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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순(姜利順)
예종 1권, 즉위년(1468 무자/명성화(成化) 4년) 10월28일(갑인) 2번째기사
남이의 역모에 관련된 자들을 죄의 경중에 따라 형벌을 정하다
임금이 승정원과 신숙주(申叔舟), 한명회(韓明澮), 박원형(朴元亨)에게 묻길,
“조영달(趙穎達), 이지정(李之楨)은 남이(南怡)의 심복인데 남이가 비록 말하지 아니하였을지라도 때에 임하여 말하려고 하였으니, 이들도 당류이다.
처참(處斬)함이 어떻겠는가? 무릇 일에 관련된 사람의 죄상을 그 경중을 가려 계달하라.”하였다.
신숙주등이 분간하여 계달하니, 의금부에 전지를 내리기를,
“박자전(朴自田), 김창손(金昌孫), 노경손(盧敬孫), 최완(崔浣), 이지정(李之楨), 남유(南愈), 조윤신(曹允信), 문치빈(文致彬), 장계지(張戒之), 김실(金實), 장익지(張益之), 장순지(張順之), 조순종(趙順宗), 조영달(趙穎達), 강이경(姜利敬), 이하(李夏), 이철주(李鐵柱), 홍형생(洪亨生), 유계량(柳繼良), 이중순(李仲淳), 장서(蔣西), 신정보(辛井保), 노수동(盧守同), 김원현(金元賢) 은 모두 처참(處斬)하고 가산(家産)을 적몰(籍沒)하며, 김계종(金繼宗), 윤말손(尹末孫), 경유공(慶由恭), 김효조(金孝祖), 정숭로(鄭崇魯)는 모두 종으로 삼고 가산을 적몰하며, 김연근(金連根)은 종으로 삼고, 이계명(李繼命)은 고신(告身)을 거두고 본향에 충군(充軍)하며, 윤말손, 정숭로는 모두 공신녹권(功臣錄券)을 거두고, 능지(凌遲)한 자의 연좌(緣坐)는 모두 율문(律文)에 의하여 사위를 안치(安置)하고, 처참(處斬)한 자의 부자(父子), 처첩(妻妾), 손자, 형제, 숙질(叔姪)등은 모두 다 안치하라.”하였다.
○上問承政院及申叔舟、韓明澮、朴元亨曰: “趙穎達、李之楨者, 南怡腹心也。 怡雖不言, 欲臨時語之, 是亦黨也。 處斬何如? 凡事干人罪狀, 分其輕重以啓。” 叔舟等分揀啓之, 下旨于義禁府曰: “朴自田、金昌孫、盧敬孫、崔浣、李之楨、南愈、曺允信、文致彬、張戒之、金實、張益之、張順之、趙順宗、趙穎達、姜利敬、李夏、李鐵柱、洪亨生、柳繼良、李仲淳、蔣西、辛井保、盧守同、金元賢竝處斬, 籍沒家産; 金繼宗、尹末孫、慶由恭、金孝祖、鄭崇魯竝爲奴, 籍沒家産; 金連根爲奴, 李繼命收告身, 本鄕充軍, 末孫、崇魯竝收功臣錄券。 凌遲者緣坐, 竝依律文, 女壻安置; 處斬者父子、妻妾、孫、兄弟、叔姪等, 竝皆安置。”
예종 2권, 즉위년(1468 무자/명성화(成化) 4년) 11월 9일(을축) 5번째기사
난신 남유, 조숙, 김효조등의 집을 외명부와 환관, 승지에게 내려 주다
호조(戶曹)에 전지(傳旨)하여, 난신(亂臣) 남유(南愈)의 집을 봉보부인(奉保夫人) 김씨(金氏)에게, 조숙(趙淑)의 집을 상궁(尙宮) 홍씨(洪氏)에게, 김효조(金孝祖)의 집을 환관(宦官) 신운(申雲)에게, 조영달(趙穎達)의 집을 조진(曹疹) 에게, 최원(崔湲)의 집을 안중경(安仲敬)에게, 조경치(曹敬治)의 집을 거평군(居平君) 이복(李復)에게, 김원현(金元賢)의 집을 승지(承旨) 한계순(韓繼純) 에게, 박자하(朴自河)의 집을 죽성군(竹城君) 박지번(朴之蕃)에게, 홍형생(洪亨生)의 집을 환관(宦官) 유한(柳漢)에게, 유계량(柳季良) 집을 김결(金潔)에게, 강이경(姜利敬)의 집을 판관(判官) 한환(韓懽)에게 내려 주었다.
