와서 애굽에서 나온 거대한 무리가 자기나라를 위협한다고 그들을 저주해 달라고 요청했다. 발람은 신령했다. 자신이 축복하면 축복이 임하고 저주하면 저주가 임하는 신령한 선지자였다. 그는 사신들에게 하룻밤을 묵으며 기다려 달라, 기도해 보고 알려주겠다 했다. 그날 밤 주님은 발람에게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지 말라, 그들과 함께 가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다. 발람은 그대로 사신들에게 말해 주고 가지 않았다. 그러나 발락은 그보다 더 높은 사신들을 보내서 그에게 재차 요청한다. 그리고 자신이 요청한 것만 들어주면 금은 보화와 존귀함 즉 돈과 명예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발람선지자는 자신은 주님이 주신 말외에는 할수 없다고 말하며 거부했지만 혹시 모르니 하루밤을 기다려 달라고 두번째 사신들을 자기 집에 받아 들였다. 그날 밤에도 주님은 발람에게 말씀하셨다. 발람이 가기는 가되 주님이 하는 말만하라고 허락해 준것이다.
첫째로 이것은 무서운 교훈을 준다. 주님은 이미 말씀하셨지만 인간의 마음 중심에 돈과 명예에 대해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즉, 죄를 지을 마음이 있다면 그것을 막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다윗이 간음할 마음이 있으면 밧세바가 눈에 띄는 것이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다시스로 가는 배가 보이는 것과 같다. 사울왕이 처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을 때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주님의 부름을 받았다가 왕이 되어 교만해지자 전쟁에 나가기 위해 제사를 지낼 때 사무엘이 늦게 오는 상황이 발생하여 그의 교만이 들어나게 하신다는 것이다. 주 너의 하나님을 온 맘과 온 뜻과 정성을 다해 목숨을 다해 사랑하라는 말씀은 95%정도로 만족하지 말고 100%의 사랑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100%를 주고 100%를 받는 온전히 하나된 사랑을 주님은 요구하신다.
둘째로 당나귀의 영성?이다. 발람은 두번째 온 사신들과 길을 나선다. 주님은 그가 길을 나서는 것을 보고 분노하셨다. 이미 말씀을 주었으나 자신을 시험해 보는 말씀이 응답한 말씀인줄 알고 길을 나선 발람을 죽이시고자 하셨다. 이때 비록 말못하는 짐승이나 평생을 100% 헌신해 주인을 섬겨왔던 당나귀의 눈에는 천사가 검을 빼서 발람을 죽이고자 하는 천사가 보였지만 그렇게 신령하다 소문이 자자했던 발람선지자의 눈에는 눈꺼풀이 가려져 칼을 든 천사가 보이지 않았다. 이때 만큼은 발람은 당나귀만도 못한 존재가 된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했는가? 돈과 명예를 쫓는 삶이 그렇게 한 것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라고 하셨고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돈과 명예는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 하려는 사탄의 또다른 모습일 수 있다. 고려 말의 장군이자 충신이었던 최영장군의 아버지 최원식은 見金如石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유언을 을 남겼다. 눈이 가려진 발람은 당나귀를 때렸다. 그래도 당나귀가 말을 안듣자 계속 때리다 주님이 당나귀의 입을 열어 주셔서 당나귀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주인을 언제 이렇게 순종하지 않은 적이 있나고 항변했다. 발람은 만일 손에 칼이 있었으면 너를 죽였을 것이라고 당나귀와 싸웠다. 이때 주님이 발람선지자의 눈을 열어 주셔서 자기를 죽이기 위해 칼을 빼고 서있는 천사를 보게 되었다. 그는 그제서야 당나귀가 왜 그렇게 했는지 깨닫고 천사 앞에 무릎을 꿇고 다시 주님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주님은 발람의 마음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the motive of man's heart) 아시고 그에 대한 댓가를 받게 하셨다.
셋째, 예배라고 다 예배가 아니다. 제사라고 다 제사가 아니다. 예배의 형식은 다 있어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있는 반면 허공을 치는 헛된 예배도 있다는 사실이다. 발람은 주님께 묻고 다시 또 그 사신들과 함께 발락에게로 간다. 발락은 기뻤다. 자신이 국경까지 나가서 발람선지자를 환영했다. 바람의 심경은 어땠을까? 그는 기뻐하는 발락에게 자신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만 말할 수 있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는 발락의 요청대로 제단7개와 황소 마리, 양 7마리를 잡고 하나님께 물었다. 발락을 치러 오는 저 백성들을 저주할까요? 하고 말이다. 당연히 그렇게 하지 말라고 오히려 축복하라고 말씀하심으로 발람은 그대로 발락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러나 발락은 집요했다. 두차례 더 요청했고 발락은 두차례 더 그 요구에 응답해 제사를 지냈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저주가 아닌 축복을 하라는 말씀이다. 세번을 그렇게 발람이 축복하는 것을 듣고 발락은 화가났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십계명을 받을 때도 백성들이 아론을 부추겨 금송아지를 만들고 거기에 찬양하고 기도하는 예배의 형식은 다 있었지만 그것은 우상숭배였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예배는 우상숭배이다. the quality of each worship 이 전혀 다른 것이다. 무섭고 두려운 사실이다.
발람은 세번을 그렇게 저주가 아닌 축복을 했다. 발람의 심리 상태를 생각해보자 자기를 대우해주겠다 높여주겠다 재물도 주겠다 간청하는 것을 모두다 거절했을 때 그의 심리 상태는 어떠했을까? 그의 중심이 변했을까? 아니다 성경에는 계시록에 주님이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을 책망하는 내용이 나온다. 발람은 그 후에 그 심리적 불편함으로 인해 발락에게 광야의 백성들을 무너트리는 전략을 제공한 것으로 추측된다. 광야의 백성들이 이방여인들과 행음함으로 무너지게 된다. 결국 사탄은 돈으로 안되면 명예로 명예로도 안되면 섹스로 무너트린다. 주의하라 깨어라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자를 사탄은 찾아 다닌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지 않고 어찌 사탄의 집요한 전략을 이길수 있단 말인가? 그런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로 환란이나 핍박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돈, 명예, 권력, 섹스 그 무엇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온몸과 온 맘고 온 정성과 온 생명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자 다짐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