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8월의 그 논쟁은 끝났지만 오항녕 교수는 여기서 나온 문제의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 교수는 2010년 초 기념비적인 '조선의 힘'을 출판함으로서 책에서 이덕일류의 사관을 한 챕터를 할애하면서까지 강하게 비판하고 이덕일에 대한 반박문을 그대로 싫었습니다. (하지만 이덕일의 주장도 같이 싫었으면 더 좋았을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오 교수의 이덕일 비판은 조선의 힘만으로 끝나지 않았으니......
오 교수는 올해 7월에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너머학교 열린교실' 시리즈의 역사 부분인 '기록한다는 것'을 출판했습니다.
책 자체는 조선의 힘 읽어본 사람에게는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조선의 힘의 문치주의와 사관제도에 대한 부분을 축약하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교정한 것입니다. 제목인 '기록한다는 것'에도 맞는 내용이고요.
그런데 오 교수는 이 책에서도 당시의 논쟁을 잊지 않는 뒤끝을 보여줍니다!
예스24 미리보기로 보고 "오교수님 뒤끝 쩝니다."라고 서평 달 뻔했습죠 ㅋㅋㅋ

어라, 이거슨 어디서 많이 본 대목 아닙니까?

오오 교수님의 뒤끝 오오
소송방지 차원에서인지 보시다시피 이덕일의 이름은 하나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고등학생들이 저걸 보고 저런 주장은 10만양병설의 반박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훗날 이덕일의 책을 접했을 때 이덕일의 10만양병설 부정 논리를 보고 '뭐야 이양반 구라치네 ㅋㅋ'라고 반응할 확률을 높아지게 만들었습니다. ㅋㅋㅋㅋ
참고로 저거 조선의 힘보다 더 많이 팔렸습니다. 즉, 이덕일 입장에서는 조선의 힘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낄낄
이리하여 이덕일은 올해 2010년 한해 동안 4번이나 책으로 펀치를 맞게 되었습니다.
1번:'조선의 힘'에서의 이덕일의 조선시대사 논지 비판과 개털린 논쟁 재수록
2번:초록불좌의 '만들어진 한국사'에서의 이덕일의 환빠스틱한 고대사인식 비판
3번:여기 이 '기록한다는 것'
4번:박시백 화백의 만화 조선왕조실록에서 정조독살설을 정면반박하며 뒤통수 (이덕일은 이거 추천사까지 달아줬는데!!)
경사로세~ 경사로세~
아, 원래 오항녕-이덕일 관련기사가 있길레 에필로그2로 하려 하였지만 기사에서 문제가 되고 초록불님이 기가 막혀 하신 부분은 너무 짧아서 따로 쓰진 않겠습니다.
대신 링크만 둘께요.
http://orumi.egloos.com/4435300
첫댓글 문제는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조선의 안습함으로 유성룡의 이이에 대한 회고만으로 보면 당대엔 십만양병설같은건 0.001프로의 가능성을 억제하는 보험정도로나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투인데요. 뭐 이이가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것은 맞다=> but, 개쌩까임=> 임진왜란 => 난중에야 이이말 들을걸하고 후회 정도로 요약가능하고 정책적으로 10만 양병설의 일부를 받아들였다 그런 식으로 주장하기는 매우 난감한듯요. 그런 뜻에서 문제제기 잘하기로 유명한 송대의 위인이랑 이이를 비교하였겠죠. 이를테면 이이가 매우 선견지명이 있어서 10만 양병설을 주장했으나 당대의 판단으로는 이정이 치세임에도 이것저것 문제제기를
많이한 그런 것과 같아서 수용하기는 힘들었다.(=왕면피용) 뭐 나중에 후회는 했지만 ~~~ ㅠ.ㅠ 요런 투의 전개인거 같은뎁쇼. ㅋ
평화시에 전란을 대비한다는게 쉬운일은 아니지요. 율곡의 제자들이 율곡행장에 10만양병설을 수록해놓은것도
결국은 "우리 스승님이 이 정도로 혜안이 있으신 분이었다 " 자랑하려고 한것이니까요. 그리고 10만양병설을 주장하는 쪽도 그냥 그런 의견이 있었다만 얘기한거지 실현이 되었다고 한적은 없는걸로 압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도 이 논쟁의 결말이나 진위여부와는 관계없이 좀 회의적인 입장이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저
개인의 생각에 불과할 뿐이지요.
이 논쟁에서 핵심적인 것은 이이가 10만양병설을 주장한것이 맞냐 틀리냐 보다는 기존학설을 반박하기 위해서는 제대로된 근거를 가지고 까야 하는데 이덕일씨는 부실한 근거를 가지고 까면서 오히려 상대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있다는 거지요. 남을 설득해서 생각을 바꿔놓으려면 그만큼 치밀한 근거를 들어야 설득력이 있겠지요.
공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