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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7월 30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로마서 8:26-39(신약 250)
세상을 살아가면서 힘든 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 누군가 나를 도와주고 나와 함께 해 준다면 힘든 일들을 잘 극복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고 아무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을 때 나 혼자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일 때 절망을 느끼게 됩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도 누군가와 힘을 합하면 할 수 없던 것도 할 수 있게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고, 아무도 나를 도와주는 것 같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18:6-7절을 보면
118: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118: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편이시란 말은 언제나 나를 돕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눈동자 같이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의 돕는 의로운 손이 되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바울 사도는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 되신다고 선포했는데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1.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고 선포하면서 첫 번째로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중에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성령님은 보혜사 이십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인데, 문자적으로 ‘도움을 베풀기 위해 곁으로 부름을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대개는 변호사나 법률 자문가를 의미하는데 성경에서는 ‘위로자’, ‘중보자’, ‘돕는 자’, ‘상담자’, ‘탄원자’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다음에 보혜사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를 도우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다음에 오순절날 임하신 성령님은 오늘날도 우리에게 오셔서 보혜사가 되어 주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시는데 바울 사도는 특별히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말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데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26절을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여기서 성령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도우신다.’는 말의 의미는 ‘다른 사람의 손을 붙잡아 준다’는 의미입니다. 성령님께서 연약한 우리들의 손을 붙잡아 주신다는 뜻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성도가 연약해 있을 때에, 또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을 때 짐을 덜어 주고 곁에서 일으켜 세워주며 붙들어 주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믿는 성도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길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 우리를 위해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해 주십니다.
성령께서 성도들 편에 서서 성도들이 의식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실들을 미리 아시고 성도들을 위해 성부 하나님께 간구하고 계십니다. 이런 면에서 기도는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현실 속에서 탄식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성령께서도 성도보다 더 심한 탄식으로 성도를 위해 간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하면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십니다. 즉 우리 안에 임재하신 성령님께서 우리가 성령님의 도우심 속에 기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하시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십니다. 28절을 보면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에 해당 되는 헬라어 ‘카타 데온’은 직역하면 ‘하나님을 따라’란 의미라고 합니다. 이 말은 ‘뜻’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과 성부 하나님이 구속 사역을 위해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데 그 강조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성부 하나님과 별개로 활동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거대한 구원 계획에 따라 활동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성도를 위해 기도하시는 것도 성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 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성령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우리를 향한 계획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모두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또한 우리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28절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자이며,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데 우리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한마음이 되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의 헬라어를 직역하면 ‘모든 것이 선을 위해 함께 역사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만물 또는 모든 일이 선을 목표로 하여 협조한다는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이 구절이 나타내는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만물로 하여금 선을 위해 역사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도들만이 아니라 모든 만물까지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섭리를 위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고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관계가 되게 하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선을 위해서 만물도 합력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모든 것이 성령님의 역사로 우리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도와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역사합니다.
우리는 우리끼리 합력하여 선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만물까지도 합력하여 하나님의 선을 이루어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2. 우리를 위하시는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라고 소개하고 계속해서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우리를 위하신다는 말은 ‘우리 편이시다.’는 의미입니다. 쉬운 번역본들은 대부분 우리를 위하신다는 말을 우리 편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편이십니다. 우리의 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역사하시는데
우리 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29-30절을 보면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8:29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누가 당신에게 올 사람인가를 아시고 그들을 당신의 아들과 같이 될 수 있도록 정해 두셨습니다. 그것은 그 아들을 모든 믿음의 형제들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8:30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택하여 당신께 나아가도록 부르셨고 우리가 하나님께로 갔을 때 '죄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선량한 성품을 지니게 하여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해주셨으며 그분의 영광을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인도하셔서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고 인정받는 성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원래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자격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는 그럴 자격이 없음에도 우리 편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이루어진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고 우리 편이 되어주시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31절을 보면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이런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무엇으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편인데 누가 감히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즉 우리 편이 되어주셔서 우리를 도와 주시고 지켜주시는데 누가 감히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편이시고 나를 위해서 오늘도 일하신다면 우리는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그 누구도 나를 대적할 수 없고, 그 누구도 나를 넘어뜨리거나 망하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편이시고 내 편이시고, 우리를 위하시고 나를 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세상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이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시는 분이시고 내 편이십니다. 내 편이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매 아무도 나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내 편이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십니다. 32절을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우리가 예전에 사용했던 개역 성경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로 되어 있습니다. 은사로라는 단어가 원문에는 없지만 의역을 한 것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은 값없이 주시는 것이란 의미로 은사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원어 그대로 충실하게 번역한 지금의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도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주셨는데 다른 것을 주시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성도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 편이 되셔서 우리를 도우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아까운 것이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주셨는데 더 이상 아깝다고 하실 것이 없이 모두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할 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3.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예수님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성부 하나님은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시고, 성자 예수님은 우리가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를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33-34절을 보면
8: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사탄이 우리의 죄를 문제 삼아서 고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발이란 죄를 지은 것에 대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 즉 택하신 자가 되었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고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인이라고 고발할 수 없을 뿐만아니라 우리를 정죄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율법으로서 정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34절에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이신데 그분 외에는 우리를 정죄할 수 없는데 예수님은 우리를 정죄하시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오늘도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넉넉히 이깁니다. 35-37절을 보면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즉 믿음에서 떨어지게 만들려는 끊임없는 시도들이 있는데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 같은 것을 이용해서 믿음을 포기하게 하려는 사탄의 시도가 끊임없이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으로 인해서 사탄의 그 어떤 유혹과 시험도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이 우리에게 있기에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고 도우시기 때문에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38-39절을 보면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영적인 존재들이나 세상의 권세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으려고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되는데 핍박도 있고, 때론 순교도 당하게 되지만 그러나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기에 그 어떤 힘과 권세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계시기에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시기에 우리는 모든 상황에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공격하는 모든 공격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지켜주셔서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게 하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고, 성부 하나님은 우리 편이 되셔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성자 예수님은 부활의 권세로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 날마다 승리하는 복된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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