○傳旨戶曹, 賜亂臣南愈家于奉保夫人金氏, 趙淑家于尙宮洪氏, 金孝祖家于宦官申雲, 趙穎達家于曺疹, 崔湲家于安仲敬, 曺敬治家于居平君復, 金元賢家于承旨韓繼純, 朴自河家于竹城君朴之蕃, 洪亨生家于宦官柳漢, 柳季良家于金潔, 姜利敬家于判官韓懽。
예종 3권, 1년(1469 기축/명성화(成化) 5년) 1월 13일(무진) 1번째기사
난신의 처첩과 자녀를 공신에게 노비로 내려주다
난신(亂臣) 강순(康純)의 아내 중비(仲非)와 민서(閔敍)의 첩(妾)의 딸 민말금(閔末今)을 유자광(柳子光)에게 내려주고, 강순의 첩 월비(月非)와 변자의(卞自義)의 첩 딸 변소앙가(卞召央加)를 신숙주(申叔舟)에게 내려주고, 남이(南怡)의 딸 남구을금(南求乙金)과 홍형생(洪亨生)의 첩 약비(若非)를 한명회(韓明澮)에게 내려주고, 남이의 첩 탁문아(卓文兒)를 신운(申雲)에게 내려주고, 강순의 첩 심방(心方)을 한계순(韓繼純)에게 내려주고, 남이의 첩 이덕(李德)을 밀성군(密城君) 이침(李琛)에게 내려주고, 민서의 첩 중비(仲非)를 덕원군(德源君) 이서(李曙)에게 내려주고, 노수동(盧守同)의 첩 호근장(好斤莊)을 영순군(永順君) 이부(李溥)에게 내려주고, 최원(崔瑗)의 아내 권비(權非)를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에게 내려주고, 이중순(李仲淳)의 아내 금광(金光)을 심회(沈澮)에게 내려주고, 변영수(卞英守)의 아내 석비(石非) 를 박원형(朴元亨)에게 내려주고, 〈변영수 의〉첩 칠월(七月)을 정현조(鄭顯祖)에게 내려주고, 홍형생(洪亨生)의 아내 복비(卜非)를 거평군(居平君) 이복(李復)에게 내려주고, 남유(南愈)의 아내 근비(根非)를 이극증(李克增)에게 내려주고, 문효량(文孝良)의 아내 덕이(德伊)를 박지번(朴之蕃)에게 내려주고, 이철주(李鐵柱)의 아내 효도(孝道)를 정인지(鄭麟趾)에게 내려주고, 조영달의 아내 중이가(仲伊加)를 정창손(鄭昌孫)에게 내려주고, 조영달의 첩 자근덕(者斤德) 조석문에게 내려주고, 김창손(金昌孫)의 아내 금란(金蘭)을 한백륜(韓伯倫)에게 내려주고, 조숙(趙淑)의 아내 동질이(同叱伊)를 한계희(韓繼禧)에게 내려주고, 맹불생(孟佛生)의 아내 허비(許非)를 노사신(盧思愼)에게 내려주고, 박자전(朴自田)의 첩 매읍가(每邑加)를 박중선(朴仲善)에게 내려주고, 진자근지(陳者斤知)의 아내 마금(麻今)을 홍응(洪應)에게 내려주고, 노경손(盧敬孫)의 아내 성구지(性求之)를 강곤(康袞)에게 내려 주고, 오치권(吳致權)의 아내 효비(孝非)를 조득림(趙得琳)에게 내려주고, 김원현(金元賢)의 첩 백덕(白德)을 신승선(愼承善)에게 내려주고, 조순종(趙順宗)의 아내 간아지(干阿之)를 권감(權瑊)에게 내려주고, 조경치(趙敬治)의 아내 효양(孝養)을 어세겸(魚世謙)에게 내려주고, 강이경(姜利敬)의 아내 말비(末非)를 윤계겸(尹繼謙)에게 내려주고, 문치빈(文致彬)의 아내 은비(銀非)를 정효상(鄭孝常)에게 내려주고, 고복로(高福老)의 첩 아지(阿只)를 안중경(安仲敬)에게 내려주고, 문치빈의 첩 천년(千年)을 권찬(權攅)에게 내려주고, 강순(康純)의 첩 딸 귀덕(貴德)을 조익정(趙益貞)에게 내려 주고, 강석손(康石孫)의 아내 흔비(欣非)를 서경생(徐敬生) 에게 내려주고, 조윤신(曹閏身)의 첩 의비(義非)를 유한(柳漢)에게 내려주었다.
