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 홍련을 탐방하고
칠월 둘째 토요일이다. 계묘년 장마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보름 정도 되었으니 절반쯤 지나고 있지 싶다. 올여름 장맛비에서 큰 피해는 주지 않아 마음이 놓인다만 앞으로도 잘 대비해야 할 듯하다. 연일 비가 내리지 않고 하루걸러 햇볕이 드러나기도 해 생활의 불편이 적은 감도 든다. 비 오고 흐린 날이라고 마냥 집에만 머물 수 없기에 바깥으로 나가 보낼 명분이 생겼다.
평소 교류가 있는 같은 생활권의 두 문우가 함안 가야 작은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개봉작을 관람하자는 제의가 와 흔쾌히 동행했다. 이른 아침 현관을 나서 아파트단지 이웃 동 뜰에서 꽃을 가꾸는 꽃대감과 안부 인사를 나누고 나는 나대로 길을 나섰다. 이웃 아파트단지 문우와 팔룡동으로 나가 한 지기와 합류하니 일행은 셋이 되었는데 이전에도 가끔 동선을 같이 했던 적이 있다.
한 지기가 운전대를 집고 나는 동반석에서 밀려 뒷좌석을 차지해 마산을 거쳐 신당고개를 넘어 함안 경계로 접어들었다. 영화 상영 시각이 오후라 아침나절 네댓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과제를 부여받았다. 입곡저수지를 지나다 그곳 산책로는 익숙해 근처 동지산마을로 올라가 검암산 등산로를 걷기로 했다. 검암산은 가야읍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공원으로 꾸며진 야트막한 산이다.
수피가 붉은 미끈한 홍송이 자라는 숲길을 걸으니 몇몇 성씨 문중의 선산이 나왔다. 소나무 숲에는 재선충 방재를 위한 유인 트랩이 곳곳에 매달려 있었다. 길섶은 철이 철인지라 수풀이 무성했고 풀잎의 물방울로 신발과 바짓단이 젖어왔다. 넝쿨로 뻗어나간 칡덤불에선 자주색 꽃이 피어 향기를 뿜었다. 정상에 이르니 날씨가 굳은데도 한 노인이 산책을 나와 쉼터에서 쉬고 있었다.
영화 세트장 망루처럼 생긴 3층 꼭대기 전망대에 오르니 한 아주머니가 요가를 하듯 유연하게 몸을 단련하고 있었다. 안개가 짙게 끼어 사위를 조망할 수 없었지만 낯선 곳의 새로운 풍광을 접했다. 아주머니가 자리를 비켜주어 준비해 간 커피를 들면서 환담을 나누었다. 한 문우는 최근 남겨가는 몇 작품을 낭송하면서 창작 동기 부여와 율조의 자연스러움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차를 둔 동지산마을에서 비탈길을 내려 대사리를 지났다. 고려시대까지 큰 절이 있어 ‘한절골’로 불리는 대사리 마을 앞에는 그 당시 석불이 장승처럼 서 있었다. 함안 조씨네 문중 정자로 봄에 낙화놀이로 유명해진 무진정을 비켜 다음 행선지는 함주공원 아라 홍련 연지로 향했다. 삼봉산이 저만치 보이는 늪지를 지자체에서 의미 있는 연지로 만들어 둔 곳이었다.
가야에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둔 말이산고분군도 유명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성산산성에 발굴된 죽간과 함께 700년 전 고려시대 연실도 세상을 놀라게 했다. 연전 유적 발굴 현장에서 나온 연실 씨앗을 심었더니 700년 세월을 건너뛰어 붉은 연꽃이 피어 시선을 사로잡았다. 드넓은 함주공원 연지에는 ‘아라 홍련’으로 명명된 연꽃이 가득 피어나 탐방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함주 연지에서 읍내 추어탕집으로 찾아가 방앗잎과 제피가 향신료로 나온 맛깔스러운 점심상을 받았다. 나는 봄날에 미산령을 넘으면서 산나물을 뜯어오다가 들려서 반주까지 비웠으나 지금은 술을 끊고 들지 않아 두 지기에 맥주잔을 권했다. 점심 식후 함안 군립박물관으로 가서 그곳 연지에 핀 홍련도 완상하고 이전부터 안면을 트고 지내오는 문화해설사와 안부 얘기를 나누었다.
함안 나들이 대단원은 오후의 ‘인디아나 존스’ 관람이었다. 비록 소읍의 작은 영화관이지만 지역민들의 문화예술 항유 욕구를 충족시킬만 했다. 나는 이전 4부작까지 접하지 못해 배역과 줄거리 파악 이해도가 낮아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액션 영화를 신선하게 접한 기회였다. 고령에도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을 추적해 모험을 떠난 인디에나 존스와 맞선 세력의 긴박한 대결이었다. 23.07.08