○戊辰/賜亂臣康純妻仲非、閔叙妾女子末今于柳子光, 康純妾月非、卞自義妾女子召央加于申叔舟, 南怡女子求乙金、洪亨生妾若非于韓明澮, 南怡妾卓文兒于申雲, 康純妾心方于韓繼純, 南怡妾李德于密城君琛, 閔叙妾仲非于德源君曙, 盧守同妾好斤莊于永順君溥, 崔瑗妻權非于龜城君浚, 李仲淳妻金光于沈澮, 卞英守妻石非于朴元亨, 妾七月于鄭顯祖, 洪亨生妻卜非于居平君復, 南愈妻根非于李克增, 文孝良妻德伊于朴之蕃, 李鐵柱妻孝道于鄭麟趾, 趙穎達妻仲伊加于鄭昌孫, 趙穎達妾者斤德于曺錫文, 金昌孫妻金蘭于韓伯倫, 趙淑妻同叱伊于韓繼禧, 孟佛生妻許非于盧思愼, 朴自田妾每邑加于朴仲善, 陳者斤知妻麻今于洪應, 盧敬孫妻性求之于康袞, 吳致權妻孝非于趙得琳, 金元賢妾白德于愼承善, 趙順宗妻干阿之于權瑊, 曺敬治妻孝養于魚世謙, 姜利敬妻末非于尹繼謙, 文致彬妻銀非于鄭孝常, 高福老妾阿只于安仲敬, 文致彬妾千年于權攅, 康純妾女子貴德于趙益貞, 康碩孫妻欣非于徐敬生, 曺閏身妾義非于柳漢。
예종 3권, 1년(1469 기축/명성화(成化) 5년) 2월3일(무자) 2번째기사
난신의 처첩과 자녀들을 노비로 영속시키다
의금부에 전지하기를 다음과 같이 하였다.
“난신(亂臣) 강순(康純)의 아내 부귀(富貴)를 곤양(昆陽)에, 그 첩(妾) 춘월(春月)을 웅천(熊川)에, 아우 강말생(康末生)을 해남(海南)에, 서얼(庶孽) 아우 강춘생(康春生)를 고성(固城)에, 아들 강석손(康碩孫)의 첩 옥금(玉今)을 하동(河東)에, 첩 관음비(觀音非)를 사천(泗川)에, 오치권(吳致權)의 어미 복지(卜之)와 누이 오음죽(五音粥)을 무장(茂長)에, 민서(閔敍)의 아내 석비(石非)를 김해(金海)에, 서얼(庶孽) 아우 민오을미(閔吾乙未)를 흥양(興陽)에, 박자하(朴自河)의 형 박자강(朴自江)을 하동(河東)에, 변자의(卞自義)의 아내 종생(終生)을 고성(固城)에, 조경치(曹敬治)의 계모(繼母) 종금(終今)과 서얼 형 조중생(曹仲生), 조계생(曹繼生), 조말생(曹末生)을 장기(長鬐)에, 이지정(李之楨)의 아비 이작(李灼)을 영해(寧海)에, 노수동(盧守同)의 아비 노우(盧祐)를 창원(昌原)에, 최계지(崔戒之)의 아내 경순(敬順)을 삼원(三元)에, 첩 유이(流伊)와 금음덕(今音德)을 곤양(昆陽)에, 장익지(張益之)의 아내 보덕(甫德)과 첩 자망금(子亡金), 금음동(今音同)을 고성(固城)에, 장순지(張順之)의 아내 양비(陽非)와 첩 용비(龍非)를 영덕(盈德)에, 장서(蔣西)의 아내 중금(仲今)과 첩 개덕(介德), 연비(延非)를 기장(機張)에, 신정보(辛井保)의 아내 소사(召史)를 영해(寧海)에, 김실(金實)의 아비 김연선(金憐先)과 아내 권월(權月), 후처(後妻) 선장(善莊)을 진해(鎭海)에, 조윤신(曹允信)의 아비 조몽휘(曹夢暉)와 문치빈(文致彬)의 아비 문욱(文郁)을 흥양(興陽)에, 첩 눌가이(訥加伊)와 성비(性非)를 광양(光陽)에 영속(永屬)시키고, 오치권(吳致權)의 서얼(庶孽) 삼촌숙(三寸叔) 오가팔리(吳加八里)와 오복중(吳卜仲)을 무장(茂長)에, 민서(閔敍) 의 첩의 사위[女壻] 이옥산(李玉山)과 삼촌질(三寸姪) 민신동(閔信同)을 창원(昌原)에, 삼촌질 민을동(閔乙同)을 흥해(興海)에, 박자하(朴自河)의 삼촌질 박의종(朴義宗)을 하동(河東)에, 조경치(曹敬治)의 서얼(庶孽) 삼촌숙(三寸叔) 조중이(曹衆伊)를 고성(固城)에, 조자을미(曹者乙未), 조간마(曹干麽)와 서얼 삼촌질 조가사(曹加沙), 아우 조마정(曹麻丁), 이복아우 조개동(曹介同)을 영해(寧海)에, 홍형생(洪亨生)의 형 홍이생(洪利生)을 옥구(沃溝)에, 이복아우 홍이수(洪利壽)를 영덕(盈德)에, 삼촌질 홍계손(洪季孫), 홍철손(洪哲孫)을 해남(海南)에, 이지정(李之楨)의 아우 이지알(李之斡) 서얼형 이순생(李順生)을 연일(延日)에, 강이경(姜利敬)의 형 강이성(姜利誠)을 순천(順天)에, 노수동(盧守同)의 아우 노수강(盧守剛)과 삼촌숙 노희정(盧禧禎), 노지기(盧祉祈)를 고성(固城)에, 아우 노수성(盧守城)을 창원(昌原)에, 신정보(辛井保)의 형 신정보(辛鼎保)와 삼촌질 신집(辛緝), 신수(辛繡), 신양(辛樑), 신계(辛繼), 신서(辛緖)를 동래(東萊)에, 형 신익보(辛益保)와 서얼 삼촌질 신복지(辛卜只), 신동옥(辛同玉)을 하동(河東)에, 서얼형 신존자(辛存者)를 영해(寧海)에, 서얼 삼촌질 신건지(辛巾之), 신달망(辛達亡), 신내은동(辛內隱同)을 양산(梁山)에, 조윤신(曹允信)의 형 조윤옥(曹允屋)과 삼촌숙 조중패(曹仲敗), 조경명(曹景明), 삼촌질 조가박(曹加朴)을 부안(扶安)에, 문치빈(文致彬)의 형 문유빈(文有彬)을 나주(羅州)에, 노경손(盧敬孫)의 아우 노신손(盧信孫)을 무안(務安)에, 이철주(李鐵柱)의 형 이영주(李鈴柱) 아우 이석주(李石柱)를 해남(海南) 에, 조순종(趙順宗)의 서얼 삼촌숙 조안수(趙安守)를 순천(順天)에, 조영달(趙永達)의 아우 조영철(趙永哲)을 진해(鎭海)에, 이중순(李仲淳)의 아우 이숙순(李叔淳)을 장기(長鬐)에, 김창손(金昌孫)의 아우 김광손(金廣孫)을 영덕(盈德)에, 최완(崔緩)의 서얼 삼촌숙 최도치(崔都致)를 곤양(昆陽)에 각각 안치(安置)하여 노비(奴婢)로 삼고, 오치권(吳致權)의 딸 오비(吳非)를 외조(外祖)인 중화(中和)에 사는 갑사(甲士) 양효순(楊孝順)에게, 민서(閔敍)의 딸 민중비(閔仲非)를 김해(金海)에 정역(定役)된 어미 석비(石非)에게, 홍형생(洪亨生)의 손자 홍방마적(洪方麽赤)을 안악(安岳)에 사는 종조모(從祖母)인 화자(火者) 나우명(羅友明)의 아내 칠보(七寶)에게, 최계지(崔戒之)의 아들 최삼형(崔三亨), 최삼리(崔三利)를 곤양(昆陽)에 정역(定役)된 어미 경순(敬順)에게, 장익지(張益之)의 아들 장잉질동(張芿叱同), 장만동(張萬同)을 고성(固城)에 정역된 어미 보덕(甫德)에게, 장서(蔣西)의 아들 장석을이(蔣石乙伊)를 기장(機張)에 정역된 어미 중금(仲今)에게, 첩의 아들 장철동(蔣哲同), 장철산(蔣哲山)을 기장(機張)에 정역된 어미 개덕(介德)에게, 김실(金實)의 아들 김승손(金升孫)을 진해(鎭海)에 정역된 어미 권월(權月)에게, 문치빈(文致彬)의 첩의 아들 문망오지(文亡吾之)를 광양(光陽)에 정역된 어미 성비(性非)에게, 이하(李夏)의 아들 이정수(李正守), 이목수(李木守)를 유한(柳漢)에게 내려준 종[婢]인 어미 만비(萬非)에게 보수(保授)하였다가 모두 나이가 차기를 기다려 영속노비(永屬奴婢)로 삼고, 강순(康純)의 삼촌질 강금무적(康金無赤)을 남포(藍浦)에 사는 어미 복수(卜守)에게, 강아지(康阿只)를 담양(潭陽)에 사는 어미 명근(命斤)에게, 민서(閔敍)의 삼촌질 민석동(閔石同)을 연산(連山)에 사는 어미인 민발(閔發)의 아내 이씨(李氏)에게, 서얼(庶孽) 삼촌질 민산이(閔山伊) 를 보은(報恩)에 사는 어미 내은이(內隱伊)에게, 홍형생(洪亨生)의 삼촌질 홍충개(洪蟲介)를 이산(尼山)에 사는 어미 단봉(丹奉)에게, 홍현석(洪玄石), 홍석을석(洪石乙石)을 이산(尼山)에 사는 어미 팽비(彭非)에게, 홍효석(洪孝石)을 이산(尼山)에 사는 어미 윤덕(允德)에게, 이지정(李之楨)의 서얼 삼촌질 이순동(李順同)을 성주(星州)에 사는 어미 소사(召史)에게, 강이경(姜利敬)의 삼촌질 강명중(姜命重)을 외조(外祖)인 순안현령(順安縣令) 김효진(金孝振) 에게 보수(保授)하였다가 모두 나이가 차기를 기다려 안치(安置)하라.”
○傳旨義禁府: “永屬亂臣康純妻富貴于昆陽, 妾春月于熊川, 弟末生于海南, 孽弟春生于固城, 子碩孫妾玉今于河東, 妾觀音非于泗川, 吳致權母卜之、妹五音粥于茂長, 閔叙妻石非于金海, 孽弟吾乙未于興陽, 朴自河兄自江于河東, 卞自義妻終生于固城, 曺敬治繼母終今、孽兄仲生ㆍ繼生ㆍ末生于長鬐, 李之楨父灼于寧海, 盧守同父祐于昌原, 崔戒之妻敬順于三元, 妾流伊、今音德于昆陽, 張益之妻甫德、妾子亡金ㆍ今音同于固城, 張順之妻陽非、妾龍非于盈德, 蔣西妻仲今、妾介德ㆍ延非于機張, 辛井保妻召史于寧海, 金實父憐先、妻權月、後妻善莊于鎭海, 曺允信父夢暉、文致彬父郁于興陽, 妾訥加伊、性非于光陽。 安置吳致權孽三寸叔加八里、卜仲于茂長, 閔叙妾女壻李玉山、三寸姪信同于昌原, 三寸姪乙同于興海, 朴自河三寸姪義宗于河東, 曺敬治孽三寸叔衆伊于固城, 者乙未、干麿孽三寸姪加沙、弟麻丁、異母弟介同于寧海, 洪亨生兄利生于沃溝, 異母弟利壽于盈德, 三寸姪季孫、哲孫于海南, 李之楨弟之斡、孽兄順生于延日, 姜利敬兄利誠于順天, 盧守同弟守剛、三寸叔禧禎、祉祈于固城, 弟守城于昌原, 辛井保兄鼎保、三寸姪緝ㆍ繡ㆍ樑ㆍ繼ㆍ緖于東萊, 兄益保、孽三寸姪卜只ㆍ同玉于河東, 孽兄存者于寧海, 孽三寸姪巾之ㆍ達亡ㆍ內隱同于梁山, 曺允信兄允屋、三寸叔仲敗ㆍ景明、三寸姪加朴于扶安, 文致彬兄有彬于羅州, 盧敬孫弟信孫于務安, 李鐵柱兄鈴柱、弟石柱于海南, 趙順宗孽三寸叔安守于順天, 趙永達弟永哲于鎭海, 李仲淳弟叔淳于長鬐, 金昌孫弟廣孫于盈德, 崔緩孽三寸叔都致于昆陽爲奴婢。 保授吳致權女子吳非于外祖中和住甲士楊孝順, 閔叙女子仲非于金海定役母石非, 洪亨生孫子方麿赤于安岳住從祖母火者羅友明妻七寶, 崔戒之子三亨、三利于昆陽定役母敬順, 張益之子芿叱同ㆍ萬同于固城定役母甫德, 蔣西子石乙伊于機張定役母仲今, 妾子哲同ㆍ哲山于機張定役母介德, 金實子升孫于鎭海定役母權月, 文致彬妾子亡吾之于光陽定役母性非, 李夏子正守ㆍ木守于賜柳漢婢母萬非, 竝待年永屬奴婢。 保授康純三寸姪金無赤于藍浦住母卜守, 阿只于潭陽住母命斤, 閔叙三寸姪石同于連山住母閔發妻李氏, 孽三寸姪山伊于報恩住母內隱伊, 洪亨生三寸姪虫介于尼山住母丹奉, 玄石ㆍ乙石于尼山住母彭非, 孝石于尼山住母允德, 李之楨孽三寸姪順同于星州住母召史, 姜利敬三寸姪命重于外祖順安縣令金孝振, 竝待年安置。”
성종 4권, 1년(1470 경인/명성화(成化) 6년) 4월 15일(계해) 3번째기사
의금부에 전지하여 노비로 삼거나 충군, 안치한 죄인을 놓아보내라고 하다
의금부(義禁府)에 전지하기를,
“봉원군(蓬原君) 정창손(鄭昌孫)에게 내려준 난신(亂臣) 이유기(李裕基)의 아내 설비(雪非), 딸 이가질구지(李加叱仇之), 이말비(李末非), 이막금(李莫今), 우참찬(右參贊) 황효원(黃孝源)에게 내려 준 이유기의 딸 이소근소사(李小斤召史), 선산(善山)에 부처(付處)363)한 이정원(李貞元), 서흥(瑞興)에 안치(安置)364)한 고승익(高承益), 고승후(高承厚), 강진(康津) 관노(官奴)로 정속(定屬)한 강효문(康孝文)의 형(兄) 강효성(康孝誠), 아우 강효순(康孝舜), 강효문 의 아내 미동(未同)이 보수(保授)한 첩(妾)의 딸 강효금(康孝今), 좌승지(左承旨) 윤계겸(尹繼謙)에게 내려준 강이경(姜利敬)의 아내 말비(末非), 말비가 보수한 아들 강금정(姜今丁), 딸 강알금(姜謁今), 강세금(姜世今), 신씨(愼氏) 가 보수한 강이경의 딸 강종금(姜終今), 해남(海南)에 안치한 강이찬(姜利讚), 강이온(姜利溫), 김효진(金孝震)이 보수한 강명중(姜命重), 영암(靈巖)에 안치한 강이인(姜利仁), 강이순(姜利順), 순천(順天)에 안치한 강이성(姜利誠), 사천(泗川)에 안치한 강이흥(姜利興), 강이공(姜利恭), 강이행(姜利行), 하동(河東)에 종[奴]이 된 윤말손(尹末孫), 거제(巨濟) 관비(官婢)로 정속(定屬)한 춘비(春非), 전주(全州)에 주접(住接)하는 어미가 보수한 난생(卵生), 호비(戶婢) 석비(石非)가 보수한 억정(億丁), 만정(萬丁), 영암(靈巖)에 안치한 허씨(許氏) 가 보수한 연동(連同), 나주(羅州)에 안치한 조치(趙治), 조맹근(趙孟根), 조계근(趙季根), 한산(韓山)에 충군(充軍)한 이계명(李季明), 평산(平山)에 종이 된 경유공(慶由恭), 해남(海南)에 종이 된 김효조(金孝祖), 순천(順天)에 부처한 조철산(趙哲山)등을 놓아 보내고, 성주(星州) 관노(官奴)로 영속(永屬)한 양유원(楊有源), 양득원(楊得源), 양계원(楊繼源)은 본주(本州)에 안치하고, 장례원(掌隷院)에 정속한 어(?)의 여종[婢] 건이(件伊), 사월(四月)은 제가 젖먹여 기른 어(?)의 딸 수리(修理)와 유아(乳兒)에게 주게 하라.”하였다.
註363]부처(付處): 형벌의 한가지로서, 죄인을 일정한 장소에 보내고 거주지를 한정하여서 귀양살이시키는 것. 중도부처(中道付處).註364]안치(安置): 죄인이 귀양을 간 곳에서 다시 일정한 장소에 거주를 제한당하던 일.
○傳旨義禁府曰: “蓬原君鄭昌孫賜給亂臣李裕基妻雪非、女子加叱仇之、末非、莫今, 右參贊黃孝源賜給李裕基女子小斤召史, 善山付處李貞元, 瑞興安置高承益、承厚, 康津官奴定屬康孝文兄孝誠ㆍ弟孝舜, 孝文妻未同保授妾女子孝今, 左承旨尹繼謙賜給姜利敬妻末非及末非保授子今丁、女子謁今ㆍ世今, 愼氏保授姜利敬女子終今, 海南安置姜利讃、姜利溫, 金孝震保授姜命重, 靈巖安置姜利仁、姜利順, 順天安置姜利誠、泗川安置姜利興、姜利恭、姜利行, 河東爲奴尹末孫, 巨濟官婢定屬春非,全州接母保授卵生, 戶婢石非保授億丁、萬丁, 靈巖安置許氏保授連同,羅州安置趙治、趙孟根、趙季根、韓山充軍李季明,平山爲奴慶由恭,海南爲奴金孝祖,順天付處趙哲山等放送。星州官奴永屬楊有源、楊得源、楊繼源本州安置,掌隷院定屬婢件伊、四月給其所乳養女子修理及乳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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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173권, 15년(1484 갑진/명성화(成化)20년) 12월16일(기사) 3번째기사
권중손, 권지, 조석손, 진흠, 김이상, 조숭손, 오율산등의 고신을 돌려주게 하다
이조(吏曹)와 병조(兵曹)에 전지(傳旨)하여, 권중손(權仲孫), 권지(權志), 조석손(趙碩孫), 진흠(陳欽), 김이상(金履祥), 조숭손(趙崇孫), 오율산(吳栗山), 이신충(李信忠), 김유장(金有章), 최유생(崔有生), 윤광(尹光), 송계달(宋繼達), 변숭의(邊崇義), 유태손(劉泰孫), 이팽령(李彭齡), 백성수(栢城守), 이원(李源), 배선손(裵善孫), 정여거(鄭汝擧), 김호충(金好忠), 안극상(安克祥), 정의운(鄭義耘), 홍귀호(洪貴湖), 지영저(池永貯), 권선(權善), 이연(李演), 지자징(池自澄), 오연(吳演), 한동(韓同), 김곤(金鯤), 최세성(崔世省), 김봉손(金奉孫), 상효손(尙孝孫), 유춘손(柳春孫), 강계종(康繼宗), 조경손(曹敬孫), 김현책(金賢責), 김조(金祚), 심가보(沈家甫), 이종수(李宗守), 노종신(盧從愼), 강이순(姜利順), 조평(趙枰), 손석손(孫碩孫), 조갑충(趙甲忠), 박석충(朴碩忠), 박춘산(朴春山), 정계동(鄭繼同), 김효선(金孝善), 김의달(金義達), 장말동(張末同), 남용신(南用信), 박효간(朴孝幹), 한처량(韓處良), 정송수(貞松守), 이석손(李錫孫), 권파(權怕), 오윤손(吳允孫), 강희(姜熙)의 고신(告身)을 돌려주게 하였다.
○傳旨吏、兵曹, 還給權仲孫、權志、趙碩孫、陳欽、金履祥、趙崇孫、吳栗山、李信忠、金有章、崔有生、尹光、宋繼達、邊崇義、劉泰孫、李彭齡、栢城守李源、裵善孫、鄭汝擧、金好忠、安克祥、鄭義耘、洪貴湖、池永貯、權善、李演、池自澄、吳演、韓同、金鯤、崔世省、金奉孫、尙孝孫、柳春孫、康繼宗、曺敬孫、金賢責、金祚、沈家甫、李宗守、盧從愼、姜利順、趙枰、孫碩孫、趙甲忠、朴碩忠、朴春山、鄭繼同、金孝善、金義達、張末同、南用信、朴孝幹、韓處良、貞松守李錫孫、權怕、吳允孫、姜熙告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